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18화 (18/57)

〈 18화 〉 첫 방송 (2)

* * *

달퐁 :

[저한텐 아침임ㅎ]

[지금 머해여?]

달퐁의 그 메시지에,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어제 만난 사람이 갑자기 방송을 하겠다고 하면 과연 무슨 반응이 돌아오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숨길 생각은 없었으니, 이내 느릿하게 타자를 입력했다.

Ирина :

[방송]

[준비 중]

달퐁 :

[?]

[저한테 묻는 거임?]

Ирина :

[no]

[나 방송 시작하ㄴ다]

내 대답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달퐁은,

이내 메시지들을 기관총마냥 쏘아내기 시작한다.

달퐁 :

[?]

[???]

[이리나 방송한다고요?]

[갑자기?]

[갑자기는 아닌가]

[전부터 준비했던 거임?]

저 모든 말들이 내 화면에 나타나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누군 타자 하나하나 칠 때마다 1초 넘게 걸리는데. 손가락이 한 30개라도 되는 건가.

Ирина :

[오늘 최초로 생각한]

달퐁 :

[생각한?]

Ирина :

[생각한다]

달퐁 :오후 13:06

[최초로 ­> 처음]

[한다 ­> 했다]

Ирина :오후 13:08

[오늘 처음 생각했다]

달퐁 :

[앆]

[앆!!!!!!!!!!!!]

존나게 빠른 타자 실력을 가진 한국인답게,

달퐁은 내 한국어를 교정시켜주다 말고 또 다시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게 되었다.

하긴. 저거 한 문장 쓰는 데 40초 넘게 걸린 건 좀 선을 넘긴 했다.

그래도 어제보단 확실히 빨라졌으니까, 한 일주일 동안 키보드 붙잡고 있으면 10초 밑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 달퐁에게서 통화 요청이 날아왔다.

대가리에 헤드셋을 장착하고 그녀와 음성 채팅을 시작하자마자, 그녀의 앳된 목소리가 귓구멍에 푹 꽂혀든다.

“이리나아아!!”

“Oy blyat…”

귀에서 케찹이 흐를 것 같은 그 외침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재빨리 볼륨을 낮추었다.

“아니, 타자 연습 좀 해요 진짜! 방송 하겠다는 사람이 타자도 못 치면 뭐 어쩌자고요!”

“연습 진행 중이다.”

“게임은 그렇게 잘 하면서 어떻게 타자가….

아, 맞다. 방송은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어제 보니까 별로 관심 없던 거 같던데.”

“오늘 정보 획득하여 관심 생기다.”

“아니죠. ‘생기었다’를 빠르게! 생겼다!”

“음. 관심 생기었… 생‘겼’다.”

“잘했어요.

근데 무슨 정보요?”

“게임 실력 훌륭한 여성 스트리머, 돈 복사 가능하다.”

“아.”

내 대답에 달퐁이 곧바로 납득한 듯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목소리에 황당한 기색이 담긴다.

“근데 그걸 이제 알았어요?

스트리머가 뭔지도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진즉에 시작 안 하고….”

“…사정 존재하다.”

“개인 사정이면 뭐…. 할 말이 없네요.

아무튼, 시오루 썩은물한테 제가 실력 갖고 뭐라 할 순 없는데, 방송은 괜찮아요…? 잘 진행할 자신 있어요?”

“프로그램 공부 중이다.”

“아뇨. 프로그램 말고 방송.”

“방송 진행 이전에, 송출 방법 모르다.”

“….”

헛웃음이 그녀의 마이크를 타고 전해지는 것만 같다.

그러더니 이내 결심한 듯이 작게 한숨을 내뱉는 달퐁.

“그럼, 제가 도와줄게요.”

“도움?”

“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같은 플랫폼의 동일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가 되는 이상, 서로 시청자를 뺏고 뺏기는 경쟁이 일어나게 될 텐데. 왜 날 그렇게까지 도와주려 하는 거지?

라고 말하기에는 한국어 실력이 덜 복구되었기에, 간략한 질문을 던졌다.

“…경쟁자인데, 도움 제공하나?”

“경쟁자요? 우리가요?”

허나 내 물음에,

달퐁은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그렇게 되물었다.

설마 만난 지 하루 만에, 시장의 법칙 따위 무시할 수 있는 우정이 쌓여 버린 건가.

“아닌데요?

이리나한테 방송 가르쳐서 잘 키워가지고 대기업 되면, 맨날 합방하면서 빨대 꽂고 시청자 빨아먹을 건데요?”

“….”

물론 그런 동심 가득한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키워서 이용해먹겠다며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선언하고 있었다.

요망하리만치 뻔뻔한 것까지 아주 그 년이랑 똑 닮아서, 나도 모르게 픽 웃었다.

“제가 엄마고 이리나가 딸인 거죠!

자식새끼 잘 크면, 으이? 그 덕 좀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통화 종료한다.”

“아아! 끊지 마요! 에이, 농담이죠 당연히! K­농담 몰라요?”

“슬라브식 농담 원하나?”

“거기다 슬라브식 붙이니까 개무섭네요…

아무튼! 그냥 이리나처럼 게임 잘하는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빨대 안 꽂다?”

“…그거야 뭐.”

내가 툭 던진 질문에 차마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얼버무리던 달퐁은, 이내 화제를 돌리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어쨌든 간에 도와드릴게요! 어디까지 공부했어요, 지금?”

“흫.”

답하기 곤란한 물음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던 그 작달막한 년의 얼굴이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달퐁이 내게 제공해 준 도움과 호의는 당연히 합방이든 뭐든 어떤 식으로라도 되갚아 줄 생각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달퐁을 추궁하지 않고 그녀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음… 프로그램 설정 창? 패널? 발견하다.”

“…아니, 진짜 처음부터 배우는 거였어요?”

그렇게 달퐁과 진행하게 된 스트리머 속성 과외를 통해,

방송을 진행하는 것에 있어서 필수적인 핵심 요소들을 머릿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플레이챗으로 내 컴퓨터의 화면 상태를 그녀와 공유하며,

프로그램의 설정, 화면의 전환과 소리 및 음성 세팅, 채팅창 관리, 후원 관련 설정 등등을 배워나갔다.

중간중간 과부하가 걸리려는 대가리에 40%의 알코올 연료를 넣어 주며 버텨낸 결과,

마침내 방송을 실제로 송출해 내는 것까지 성공했다.

“아. 아. 들리다?”

[■ 달퐁 : 넹 잘들려요]

게임 플레이 중에도 볼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화면 한 구석에 박혀 있는 채팅창에서, 방송 설정 권한이 부여되어 매니저 뱃지를 달고 있는 달퐁의 채팅이 쓱 올라온다. 테스트 성공이다.

“Хoрoшo.”

[■ 달퐁 : 하라쇼가 머였드라]

[■ 달퐁 : 들어본 거 같은데]

“좋다.”

[■ 달퐁 : ㅇㅎ]

[■ 달퐁 : 아 글고]

[■ 달퐁 : 이거 받으세여]

“…?”

그 영문 모를 채팅이 올라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팡파레 소리와 함께 후원 목록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달퐁 님이 872,000원 후원했습니다.]

‘어제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님한테 주라고 했음. 윾’

뭔가 얄미운 여자 목소리 TTS가 후원 메시지를 읽어 주다가 마지막에 가서 오류라도 발생했는지 윾끆 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크게 놀란 상태였다.

“…니후야 시볘(뭐야 시발). 이것 무엇?”

갑자기 훅 들어온 거금.

컴플릿 보드카를 20병 넘게 살 수 있는 큰돈이다.

그것을 달퐁한테서, 정확히는 그녀의 시청자들에게서 받게 되어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그렇게 묻자, 플레이챗 마이크의 음소거를 해제시킨 달퐁이 답해 주었다.

“사실 오늘 님한테 연락한 것도 이거 때문에 계좌 좀 불러 달라고 할라 했던 건데,

방송도 켰으니까 이걸로 첫 후원 박아버렸어요!”

“…원래, 이렇게 금액 거대하나?”

“그건 아니고요. 처음엔 그냥 장난으로 천 원씩 던지는 거 같았는데,

나중에 사지협회니 뭐 1탄협회니 이상한 컨셉 잡는 사람들이 와가지고 서로 경쟁 붙었어요.”

“….”

경쟁을 뭐 어떻게 했길래 90만원이 모이는 거냐.

심지어 스트리머도 아니고 그냥 잠깐 같이 하는 사람한테 주는 건데.

어이가 없어져서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 달퐁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일단 그걸로 듀얼모니터부터 맞추세요.

계속 방송하려면 모니터 하나로는 힘들어요.”

“어, 음. 감사하다.”

“감사는 제가 아니라 시청자들한테 해야죠.

그쵸 님들?”

“…?”

달퐁의 영문 모를 말에 대가리 속으로 물음표를 거하게 띄우고 있자,

이내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하나 표기된다.

[매니저 ‘달퐁’에 의해 비밀번호 설정이 변경되었습니다.]

테스트를 위해 방송에 걸어 놓았던 비밀번호가 그녀의 손에 해제되었다.

내가 송출하고 있던 방송에 이제부터 아무나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저 아까부터 방송 켜놓고 있었어요!

자 드가자! 겜은 썩은물인데 방송은 뉴비인 눈나 혼내주자!”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시청자들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 방송 1일차 늒네!]

[늒네눈나 신선한 냄새 쓰으으으ㅇ응ㅇㅇ읍]

[헤으응 러시아 눈나 헤으응 러시아 눈나 헤으응 러시아 눈나]

[방송 처음키는 시오루 썩은물? 이건 못참지ㅋㅋㅋ]

[내 5렙갑빠 내놔 시1발련아!!!!!!]

[빨리캠켜빨리캠켜빨리캠켜빨리캠켜빨리캠켜빨리캠켜]

[머리털 금색이면 뷰1지털도 금색임?]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전국 보드카 협회 일동은 당신을 지지합니다]

[저격마려운데 겜 언제 키냐]

[러시아어로 욕해줘요 눈나]

“Cyka.”

제대로 살펴볼 새도 없이 훅훅 치고 올라가는 채팅들에,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방송 첫 날부터 이걸 어떻게 감당하라고, 미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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