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34화 (34/57)

〈 34화 〉 몸풀기 (1)

* * *

갑갑하다.

마요네즈 넣은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고 침대에 걸터앉아 컴플릿 보드카를 한 모금 홀짝이던 도중에 떠오르게 된 감상이었다.

물론 이 아늑한 원룸이 비좁다는 뜻은 아니었다.

망할 도시의 은신처에 비하면 훨씬 밝고 따뜻하고 깔끔한 곳이었으니, 그에 대해서 불평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음을 놓고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다만 그런 공간적인 이점과는 상관없이, 내 몸뚱아리가 점차 갑갑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보드카나 생필품을 사러 나갈 때만 바깥 공기를 마시고, 나머지 시간엔 집에서 줄곧 키보드와 마우스를 붙잡고 앉아 있는 생활­ 다시 말해 존나게 정적인 삶을 반복하고 있으니, 마음속에서 답답함이 우러나오려 하고 있는 것이다.

“Cyka.”

그에 나는 쓰디쓴 미소를 입가로 주륵 흘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5년 동안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 왔으니, 이제 좀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좀 취해 보자는 생각으로 방 안에서 빈둥거렸던 것인데,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바쁘게 돌아다니던 버릇이 이미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이 망할 몸뚱아리는 제발 좀 자기를 빡세게 움직여 달라면서 나를 보채고 있었다.

이미 나는 도시를 벗어나 원래 세계에 돌아와 있었지만, 그 잔재는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그 정신 나간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당장 은신처에서 나와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미친놈들을 쫒아내야 내일이 편해진다.

도시에서 오랜 시간 동안 키워 왔던 생존 본능은, 현실에 안주하려 드는 내게 계속해서 위험 신호를 보내며 당장 이 좁은 틀 속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라고 외쳐 댔다.

“후….”

나는 이마를 짚으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좀 평온하게 살아가면 뭐가 어때서 그러냐. 내가 있는 곳은 이제 그 거지같은 도시가 아니다.

여기선 그렇게 죽을둥 살둥 곡예질을 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속으로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 봐도, 이 망할 몸뚱아리는 하루빨리 자신을 극한으로 활용해 달라며 보채고 있었다. 녹슬어 가는 관절에 기름칠을 해 달라고 졸라대며 내 등을 떠밀었다.

자꾸 도시로 돌아가자며 지랄을 해 대던 그 섬뜩한 발작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알코올에 푹 절여진 머릿속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대가리 밑의 부속품들이 자기 좀 작동시켜 달라며 아우성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점차 답답함이 심해져 가는 느낌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뭐 마려운 개새끼마냥 방 안을 맴돌았다.

한 손에 보드카를 들고 의미 없는 스텝을 밟으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게임 쪽에 신경을 집중하며 버텨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임시 조치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만 같았다.

키보드와 마우스만 깔짝거리는 것으론 이제 부족했다.

좀 더 제대로 몸뚱아리를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럼 운동하면 되겠네요. 집 근처에 헬스장 없어요?”

달퐁에게 내 고민을 에둘러 표현해 본 결과, 그녀에게 받을 수 있었던 대답이었다.

헬스장이 뭔가 하고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머릿속 깊숙이 처박혀 있던 기억이 아주 짤막한 정보를 툭 던져 주었다. 운동기구 쌓아 놓고 운동하는 곳.

기억나는 게 그것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그 거지같은 도시로 끌려가기 전의 나는 헬스장이란 곳과 별 인연이 없었나 보다.

하긴, 이렇게나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왔으니까 운동이란 놈이 생존에 필수적으로 요구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망할 도시에서 몸을 움직일 체력이 고갈되어 버린다면 그냥 뒤지는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놈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몸을 단련시켜 실전에 사용 가능한 체력의 총량을 늘리려 애쓰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런 새끼들 중 한 명이었지만, 이 사기적인 몸뚱아리는 애초에 기본적인 피지컬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일반적인 소녀의 몸으로는 보드카 한 잔 빨고 술김에 무장 세력 아지트 쳐들어가서 죄다 뚝배기를 깨 버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내 신체 능력이 외형을 그대로 따라갔다면, 몇 년 동안 버티기는커녕 처음 뒷골목에서 방황하던 시점에서 이미 존나게 험한 꼴을 당하고 그대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불쾌해짐에 고개를 좌우로 작게 털어 생각을 지워내며, 나는 눈앞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 커다란 간판에는 무언가 고풍스러운 글씨가 휘갈겨져 있었다.

[대협 피트니스]

대협에 피트니스라니.

어감이 영 들어맞지 않는 두 단어가 나란히 놓여 있으니 무언가 묘한 기분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는 간판의 글씨와 다르게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광기에 가득 찬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고 살던 내 디자인 감각이 정상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리 나쁜 모습은 아니었다.

입구에 멍청히 서서 신발장과 샤워실 방향 표지판 등등이 놓여 있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이내 시선이 느껴졌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새로 등록하러 오셨나요?”

“아.”

나는 걸음을 옮겨 카운터로 가까이 다가가, 모자챙을 슬쩍 들어 올려 보이며 달퐁에게 전수받은 인삿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모자 아래의 슬라브식 얼굴을 목격한 그녀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표했다.

그러더니 영어로 내 인사를 받아 준다.

“…어. 헬로?”

내 면상을 보고 곧장 러시아어 인사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걸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머릿속에 떠다니던 한국어를 조합해서 입으로 내뱉었다.

“일일 체험. 그것 위하여 방문했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몇 개월 이용권을 끊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배웠으니, 일단은 이곳이 어떤 느낌인지 파악하기 위해 하루만 이용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아무리 구려도 그 거지같은 도시보다는 깔끔할 테니, 내 기준에선 웬만하면 다 합격이겠지만.

아무튼 내가 대충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상대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 네. 일일 이용권은 만 원입니다.”

체크카드를 건네 요금을 결제하고, 그녀의 안내에 따라 사물함에 개인 물품을 넣어 놓은 뒤 신발장으로 다가가서 내 다이­아스 슬리퍼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종이백에 담아 왔다가 사물함 앞에서 꺼내어 손에 들고 있던 하얀 운동화 한 켤레를 신었다.

물론 이 역시 까만 삼선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다이­아스다.

모니터처럼 시청자들에게 훈수를 받아서 슬리퍼의 사이즈보다 한 단계 낮은 것으로 주문한 녀석인데, 집단지성의 힘인지 발에 아주 잘 들어맞아서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든든한 다이­아스 운동화를 장착하고 헬스장 안으로 진입하니, 심상치 않은 덩치에 근육으로 무장한 남자가 나를 반겨 주었다.

순간 도시의 우락부락한 놈들이 떠올라 무심코 몸을 움찔했지만, 나를 따라온 여자의 한 마디에 안심할 수 있었다.

“저희 사장님이세요.”

“아.”

흉악한 몸뚱아리와 달리 푸근하기 그지없는 인상의 남자는, 몸에 딱 달라붙는 스포츠웨어로 상반신을 감싼 채 호탕한 목소리를 내질렀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대협 피트니스 운영하는 장대협입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하루 체험하고 싶으시다고.”

“안녕하세요. 그렇다. 하루 체험 원한다.”

“으응? 아, 우리나라 분이 아니신가?”

내 대답에, 그는 두꺼운 목 근육을 움직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무지막지한 덩치 덕에 나를 내려다보게 되어서, 내 얼굴이 모자챙에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외국인 분 맞으세요, 사장님.”

“그래? 아무튼 반갑습니다. 어느 나라 분이든 간에 운동하러 오셨으면 된 거죠, 허허.”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여 보인 장대협은, 이내 앞장서서 헬스장 내부를 안내해 주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마다 운동을 하고 있다가 헬스장 사장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내게로 흘긋 시선을 준다.

저런 눈빛들을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그 도시의 양조집 문을 처음 박차고 들어갈 때 쏟아지던 시선이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호탕한 목소리로 여러 가지 운동 기구들을 설명해 주는 사장에게 연신 고개를 끄덕여 보이던 나는, 이내 런닝머신이라 불리우는 기구 앞에 서게 되었다.

끝없이 돌아가는 벨트 위에서 계속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된 기계.

“…!”

그 모습에 내 마음이 동했다.

이거라면, 이 기구라면 분명 몸속에 쌓여 있는 답답함을 풀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런닝머신을 반가워하는 것을 옆에서 눈치 챘는지, 사장은 헬스장이 처음이시면 런닝머신부터 해 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 주었다.

그에 냉큼 런닝머신의 벨트 위로 올라탄 나는, 그의 안내에 따라 기계를 작동시켰다.

삑. 소리와 함께 벨트가 회전하며 그 위에 있던 내 몸이 천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함에, 나는 자연스레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번 해 보시고, 이따 궁금한 거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감사하다.”

그 말과 함께, 장대협 사장은 곁을 떠났다.

런닝머신 위에서 천천히 걸으며 사장이 어디로 향하는지 잠시 살피던 나는,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여 보기로 했다.

저지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런닝머신 위의 받침대에 올려놓고,

운동할 때 좋다고 해서 편의점에서 하나 구입한 이어폰을 귀에 꽂은 뒤 스마트폰과 연결했다.

영상과 음악 등이 업로드 되는 사이트인 위튜브(WeTube)에 접속하여 적절한 음악을 하나 골라 재생시킨다.

쿵쿵대는 강렬한 베이스가 인상적인 하드베이스, 아니. 하드­바스(HardBass)가 심장을 울리며 시동을 건다. 그 박자에 따라 삑. 삑. 삑. 하고 버튼을 눌러 런닝머신의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점차 벨트가 빠르게 회전하고, 나는 걷는 것을 넘어 뛰기 시작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와서 한동안 안 듣다가 이렇게 하드­바스를 접하게 되니 상당히 묘한 기분이다.

양조집에서 코사크 댄스를 찰지게 추던 방독면 새끼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 병신은 비극적이게도 방독면 필터가 아무 기능 없는 장식이라 최루탄에 질식해 뒤졌다.

성격은 또라이 같아도 나름 괜찮은 놈이었는데, 그렇게 뒤질 줄 누가 알았겠어, 시발.

도시의 기억을 떠올리니 또다시 머리가 복잡해지려 한다.

그에 나는 런닝머신의 버튼을 계속해서 삑삑삑 눌러 댔다.

달리자.

달려서 죄다 잊어버리자.

평온한 일상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 하는 이 빌어처먹을 몸뚱아리가 원하는 대로,

도시에서 쫒고 쫒기는 추격전을 펼치는 것 마냥 바닥을 쉴 새 없이 박차고 나아간다.

내 안에 쌓인 답답함을 풀어내기 위해, 나는 하드­바스의 웅장한 베이스로 심장 박동을 가속시키며 이를 악물고 런닝머신 위를 질주했다.

귀에 꽂힌 이어폰 너머로 다다다닥, 하고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벨트를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런닝머신의 진동이 발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삑삑삑.

어느 순간 버튼을 눌러도 더 이상 벨트의 속도가 올라가질 않았다.

개의치 않고 숨을 내뱉으며 다리를 움직였다.

정신 나간 새끼마냥 마구 달음박질했다.

계속해서 발을 내뻗고, 바닥을 딛고, 힘껏 박찬다.

둥둥 고막을 울리는 강렬한 베이스가 점차 희미해진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내 심장의 격렬한 박동이었다.

마구 질주하는 내 몸뚱아리를 보조하기 위해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며 피를 전신으로 보낸다.

하드­바스 따위에 비교할 수 없는 그 맥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자니, 점차 기분이 몽롱해진다.

가슴을 콱 조이던 갑갑함이 조금씩 모습을 감추고, 그 대신 고양감이 솟아오른다.

그 짜릿한 감각이 머릿속을 헤집는 듯한 느낌에, 나는 숨이 차올라 헥헥대면서도 씨익 웃었다.

이걸로 만족하냐, 미친년아.

이렇게 기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개지랄을 떨어야 좀 답답함이 사라지겠냐고.

그렇게 웃음을 흘려대며 자학적으로 질주를 감행하던 그 때,

삑삑삑삑 하고 버튼을 누르는 소리와 함께 벨트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

그에 정신을 차린 내가 무슨 일인가 하고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장대협 사장이 런닝머신 옆에 와 있었다.

커다란 손을 런닝머신의 속도 조절 버튼에 얹고 있던 그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나는 숨을 옅게 고르며 한 쪽 이어폰을 빼냈다.

그리고는 사장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무엇?”

아. 무엇이라고 하지 말랬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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