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38화 (38/57)

〈 38화 〉 과거의 망령 (3)

* * *

모신­나강.

모신 소총이라고도 부르는 볼트액션 소총이다.

존나게 길쭉한 나무 몸체와 그만큼 길다란 총열 덕에 대충 쏴도 잘 들어맞고, 뭣하면 거꾸로 쥐고 개머리판으로 대가리를 쪼개기에도 괜찮은 녀석이다.

그 성능 괜찮은 총알 발사기와 함께, 나는 무법의 도시에서 5년을 버텨 왔다.

처음 손에 넣었던 그 순간부터, 원래 세계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줄곧 내 곁을 지켜 준 것이다.

스코프 없이 하얀 붕대만 둘둘 감긴 모신­나강 소총은 그 당시의 나를 상징하는 물건이었고,

도시 골목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대는 그 둔중한 총성은 꽐라 마녀가 술주정을 부려대고 있다는 위험 신호와도 같았다.

물론 꼬장을 부릴 때까지 만취해 본 적은 없었지만, 다른 놈들에겐 대충 그렇게 인식된 모양이다. 저 미친년이 또 술 먹고 지랄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5년 동안 잘 써먹은 총이고, 그 어느 무장보다 내게 익숙한 녀석이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모신­나강을 시티 오브 루인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모신­나강을 들고 있는 상대를 이제껏 마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폐물이 많고 대부분의 교전이 근중거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산업 단지의 특성상,

한 발 쏘고 일일이 장전해야 하는 볼트액션 소총은 적을 상대하기에 무척이나 불리했다.

좁은 실내 등의 가까운 거리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교전은 보통 짧은 시간에 총알을 많이 흩뿌릴 수 있는 놈이 우위를 가져가는 싸움이어서, 사격 속도가 현저히 느린 대신 정확도가 높고 사거리가 긴 단발 소총들은 여기에 그닥 낄 자리가 없었다.

물론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무척이나 많고, 그들 중에는 분명 모신­나강을 산업 단지에서 사용하며 근거리 저격에 희열을 느끼는 괴짜가 존재할 것이다. 그 망할 도시에서의 나처럼 말이다.

허나 운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언더 레이팅 구간엔 그러한 인간이 없는 건지, 나는 지금껏 해당 구역에서 모신­나강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상대에게서 총을 빼앗아 손에 넣을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물론 굳이 적에게서 노획을 하지 않아도 모신­나강을 획득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했다.

돈만 있으면 총포상 NPC나 자유시장을 통해 그 길쭉한 방망이를 구입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모신­나강만큼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평범하게 돈을 벌어서 상인 NPC나 자유시장을 통해 구입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으로 적을 처치하고,

그 상대에게서 노획한 것을 사용하고 싶은 것이었다.

쓸데없는 고집이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하는 헛된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이는 다이­아스 의류를 입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5년간 쌓아올린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집착과도 같았다.

내가 도시에서 사용했던 모신­나강은 내 힘으로 멍청이들의 소굴에서 빼앗아 손에 넣은 무장이었고, 그렇게 얻어낸 볼트액션 소총은 5년 동안 내 곁을 끝까지 지켜 주었다.

비록 몇 번의 부품 교체가 있기는 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소총이 아니라, 내 5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결정체였다.

다른 모신­나강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바깥에서 들여온 새 물건들도 여럿 있었고, 원형을 못 알아볼 정도로 존나게 개조를 거쳐서 이게 모신이 맞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는 것들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놈들은 기묘하게도 나와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 했다.

저주라도 받은 건지, 하나같이 격전 중에 잃어버리거나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나 버린 것이었다.

도시의 멍청이들과 싸우다가 갑자기 주 무장이 없어져 버리면, 당연히 내 입장이 존나게 고달파진다.

덕분에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여러 번 겪게 된 이후로는, 그렇게 의뢰 보상으로 받거나 교환, 구입 등으로 얻어낸 모신 소총들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서 나를 지켜 주던 것은 그 하얀 붕대가 감긴 놈, 다시 말해 맨 처음에 노획했던 모신­나강이었다.

따라서 평범하게 돈을 주고 구입한 모신­나강이라는 놈들은 내게 있어서 아주 꺼림칙한 것들이었고,

나중에 다른 것을 구입하게 될지언정, 최초로 손에 넣게 되는 모신­나강만큼은 적에게서 직접 빼앗는 방법으로 획득하고 싶었다.

그렇게 얻은 총이 일종의 부적으로써 기능하여, 나를 지켜 줄 것이라는 그 안정감을 얻고 싶은 것이다.

물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원래 세계이고,그 무법의 도시는 시티 오브 루인이라는 게임 속의 배경에 불과하다.

게임에서는 죽음을 맞이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도시에서 5년을 고통 받았던 나는,

그저 게임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다른 요소들은 어떻게든 납득하고 지금껏 게임을 진행해 왔으나,

모신­나강만큼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최초의 방식­ 노획을 통해 첫 모신 나강을 얻는 의식을 치루지 않으면 앞으로의 나날이 제대로 풀리지 않게 될 것만 같았다. 그게 게임이건, 내 인생이건 간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산림 공원을 다음 행선지로 선택했고,

그렇게 침엽수림에 발을 들이자마자 모신­나강을 사용하는 저격수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운명과도 같은 그 만남에,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녀석을 반드시 잡아 족치고, 놈의 손아귀에서 내 파트너를 구출해 내리라.

붉은 색의 병목이 특징인 레즈노프 보드카를 집어들어 한 모금 들이킨 뒤, 커다란 바위 근처로 가까이 다가갔다. 행여나 발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바위 주변을 서성였다.

분명 여기쯤이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바위의 일부분이 완만하게 깎여나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폴짝 뛰어 그 위에 안착한 뒤, 앉은걸음으로 천천히 위를 향해 나아간다.

이 쪽으로 올라가게 되면 바위 꼭대기쯤에 엎드려 있는 저격수를 곧 만날 수 있으리라.

­띠링.

그러던 와중에,

시청자들 중 누군가가 미션을 등록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뭔가 싶어 시선을 살짝 돌려 미션 창을 확인해 본 나는, 작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신규 미션 등록!]

[바위저격충 도끼로 참교육하기 : 50,000원]

“허.”

지금 내가 노리고 있는 녀석의 대가리를 도끼로 쪼개 버리라며, 그 모가지에 5만원의 현상금을 걸어 놓는 시청자.

한동안 도끼런을 플레이하면서 유저들 머리를 수확하고 다니는 것을 보여줬더니, 그 훌륭한 타격감이 다시금 그리워진 모양이다.

[야끼 또 너야?]

[유사 야끼런 on]

[이걸 5만원을 거네ㅋㅋㅋ]

[스나충 대가리 반갈죽은 못참지ㅋㅋ]

[ㅋㅋㅋ저격한테 헤드 따여서 빡쳤누]

[아ㅋㅋ 꼬우면 개활지 무빙 잘 치던가]

[개활지 나가면 양각인데 무빙을 어케쳐 시1발아]

[너 좆격이지 개시1발련이]

[좆격충 피해자들 살벌한거 보소ㄷㄷ]

또 한번 시끌시끌해진 채팅창을 뒤로 하고, 나는 일단 AK소총의 견착을 풀지 않은 채 천천히 바위 위쪽으로 올라갔다.

미션을 성공하여 5만원이라는 거금을 얻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저 위에 있을 저격수 놈을 확실히 처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놈이 나를 전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을 경우에는 도끼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주저 없이 내 손에 들린 AK의 방아쇠를 당겨 버리리라.

그러한 생각으로 조심스레 회색 바윗덩어리를 밟으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꼭대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재빨리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살폈다.

“…!”

이내. 발을 내 쪽으로 향한 채 엎드리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코 허름하지 않은 택티컬한 복장에 멀끔한 방어구까지.

상대는 NPC가 아니라 유저였다.

미동이 없어서 순간 시체인가 싶었지만, 그런 내 생각을 부정하듯이 상대의 손에 쥐어진 모신­나강의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타앙!!

바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 둔중한 격발음이 숲과 개활지로 퍼져나간다.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총성의 잔향에 내 기척을 숨기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음에도 태연히 총이나 쏴제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근처에 누군가 있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 하고 있는 듯 했다.

“….”

그에 나는 김이 팍 새는 것을 느꼈다.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정작 상대가 이런 꼬라지라니.

저격을 할 거면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계속 살펴야 하는 거 아니냐.

기본 중의 기본을 무시하고 있는 이 저격수 놈에겐, 아무래도 따끔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손에 들고 있던 AK소총을 어깨에 멘 뒤,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도끼를 꺼내들었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슬금슬금 조용히 걸어가, 바위 위에 엎드리고 있는 녀석의 바로 옆까지 접근했다.

­스윽.

그리고는,

그 자리에 태연히 쭈그리고 앉았다.

특수 상호작용으로 도끼날에 손을 대고 스윽 훑으며,

나는 놈의 머리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저격에 매우 심취했다, 따바리쉬.”

[ㅋㅋㅋㅋㅋㅋ]

[이래도 모르네ㅋㅋㅋㅋ]

[좆격충 수듄..]

[옆에서 보면 개무서울듯ㅋㅋㅋ]

[참교육 드가자]

그렇게 저격수 옆에 쭈그려 앉아 손에 들린 냉병기를 만지작거리던 나는,

이내 도끼를 높게 치켜들어 그대로 장작 패듯이 놈의 정수리에 내리꽂았다.

­쩌억!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상대의 머리통에서 피가 팍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치명타에 깜짝 놀랐는지, 고개를 휙휙 뒤틀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하는 저격수.

그에 당황하지 않고, 나는 놈을 따라 스윽 몸을 일으키며 도끼를 휘둘렀다.

가로로 붉은 선을 그리며 쇄도한 도끼날이 놈의 뒤통수에 제대로 꽂혀들었다.

­퍼억!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놈은 곧장 바위 위로 얼굴을 처박았다.

대가리에 도끼 두 대를 찰지게 얻어맞고 그대로 절명한 것이다.

“흐흫.”

[편­안]

[이거지]

[윾시 원조 맛집은 다르다]

[타격감 오지네ㅋㅋㅋ]

[놀래서 몸비트는거 커엽누ㅋㅋ]

나는 특수 상호작용으로 따봉을 날려 준 뒤, 작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놈의 시체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바위 아래로 질질 끌고 갔다.

내 동반자를 되찾을 시간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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