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31화 (31/57)

〈 31화 〉 스승과 제자들 (4)

* * *

내가 게임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차 있을 때 감행했던 짓거리인 만큼,

시야 밖에서 사지를 박살내고 농락하는 그 전술은 철저히 당사자의 멘탈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고안된 녀석이었다.

현실 지향적 FPS 게임인 만큼 몰입감이 타 게임에 비해 한층 높은 시티 오브 루인.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미지의 존재에게 팔다리가 하나씩 박살나며 무력하게 사냥 당하게 된다면, 그만큼 유저의 멘탈을 깎아먹고 게임에 대한 애정을 떨구게 되는 일이 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내 예상과 달리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

유저들은 웬 미친놈을 만났다며 커뮤니티에 자신을 박제시킬지언정, 그런 일을 당했다고 게임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적의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이 게임에서 불합리한 죽음은 상당히 흔한 일이었고, 유저들은 그걸 감내하면서도 게임 특유의 분위기에 취해 총과 가방을 둘러메고 무법의 도시로 사냥을 떠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지 집착은 그냥 사람 기분을 좀 더럽게 만드는 짓거리, 그 정도에 불과한 전술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저의 멘탈을 조금이나마 건드리는 그 효과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사지 집착 전술은 두 다리를 박살내고 팔을 못 쓰게 만든다.

이동 속도를 기어가는 수준으로 만들어 버리고 간단한 치료조차도 느린 속도로 지연시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모양새로 탈바꿈시킨다.

허나 그 상태에서도 조준을 해서 방아쇠를 당길 수는 있기에, 총기류를 들고 있다면 완전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마지막에 농락용으로 잠시 상대에게 모습을 보여주다가 반격당할 뻔 하기도 했었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만 잠깐 보여주고 곧바로 턱주가리에 납탄을 꽂아버리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안 그러면 이 쪽이 역으로 대가리에 바람구멍이 뚫려 뒤져 버리니까.

그러나,

도끼런에게는 그럴 필요조차 없다.

기동성은 도끼런의 유일한 강점이자 밥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다리를 조져 버려서 이동 속도를 나락으로 보내버리게 되면 그 하나뿐인 장점조차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총으로 반격을 하지도 못 하고, 그저 도끼 하나만 손에 덜렁 든 채,

걷는 것보다 못한 속도로 기어 다니는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러면 일반적인 무장을 갖춘 유저들보다 훨씬 철저한 농락이 가능해진다.

인성질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행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도끼 하나 들고 달려드는 미친 짓을 할 거면,

역으로 미친년에게 당하게 될 각오도 하고 있었어야지.

No.2 총알이 가득 담긴 탄창을 잠깐 총에서 분리하여 확인하는 모션을 취해 주며,

나는 기관단총에 1번과 2번 탄환을 섞어 놓은 달퐁과 함께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도끼 놈들을 경계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구름과 먼지가 뒤섞여 우중충한 하늘. 그 사이를 뚫고 내려오는 희미한 햇살이 아스팔트가 덕지덕지 깔린 길바닥과 녹물이 흘러내리는 컨테이너들을 무채색으로 물들이며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풍겨내는 가운데, 두 명의 헌터는 탈출구를 향해 달려간다.

­타다닥!

이내 한켠에 쌓여 있던 컨테이너 뒤쪽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온다.

무게감이 거의 없는 그 소리는 분명 도끼맨의 작품이었다.

달퐁은 시청자들에게 도끼에 머리가 반쯤 쪼개진 소감을 풀어 놓느라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듯 했다.

그에 나는 일부러 상대의 기척을 눈치 챘다는 티를 내지 않고, 적당히 달퐁의 말에 호응해 주면서 계속 전진했다.

“근데 확실히 한번 찍혀 보니까 알 거 같아요, 님들.

맞는 사람도 어질어질한데 때리는 입장에선 얼마나 손맛이 좋을까.”

“타격감 훌륭하다.”

“글케 말하니까 괜히 하고 싶어지잖아요! 에이씨, 페널티도 없는데 내일 함 해 볼까…?”

[???]

[님 손이 페널티 같은데요]

[10분만에 5뎃하고 못하겠다 찡찡댈 예정]

[내일 방송 다봤다 아ㅋㅋ]

[ㄹㅇㅋㅋ]

그렇게 내가 던져 놓은 미끼에, 상대는 훌륭히 걸려들고 말았다.

컨테이너 옆을 지나가자마자, 모퉁이 뒤에 숨어 있던 사내가 도끼와 함께 덮쳐든 것이다.

­타닷!

놈이 달려들기 만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당황하지 않고 슬쩍 옆으로 스텝을 밟으며 가로로 휘둘러져 들어오는 도끼날의 피해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몸을 돌리며, 손에 들고 있던 AK의 총구를 밑으로 스윽 내렸다.

소총의 기계식 조준기가 자연스레 상대의 다리를 노리게 되었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타타탕!

“으잇, 깜짝이야! 얘 언제 왔어!”

쉬지 않고 입을 놀리던 달퐁이 갑작스러운 내 총성을 듣고 깜짝 놀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도끼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왼 다리에 No.2 탄환 세 발, 총구를 휙 돌려 오른 다리에 세 발을 꽂아 넣었다.

공평하게 피범벅이 된 상대의 두 다리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고, 캐릭터의 이동속도를 나락으로 보내 버렸다.

“흐흫.”

[윾시 원조 사지집착충;]

[야끼런 씹카운터네ㅋㅋㅋㅋ]

[다리수술 깔끔하구연]

[지렁이 완성ㅋㅋㅋ]

[눈나한테 다리 박살.. 헤으응]

[어디에도 못 가게 묶어놓는 눈나 ㅜㅑ]

[???]

[거기서 헤으응이 왜나오누;]

[미친놈들인가ㅋㅋㅋㅋ]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어기적거리는 도끼맨.

그 모습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특수 상호작용으로 상대에게 중지를 휙휙 들어 올려 보였다.

이제 넌 도끼맨이 아니라 지렁이야, 이 자식아.

“달퐁. 양 팔 박살낸다.”

“알았어요! 너 이씨, 딱 대!”

­타타타타탕!

내 말에 달퐁은 곧장 기관단총을 놈에게 겨누었다.

그리고는 도끼에 머리통을 한 번 쪼개졌던 울분을 토해내며 방아쇠를 당겨 댔다.

[그만쏴 미친련아ㅋㅋㅋㅋ]

[화풀이 오지게 하누ㅋㅋ]

[이쉒 아까 뚝배기깨져서 빡돌았네]

[ㄹㅇ타격감 개쩔긴 햇음]

[저거 뎀지쌓여서 죽것다;]

두 다리에 이어서 팔까지 기관단총 탄환에 작살나 버린 도끼맨.

과한 데미지 누적으로 죽어 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적당한 시점에서 달퐁을 제지했다.

“어? 왜요?”

“안 죽이다. 심문 필요하다.”

그렇게 도끼맨이 달퐁에게 사살당하는 것을 막은 나는,

도끼날에 봉변을 당하지 않도록 충분히 거리를 두고 총구를 놈에게 겨눈 채로, 게임 내 보이스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우리 왜 추격하나? 목적 무엇인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어기적거리며 도망치려던 도끼맨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보인다.

말할 수 없다며 대답을 거부하는 듯한 그 모습에, 나는 서슴없이 그의 왼팔에 납탄을 한 발 처박아 주었다. 데미지는 들어가지만 계산상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탕!

“대답하다. 왜 추격하나?”

이미 박살난 왼팔에 따끔한 주사를 맞게 된 그는, 내 추궁에도 열심히 고갯짓을 할 뿐이었다.

곧장 오른팔에도 추가 접종을 한 대 놓아 주자, 고개를 젓는 속도가 한층 빨라진다.

이 새끼 봐라. 이 정도면 대화를 거부하는 걸 넘어서 도발하는 거 같은데.

항의라도 하듯이 느릿느릿 앉았다 일어나면서 격렬한 헤드뱅잉을 하는 그 모습에 미간을 슬쩍 좁힐 무렵,

옆에서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달퐁이 한 마디를 던졌다.

“걔 마이크 안 되는 거 같은데요?”

“허?”

“인게임 보이스 되는 애는 저거 헤드셋에 마이크 달려 있잖아요. 쟤는 없는데?”

그런 디테일이 있었나. 싶은 마음으로 놈의 대가리에 씌워져 있는 전술 헤드셋을 유심히 살펴보니, 달퐁의 말대로 헤드셋에는 아무 것도 달려 있지 않고 맨들맨들한 모양새였다.

상대는 대답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에 김이 팍 샌 나는, 곧바로 AK의 총구를 놈의 머리에 가져다댔다.

“대화 불가능할 경우 쓸모없다.”

­탕!

[ㅋㅋㅋ입 없는 쉒이었네]

[방송보면 존내 억울할듯ㅋㅋㅋㅋ]

[결국 또락스 빼고 다 작살남ㅅㅂㅋㅋ]

[지렁이는 머리 없으니까 이게 마따]

[? 지렁이도 머가리 달려있는데 뭔솔임]

[저쉒 머리는 없어도 될듯ㅋㅋ]

강제로 침묵 중이던 도끼맨을 총알 한 발에 로비로 날려버린 뒤,

바닥으로 허물어지는 시체를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동한다.”

“총으로 맨머리 쏘면 저렇게 다 원탭나는데 왜 도끼는 두 방일까…?”

몰라. 대가리 뼈에 방검 기능이라도 들어있나 보지.

도끼를 쓰다 보면 누구나 해볼 만한 의문을 중얼거리는 달퐁과 함께, 나는 다시금 산업단지를 활보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후로 우리는 도끼맨 두 명을 더 검거해낼 수 있었지만,

내가 사지 박살내서 심문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 건지 둘 다 전술 헤드셋에 마이크가 달려있질 않았다.

그 두 놈은 다리를 작살내고 대충 도망치게 한 뒤 달퐁의 에임 연습용 표적으로 사용해 주었다.

기관단총이라 명중률 자체는 영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맨몸으로 어기적 걸어 나가는 샌드백 둘을 처치하기엔 충분했다.

채팅창을 메우는 시청자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들은 장렬히 길바닥에 스러졌다.

“쫌 불쌍하긴 하네요.”

“도끼맨들 집단추격 당하다. 우리들 더욱 불쌍하다.”

“그런가…?”

창고 부지로 진입한 우리는 외곽 쪽에 위치한 창고 안에서 잠시 재정비를 했다.

빈 탄창에 총탄을 채워넣고, 도끼날에 긁힌 상처를 치료했다. 달퐁의 몸뚱이에 붕대가 몇 개 더 감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왜 나만 이렇게 긁혀요? 고기방패 할 때랑 다를 게 없는데 이거?”

“회피할 경우 상처 발생 예방 가능하다."

“아니,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요? 회피가 안 되니까 그렇지!”

“왜 안 되나?”

“….”

탄창에 총알을 집어넣던 달퐁이 스윽 이 쪽을 쳐다보았다.

복면에 가려져서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그녀가 상당히 어이없어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쉽게 파악해낼 수 있었다.

직접 도끼를 들고 달퐁에게 덤벼 들어서 대처법을 가르쳐 주기라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손에 들린 AK소총의 몸체를 만지작거렸다.

­픽!

그 때,

창고 안에 쌓인 시멘트 포대 너머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시에서 5년 동안 굴러다녔던 내 대가리는, 그 소리의 정체를 곧장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게 수류탄이 됐든 섬광탄이 됐든 뭐가 됐든 간에,

맞으면 존나게 위험해질 게 분명한 투척물의 안전핀을 뽑아내는 소리였다.

그에 나는 쭈그려 앉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달퐁에게 경고했다.

“주의하다, 달퐁!”

“네? 뭐가­”

­턱, 도그르륵.

내 말에 의문을 표하던 달퐁의 목소리는, 이내 우리 근처로 날아 온 무언가에 의해 끊겼다.

“어…?”

“…!!”

재빨리 엄폐물을 찾아 뒤로 물러나는 찰나의 순간에 내가 보게 된 것은,

원통형의 물체가 달퐁의 발치 앞으로 도르르 굴러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류탄과는 명백한 형태의 차이를 보이는 그 녀석.

그것은 분명 섬광탄이었다.

직후,

어둑어둑하던 창고 안이 일시적으로 환히 밝아졌다.

­콰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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