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35화 (35/57)

〈 35화 〉 몸풀기 (2)

* * *

SSSword.

시티 오브 루인 89레벨.

레이팅 3127점.

시청자들과 유저들에게 쏘드라 불리우는 남자­ 강찬혁은 승부욕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남들과 경쟁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항상 노력을 해 왔다.

다행히 그에게는 본인의 의욕을 감당해 낼만 한 능력이 충분히 있었기에, 다른 이들에게 뒤처져 패배감을 느끼게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학교 성적은 항상 최상위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일류 대학까지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허나 찬혁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승부욕은 본인의 취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찬혁이 즐겨 하던 게임 또한 그렇게 유저 간의 경쟁이 활발한 녀석들로 가득했다.

그 불타는 승부욕은 언제나 그가 게임에 진심으로 임하게 만들었고, 노력과 재능이 맞물리게 되며 게임 실력을 수직 상승시켰다.

여러 게임들의 랭커로 등극하며 알게 모르게 명성을 떨쳤던 찬혁은, 유저들의 요청에 따라 짧게 개인 방송을 켜서 핵 의심을 타파했던 것을 시작으로 트와인의 대표적인 실력파 스트리머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 승부욕에 걸맞는 열혈스러운 입담과 가끔 캠을 통해 드러나는 잘생긴 얼굴도 그의 인기에 한몫했다.

그렇게 찬혁은 평균 시청자 5천에 육박하는 인기 스트리머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게임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도장 깨기 하듯이 게임들의 랭킹 정상을 차례차례 정복하며, 찬혁은 계속해서 자신의 승부욕을 자극할 만한 새로운 게임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도중,

찬혁은 시티 오브 루인을 만나게 되었다.

현실 지향형 FPS. 마주치는 모두가 적이 되는 사냥꾼들의 도시.

그 음울하면서도 살벌한 게임의 분위기와 서로 죽고 죽이며 점수를 쌓아올리는 레이팅 시스템은, 승부욕으로 점철된 찬혁의 취향에 아주 적절히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에 곧바로 컴플리트 패키지를 구매한 찬혁은 커뮤니티에 컴플팩 오너 인증 글을 짧게 남겨 추천을 받아내는 것을 잊지 않으며 본격적으로 시티 오브 루인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드코어라는 장르를 붙여도 무방한 게임답게,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한 길은 무척이나 험난했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낮은 저점수 구간은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지만, 레이팅 점수가 올라갈수록 직업이 헌터라도 되는 것 같은 고인물들이 속출하여 찬혁의 등반을 저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방심하는 순간 바닥에 누워 버리는 현실 지향형 FPS 장르의 특징과 더불어, 유명 스트리머를 노리고 저격해 오는 악질 시청자들의 횡포까지 더해지게 되자 스트리머 쏘드의 점수는 30층 언저리에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온갖 방해가 들어옴에도 꿋꿋이 30층 밑으론 절대 떨어지지 않고 버텨내는 쏘드의 눈물겨운 노력에, 곧 찬혁에게 30층 공무원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허나 어느 누가 그랬던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고.

그 명언대로, 찬혁은 방해가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승부욕을 자극받아, 반드시 정상에 올라 보이겠다는 열망이 한층 커지게 되었다.

열정은 노력을 낳았고, 노력은 성과를 가져왔다.

상승과 하락을 밥 먹듯 하면서도, 찬혁은 천천히 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라오게 된 31층의 공기를 마시며, 그는 충분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에 씩 웃을 수 있었다.

바로 그 때,

한 유저가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상대의 사지를 전부 박살내고 다니는 커마충 변태 유저가 출몰했다는 것이었다.

그에 찬혁은 어딘가의 고인물이 부계정으로 장난치는 것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다.

넘버링이 비교적 낮은 탄환으로 사지를 노리는 것은 웬만한 실력을 가진 유저들이라면 모두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내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고작 사지를 박살내는 것뿐이라면, 커뮤니티가 그토록 시끌벅적해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서둘러 피해자들의 영상과 분석 글들을 하나씩 확인해 본 찬혁은, 이내 눈썹을 들어 올리게 되었다.

상대의 시야를 역이용하여 신출귀몰한 플레이를 펼치는 유저.

분명 근거리에 있음에도 발각되지 않고, 그 상태로 상대의 사지를 하나하나 박살내며 농락하는 모습은 가히 공포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지형지물과 시야. 그리고 상대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극에 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점수대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 인상적인 플레이에, 찬혁은 자연스레 해당 유저의 정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이 황당할 정도로 커스터마이징을 예쁘게 꾸며 놓은 유저, 5Ynoob­ 오이늅을 잡아내고 싶었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 분명한 본 계정의 그 점수까지 따라 올라가, 직접 맞붙어 보고 싶었다.

그로써, 자신은 시티 오브 루인의 정상에 더 가까워지리라.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점수를 쌓아올리던 도중,

오이늅이 누군가의 방송에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앳된 목소리가 특징인 여성 스트리머, 달퐁이 오이늅을 조우하게 된 것이었다.

찬혁이 주로 알고 지내던 스트리머들은 대부분 실력파들이었으므로 달퐁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 했지만, 아마 레이팅 점수가 낮아서 언레이팅인 오이늅과 만날 수 있었던 듯 했다.

그에 달퐁의 방송 다시보기 영상을 확인해 본 찬혁은, 무심코 머리를 움켜쥐게 되었다.

경악스럽게도, 상대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것도 한국어가 서투른 러시아계의.

그렇게 자신의 승부욕을 자극시킨 유저가, 여성이었다고?

여성 유저가 웬만한 고인물들도 명함을 내밀지 못 할 실력으로 학살을 하고 다녔다는 것인가?

잠시 얼이 나가 있던 찬혁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상대가 여자라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여전히 그녀의 플레이는 인상적이었고, 오이늅을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 뒤로 오이늅­ 이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고, 전례 없는 보드카 해명 방송과 함께 제로백 도끼런이라는 해괴한 전략을 퍼뜨리는 동안,

찬혁은 다시보기 영상으로 가끔 그녀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점수 올리기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내는 전 프로게이머 형과 듀오 게임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찬혁에게 넌지시 불씨를 던졌다.

‘잘 하드라, 걔.’

“후우…!”

­철컹!

찬혁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어깨에 부하를 주고 있던 숄더 프레스 머신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지속적으로 게임을 하기 위해선 몸 건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찬혁이었기에,

그는 이렇게 본인의 집 근처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

머신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 찬혁은,

그녀에 대한 전프로의 칭찬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느꼈다.

나름 깐깐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그 형이 상대를 그렇게 고평가할 줄이야.

물론 일반적인 게임이 아니라 예능에 좀 더 가까운 제로백 도끼런이어서 본인도 진심으로 그녀에게 덤벼든 건 아니라 했고, 승부사 기질 넘치는 자신의 성격을 뻔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일부러 그런 말로 자신을 골려 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허나, 그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랬다.

언제쯤 그녀와 승부를 낼 수 있을까.

계속해서 본 계정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이리나가, 과연 정말 내가 목표하는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찬혁이 숄더 프레스 머신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 때,

호탕한 목소리가 입구 쪽에서 들려왔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대협 피트니스 운영하는 장대협입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하루 체험하고 싶으시다고.”

이름과 잘 어울리는 덩치의 사장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찬혁은 신입이 왔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별 감흥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맞다. 하루 체험 원한다.”

귀를 부드럽게 감싸고 도는, 세련된 미성의 목소리.

헤드셋의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것과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찬혁은 그 음성의 주인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입구에서 사장을 만나고 있는 여성은,

분명 이리나였다.

아직 제대로 게임에서 매칭이 되어 본 적도 없는데.

현실에서, 그것도 이런 뜬금없는 곳에서 조우하게 되다니?

그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찬혁의 시야에, 커다란 덩치의 사장 뒤를 졸졸 따라오는 누군가가 포착되었다.

다이아스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눌러 쓰고, 다이아스 저지 밑으로 삼선이 다리 라인을 따라 이어져 있는 다이아스 레깅스와 다이아스 운동화까지.

그녀의 방송에서 보았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그 광경에 찬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그녀를 알고 있는 사이인지라 감히 말을 걸 생각은 못 하고, 그는 숄더 프레스 머신으로 운동을 하는 척 하며 이리나를 흘끔 바라보기만 했다.

레깅스 너머로 드러난 다리의 우아한 굴곡에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애써 들어 올리며 그녀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찬혁은, 이내 이리나가 런닝머신에 올라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방송으로 드러나던 그 종잡을 수 없는 성격과 다르게 평범한 운동 초심자의 루트를 따라가려는 이리나의 모습에 무언가 아쉬움을 느끼게 된 그였지만, 찬혁은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스트리머에게도 개인 생활이 있는데, 방송 외적으로까지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욕심이다.

지금은 일단 내 운동에나 집중하자. 앞으로 같은 헬스장을 다니게 된다면 그녀에게 말을 걸 기회는 얼마든지 존재하게 되니까.

그런 생각으로, 찬혁은 숄더 프레스 머신의 손잡이를 움켜잡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삑삑삑삑삑!

허나 런닝머신의 버튼을 마구 눌러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자,

그는 손잡이를 들어 올리다 말고 다시금 이리나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그로 성능 확실한 그 소리에 찬혁뿐만 아니라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다른 이들 또한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찬혁을 포함한 그들은 곧 눈이 휘둥그레졌다.

­삑삑삑삑!

­타다다다다!

그녀가, 달리고 있었다.

런닝머신 위에서 누군가 달린다는 것은 전혀 특별할 게 없는 헬스장의 일상이었지만,

이리나는 평범하게 달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되는 버튼의 연타에, 순식간에 최고 속도인 30km/h에 도달한 런닝머신.

벨트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그 위에 새겨진 제조사의 작은 로고가 선처럼 길게 늘어져 보일 지경이 되었지만, 이리나는 결코 뒤로 처지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아직 여유가 남는다는 듯이 벨트의 앞쪽에 위치한 상태로,

이리나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마치 사냥감을 추적하는 맹수와도 같이,

자세를 낮게 유지한 채 맹렬한 기세로 런닝머신 벨트를 박차며 달려 나가는 이리나.

런닝머신의 최고 속도로 달리면서도, 그녀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의 선은 큰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납고도 평온한 이리나의 질주.

모자챙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녀의 표정 또한 차분하기 그지없으리라.

다이아스 레깅스의 바깥 라인을 따라 이어지는 세 개의 흰 선이 잔상을 일으키며 휙휙휙 움직이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던 찬혁과 회원들은, 이내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삑삑삑삑 하고 런닝머신의 버튼이 눌려지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이고, 회원님! 무리하시면 안 돼요!”

오늘 처음 와서 하루 체험해 보겠다는 손님이 최고 속도로 런닝머신을 마구 질주하며 풀악셀을 밟고 있자, 그 모습을 목격한 장대협 사장이 경악하며 얼른 그녀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

­타박. 타박.

점점 느려지는 런닝머신의 속도에 이내 평범하게 걷는 자세로 돌아온 이리나.

허나 그렇게 달려 놓고도, 그녀는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옅게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난폭하게 달음박질하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그 모습에, 이리나의 심폐지구력 수준을 짐작한 좌중이 경악했다.

그러는 사이, 이리나는 한 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모자챙 밑으로 드러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그 미려한 선을 그리는 입술에 집중하게 되었다.

“무엇?”

“….”

이내 들려온 그 한 마디에, 찬혁과 회원들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황당한 기색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장대협 사장이 말했다.

“아니, 무엇이 아니고요. 처음 오신 분이 이렇게 막 달리시면 어떡합니까?”

“…질주, 불가능하나?”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고, 회원님 몸을 생각하셔야죠. 위험하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에 이리나는 본인의 허벅지를 탁탁 두드려 보았다.

순간 그녀의 매력적인 하체로 시선이 내려갔던 찬혁이 얼른 눈을 돌렸다.

“나 안전하다. 자신 있다.”

“제가 자신이 없으니까 안 됩니다, 회원님. 다른 기구도 한 번 써보실래요?”

장대협의 권유에, 실내 곳곳에 놓여 있는 다른 운동기구들과 런닝머신을 번갈아 바라보는 이리나.

그녀의 다이아스 모자챙이 휙휙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던 찬혁은, 이내 저지 소매에 감싸인 팔이 런닝머신을 가리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런닝머신 좋다.”

“….”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이리나의 모습에, 장대협 사장은 약간 곤란한 듯한 기색으로 런닝머신을 내려다보았다.

허나 결국 백기를 든 것은 사장이었다.

젊은 여성 고객의 유치는 헬스장 영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마구 뛰어 놓고도 평온하기 그지없는 이리나의 신체 능력을 믿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25 이상으론 속도 올리면 안 됩니다.”

“감사하다.”

사장의 허락에 냉큼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이리나.

그녀의 모자챙이 경쾌한 움직임으로 까딱거리는 것을 보게 된 찬혁은 무심코 귀엽다는 감상을 품었다가 흠칫하게 되었다.

모자 하나 갖고 뭔 생각을 하는 거냐, 미친놈아.

고개를 작게 털어 이상한 생각을 날려 버린 그는, 다시금 삑삑삑 들려오는 런닝머신의 버튼 소리를 배경으로 삼아 숄더 프레스 머신의 손잡이를 쥐어 잡았다. 운동에 집중할 시간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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