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스승과 제자들 (3)
* * *
타타탕!
“[이 새끼, 여기에 있었 끄아악!]”
우리 모습을 발견하고 걸쭉한 러시아어를 내뱉던 시티즌이, 달퐁의 기관단총 탄환에 두드려 맞고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진다.
“앞에 한 명 컷했어요!”
“확인하다.”
실력파를 지향하는 스트리머는 아니지만, 에임이 그리 나쁘지 않은 달퐁이었다.
물론 바로 앞에 멍청히 서서 나 잡아줍쇼 하고 외쳐 대는데, 그걸 못 죽이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그녀와 함께 시작한 산업단지에서의 게임은 나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AK소총으로 시티즌들을 쥐어 패고 킬 경험치를 차곡차곡 모으며, 하루빨리 언더 레이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전했다. 과연 최초에 몇 점으로 배치가 될 지, 상당히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언더 레이팅 탈출 희망한다.”
“한 20렙쯤 찍으면 점수 나올걸요, 그거?”
[얼마안남았네]
[오이늅 정도면 몇층 들가냐]
[이쉒 뚝배기 안써서 원탭* 많이 나가지고 생존률 씹창났을듯]
[그거 감안해도 최소 20층 아님?]
[?ㅋㅋㅋ 20층 배치가 어케 되누]
[쏘드 부캐배치 21층 찍었던거 같은데]
[ㄹㅇ?]
[미친놈이네ㅋㅋㅋ]
(*원탭 : 총탄 한 발로 머리 또는 흉부를 파괴하여 상대를 즉사시키는 것)
허름한 복장과 무장으로 별 영양가가 없는 시티즌의 시체를 대충 구석에 던져두며 채팅창을 흘끗 바라보다가, 뜻 모를 단어를 보게 된 나는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쏘드? 그것 무엇이다?”
“그것?”
달퐁의 실전형 한국어 과외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시청자들이 내 말에 답변을 해 주기도 전에 달퐁의 목소리가 스윽 치고 들어왔다.
그 물음에 찔끔한 내가 얼른 말을 바꿨다.
“아, 그것이 무엇인가?”
“‘그게’요, 그게!”
[ㅋㅋㅋㅋ]
[그새 까먹누ㅅㅂㅋㅋ]
[든든하다! 오갈통!]
[보드카에 뇌가 녹아버린..]
그 와중에 또 틀렸다. 한국어 존나게 어렵네.
그래도 한국인으로서의 기억이 아예 깡그리 소멸된 건 아니니까 언어도 빠른 시일 내에 좀 정상인이 말하는 정도로 복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몸뚱아리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입에 잘 붙질 않는다.한자어 같은 단어는 잘만 떠올려내면서 왜 이상한 부분만 씹창이 난 건지 모르겠다.
나라는 놈의 정체성이 반의반밖에 안 남았다고 모국어도 반의반으로 너프당한 건가.
한국어 교재를 하나 구매해서 공부해 보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나는 가물가물한 머릿속에서 그나마 성공적으로 조합해 낸 한국말을 내뱉었다.
“음. 그게 무엇인가, 시청자들?”
[타스언급 되냐 근데]
[좆퐁도 되는데 뭘 사리누ㅋㅋ]
[sssword]
[30층 공무원쉒임 절대안내려옴]
[오이늅 본캐면 만났을거같은데]
[ㄹㅇ 걍 모르는척하는거 아니냐]
그들의 설명을 듣자하니, 쏘드는 누군가를 칭하는 단어인 듯 했다.
sssword를 쏘드라고 부를 생각을 하다니. 이걸 한국인답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간에.
레이팅 30층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다고 하니, 쏘드라는 인간은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달퐁에게 배웠던 타스 언급(타 스트리머 언급)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봐서, 상대 또한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인 듯 했다.
나 또한 30층까지 등반하면 언젠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꾸 본캐 운운하는 그들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본 계정 없다. 언더 레이팅 뉴비이다.”
[또또똗도ㄸ늒네이지랄]
[이쯤되면 뇌절입니다 선생님]
[빨리 본캐 레이팅 내놔 십련아ㅋㅋㅋ]
[아ㅋㅋ 보드카 빨고 본계 잊어먹었대자너]
[요즘 언레 늒네는 뉴메타도 만들어내누 ㄷㄷ]
아무리 진실만을 주장해도 믿어줄 기미를 보이질 않는 시청자들의 모습에 머쓱히 옆머리를 긁적였다. 게임은 진짜 뉴비 맞아, 이 새끼들아. 백날 내 본 계정 찾아봐라. 나올 턱이 있나.
타다닥!
“…!”
그 때,
나는 바로 근처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포착하게 되었다.
“적 출현하다.”
상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는 즉시 AK소총을 견착하고, 복층 건물의 외벽에 가까이 붙어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내 옆에 서 있는 달퐁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외벽 모퉁이 너머에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
놈은 곧장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다.
묵직한 소총을 들고 있다면 결코 발휘할 수 없는 이동속도에 내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내 눈썰미가 틀리지 않았다는 듯이,
그는 손에 꼬나 쥐고 있던 도끼를 들어 올려 나를 향해 힘차게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내 수중에 들려 있는 AK가 총구에서 불을 뿜어내는 것이 먼저였다.
타타탕!
몸통에서부터 머리 쪽까지 드르륵 5번 탄환을 퍼부어 준다.
그에 내게 덤벼들던 녀석의 몸뚱아리가 뒤흔들리며 피가 퍽퍽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방어구고 뭐고 다 벗어던진 맨몸이라, 총탄의 데미지가 고스란히 녀석에게 처박혔다.
이내 흉부를 파괴당하여 즉사한 것인지, 곧장 바닥으로 허물어져 버리는 녀석.
“허?”
그 모습에 나는 작게 의문성을 토해냈다.
무장이라고는 도끼 하나에, 방어구를 제외하여 기동성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세팅.
분명 영락없는 도끼런이었다.
허나, 도끼런을 플레이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최대한 유저를 피해 다니는 게 정상일 텐데.
이 자식은 무슨 자신감으로 나한테 무턱대고 달려든 거지?
“어어?! 이리나 뒤!”
타다다다당!
하지만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러한 달퐁의 외침과 함께 그녀가 들고 있던 기관단총의 격발음이 들려왔다.
그에 빠르게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가 현재 위치한 곳의 반대편 모퉁이, 다시 말해 등 뒤에서 어느새 나타난 상대가 도끼를 한 손에 들고 이 쪽으로 달음박질해 오는 중이었다.
여기까지 도달하기에는 꽤나 멀었지만, 도끼런의 빠른 이동속도는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되었기에 금세 거리가 좁혀지려 했다.
그러나 총알 분무기라는 별명에 걸맞게 달퐁의 총구에서 탄환이 마구 흩뿌려지자, 놈은 금세 피떡이 되어 바닥에 처박혔다.
멀쩡히 총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다가 장렬히 산화해 버린 또 다른 도끼맨.
이 새끼들 뭐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무엇?”
[저쉒들 뭐하누ㅋㅋㅋ]
[미쳐버린건가]
[방장쉒 야끼런 따라하는거 아니냐]
[저격임?]
[템 주러 온거면 ㅇㅈ]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보드카 병을 들어 40도의 알코올을 한 모금 삼켰다.
한 게임에 이런 또라이들을 두 번이나 만나다니.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말이다.
그 두 놈을 시작으로,
도끼를 든 미친놈들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두 명쯤은 방금 전의 둘처럼 정직하게 달려들어서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만만한 상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건물 옆을 지나가면 그 안에서 뛰쳐나와 옆머리를 쪼개려 들고,
시티즌을 상대하던 도중 컨테이너 뒤에서 튀어나와 뒤통수를 노리고,
복층 건물 내부에서 일반 유저와 대치하다가도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계단을 펄쩍 뛰어올라 기습하려 들었다.
“아악!! 저 맞았어요! 와 씨, 타격감 뭔데!”
결국 방심하고 있던 달퐁이 머리통 한 대를 허용하게 되어,
머리에서 발생한 과다출혈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시간이 지체되었다.
“….”
머리에 열심히 붕대를 감고 있는 달퐁을 바라보며, 나는 미간을 슬쩍 좁혔다.
한두 번 정도면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이건 그런 수준을 아득히 넘어 있었다.
도끼에 미친 집단이, 왠지는 모르겠지만 명백히 우리를 특정해서 덤벼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내,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문득 그 거지같은 도시에서 멍청이들에게 몇 번이나 쫓기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 중에는 내가 제 3자와 계약을 맺고 먼저 기똥차게 시비를 걸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영문도 모르고 내게 쳐들어오는 놈들을 상대하게 된 경험 또한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는 보통 한 놈을 뒤지지 않을 정도로만 조져다가 정보를 얻어내는데,
여기선 뭐, 캐릭터 손모가지를 찍어버린다 해서 유저가 고통에 몸부림치지는 않으니까 별 의미가 없다.
“흐흫.”
나는 킥킥 웃으며 보드카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런 상황은 가끔씩 도시에서도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
멍청이답지 않게 훈련을 존나게 잘 받아서 뭔 짓을 해도 입을 열지 않는, 그런 놈이 몇 명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새끼들은 결코 정상적으로 상대해선 안 되는 법이다.
미친놈들보다 더욱 미친년이 되는 수밖에.
나는 가방을 열고,
5번 넘버링보다 관통력이 딸리지만 데미지는 한층 높은 No.2 탄환을 AK소총의 탄창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달퐁.”
“어우, 그거 한대 맞았다고 시야가…. 네?”
“치료 완료 이후 1번, 2번 탄환 사용한다.”
이내 달퐁이 작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헤드폰을 통해 들려왔다.
그에 씩 웃으며, 나는 캠을 향해 건배하듯 보드카를 들어 올려 보였다.
“도끼맨들, 모두 지렁이 만든다.”
사지 파괴자가 돌아왔다, 이 도끼 놈들아.
기동력이고 뭐고, 걷는 것조차 못 하게 만들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