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첫 방송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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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창고 안에서 도끼 하나로 유저를 돌려 깎아 살해하고 난 뒤,
이리나는 플레이에 탄력이 붙어 시티즌 2명의 머리를 추가로 쪼개 버렸다.
이후로 다른 시티즌 한 명과 대치 구도를 이루고 있다가,
중간에 난입한 유저에 의해 그만 벌집이 되고 말았다.
도끼런 자체는 실패했지만,
명장면이라고 할 만한 것을 건져낼 수 있었기에 이리나와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큰 아쉬움은 없었다.
그렇게 산업단지의 도끼런, 아니. 도끼 살인마가 영업을 종료하고 난 뒤,
이리나는 보드카를 홀짝이며 비교적으로 도끼에 비해 평범한 AK 소총을 들고 도시를 종횡무진 했다.
백금빛 단발머리가 가려진답시고 머리 보호구를 아무것도 쓰지 않고 다니다가 두어 번 헤드샷을 당해 싸늘한 시체가 된 것을 제외하면,
열심히 시티즌과 헌터(유저) 킬 경험치를 주워 먹으며 레벨 업을 거듭하여 결국 15레벨을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시점에서 이리나의 위장은 극심한 공복을 호소하고 있었다.
오후에 시작한 방송이 늦은 밤까지 휴식 없이 지속되었기에, 그러한 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기…. 아니. 배고프다, 시청자들.
오늘 방송 종료하다. 다 스비다냐(잘 가).”
도시락 먹으러 가겠다는 말과 함께, 이리나는 이내 방송을 종료했다.
그 때까지 남아있던 시청자 수는 약 4천 명가량.
달퐁의 호스팅까지 합쳐 약 3천쯤이었던 인원이, 줄어들기는커녕 도리어 불어나 있었다.
신입 스트리머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시청자 유치였기에,
이는 1일차 뉴비 스트리머로서 매우 고무적인 결과였다.
허나 그것을 깨달아야 할 이리나는 이미 도시락의 뚜껑을 따고 냄비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4천의 군중들 사이에 섞여 있던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본진으로 달려가 다시금 커뮤니티를 뜨겁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주로 회자되던 것은,
역시 창고 안에서 도끼 하나로 완전무장 유저를 박살내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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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늅 창고야끼 분석…txt]
(영상)
힐킷 낚시는 흔하니까 넘어가고
뚝배기 찍은 다음에 튈때부터가 ㄹㅇ임
사실 굳이 분석할 만한게 없음
야끼런이라 이속 빨라서 포대 뛰어넘어갖고 뒤치하는건 별거 아님
걍 상대 위치에서 안 보이게 해주는 엄폐물이랑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만 알고 있으면 쉬움
근데 그게 쉽겠냐고 아ㅋㅋ
저거 한대씩 치고 다음 동선 선택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함 봐라
망설임 조또 없는게 이미 창고 내부구조랑 상대방 심리 다 알고 저러는 거잖음
심리는 그렇다쳐도
창고 구조 다 알고있는건 시1발ㅋㅋㅋㅋ
ㄹㅇ 본계 몇층인지 궁금해지는 새끼임
다음에 또 늒네컨셉 잡으면 진심고로시 마려워질거같음
그리고 마지막에 시야각 노리고 옆구리 밑으로 슬라이딩하는건 ㄹㅇ 미친련이니까
짭이늅충들은 저거 따라할 생각 마셈
[댓글]
= 30따리 시붕이들 데려와서 창고 외운새끼 있는지 검사해봐야됨
ㄴ 나 32층인데 저기 시멘트 있는지도 몰랐음 ㄹㅇㅋㅋ
ㄴ ?? 이새끼 갤로그보니까 12층에서 불타고있는데
ㄴ ㅋㅋㅋ20층 엘베타고 올라왔누
= 보드카 빨면서 저지1랄이 가능하다는게 더 신기한데
ㄴ 딱봐도 물인데 아직도 보드카 ㅇㅈㄹㅋㅋ
ㄴ 보드카는 ㄹㅇ 해명해줘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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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ㅋㅋ 오늘부터 슬라이딩 연습한다]
무지성 짭이늅 ‘ON’
총 믿고 나대는 십련들 등짝 딱대ㅋㅋㅋ
[댓글]
= 따라하지 말라니까 시1발련이ㅋㅋㅋㅋ
= 이건 패작* 아니냐 ㅅㅂ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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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작 : 패배 작업. 고의로 패배하여 레이팅을 하락시키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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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야끼도 창고야끼인데]
보드카를 뭔 ㅅㅂ 방송 내내 홀짝이냐
루스끼쉑들 알콜도수 뻥튀기시킨거 아님?
[댓글]
= 슬라브쉑들 보드카 140도인거 모름?
ㄴ 시1발아 140도는ㅋㅋㅋ뭔 압축알콜이누
= 보드카 딱봐도 컨셉인데 대가리 깨진 새끼들 왤케많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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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알못들이 왤케 나대누]
(이미지)
평소에 이정도 마시는거 아니면 여물고 있어라
러시아눈나 병 내려놓을 때마다 확인했는데
아무리 들어도 컴플릿보드카 맞음ㅅㄱ
[댓글]
= 이새끼는 진짜 곧 가겠누;
= 소주탑 존내 이쁘게 쌓아놓은거봐ㅅㅂㅋㅋ
= 니가 이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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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연속 오이늅갤 실화냐]
썩은물 컨셉충 하나 갖고 얼마나 빨아제낄거임 대체
[댓글]
= 너도 하루 사지집착충 하고 그다음날 창고야끼 달리면 갤 독점 쌉가능
ㄴ 커마도 해야됨ㅋㅋㅋ
ㄴ 아ㅋㅋ 그걸몰랐네
= 떡밥 좆같으면 새로운거 갖고오라니까 왜케 불평불만이 많누
= 이새끼때문에 내일도 오이늅갤임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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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창고 안에서의 도끼 살인 줄여서 창고야끼라고 불리우는 장면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허나 점차 이리나가 방송 중에 계속해서 홀짝였던 보드카에게로 초점이 쏠리게 되면서,
40도짜리 독주를 마시면서 이러한 플레이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으로 변질되었다.
그 와중에 건강이 염려될 정도의 애주가가 등장하여 이리나를 옹호함에 잠시 사람들이 술렁였지만,
결국 보드카 논쟁은 당사자의 해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에 사람들은 아마도 내일 있을 이리나의 방송에서 진실이 밝혀지리라 기대하며,
다시금 온갖 떡밥으로 커뮤니티를 뜨뜻하게 달구기 시작했다.
마요네즈를 집어넣은 도시락 컵라면을 곧장 해치우고, 냉장고의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쓰읍.”
러시아 제품에 비해 K도시락은 확연히 매운맛이 강하긴 한 듯 했다.
마요네즈를 더 짜 넣으면 괜찮겠지만, 그러다가 도시락보다 마요네즈에 쓰는 돈이 더 많아질 것만 같았다.
지금으로선 이 몸뚱아리에 어떻게든 매운맛을 적응시키는 게 최선이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책상에 놓여 있던 보드카 병을 가지러 컴퓨터 앞으로 이동했다.
그 투명한 유리병은 언제 차가웠냐는 듯이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애초에 방송하면서 거의 다 내용물을 비운 상태였기에, 별 상관은 없었다.
그에 나는 작은 갈등에 빠졌다.
이대로 깔끔하게 병 속의 보드카를 죄다 해치워버리고 정리할 것이냐,
아니면 적은 양이라도 다시 냉동고에 넣어서 최상의 상태로 마무리를 지을 것인가.
말 그대로 시답잖은 고민이었다.
깔끔하고 스탠다드한 맛의 컴플릿 보드카는 미지근할 때 마셔도 괜찮은 목넘김을 보장했기에 만족도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문득 그 망할 도시의 양조집에서 팔던 싸구려 증류주가 떠오른다.
40도가 넘어가면 술에 뭔 짓을 해 놔도 보드카라고 내가 그랬던가.
전언 철회다. 그 양조집의 40도 넘는 술은 그냥 거지같은 증류주다.
입에서 저절로 Cyka 소리가 나올 만큼 아주 차갑게 해서 마셔도 미간이 찌푸려지게 되고,
그걸 미지근한 상태로 입에 넣게 된다면, 차라리 소독용 에탄올을 물에 타서 마시는 게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만약 알코올이 썩게 되면 그런 맛이 나지 않을까. 알코올이 부패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정도로 비현실적인 맛없음을 자랑하는 술이었다.
그걸 보드카라고 인정하는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는 컴플릿 보드카가 존나게 억울해할 것이 틀림없었기에, 그건 내게 있어서 어디까지나 증류주일 뿐이었다.
참고로 그 쪼만한 년한테 미지근한 걸 먹여 봤더니 퉤/에/엣 하고 아주 찰진 리액션을 선보이며 나한테 술병을 집어던지려 했다.
물론 그 직후 내 모신나강 개머리판에 뚝배기를 얻어맞고 진압되었다.
그년 대가리에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정수리 쪽만 깔끔하게 두 쪽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녀석 생각에 피식 웃으며 컴플릿 보드카 병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문득 모니터에 띄워진 바탕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맨 아래의 작업표시줄에 들어가 있던 플레이챗 아이콘이 반짝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며, 열심히 사용자의 어그로를 끌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 보드카 병을 책상에 턱 내려놓고,
마우스를 잡아 그 열심히도 반짝거리는 놈을 딸깍 클릭해 주었다.
볼 것도 없이, 메시지의 주인은 달퐁이었다.
뭔 일인가 싶어서 달퐁과의 채팅창을 클릭해 보니,
내게 한 번 통화 요청을 보냈다가 부재중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거절된 이후에 메시지를 몇 개 보내 놓은 상태였다.
달퐁:
[◎통화 요청]
달퐁 :
[님님]
[큰일낫서요]
[사람들이 님보고 해명하래여]
[이거 보면 연락좀]
그 내용을 더듬더듬 읽어 내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 보고 해명을 하라니, 그게 당최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애초에 뭘 해명하라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마지막 메시지에 적힌 대로, 나는 달퐁에게 채팅을 보냈다.
Ирина :
[무엇]
‘무엇 사태 발생했다’ 라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적어나가던 도중에, 달퐁에게서 곧바로 통화 요청이 날아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 그랬냐. ‘했다’ 만 쓰면 완성이었는데.
속으로 그리 투덜거리며, 대가리에 헤드셋을 장착하고 통화를 받았다.
허나, 잠시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떠오름에 곧장 헤드셋을 벗어던졌다.
이리나아아아!
“Oy….”
그 직후, 헤드셋 안쪽에서 달퐁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머리에서 멀리 떨어뜨렸는데도 존나게 선명히 들려오는 그 앳된 목소리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미친년이 누구 고막 터뜨릴 일 있나.
달퐁의 음성 볼륨을 조정하고, 나는 다시 헤드셋을 쓰며 그녀에게 말했다.
“무엇 사태 발생했다? 큰일 무엇인가?”
“아, 사실 그렇게 큰일은 아니구요.”
“허?”
메시지는 존나게 급박한 투로 적어놨으면서 이건 또 뭔 소리야.
그에 내가 의문 섞인 감탄성을 흘리자, 다시금 달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님 마시던 보드카를 해명하라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