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20화 (20/57)

〈 20화 〉 첫 방송 (4)

* * *

[하체트 님이 25,000원 후원했습니다.]

‘늒네컨셉 개빡치니까 그만하고 빨리 산업단지 도끼런 돌아줘’

“허?”

걸걸한 남자 목소리 TTS가 읊어대는 그 문장에,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도끼런이 뭐지. 도끼 + 런이라는 단어 조합을 보아하니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생각하는 그 플레이가 정확히 맞는지 시청자들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도끼런?

오직 도끼 소지하여 플레이하나?”

[이분 알면서 왜 모른척함]

[ㅖ]

[아ㅋㅋ 언레 늒네라 모른대자너]

[갑빠도 다 벗어 눈나]

[러시아녀가 야외에서 알몸으로 도끼를...avi]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맞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 같으니 게임 속 캐릭터가 착용하고 있던 장비들을 하나하나 벗겨 창고에 던져 넣기 시작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무장 자체도 빈약했던 터라,

몸통을 가리는 방탄복과 전술 조끼를 벗기면 곧바로 살짝 택티컬한 느낌의 기본 의상만을 입고 있는 백금색 단발머리 년의 맨몸이 드러나게 된다.

AK 소총과 권총까지 죄다 압수하자,

기본 무기인 도끼 하나만 덜렁 들고 있게 된 캐릭터가 이게 뭔 짓거리냐는 듯이 카메라 쪽을 쳐다본다.

사운드 플레이 때문에 전술 헤드셋까진 안 뺏어간 걸 다행으로 알아, 임마.

“하라쇼. 세팅 완료했다.”

[헤드셋 안뺌?]

[눈나 뚝배기에 뭐 하나 걸려있는데]

[빨리벗어빨리벗어빨리벗어빨리벗어빨리벗어빨리벗어]

[벽돌 시1발아 진짜 대가리 벽돌로 으깨버릴라]

[저기서 헤드셋 빼면 겜을 어케해 미친새기들아ㅋㅋ]

[ㄹㅇ 게임시간보다 뒤져서 매칭하는 시간이 더 길어짐]

아직도 간간히 보이는 벽돌과 함께 채팅들이 내 눈을 휙휙 지나간다.

뭐 그리 할 말들이 많은 건지 모르겠네.

아무튼, 도끼런이다.

무거운 장비들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도끼만 들고 뛰어다니는 정신 나간 플레이다.

그 거지같은 도시에서 함부로 이런 지랄을 했다간 지나가던 멍청이들한테까지 미친놈 소리를 듣는 업적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고,

나는 이제 도시 속 꽐라 마녀가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야 하는 스트리머다.

도시의 기억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도시의 일원으로서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그런 생각에 왠지 모르게 기운이 처지는 것만 같아,

나는 잠시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냉동고에 잠들어 있던 마지막 보드카를 꺼내들었다.

뚜껑 포장을 벗겨, 입안이 꽁꽁 얼어버릴 것처럼 차디찬 액체를 목구멍에 들이붓는다.

좋다. 40퍼센트 알코올의 축복으로 다시 기운이 솟아난다.

빈 보드카 병을 치우고, 새로운 보드카 동무를 컴퓨터 책상 위에 탁 올려놓는다.

“후우, Cyyyka…! 충전 완료했다.”

[?ㅋㅋ 갑자기 텐션 확 올라가누]

[병소리 묵직해진거 보니까 보드카 리필해왔네 ㅅㅂㅋㅋ]

[걍 물 마시고 억텐 끌어올리는거 아니냐]

[늒네컨셉은 연막이고 보드카가 ㄹㅇ인듯]

“…물?”

채팅창에 잠깐 지나가던 물이라는 단어에, 알코올에 절여진 뇌에서 코웃음을 내보냈다.

생명수는 따로 있는데 뭐 하러 물을 마시려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 오직 요리 한정하여 쓸모 있다.

갈증 느낄 경우 맥주 마시다, 카레예츠들.”

[우리는 그걸 알콜중독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미친련아]

[??? : 죽....여.....줘......]

[ㅋㅋㅋ눈나 배 열어보면 간이 위보다 클거같누]

[간은 원래 위보다 커 병1신아]

[곧 슬라브식 알중으로 뒤질 스트리머입니다]

뭔가 시끌시끌해진 채팅창을 뒤로 하고,

나는 산업 단지 맵을 선택한 뒤 헌터와 시티즌 중에서 플레이어 캐릭터인 전자를 골라 게임을 시작했다.

언제나 익숙하기 그지없는 단지의 풍경.

큼직한 창고 근처에서 눈을 뜬 나는, 제일 먼저 온갖 스프레이로 낙서가 새겨진 창고 벽면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벽을 향해,

도끼를 여러 방향으로 휙휙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끼날이 벽에 닿으면 자국이 나는 것을 활용하여,

도끼의 사정거리와 그 손맛에 대해 제대로 감을 잡기 위함이었다.

5년 동안의 경험 중에는 당연히 도끼로 사람 대가리를 쪼갰던 기억도 있었지만,

직접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것과 그저 마우스를 조작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 반드시 이러한 적응 과정이 필요했다.

현실성을 지향하는 게임이라 그런지, 도끼 휘두르는 모션도 꽤나 여러 가지 존재했다.

그렇게 휘두르는 도중 허리를 비틀어 보기도 하고 점프해서 수직으로 내려찍어 보기도 하며 벽이랑 스파링을 하고 있자니, 채팅창에 점차 물음표의 비율이 많아지는 듯 했다.

벽 앞에서 와리가리를 치면서 점차 벽의 흠집을 늘려 나가며, 시청자들의 의문에 답해 주었다.

“유저 머리 파괴 위해 연습한다.”

[?]

[???]

[야끼런으로 유저킬 하겠다는 거임?]

[눈나 취햇서요?]

[보드카 마시더니 ㄹㅇ 뇌가 녹은듯]

[보드카가 이렇게 해롭습니다...]

허나 물음표의 개수는 그다지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반응도 이해는 간다.

도끼를 상대에게 맞추려면 당연히 도끼의 사정거리 안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보통은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금세 발각당하여 몸에 바람구멍이 숭숭 뚫리기 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권총을 사용하는 근접전보다 한술 더 뜨는 초근접전은 애초에 성사시키는 것 자체부터가 매우 어렵고,

설령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상대가 총을 제대로 겨누기 이전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정확하고 빠르게 도끼를 휘둘러 대가리를 박살내야 한다는 극악의 조건이 따른다.

심지어 도끼는 근접 데미지가 머리의 내구도보다 낮아서 두 대나 맞춰야 한다.

그래서 사실상 스트리머와 같은 예능용 플레이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시도하지 않는 방식이며, 예능용으로 시도한다 해도 그 성공률은 매우 희박하다.

“걱정 필요 없다, 시청자들.”

하지만 나는 꽤나 자신이 있었다.

그 빌어먹을 도시에서도 몇 번이고 해냈던 일인데, 게임이라고 해서 그렇게 차이가 심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도끼로 상대가 들고 있는 총부터 작살낸다거나 체술을 섞어 공격하는 짓은 게임에서 불가능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도끼로 총쟁이를 엿 먹이는 방법은 많았다.

오히려 게임이기에 가능한 전략들도 있으니, 이건 내게 있어서 분명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누가 야끼런하면서 싸움 걸고 다녀 미친련아]

[후원 박은 놈도 예상 못했을 전개ㄷㄷ]

[오이늅이면 될수도 있따]

[이거 배팅각아니냐]

[오늘 방송켠 늒네라 채널포인트 조또 안쌓임ㅋㅋㅋ]

물론 그런 내막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납득하지 못 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잠시 후에 직접 그들의 눈앞에서 실력을 보여 주면 되는 일이었다. 말보다는 행동이지.

마지막으로 벽에다가 득득 도끼날을 긁어내며 간 보기를 마친 나는,

이내 유저를 찾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때,

띠링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미션 기능을 통해 내기를 걸어왔다.

[신규 미션 등록!]

[이번판에 도끼로 유저 킬 성공 : 10,000원]

“Oy….”

도끼만으로 유저 킬을 성공하는 것이 조건으로 걸려 있는 그 미션에,

나는 나지막이 감탄사를 흘렸다.

여기에 돈까지 얹어 준다고?

아주 훌륭한 동기부여에 의욕이 끓어오르는 것만 같다.

허나 도시에서는 항상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기에, 나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유리병을 집어 들어 차가운 보드카 한 모금으로 대가리를 식힌다.

“하라쇼, 따바리쉬(동무). 미션 수락하다.”

그렇게 미션을 받아들이고 난 뒤,

나는 컨테이너 사이사이로 조심스레 숨어들며 산업 단지 내부를 뛰어다녔다.

멀리에서 딱. 따닥 하고 콩 볶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지만, 수중에는 도끼밖에 없었으므로 총성이 들렸던 방향만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이게 뭔 소리야?]”

전방에서 들려오는 거친 말투의 러시아어와 발소리에, 재빨리 컨테이너 뒤로 몸을 숨겼다.

저 너머에 NPC­ 시티즌이 있었다.

유저는 아니었지만,그래도 도끼 하나만으로 상대하기엔 꽤나 까다로운 편이었다.

사실 도끼런 하는 입장에서 까다롭지 않은 상대는 오직 같은 도끼런 유저뿐이겠지만,

아무튼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저 시티즌은 상당히 주의해야 할 존재였다.

슬금슬금 게걸음을 걸어 컨테이너 가장자리로 이동한 나는, 짧은 순간에 고개를 빼꼼 내밀어 목소리가 넘어왔던 모퉁이 너머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소총을 든 채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던 남성과 눈이 딱 마주쳤다.

“[찾았다, 이 새끼!]”

그 즉시 모퉁이에서 벗어나,

길다란 쪽의 컨테이너 벽을 끼고 달려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나를 쫒으려는 것인지 저 너머에서 부산한 발소리가 들려옴에,

컨테이너의 끄트머리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다가 상대의 시야각이 돌아가는 타이밍에 맞춰 모퉁이 두 개를 돌아 반대편의 길다란 벽면으로 이동한다.

컨테이너를 사이에 두고 빙 돌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뭐야, 어디 갔어?]”

느릿한 걸음으로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컨테이너 벽에 붙어 움직이고 있자니,

이내 나를 찾지 못하여 의문을 표하는 NPC­ 시티즌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 온다.

나를 쫒아왔던 시티즌이 내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춤거리는 사이,

나는 컨테이너를 한 바퀴 돌아 시티즌의 등 뒤로 접근한 것이다.

다시금 도착한 컨테이너의 모퉁이.

바로 근처에서 녀석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도끼를 치켜 올리며 모퉁이 너머로 뛰쳐나갔다.

등짝을 보이고 있다가 이제 막 내 쪽으로 몸을 돌리려 하는 시티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새끼 여기 있었­]”

곧 나를 발견한 시티즌이 그리 기세등등하게 외쳐 댔지만,

놈은 이미 도끼의 사정거리 내로 들어와 있었다.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힘껏 가로로 휘둘러진 도끼가 놈의 관자놀이에 제대로 틀어박혔다.

­콰직!

“끄학!”

현실이었다면 상당히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을 테지만, 이건 게임이었다.

피가 거하게 터져 나오기는 했으나 데미지가 살짝 부족해 즉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도끼런에서 근접전을 잘 시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먼저 놈을 기습하여 뚝배기를 반쯤 깨 놨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놈이 총구를 돌리는 순간,

내 도끼가 다시금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끄에엑!”

콰직. 하고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볼품없는 비명이 내질러진다.

대가리가 피범벅이 된 채 바닥을 나뒹구는 시체를 내려다보며, 보드카를 한 모금 들이켰다.

왠지 모를 고양감에 기분이 좋아져서, 보드카 병을 책상에 탁 내려놓으며 킥킥 웃었다.

“흐흫.”

[엌ㅋㅋ 타격감 ㅆㅅㅌㅊ]

[우서?]

[도끼가 타격감 지리긴 하네 ㄹㅇ]

[이분 왜 사람 뚝배기 쪼개놓고 웃는거임]

[슬라브식 갬성 터졌나보1지]

[눈나 화면에서 술냄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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