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스승과 제자들 (2)
* * *
합방. 합동 방송.
둘 이상의 스트리머가 모여 같은 컨텐츠를 진행하는 방송이다.
달퐁과 오이늅 이리나는 게임 스트리머이니 당연히 게임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중에서도 시티 오브 루인을 같이 플레이할 예정이었다.
이리나가 달퐁을 우연히 게임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듀오 게임 몇 판을 플레이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그녀는 게임을 망하게 만들겠다는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일개 유저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리나에게는 사실상 이번이 스트리머로서의 첫 정규 합동 방송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녀는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지 못 했다.
홀로 시청자 3, 4천명을 데리고 해명 방송도 무탈히 진행했는데, 거기에 동료가 늘어나서 그만큼 부담감이 줄어들기 까지 한다면 당연히 긴장이 될래야 될 수가 없었다.
그 상대가 이미 얼굴까지 마주했던 달퐁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리나는 시티 오브 루인을 켜 놓은 상태로 오늘의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알림을 받게 된 팔로워 시청자들이 서둘러 이리나의 방송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시꺼먼 화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도 본 것만 같은 그 올블랙의 송출 화면에 시청자들이 의문을 표했다.
[?]
[무엇]
[또 해명할 거리 생겼누?]
[ㅋㅋ이제 그 브금 나오는거임?]
미리 팔로워 전용으로 제한을 걸어 둔 채팅창에 점차 물음표가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이리나가 송출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며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화면을 확인했다.
“아.”
그리고는 짧게 탄식을 했다.
모니터가 두 개로 늘어난 탓에, 송출 프로그램이 어느 화면을 내보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재빨리 게임이 띄워져 있는 메인 모니터 화면을 송출시키는 이리나.
“사과하다.
모니터 추가되어, 송출 잠깐 문제 생기다.”
[모니터 벌써 왔음?]
[어제 산거 아니냐]
[? 이새1끼들 로켓 안 써봤나]
[그먼씹]
[ㅋㅋ지가 모르면 다 씹덕행이누 병1신련이]
[아ㅋㅋ 시티즌쉒이라 모른대자너]
[3글자 가성비갑;]
[방송켠지 5분만에 채팅 곱창나는거 실화냐ㅅㅂ]
[매니저 언제뽑음]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며 또 다시 주르르륵 갱신되기 시작하는 채팅창에,
이리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곧바로 분당 1회 채팅 제한을 걸어 버렸다.
“채팅창 점화 중지하다, 카레예츠들.”
채팅 속도가 느려지며 곧 소강상태가 찾아온 뒤,
그녀는 오늘 달퐁과 함께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할 것을 밝히고, 미리 전달받은 대로 달퐁이 자신에게 플레이챗으로 연락을 할 때까지 잠시 대기하려 했다.
그 때, 시청자에게서 후원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캠켜 님이 1,000원 후원했습니다.]
‘기다릴동안 캠켜줘’
“확인하다.”
캠을 켜 달라는 그 요청에,
마침 보조 모니터의 편의성을 체감하고 싶었던 이리나는 보드카를 마시려다 말고 옷장 옆에 걸려 있던 다이아스 모자를 가져와서 머리에 눌러썼다.
그리고는 웹캠의 전원을 켜서, 촬영되는 영상을 송출 화면에 크게 띄워 보았다.
보조 모니터 덕분에 자신이 보고 있는 게임 화면을 가리지 않고서도 웹캠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자, 이리나는 흡족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보드카 병을 들어 올려 웹캠을 향해 슥 내밀며 건배하는 시늉을 했다.
“보조 모니터 매우 편리하다.
추천 감사하다, 시청자들. 함께 건배하다.”
[ㅋㅋㅋ보드카로 건배를 하누]
[술 없는데 콜라도 괜찮음?]
[이쉒 방송보면 자꾸 알콜마려워짐ㄹㅇ]
[아ㅋㅋ 소주 딱대]
[서리톡톡도 ㄱㅊ?]
[?]
[선넘네]
[2도따리는 좀;]
[ㅋㅋㅋㅋ이새1끼들 콜라는 아무말없다가 2도쉒만 줘패네]
[2도는 못참지ㅋㅋ]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수중에 있는 음료를 하나둘씩 나열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2도짜리 술을 들이밀었다가 뭇매를 맞는 동안,
이리나는 병 주둥이를 입에 꽂고 맛나게 보드카를 꿀꺽꿀꺽 들이키는 모습을 보이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시원한 음료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안주도 없이 오직 보드카 하나로만 연출해 내는 술 먹방에 시청자들이 입맛을 다시고 있자,
이내 플레이챗의 알림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던 달퐁의 연락이 드디어 온 것이다.
그녀는 보드카를 한 손에 쥔 채로, 마우스를 움직여 달퐁에게서 날아온 통화 요청을 수락했다.
그와 동시에, 이리나가 착용하고 있던 헤드폰에서 앳된 목소리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리나아아아!”
“Cyka….”
이젠 통화의 시작을 알리는 연례행사가 되어 버릴 것만 같은 그 샤우팅에,
이리나는 덤덤히 욕설을 읊조리며 달퐁의 음성 볼륨을 줄여 주었다.
물론 이리나의 시청자들은 그녀만큼 침착한 반응을 보이지 못 했다.
[않이 씹]
[크아아악]
[좃퐁 십련이ㅋㅋㅋ]
[이시1발 몰폰인데]
[느슨해진 술먹방에 긴장감을 주는..]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 느닷없이 귀에 날카로운 비명성이 때려박힌 이들과, 이런저런 사유로 몰래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들이 단말마를 토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달퐁과 이리나는 시티 오브 루인의 듀오 게임을 준비했다.
“첫 판이니까 가던 데나 함 갈까요?”
“하라쇼.”
첫 게임은 가볍게 몸풀기로 진행하기 위해서, 두 스트리머는 단골 맵인 산업단지를 택했다.
머리에 방탄 헬멧을 착용하지 않아 백금빛 단발과 예쁜 외모를 그대로 드러낸 5Ynoob과, 여전히 캐릭터를 온갖 방어구와 옷으로 꽁꽁 싸매고 있는 Dalpong은 이내 함께 산업단지로 사냥을 떠났다.
한편,
이리나의 방송에서 등장한 변종 도끼런은 조금씩 그 세를 불려나가고 있었다.
도끼로 대표되는 시티 오브 루인의 근접 무기 성능은 영 좋지 못했다.
빈약한 데미지로 인해, 기를 쓰고 접근해서 머리를 타격해도 절대로 일격에 상대를 죽일 수는 없었다.
물론 총으로 머리의 체력을 일부 깎아 놓았다면 한 방에 로비로 사출시키는 것도 가능은 했다.
하지만 헤드샷을 맞출 실력이면 그냥 몇 발을 더 쏴서 확실히 보내버리는 게 낫지, 굳이 도끼를 꺼내 들어서 다 이긴 교전을 망쳐놓을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유저들은 차라리 싸구려 권총을 들면 모를까, 도끼만 들고 상대에게 덤벼서 머리통을 쪼개버리겠다는 무모한 생각 따윈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저 또는 시티즌과 전투를 벌이기보단 최대한 그 이동속도를 살려서 챙길 것만 챙기고 빠르게 탈출하는 것이 도끼런의 기본적인 플레이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리나가 등장했다.
방송을 직접 보거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리나의 도끼런을 접한 유저들은,
엄폐물 하나하나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해 무장한 유저를 덮쳐 죽이는 그 플레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단순한 예능용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도끼만 들고 시작했을 때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성공 확률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유저를 처치하는 것에 실패하여 죽게 되어도 큰 페널티가 없었다.
유일한 무장인 근접 무기는 사용자가 죽어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사운드 플레이를 위한 전술 헤드셋은 게임에서 흔히 쓰이는 아이템이라 매우 저렴했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유저들은 이에 눈독을 들이고 이리나의 플레이를 토대로 초근접전을 벌여 볼 만한 장소들을 연구해 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단번에 떡상을 이뤄낼 수 있다 하여,
이 변종 도끼런은 곧 제로백 도끼런 줄여서 제끼런이라는 명칭을 획득했다.
물론 플레이 스타일을 달리 한다고 도끼의 성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제로백 도끼런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맵의 세부 구조 파악과 적절한 공격 모션을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는 판단력,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반응속도와 머리를 정확히 노리기 위한 에임 등 많은 것이 전제되어야 했다.
허나 굳이 이리나처럼 도시의 모든 것을 빼곡히 외우게 된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지형지물에 어느 정도 익숙하고 피지컬에 자신이 있는 유저들은 상당수 존재했다.
장식품에 가까운 근접 무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총기 부속품이나 만지작거리던 고인물들은, 자신의 실력이라면 꽤나 할 만하다는 생각으로 각자 도끼를 챙겨들었다.
게다가 제로백 도끼런에 흥미를 가진 것은 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도끼 하나로 총을 든 상대의 대가리를 시원하게 쪼개 버리는 그 손맛을 이리나의 방송으로 간접 체험한 일반 유저들이,
자신도 그 카타르시스를 직접 느껴 보고자 저마다 도끼를 꼬나 쥔 채 전장으로 떠난 것이다.
실패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만약 성공하기라도 하면 그 짜릿한 타격감과 함께 유저의 아이템까지 모조리 뺏을 수 있고, 거기에 더해서 커뮤니티에 자랑질까지 할 수 있었기에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하는 다른 실력파 스트리머들도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이 제로백 도끼런을 건드려 보기 시작하면서,
이리나가 쏘아 올린 작은 도끼는 조금씩 심상치 않은 흐름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에는 도끼맨들이 하나둘씩 늘어만 갔고,
아무것도 모른 채 산업단지로 사냥을 떠난 유저들은 이 산모기같이 들러붙어 오는 제로백 도끼런 친구들을 맞이하고 의문을 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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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오이늅 산업단지행]
좃퐁이랑 듀오하는듯
[댓글]
= 이시국에 산업단지ㅅㅂㅋㅋ
= ㅋㅋㅋ제끼런쉒들 무수한 악수요청하겠누
= 원조 제끼런은 못참지 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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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와중에,
이리나가 방송을 켜서 산업단지로 떠났다는 소식이 커뮤니티에 전해졌다.
각자 도끼질을 수련하고 있던 제로백 도끼맨들은, 원조의 머리통을 쪼개어 청출어람을 이뤄내 보이겠다는 일념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이트 유저부터 고인물까지.
수많은 제자들의 도끼날이, 스승을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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