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33화 (33/57)

〈 33화 〉 스승과 제자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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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맨들의 집단 습격을 피해자인 내가 주도했다는 그 개소리에 어이가 없어졌지만,

이내 섬광도끼맨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고 난 뒤에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도끼런 특유의 기동성과 지형지물을 활용해서 몇 번이고 시티즌과 유저들의 대가리를 쪼개 버리는 모습을 보여 줬더니, 일부 유저들에게 이것이 새로운 전략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제로백 도끼런이라니. 존나게 급발진을 해 버릴 것만 같은 명칭이다.

성공할 경우 얻게 되는 이득은 막대한데, 실패 시의 손해라고 해 봐야 잦은 죽음으로 인한 레이팅 점수 하락 정도가 그나마 제일 유의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도끼런 자체는 연습용으로 무료 계정만 하나 생성해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녀석이고, 레이팅에 신경을 쓰는 놈들은 애초에 도끼런 같은 거에 관심을 두질 않을 테니 별 의미가 없다.

그렇게 제로백 도끼런­ 줄여서 제끼런이 작은 유행을 타서 산업단지에 하나둘씩 늘어 가는 도중,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그 자리에 등장해 버린 것이다.

뉴 메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메타의 창시자를 같은 전략으로 처치하게 된다는 것은 일종의 전통적인 도전과제이자 청출어람을 증명하는 훈장과도 같은 거라고 해서, 그 최초의 타이틀을 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 산업단지에 쳐들어 온 모양이었다.

근데 그건 내가 시킨 게 아니잖아. 미친놈들아.

그냥 재미로 그렇게 도끼 하나 들고 뛰어다니면서 머리통을 쪼개고 다닌 것 뿐인데, 새로운 전략이니 뭐니 호들갑을 떨어대면서 지들 멋대로 연구하다가 내가 산업단지 놀러 오니까 원조 모가지 따 보겠다고 덤벼든 거 아냐.

즈그들끼리 지랄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섬광도끼맨의 머리통에 No.2 권총탄을 갈기긴 했으나,

이 또한 컨텐츠라고 생각한 나는 달퐁과 함께 산업단지를 몇 번 더 방문하여 도끼맨들의 거친 인사를 받아주었다.

물론 호들갑이니 뭐니 해도 제로백 도끼런 창시자로서의 자존심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내게 달려드는 불나방들을 최대한 열심히 요격해 주었다.

거지같은 도시 생활의 초반을 생각나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내 외형을 보고 얕본 나머지, 칼자루 하나 쥔 채 무작정 달려드는 병신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물론 놈들은 도끼맨들처럼 죄다 팔다리를 작살내 주고, 본보기 겸으로 그 자리에 다 마신 보드카 한 병과 함께 방치해 두었다. 다음날 가 보니까 핏자국만 남긴 채 없어져 있더라.

기어가는 것도 못 할 텐데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아무튼.

섬광도끼맨의 등장 이후로 섬광탄 활용에 감명을 받았는지 어디선가 주워 온 투척물을 사용하는 변종 제로백들이 종종 보였지만, 이미 한 번 섬광 맛을 봤던 내가 섬광 또는 수류탄이 굴러오는 즉시 도로 주워서 다른 곳에 던져 버렸으므로 별 효과를 보지는 못 했다.

결국 섬광도끼맨이 내 어깨에 도끼날을 박은 것을 제외하면, 나는 그들에게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고 방송을 종료할 수 있었다.

물론 달퐁은 방탄 헬멧도 막아주지 못 하는 도끼날에 몇 번이고 대가리를 찍혀 바닥에 드러눕는 일이 종종 있었고, 나 또한 도끼맨 놈들 신경쓰다가 일반 유저들의 총탄에 대가리가 뚫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원조라는 타이틀에 흠집이 나지는 않았으니 괜찮았다.

달퐁이 생각하던 평범한 시티 오브 루인 합방과는 꽤나 거리가 멀어진 듯 했지만, 어쨌든 알찬 방송이었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그렇게 제로백 도끼런 제자들의 청출어람 대작전은 실패로 막을 내리고,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는 다시금 오이늅­ 이리나의 떡밥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원조의 모가지를 따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덤벼 드는 도끼맨들에게 결국 머리를 한 대도 허용하지 않은 것 또한 감탄해 마지않을 일이었지만,

그들의 주 관심사는 섬광탄을 처음 사용했던 도끼맨과 이리나가 짧은 시간 동안 보여 주었던 치열한 근접전에 있었다.

그 유사 패링 시스템과 파생 동작을 활용한 치명타 회피는 이전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있긴 했으나, 너도나도 총을 들고 다니며 일반적인 최소 교전 거리가 근중거리 이상인 FPS 게임에서 그런 근접전에 대한 요소를 중요히 여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색적, 사운드 플레이, 에임, 총에 따른 반동과 부착물 등등 가뜩이나 신경 쓸 게 한가득인데, 제대로 쓸 기회가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근접 기술은 그 중요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저들은 현실 지향형 게임답게 별 시스템을 다 넣어 놓았다며 그저 웃어넘기는 게 전부였다.

그런 와중에,

이리나가 자신의 방송 중 벌어진 섬광도끼맨과의 실전에서 해당 기술을 보란듯이 꺼내든 것이다.

총을 다루는 슈팅 게임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가, 제로백 도끼런의 등장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고 있는 근접전 테크닉.

하릴없이 1탄 6탄 논쟁이나 재점화시키려던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그 신선한 떡밥 냄새를 맡고 모여들어 그녀가 보여준 근접 전투와 그 효용성에 대하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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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발 패링 존나어렵네]

야끼런 한놈이랑 연습해보는데 방향 안맞으면 바로 뚝배기 까인다ㅅㅂ

뽀록으로 성공해도 2연속에 슬라이딩연계는 시1발 어케했누 좆이늅 미친련아

[댓글]

= 보드카 마시고 해봤음?

ㄴ 김치맨이라 소주깠는데 안됨

ㄴ 술찌쉒ㅋㅋ 보드카 빨고 했어야지

ㄴ ㄹㅇㅋㅋ

ㄴ 상대적 술찌행 좆같네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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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래놓고 늒네 이지랄ㅋㅋㅋ]

썩은물테크닉 보여주고 기만질하는 러시아눈나 말랑한 볼따구에 지건놓고 싶다

말랑말랑

[댓글]

= 맨날 술빨아서 피부 씹창났음 ㅅㄱ

ㄴ 캠보니까 깨끗하더만 시1발아 눈나 음해하지 마라

ㄴ 하관밖에 안보이는 년을 뭐 이리 쳐빨고 앉아있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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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봐도 실전용은 아닌듯]

저거 자체도 상대가 제끼런이니까 가능한거지

총겜에서 저렇게 똥꼬쇼할 일이 있겠냐고ㅋㅋㅋ

[댓글]

= 그 제끼런쉒들이 지금 자꾸 튀어나오자너 ㅄ아

= 제끼런 시1발련한테 뚝배기 깨져 보니까 저거 필요한거 같음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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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끼런 입장에선 좆된거 아니냐]

기껏 빡세게 접근해서 뚝배기 깔라는데

상대가 그거 보고 총 갖다가 막으면 끝나는 거자너

[댓글]

= 애초에 제끼런은 기습 중점이라 케바케임

= 대놓고 앞에서 도끼질하면 그게 제끼런이냐ㅋㅋ

= 패링도 ㅈㄴ어려워서 밸런스 대충 맞는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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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섬광쉒 개추하네ㅋㅋ]

남들 정정당당하게 야끼 하나 들고 싸우는데

섬광 던져서 제끼런에 독을 풀어버리네ㅋㅋㅋ

좃퐁 섬광 3연타 처맞고 노이로제 걸려서 발작하는건 웃기긴 했음

[댓글]

= 오이늅은 안맞으니까 일부러 그쪽으로 던지드만ㅋㅋ

= 좃퐁쉒 중간에 껴서 섬광맞고 야끼에 뚝배기깨지고ㅋㅋㅋ 개불쌍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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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쉒은 추한 게 아니다]

(영상)

섬광은 오이늅이랑 1대1 구도 만들라고 던진거임

클립 느리게 돌려보면 섬광 터지자마자 발소리 들리는데

그냥 안 맞을 거 확신하고 바로 달려가서 기습 들어잤자너

고인물쉒들은 섬광 맞아도 사플 가능해서

섬광 맞을거 예상하고 던진 거면 저기서 발소리 낼 이유가 없음

[댓글]

= 섬광이니?

= 섬광야끼 자택에서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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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대충 턱을 괴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사내.

그는 화면에 띄워진 커뮤니티 게시글의 댓글을 보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걸 들키네.”

“뭐?”

자신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머리에 쓰고 있는 헤드셋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사내는 인터넷 창을 최소화시키고, 그 뒤에 숨어 있던 시티 오브 루인의 매칭 대기 화면을 바라보며 굵직한 음색으로 말했다.

“아니, 그냥 뭐. 시루갤에 글 하나 썼다가 바로 들켰네.”

“뭘 들켜? 형 전프로인 거?”

“인지도가 아예 없는데 그걸 어떻게 들키냐.”

상대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며, 그는 화제를 돌렸다.

“넌 그거 안 해 보냐? 제로백.”

“제로백? 난 그거 할 시간 여따 투자해서 31층 찍었잖아.”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상대의 목소리에, 사내는 픽 웃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플레이챗 너머의 그가 결코 무시하지 못할 한 마디를 말이다.

“잘 하드라, 걔.”

“뭐?”

“그래도 함 죽여 볼라고 달라붙었는데, 머리 한 대를 안 맞아주더라고.

실전에서 그렇게 패링 연속 두번 터뜨리는 건 첨 봤다, 야.”

“….”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어지는 그 광경을 회상하며, 전프로의 타이틀을 가진 사내는 그렇게 상대 앞에서 제로백 도끼런의 창시자를 칭찬했다.

사내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그는, 이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언랭이라 못 만나잖아, 어차피.”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관심 없어 보이더만.”

“맨날 시루갤 떡밥이 도는데 그걸 어떻게 몰라.”

“그르네. 근데 어차피 도끼런 그거 대충 무료계정 하나 파면 되잖아. 해볼 생각 없어?”

“됐어. 일단 32층부터 찍을 거야. 근데 왜 이렇게 큐가 안 잡혀?”

“어…. 내가 레디를 안 박았네?”

“아, 형!”

사내가 Ready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매칭이 진행되기 시작함에,

듀오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화면에 같이 서 있던 캐릭터가 항의하듯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형을 부르짖는 캐릭터의 머리 위에는 레벨과 함께 닉네임이 표기되어 있었다.

[Lv. 89][SSS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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