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19화 (19/57)

〈 19화 〉 첫 방송 (3)

* * *

나와 달퐁만이 접속해 있던 자그마한 테스트용 방송은,

어느새 2천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완전히 시장통이 되어 있었다.

온갖 한국어 문장들과 마치 벽돌과도 같은 도배들이 채팅창을 꽉꽉 채우고 있었기에,

나는 일단 달퐁에게 배운 대로 채팅 설정을 건드려서 팔로워 전용으로 바꿔 버렸다.

“눈 어지럽다, 카레예츠들.

채팅 원할 경우 팔로우하다.”

“와, 방송 첫 날부터 채팅창 통제하는 건 첨 보네요.”

내 빠른 결단에 달퐁이 그렇게 감탄해 오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방송 잘 돌아가는지 얌전히 테스트 하고 있던 사람한테 갑자기 인해전술 갈긴 년이 누군데.

“…너가 원인이다, 지빌(미친년아).

이 거대 군중들 동반하여 첫 날 방송 진행 가능하나?”

“이리나면 가능할 거 같은데요?

목소리 아까랑 똑같은 거 보니까 긴장 하나도 안했네요, 뭐.”

“씁.”

달퐁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신입 스트리머의 데뷔 방송이라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대인원이었지만,

그렇다고 가슴이 막 두근거리거나 머릿속이 하얘지게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 대 맞으면 훅 갈 수도 있는 총알들이 씽씽 날아다니는 곳에서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한 놈씩 보내버리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었다.

저 2천 명이 죄다 총 들고 나 잡으러 오는 게 아니면 모를까,

그냥 모니터 너머에서 시끄럽게 구는 것 가지고 겁을 집어먹기에는 이미 대가리가 존나게 무뎌져 있었다.

[않이 첫날부터 통제 들가네;]

[ㅅㅂ 달퐁 텐련한테 벌써 물들었누]

[방송 처음 키자마자 기강잡는거 꼴받거든요?]

[왜팔로우리액션안해왜팔로우리액션안해왜팔로우리액션안해]

그 와중에 시스템 알림창으로 신규 팔로우 소식이 주르르륵 늘어서더니,

이중 필터링에 의해 순간이나마 잠잠하던 채팅창이 다시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까보단 좀 나아진 것 같긴 한데,

점차 갱신 속도가 상승하여 위로 휙휙 올라가기 시작하니까 채팅을 읽기 힘들어지는 건 똑같았다.

특히 띄어쓰기 없이 다닥다닥 붙여 놓은 글 같은 경우에는 내게 있어서 반쯤 암호문이나 다름없었다.

“왜팔로…? 정상 문장 아닐 경우 해석 어렵다. 스페이스바 입력 부탁한다.”

“어어? 그런 말을 해 버리면….”

“허?”

당황 섞인 달퐁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문장에 띄어쓰기 좀 넣어 달라는 말이 그렇게 큰 실례인가.

"...!?"

허나,

뭐가 문제냐고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나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ㅋㅋㅋ늒네눈나커엽누]

[스페이스바가먼대요그거어떻게하는건대요]

[아ㅋㅋ이건못참지아ㅋㅋ이건못참지아ㅋㅋ이건못참지아ㅋㅋ이건못참지]

[대놓고벽돌도배유도하는스트리머가있다?삐슝빠슝쀼슝]

[첫날부터기강잡는러시아눈나호감가면개추눌러볼까일단나부터]

[시1발한놈도띄어쓰기안하는거실화냐]

[시오루언제켜시오루언제켜시오루언제켜시오루언제켜시오루언제켜]

“저런 사람들이니까,

그런 말 하면 님만 손해에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하고 싶어지는 법.

그래도 조금이나마 눈에 들어오려고 하던 글자들이,

내 발언에 의해 죄다 딴딴하게 뭉쳐진 상태로 채팅창에 벽돌 마냥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과 함께 들려오는 이리나의 충고에, 나는 시청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대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피즈뎩.”

(시발.)

그 거지같은 도시에서도,

나름 마음에 드는 장소가 한두 군데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양조집이었다.

술맛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곳이었기에,

보드카를 마시기 아까운 날이면 거기에서 싸구려 증류주를 들이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주인장과도 친해져서, 잠깐씩 양조집 일을 도와줄 때도 있었다,

접객업이라기 보단 미친놈들에게서 가게를 지켜내는 경비에 가까웠지만, 도시에서 몇 안 되는 술집을 깨부순다는 건 근처 모든 구역의 무장집단을 적으로 만들어 한바탕 배틀로얄을 벌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기에, 사실상 하는 일은 접객에 가까웠다.

술 내놓으라는 손놈들에게서 술값을 제대로 받아내고,

취해서 반쯤 이성이 나간 놈들의 꼬장에 최대한 폭력 없이 대응하는 것들 말이다.

물론 내 몸에 손대려는 새끼들은 대가리를 테이블에 꽂아버리긴 했지만,

뭐 아무튼 내가 설명하고자 했던 건 대충 그런 느낌이다.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과 투닥 거리던 그 경험.

나는 그것을 십분 활용하여,

내 방송에 쳐들어온 시청자들을 상대하기로 했다.

“하라쇼(좋다). 방송 계속 진행하다.

시티 오브 루인 플레이 예정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취해야 할 스탠스는 간단했다.

빨리 게임이나 켜서 저들의 흥미를 다른 곳으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

보고만 있어도 눈이 꼬일 것만 같은 채팅창에서 시선을 돌리며, 바탕화면에 놓여 있던 게임 아이콘을 더블클릭하여 시티 오브 루인을 실행한다.

도시를 형상화한 로고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며 달퐁을 불렀다.

“달퐁. 듀오 게임 플레이하나?”

“저요? 아뇨!

오늘은 원래 방송 쉬는 날인데, 님 도와주느라 잠깐 킨 거예요.”

“…이 상황에 도주하다?”

그녀의 말에 느낌이 싸해진 내가 그렇게 묻자,

상대는 무슨 그런 섭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태연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에이, 도주라뇨!

이리나 혼자서 방송 진행해 보는 게 오늘 속성과외 마지막 단계에요.

제가 매니저 하면서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 말고 해 봐요!”

“무엇­”

“그렇게 됐으니까, 님들! 잘 부탁해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달퐁은 그렇게 외치고선 곧바로 음성 채팅을 종료해 버렸다.

[달퐁 님이 1,562명을 호스팅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직 본인의 방송에 남아 있던 시청자까지 내 쪽으로 호스팅­ 다시 말해 떠넘기고 사라지는 그녀.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을 찾지 못 하고 있자니,

짤랑 소리와 함께 시청자로부터 후원이 도착했다.

[제목 님이 1,000원 후원했습니다.]

‘현실에선 시오루 쌉고인물인 내가 이세계에선 첫날 3천명 찍는 신입 스트리머?!’

“…후원 감사하다.”

지금의 내 상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는 후원 메시지에 감사를 표하며,

보드카 병을 집어 들어 40도짜리 생명수를 목구멍에 퍼부었다.

컴플릿 보드카. 내게 힘을 줘.

“무엇 되었든 간에….

반갑다 카레예츠, Нет(아니). 시청자들.”

[카레예츠가 머임]

[김치맨이래]

[ㅋㅋ첫날부터 어메이징하누]

[캠키라고캠키라고캠키라고캠키라고캠키라고]

[벽돌 빨리 다 쳐내ㅅㅂ]

달퐁이 매니저 권한으로 채팅창에서 난리를 치는 놈들에게 하나둘씩 채팅 밴을 먹이며 칼춤을 추기 시작하니, 벽돌이 층층이 쌓여 가던 채팅창도 대충 정상화가 되었다.

물론 팔로우 제한을 걸었는데도 3천의 화력에 의해 휙휙 올라가는 채팅들을 포착해 내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그렇다고 아예 소통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하나라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하며, 로딩이 다 된 게임에서 우선 창고부터 열어제꼈다.

자유 시장으로 가지 못 한 채, 창고 안에 대충 쌓여 있는 장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뉴비이므로 레벨 부족하여 장비 못 팔다.

오늘 목표, 자유 시장 개방이다.”

[?]

[늒네 어디]

[11렙 뭔데ㅋㅋㅋ]

[그와중에 템 정리 조또 안해놓은거 킹받네ㅅㅂㅋㅋ]

[빤쓰(안전 보관함)보니까 딱봐도 부캐 무료계정임 ㄹㅇ]

[눈나 빨리 본캐 레이팅 말해]

[오이늅이면 30층 예상해본다]

화면 구석의 채팅창을 흘낏 바라보던 나는,

빠르게 갱신되는 채팅 사이에서 대충 몇 개의 단어를 건져낼 수 있었다.

본캐 레이팅 30층이라.

아무래도 나한테 본 계정이 따로 있다고 착각하는 듯 했다.

여기에서의 30층은 건물 층수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까 커뮤니티를 구경하다가 이따금씩 나오던 단어였는데, 뭔가 하고 찾아보니 대충 실력의 척도를 나타내는 수치인 레이팅 점수를 표현하기 위해 커뮤니티 내에서 사용하는 단위였다.

12층은 1200점.

30층이라면 3000점인 것이다.

그리고 레이팅 3000점대는,

난다 긴다 하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천상계의 영역이었다.

현재 최고 레이팅은 3600점 언저리라고 하니,

36층이 현재 시티 오브 루인의 꼭대기 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는 어제 게임을 시작한 파릇파릇 뉴비였기에,

레이팅이고 뭐고 아직 점수 책정조차 되지 않았다.

언더 레이팅.

내 계정은 유저들이 흔히 언레라고 부르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적어도 자유 시장을 개방한 뒤로 좀 더 플레이를 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점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0층…? 이것 본 계정이다.

아직 레이팅 책정 안 되다.”

[아니 11렙따리니까 당연히 언레겠지 ㅅㅂㅋㅋ]

[아ㅋㅋ 요즘 무료빤쓰 언레 뉴비는 맵도 싹다 외우고 다니나보네]

[이분 컨셉 왤케 대충임]

[보드카에 뇌가 녹아버린 겁니까 선생님?]

[러시아섭 랭킹 뒤져보면 본캐 나올듯]

그렇게 사실만을 알려 주었지만,

단편적으로 눈에 포착되는 단어만으로도 시청자들이 내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금세 파악해낼 수 있었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서 4만 시간 채우고 왔다 해도 안 믿을 거면서 나보고 어쩌라고.

그깟 데이터 쪼가리 같은 거 없어도 내 몸뚱아리 자체가 30층짜리다 새끼들아.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자,

짤랑. 하고 후원 효과음이 들려왔다.

[하체트 님이 25,000원 후원했습니다.]

‘늒네컨셉 개빡치니까 그만하고 빨리 산업단지 도끼런 돌아줘’

“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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