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21화 (21/57)

〈 21화 〉 첫 방송 (5)

* * *

그렇게 시티즌 한 놈을 작살낸 나는,

다음 희생양을 찾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중간중간 엄폐물을 옆구리에 끼며, 시청자가 걸어 둔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까 총성이 들려왔던 쪽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총을 든 상대를 찾아 나서는 도끼런 유저라니.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어이가 없긴 하다.

[+10,000원][+5,000원][이번판에 도끼로 유저 킬 성공 : 25,000원]

그러는 사이,

다른 시청자들 또한 이 내기에 참여하고 싶었던 건지 하나둘씩 미션비를 얹어 주며 판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시민 뚝배기 깨는거 보면 킹능성 있는데?]

[시민이랑 유저랑 같냐고 아ㅋㅋ]

[언레면 같은 언레끼리 잡히니까 할만함 ㄹㅇ]

[언레가 뭔 언레끼리 잡혀ㅅㅂㅋㅋㅋ 겜 안해본새끼들 개많누]

[늒네존에서 양학하면 언레여도 잠재레이팅 올라간다 겜알못새1끼들아]

[양학을 해봤어야 알지 시1발련아 니 부캐양학충이지]

뭔가 채팅창이 상당히 시끌시끌하긴 한데,

간간히 눈에 들어오는 단어 몇 개만으로 흐름을 파악하자니 집중이 잘 안 되어서 그냥 보드카나 들이키기로 했다.

“음.”

잠깐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키보드를 잡고 있던 손으로 보드카 병을 들어 한 모금 홀짝이며 마우스를 휙휙 움직여 주변을 살핀다.

총성을 내지 않고 도끼만으로 시티즌을 처치해서 그런지, 이 쪽으로 어그로가 덜 끌려서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근접무기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소음 덜 내고 싶으면 그냥 소음기를 쓰는 게 낫지, 어떤 미친놈이 도끼 빼들고 달려가서 상대방 머리를 쪼갤 생각을 하겠는가.

“푸후우….”

알코올 섞인 한숨을 기분 좋게 내쉬며, 보드카 병을 턱 내려놓았다.

[눈나 숨소리 헤으응]

[보드카 저리 마시는데 게임 어케하누]

[소리만 들어도 술냄새 나는데 정상임?]

[이게 그 4D인가 먼가 하는 그거냐]

[전보협 님이 1,000원 후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 마시는 보드카 도수가 어케 되나요’

“40도. 보드카 표준 도수이다.

40 미만일 경우 보드카 자격 없다.”

후원으로 날아온 시청자의 물음에 그리 대답해 주었다.

아무리 맛이 깔끔해도 알코올 비율이 40퍼센트 미만이라면, 그건 그냥 고급 증류주일 뿐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보드카라는 것은,

맛이 좀 구릴지언정 도수 하나는 쌈박하리만치 높아서 들이키자마자 머릿속을 알콜로 흠뻑 적실 수 있는 녀석들이다.

그런 독한 것들을 옆에 끼고 산 덕에 그 망할 도시의 광기를 5년 동안 버텨낼 수 있었으니,

이런 무식한 기준이 머릿속에 박히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다.

어중간한 도수의 술을 마실 바에야 그냥 입가심으로 맥주나 마시는 게 낫다.

술 생각을 하니 거기 놔두고 온 내 고오급 컬렉션들이 떠오르네. 시발.

“쓰읍.”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한 번 찼다.

잃어버린 내 소중한 컬렉션을 생각하면 기분이 좆같아질 수밖에 없다.

이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아,

저 멀리서 콩을 볶고 있는 놈을 반드시 조져 버리겠다.

“저 장소 이동한다.

놈에게 Blyatiful한 도끼 맛 시식하게 만들다.”

아무런 무장도 없기에 현재 내 이동속도는 게임 내에서 최상위인 상태다.

도끼런의 거의 유일한 장점을 십분 살리며, 나는 산업 단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대가리 속에 훤히 들어 있는 맵의 구조를 통해 최단 경로를 파악하고,

점프와 슬라이딩 등의 모션을 적절히 활용하여 곳곳의 장애물들을 최대한 빠르게 통과한다.

내 시야 주변으로 컨테이너들과 철조망, 바리케이드 등등이 휙휙 지나간다.

[요즘 언레 늒네는 무빙도 살벌하누ㅋㅋ]

[아ㅋㅋ 늒네면 철조망 걸려서 다리 나가는 거 국룰 아니냐고]

[보드카 컨셉이었네 시1발련ㅋㅋ 40도짜리 빨면서 왤케 잘달림]

[너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술빨면서 야끼런하다가 멀미나가지고 키보드 조졋음]

[우욱씹;]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총성이 들려왔던 창고 부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걸음을 느리게 하여 발소리 유출을 막으며 외곽의 창고 벽 뒤로 숨은 뒤, 상반신을 슬쩍 내밀어 부지 내의 풍경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

그 때,

저 앞에서 사람 한 명이 달려가고 있는 것을 포착해 냈다.

무언가 커다란 가방을 등에 매고 방탄복에 헬멧도 착용한데다가 고개 돌아가는 꼴이 상당히 불규칙적인 것을 보니, 저 녀석은 틀림없이 유저일 것이었다.

놈은 이내 내가 몸을 숨기고 있는 외곽 창고의 바로 옆 창고로 쏙 들어갔다.

내 기억 상으로, 저기는 시멘트 포대랑 온갖 자재들을 처박아 놓은 곳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부 엄폐물이 존나게 많다는 뜻이었다.

“흐흫.”

그렇다면, 충분히 해 볼만 했다.

몸을 숨길 오브젝트가 넘쳐나는 저 창고라면 승산이 있었다.

허나 곧바로 창고 안으로 뛰쳐들어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입구 근처에서 파밍할 거리를 찾고 있던 상대에게 사격 연습용 인형이 되어 줄 확률이 존나게 높았다.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는 유저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몸을 낮추고 놈이 들어간 창고 쪽으로 슬그머니 발을 옮겼다.

입구 근처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대가리를 빠른 속도로 살짝 디밀었다 빼며 안쪽을 확인한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람 잡는 데 최적화된 이 몸뚱아리의 눈은 그 잠깐의 풍경을 뇌리에 선명하게 박아 넣었다.

입구 쪽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래도 창고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10,000원][이번판에 도끼로 유저 킬 성공 : 82,000원]

화면 구석에 띄워져 있던 시청자 미션을 흘낏 쳐다보니, 어느 새 8만원까지 내깃돈이 불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후…. 진입한다.

창고 속 유저, 머리 파괴할 경우 8만원 획득한다.”

[난이도 좃박았는데 미션비 왤케 짬]

[시루갤 거지쉑들만 모였누ㅋㅋ]

[ㅋㅋ안전자산인데 이걸 투자 안한다고?]

[응~또락스엔딩이야~응~또락스엔딩이야~응~또락스엔딩이야~]

[숨었다 뒤치하면 어케 될거 같은데]

[이게 어딜봐서 야끼런이냐고 미친련아ㅋㅋㅋ]

대충 내 미션의 성공 여부에 대해 따지고 있는 듯한 채팅창의 모습에,

나는 창고 안으로 조용히 발을 들이며 씩 웃었다.

화약에 찌든 막대기 덩어리만을 믿고 있는 저 유저에게, 몸소 냉병기의 우수함을 체험시켜 주리라.

근데 생각해 보니 나도 5년 동안 그 막대기로 살아남았네.

뭐 아무튼 간에, 시작해 보자.

시티 오브 루인 스트리머로서, 재미있는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보여 줄 시간이다.

어둑어둑한 창고 안.

한쪽 벽의 선반 위에 놓여 있던 철사 뭉치가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약간의 햇빛을 받아 은은히 반짝인다.

이내 그것을 집어 드는 손길이 있었으니,

머리에 방탄 헬멧을 착용하고 얼룩무늬 방탄복으로 몸통을 감싸고 있는 사내가 그 주인공이었다.

등에 매고 있던 큼지막한 가방에 철사 뭉치를 집어넣은 남자는,

다시 묵직한 소총을 들고 걸음을 옮기며 챙길 만한 물건이 없는지 주변을 살폈다.

그 때,

어떤 물건 하나가 남자의 눈에 포착되었다.

나무 상자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붉은 직사각형의 주머니.

그 주머니의 겉에는 의료용품임을 뜻하는 하얀 십자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심심하면 총탄이 날아드는 이 험난한 곳에서 굉장히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이었기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총을 내리고 손을 뻗어 상자 위의 의료 키트를 확보했다.

그것을 가방에 집어넣던 남자는,

문득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의료 키트가,

이런 자재 창고에서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콰직!

묵직한 타격음이 남자의 귓가에 메아리침과 동시에,

그의 시야가 핏빛으로 물들며 크게 일렁거렸다.

화들짝 놀라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난 사내는,

날카로운 것에 한 차례 찢어진 듯한 방탄 헬멧의 틈새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황급히 총을 들어 전방을 겨누었다.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살펴보아도,

자신의 머리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범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찌이잉 하는 날카로운 이명 속에 섞여들어 있던 발걸음 소리를 파악해낼 수 있었다.

­타다닥!

놈은 멀리에 있지 않다.

어째서 근접 무기로 머리를 한 대 가격하기만 하고 물러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출혈이 계속되어 위험한 상황에 처해지기 전에 어서 상대를 침묵시키고 머리를 치료해야 했다.

그런 생각에, 사내는 소총의 견착을 풀지 않은 채 발소리가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시멘트 포대가 쌓인 곳을 빙 돌아 이동한 그는, 이번에도 상대를 발견할 수 없었다.

도망친 건가.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인­

­쩌억!

“?!”

머릿속의 생각을 끝맺기도 전에,

다시금 괴한의 흉기가 남자에게 쇄도했다.

사내의 어깻죽지를 감싸고 있던 방탄복 소매가 붉게 물들었다.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재빨리 몸을 틀어 괴한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허나 상대는 순식간에 시멘트 포대더미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짧은 순간,

남자는 백금빛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흩날리는 것을 목격했다.

“…!”

헬멧도 쓰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인가?

순간 그의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뒤이어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공포심이 묻혀 버렸다.

완전 무장을 하고 있는 자신을 근접 무기 하나로 상대하려 하다니.

남자는 이를 갈며 상대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왼팔이 골절되기는 했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발견하는 순간,

그 눈에 확 띄는 백금색 머리에 바람구멍을 뚫어 주겠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사내는 시멘트 포대 뒤쪽으로 총을 겨누었다.

허나 총에 부착된 도트사이트 너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에 남자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처럼 어딘가 숨어 있다가 급습해 오는 것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남자가 찾아 헤매고 있던 그 괴한­ 이리나는 그의 등 뒤에서 도끼를 치켜들고 있었다.

다시금 콰직. 하고 묵직한 타격음이 사내의 귀에 꽂혀들었다.

이번에는 그의 오른쪽 팔이 도끼날에 희생되었다.

남자는 황급히 몸을 휙 돌리며,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날카로운 총성이 창고 안쪽뿐만 아니라 바깥에까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밝은 화염과 함께 쏟아져 나온 탄환들이 시멘트 포대에 구멍을 내고 바닥에 탄흔을 남기며 철제 선반에 불꽃을 튀긴다.

이내 소총의 격발음이 멎은 뒤,

남자는 과다 출혈에 의해 흐려진 시야를 애써 추스르며,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나 그가 원하던, 백금빛 머리칼을 지닌 괴한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본인의 생존 여부를 알리듯이 사내의 옆구리에 도끼날이 박혀들었다.

­퍼억!

머리와 두 팔, 그리고 몸통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 상반신의 대부분이 붉게 물들게 된 남자는,

그만 저항 의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머릿속에 가득하던 분노는 피와 함께 줄줄 흘러 빠져나가 버리고, 신출귀몰한 백금빛의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그 자리를 채운 것이다.

소총의 견착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힘없이 몸을 돌려 자신의 등 뒤를 바라보는 사내.

그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격한 움직임에 휘날리는 백금빛의 단발머리와,

자신의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핏빛 도끼날 사이로 얼핏 드러난, 무심한 잿빛의 눈동자였다.

콰직. 하고 불쌍한 유저 한 명의 파밍을 끝장내는 소리가 창고 안에 작게 울려 퍼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