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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식 스트리머-24화 (24/57)

〈 24화 〉 슬라브식 해명 (2)

* * *

“제가 직접 가서, 웹캠 드릴게요!”

그 말에, 나는 황당해했다.

그 쪽이 물건 들고 우리 집으로 직접 오겠다고?

도시의 그 년을 닮은 사람을 실제로 만나게 된다는 것은 꽤나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일 뿐이었다.

나는 도시의 일을 겪은 탓에 달퐁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고,

그런 비현실적인 호감은 상대측에서 인지할 수 없는 종류의 녀석이다.

그렇기에 달퐁에게 있어서 나라는 놈은,

같이 게임하고 방송 도와준 것을 제외하면 아직 목소리밖에 알지 못 하는 타인에 가까웠다.

그런 사람의 집에, 달퐁은 무턱대고 찾아오려 하고 있는 것이다.

휴대폰 번호가 없어서 퀵 배송이 어렵다는 건 알겠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달퐁의 웹캠은 포기하고, 그냥 내가 직접 밖으로 나가서 사 오는 방법도 있는데?

“내 집 방문하다? 무엇 위하여?”

“그럴 땐 그냥 ‘왜’라고 하세요! 무엇 좀 그만 쓰고!”

그 와중에 말 똑바로 하라고 까였다.

5년 만에 모국어 말하는 법까지 잊어먹게 만드는 그 좆같은 도시의 광기를 탓해라.

“음…. 왜 방문하다?

첫 조우 이후, 불과 이틀 경과하다.”

“네. 알아요. 그래도 가보고 싶어요!”

달퐁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그리 답했다.

아니, 알고 있으면 왜 그러는 건데.

실제로 얼굴을 본 것도 아니고,

그저 게임을 플레이하다 우연히 마주친 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오프라인도 아닌 온라인에서 처음 알게 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그렇게 얼굴도 전혀 모르는 상대의 집에 찾아오겠다는 건가, 지금?

그 상대가 만약 무법도시에서 사람 죽이고 다니다가,

머리가 훼까닥해서 보드카를 입에 달고 살던 도중에,

한국으로 넘어와서 한 몫 잡아보려고 방송 시작하려는 미친년이면 어쩌려고?

이게 왜 다 진짜인 거지.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존나게 위험해 보이긴 하네.

아무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나라는 인간은 별로 그렇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년임이 틀림없는데, 이 달퐁이라는 인간은 뭘 믿고 이렇게 나한테 들이대는 건지 모르겠다.

같은 여자라고 생각해서 별로 위험하다는 인식이 없나?

몸뚱아리는 완전히 여자가 되었다고 해도, 대충 나라는 놈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다 생각하는데.

물론 지금 내 대가리가 정상이라곤 할 수 없는 상태라 그마저도 확실치 않기는 하다.

“…왜? 나 위험인물 가능성 존재한다.”

알코올에 찌든 머리통을 톡톡 두들기며 그리 묻자,

달퐁은 되레 내게 반문했다.

“님 위험한 사람이에요?”

“…그것 왜 당사자 향해 질문하나?”

“이리나네 집 가면 저 잡아다가 러시아에 팔아먹을 거예요?”

“안 하다.”

그 물음에 무심코 도시의 인신매매단 놈들이 생각나, 즉시 부정을 표했다.

난 그런 새끼들을 족치는 역할이었지, 거기 껴서 사람 몸뚱이 팔아치우는 짓은 한 적 없단 말이다.

“그럼 된 거 아녜요?

뭐 제가 거기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따로 있어요?

혹시 저 만나는 게 부담스러우신 거면 그냥 근처 지하철 보관함 같은 데다가 놔두고 갈게요.”

“….”

그렇게 물어 오는 달퐁의 말에, 나는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달퐁이 그 년과 닮아 있는 탓에 기묘한 친근감을 느끼고 있던 나로서는 그녀의 방문을 거절할 이유가 크게 없었다.

아예 연관이 없는 상태에서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했으면 나 역시 거절했을 것이다.

그녀가 내게 해코지를 한다든지 무언가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시에서 별 지랄을 다 겪어봤던 내가 일반인에게 조져질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따라서 달퐁에게 그럴 의사가 있다면 곧바로 현실에서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허나 문제는 우리가 이제 온라인에서 만난 지 이틀째인 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괜찮겠냐고 기껏 걱정해 줬더니, 댁이 위험한 것도 아닌데 왜 가면 안 되냐며 역으로 물어 오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그렇게 잠시 침묵하고 있자,

내 심정을 궤뚫어보기라도 했는지 곧장 진지한 투로 입을 열어 오는 달퐁이었다.

“혹시 오해할까봐 말씀드리는 건데,

저도 막 아무한테나 얼굴 들이미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님 말고는 이래본 적 없어요.”

“…?”

“그…. 뭐라고 해야 되나.

그냥, 남 일 같지가 않아서 그래요. 좀 그런 게 있어요.”

남의 일 같지가 않다는 그 말.

진심이 가득 담긴 달퐁의 그 목소리에, 나는 순간 흠칫했다.

설마, 이 인간도 게임 속에 갇혀 있다가 나온 건가?

허나 그 생각은 곧 머릿속에서 폐기되었다.

그 지옥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저렇게 멀쩡히 현대를 살아가고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지금의 내 처지에서 동질감 비슷한 거라도 느낀 것이겠지.

“확인하다.”

“네?”

“내 집 방문, 괜찮다.”

그거면 됐다.

그냥 생각 없이 밀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 거다.

굳이 남의 사연을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망할 도시에서 함부로 그런 짓거리를 했다가 며칠 동안 기분이 저 밑바닥에 처박혀 있었던 뒤로는, 남의 대가리 속을 열어 보고자 하는 생각을 싹 접어 버렸다.

어차피 진심이란 건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러나오게 되어 있다.

그럼 나는 그냥 그걸 보고 판단하면 되는 거다.

필터링을 걷어내고 심연을 들여다 봤자, 손해 보는 건 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아무튼 내가 그렇게 가정방문을 허락하자, 달퐁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진짜죠? 저 가도 되는 거 맞죠?”

“맞다.”

“그럼 내일 일찍 갈게요! 주소 불러주세요!”

이내 달퐁과의 통화를 마친 뒤,

나는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진열대에 새로이 늘어선 컴플릿 보드카 세 병을 구입했다.

달퐁에게서, 정확히는 달퐁의 시청자들에게서 거액을 받기도 했으니 이 정도는 질러도 괜찮았다.

그러고 보니 그 돈으로 모니터 사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럼 오늘 방송에서 후원받은 금액으로 샀다고 치자. 아직 정산이 안 돼서 계좌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집에 와서 곧장 한 병의 뚜껑 포장을 뜯어내고 몇 모금 들이킨 뒤, 나머지 두 병과 함께 냉동고에 집어넣었다.

내일 아침이면 아주 차가운 녀석으로 변해서 내 목구멍을 꽁꽁 얼려 버릴 것이다.

몸을 씻고, 방의 불을 끈 뒤 다이­아스 티셔츠와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웠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상당히 인상적인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내일은 그보다 더 커다란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세상에서의 첫 인연을 실제로 만나게 되고,

시청자들에게 보드카에 대해서 해명도 해야 했다.

진짜로 해명을 하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컨텐츠로 내놓으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보드카에 대한 내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니 굳이 거절할 필요도 없었다.

“후….”

거지같은 꿈을 꾸기는 싫지만, 내일을 위해 잠에 들어야 한다.

이따 보자, 달퐁.

다음 날 오전 10시경.

학생들은 등교를,

직장인들은 출근을 마치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시간에,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작달막한 여성이 골목을 걷고 있었다.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밤색 머리칼과 예쁘장하면서도 귀여운 외모.

여인보단 소녀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그녀는,

한 손에 뭔가 묵직해 보이는 쇼핑백을 든 채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누군가의 주소가 목적지로 설정되어 있던 지도 어플리케이션은 도착이 머지않았다며 밤색의 소녀를 격려하고 있었다.

이내 소녀의 걸음이 멈춰선 곳은, 원룸이 여러 개 들어선 빌라의 앞이었다.

스마트폰 속의 지도와 눈앞의 건물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자신의 목적지가 맞음을 확인하고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며,

밤색의 소녀­ 달퐁은 지금부터 자신이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해 떠올렸다.

5Ynoob, 또는 이리나.

한국말이 다소 기형적으로 서투른, 러시아계로 추정되는 여성.

그리고, 자신의 도움으로 첫 날부터 3천명 이상의 시청자를 유치한 대형 신입 스트리머.

며칠 전에 게임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만 해도,

방송의 흥행을 예감하고 그녀를 초대해 같이 게임을 하면서도 설마 이리나와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다.

하지만 이리나가 스트리머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밝히고,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스트리머로서 필요한 지식들을 가르쳐주면서 서로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스트리머로서의 잠재력을 보고, 그녀를 키워 자기 편으로 삼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허나, 단순한 동료 스트리머일 뿐이라는 인식을 바꿔 주는 계기가 있었다.

어떻게 휴대폰이 없을 수가 있냐는 자신의 질문에,

그녀는 상당한 우울함이 담긴 목소리로,

연락을 주고받을 사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그에 달퐁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혼자서 서울로 상경했던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게 되었다.

큰 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건만, 정작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고향에 있었고,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빴기에 간간히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취직을 위해 죽어라 공부하고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달퐁은 언제나 혼자였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그 곳에서 홀로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며,

달퐁은 매일 밤이면 자신을 엄습해 오는 고독함에 이불을 적시곤 했다.

소리 내어 대화할 사람이 없으니 말을 잃게 되고,

말이 없어질수록 생각이 많아져 점차 우울감이 깊어졌다.

싸늘한 원룸 바닥에 주저앉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날.

달퐁은 이리나를 그러한 자신의 모습과 겹쳐보게 된 것이다.

한국말도 잘 하지 못 하는 상태로 혼자 한국에서 살아가며,

연락을 주고받을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아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게임 실력을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릴 때까지 플레이챗조차 설치하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서 홀로 동떨어진 듯이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달퐁은 자신이 한국에서의 첫 인연이 되어 주고 싶었다.

외로움에서 찾아오는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보다 더욱 극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리나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달퐁은 다소 고집을 부려 이리나를 직접 만나러 왔다.

자신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외로움과 우울함을 떨쳐내고 원래의 밝은 성격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이리나 또한 그러길 바랬다.

이것이 불필요한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취급되는 것도 괜찮다.

적어도 그 때의 자신처럼 하루하루 우울감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니까.

허나 어제 자신에게 번호가 없음을 말해 오던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았을 때,

이리나가 아무렇지도 않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였다.

그 고운 음색의 목소리가 상당히 처져 있었던 것을 기억하며,

이내 달퐁은 이리나가 알려준 호수가 적혀 있는 현관문 앞에 섰다.

침을 꿀꺽 삼킨 밤색의 소녀는, 손을 들어 초인종을 꾸욱 눌렀다.

딩동. 하는 소리가 현관문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윽고, 문이 덜컥 열렸다.

열린 문 너머로 드러난 상대의 모습을 보게 된 달퐁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다이­아스의 로고가 새겨진 캡 모자 밑으로 드러난 백금빛의 단발머리.

모자챙에 그늘진 얼굴에는 예쁘면서도 어딘가 기품이 넘치는 이목구비가 새겨져 있었다.

섬세한 속눈썹 아래에 담겨 있는 무기질적인 잿빛의 눈동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러시아에 위치한 높은 가문의 영애가 머리를 대충 짧게 자르고 모자를 눌러쓴 듯한 그 외모에, 달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시티 오브 루인에서 이리나가 사용하는 플레이어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의 극한이라고 불리우는 5Ynoob의 외형과, 그 모습이 너무나도 유사했던 것이다.

설마, 자신의 모습을 참고해서 그대로 커스터마이징 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그 반전을 목도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달퐁.

그런 달퐁의 모습에 이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매끈한 턱선이 슬며시 기울어졌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어 달퐁에게 말을 건넸다.

마이크에 의해 열화 되지 않은 깨끗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달퐁의 귀를 간질인다.

“무엇?”

“….”

그 한 마디에,

달퐁은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외형이 어떻든, 그 알맹이는 자신이 알고 있던 슬라브녀가 맞았다.

그 와중에 무엇 대신 왜 라는 말을 사용하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홀랑 까먹어 버린 모습에, 달퐁은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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