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과거의 망령 (4)
* * *
미션이 성공 처리되어 5만원을 수령한 것에 감사를 표하며, 나는 대가리가 아작난 저격수의 시체를 바위 밑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빠르게 재무장을 시작했다.
AK소총을 두 번째 주무기 슬롯으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놈이 들고 있던 모신나강을 집어넣었다. 전술 조끼에 들어 있던 총알들을 확인해 보니 넘버링이 6번이다.
방어구의 최고 방탄 레벨이 6이니,
현존하는 방탄복과 헬멧을 죄다 뚫어버릴 수 있는 비싼 탄환인 셈이다.
저격질을 하면서 주변 체크도 제대로 안 하는 주제에 총알은 또 이렇게 기깔나는 걸 사용하고 있다니. 상당히 괘씸한 놈이다. 전부 압수.
비싼 No.6 탄환들을 죄다 내 주머니에 털어 넣고, 쓸 만해 보이는 것들을 대충 가방에 옮겨 담은 뒤 곧바로 놈의 시체에서 손을 뗐다. 지금은 잡다한 아이템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파밍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는 캐릭터의 손에,
너무나도 익숙하기 그지없는 외형의 길다란 나무 막대기가 쥐어 잡힌다.
모신나강.
녀석이 드디어 내 품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어서 와, 동무.
AK소총만 주구장창 갈겨 대는 동안 동무가 많이 그리웠어.
이걸로 드디어 나라는 놈의 진정한 역할을 되찾게 됐구나.
이젠 미련이 없다. 어서 전장으로 돌아가자.
“흐흐흫.”
웃음을 실실 흘리며, 특수 상호작용으로 총을 이리 저리 돌려 본다.
투박한 나무 몸체와 검게 빛나는 금속제 부속품들.
탄피 배출구 옆에 직각으로 꺾여 있는 노리쇠 장전 손잡이.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볼트액션 소총의 외형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몸체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쉬웠지만, 내 동반자도 처음에는 붕대가 감겨 있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녀석들이랑 구분하기 위해서 내가 손수 감아준 거다.
총기 커스터마이징이 그렇게 세분화되어 있다고 하는데, 붕대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을까. 없으면 건의라도 해 봐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모신나강을 살펴보다가,
나는 돌연히 미간을 살짝 좁혔다.
내 동반자의 몸체에, 쓸데없는 장식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곧장 총기 부품 교체용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총몸 옆의 부속 받침대에 달려 있던 저격 스코프를 떼 버렸다.
우리 모신 동무에게 감히 이딴 원통을 달아놓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스코프, 필요 없다.”
[???]
[그걸 왜 떼누]
[이분 머함]
[좆림에서 쌩모신을 어케써 미친련아;]
[겜하다 스코프 떼는건 첨 보네ㅋㅋㅋ]
[제끼런을 잇는 좆림 모신런ㄷㄷ]
채팅창을 흘끗 바라보니 뭔가 부정적인 의견으로 부산스러워진 듯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코프를 가방 구석에 처박아 둔 뒤 다시 모신 소총을 두 손으로 들었다.
기본적인 부품을 제외하면 총몸의 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 깔끔한 모습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특수 상호작용으로 나무 몸체를 슥슥 쓰다듬었다.
이래야 내 동반자답지. 여기에 하얀 붕대만 있으면 정말 완벽해질 텐데.
“다시 이동한다.”
책상에 놓여 있던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고, 나는 다시금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라마지 않던 애병도 얻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전장을 아니. 산림 공원을 돌아다닐 시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구역은 저격수들이 꽉 잡고 있어서, 개활지를 무턱대고 돌아다니는 건 그냥 빨리 죽여달라면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빽빽이 자라난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기며 이동하는 게 산림 공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철칙이었고, 나 역시 사지나 다름없는 개활지 대신 숲 속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이건 다른 유저들 또한 접속해 있는 온라인 게임이었으며,
개중에 대부분은 산림 지대에서 나와 같은 생각으로 숲을 경유해 이동하고 있을 터다.
다시 말해,
이 숲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내 생각을 증명하듯이,
근처에서 바스락. 하고 수풀이 무언가에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나무 사이사이를 통과하며 다음 저격 스팟으로 이동하고 있던 나는, 그 즉시 가까운 나무 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길다란 총신을 위로 세워서 나무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은폐한 뒤,
고개를 슬쩍 내밀어 소리가 들려온 곳을 주시했다.
내 새로운 동반자로 하여금 첫 킬을 달성하는 순간이 온 것인가 싶어 가만히 몸을 숨기고 있자니, 이내 빽빽이 들어선 침엽수들의 굵직한 기둥 사이로 돋아나 있던 수풀이 부산하게 흔들린다.
그러더니, 이내 거뭇거뭇한 방탄 헬멧을 착용한 대가리가 쏘옥 튀어나온다.
본격적으로 방어구를 갖춘 것을 보니 유저가 틀림없었다.
놈의 움직임이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이, 아마 상대도 내 발소리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소총을 견착한 채,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신중히 살피는 사내.
그에 나는 나무 옆으로 내밀고 있던 고개를 되돌려 상대에게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내 쪽은 언제나 그랬듯이 방어구가 충실하지 못 해서, 놈에게 정면 싸움을 걸 이유가 없었다.
계속해서 수색을 진행하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착각하여 마음을 잠시 놓는 순간.
그 때가 놈을 공격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바스락.
그리고,
내 경험상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이었다.
상반신을 나무 기둥 옆으로 쓱 내밀며, 위로 세우고 있던 모신나강을 앞으로 내뻗는다.
기계식 조준기 앞에 눈을 가져다 대자 가늠쇠의 둥근 테두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너머로 수풀에서 빠져나와 총구를 밑으로 내리려 하고 있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부드럽게, 그리고 세심하게 손을 움직인다.
좁다란 가늠자를 상대의 거뭇거뭇한 머리통에 가져다 댄다.
단단해 보이는 방탄 헬멧을 착용하고 있지만, 상관없다.
내 모신나강이 머금고 있는 고급 총알은 모든 방어구를 뚫어버릴 수 있다.
숨을 슬쩍 참아 조준 시의 흔들림을 안정시키고, 방아쇠를 꾸욱 당긴다.
타앙!!
둔중한 격발음이 전술 헤드셋을 통해 귓가에 전달되며, 반동으로 총구가 튕겨 오른다.
기계식 조준기 너머로 놈의 몸뚱이가 바닥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인다.
방탄 헬멧을 뚫고 들어간 No.6 탄환이 머리통에 처박히자 그대로 즉사한 것이다.
“흐흫.”
장전손잡이를 당겨 탄피를 밖으로 튕겨 내며, 나는 작게 웃었다.
아주 안정적인 마수걸이였어, 동무.
[오]
[에임 스무스하네]
[깰끔]
[윾시 6렙 죽창 ㄷㄷ]
[스코프 빼도 잘잡는데 알못들 왤케 ㅈㄹ한거임]
[가까이서 헤드따는건 쉽지 병1신아]
[좆격충 대가리까지 따면 ㅇㅈ해드림]
머리가 파괴된 시체를 풀숲에 끌고 들어가서 쓸 만한 아이템을 뒤적거리며 채팅창을 살펴보자, 스코프나 저격 같은 단어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었다.
대충 이 스코프 없는 모신나강으로 저격수를 잡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 말다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물론 원거리에서는 상대가 그만큼 작게 보이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상대를 조준해서 총알을 맞추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그래서 시야를 확대시켜 보다 정확한 사격을 가능케 하는 조준경은 저격수들이라면 개나 소나 다 쓰는 물건이었으며,
조준경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원거리에서 저격전을 하게 되면 당연히 전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거지같은 도시에 당연한 상식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예시 중 하나가 바로 나라는 놈이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이 몸뚱아리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망원 렌즈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상대가 어디서 꿈틀대고 있는지 정도는 시야 내에서 쉽게 포착해낼 수 있었고, 거기다가 기계식 조준기를 갖다 댄 뒤에 낙차를 대충 감으로 계산해서 쏴 주면 장땡이었다.
여기다 대고 쏘면 맞겠지 싶어 방아쇠를 당겨 보면 죄다 명중하곤 했으니, 이 몸뚱이의 눈깔 성능과 사격술에 대한 재능의 사기성에 대해서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존나게 먼 거리까지는 커버가 불가능했다. 스코프로도 잘 안 보이는 거리를 맨눈으로 멀쩡히 보고 조준까지 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허나 그 망할 도시에서 그렇게 킬로미터 단위의 장거리 저격이 필요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저격 좀 한다고 꺼드럭대던 놈들은 죄다 나한테 참교육을 당하기 일쑤였다.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야만 상대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딴 거 없어도 잘만 보이고 조준까지 정확히 할 수 있는 사람.
그 둘이 맞붙게 된다면 과연 누가 이기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한 스토리 아니겠는가.
조준경을 사용하지 않는 나에게 산림의 저격수들을 처리하는 의뢰가 종종 들어오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내가 그놈들을 제일 잘 조졌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파밍을 마치고 풀숲에서 빠져나오며 입을 열었다.
시청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헤드셋의 마이크에 내 목소리를 집어넣으려는 바로 그 때,
피이잉!
무언가가 쏜살같이 내 근처를 스치고 지나가서 바로 옆의 나무에 처박혔다.
조그만 나무 조각이 허공으로 비산하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
뒤늦게 딱. 하고 둔탁한 총성이 귓가에 들려옴에, 나는 곧바로 상대가 사격해 온 방향을 알아내고 나무 뒤로 몸을 날렸다.
어디서 쐈나 싶어 고개를 잠깐 내밀어 보았더니,
나무들 사이로 저 멀리에 있는 바위의 꼭대기가 빼꼼히 눈에 들어왔다.
“Blyat.”
그에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래야 좆림, 아니. 산림 공원이지.
저격수 놈들도 다른 사람들이 숲을 통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숲 속에 있다고 해도 계속 이동하면서 몸을 숨기지 않으면 이렇게 나무 사이로 날아오는 총알에 얻어맞고 골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무 뒤에 몸을 바짝 붙이고 있던 나는, 이내 씩 웃었다.
허나 그러한 지형적 특성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숲 속에서도 바위 위에서 밍기적거리고 있던 저격수의 대가리를 따 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모신나강을 의심하는 시청자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 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