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40화 (40/57)

〈 40화 〉 과거의 망령 (5)

* * *

빗나간 건가.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나무 사이로 피가 터져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사내는 작게 혀를 차며 스코프에서 눈을 떼었다.

그리곤 자신이 들고 있던 녹색 총신의 노리쇠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철컥.

­핑.

총몸의 레일에 스코프가 부착된 볼트액션 소총에서 뜨거운 탄피가 튀어나온다.

탄피는 곧 아래로 떨어져, 남자가 엎드리고 있던 바위 위를 데굴데굴 구른다.

산림 지대의 저격 스팟 중 하나인 높다란 바위에서 나무 사이로 이리나를 저격하려 했던 이 남자는, 평범한 시티 오브 루인 유저가 아니었다.

그는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은 물론,

그녀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리나의 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시청자 중 한명으로서, 그녀의 플레이 화면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트리머가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에 따라 들어와 훼방을 놓는 행위를 보통 저격이라는 단어로 표현했기에, 말하자면 그는 원거리 저격으로 이리나의 저격을 수행하는 저격수 저격러였다.

그가 이런 저격을 위한 저격에 몰두하고 있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리나가 보드카 해명 방송을 진행하고 있을 당시,

시청자들 중 일부 악질들이 그녀에게 보드카를 잔뜩 먹이고 취하게 만들어 방송을 망치려 했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마치 간이 서너 개라도 되는 것 마냥, 그녀는 한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보드카 한 병을 다 비워도 전혀 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도끼로 유저의 정수리를 쪼개 버리며 명장면을 만들어 내는 그녀의 모습에, 악질 시청자들은 패배를 시인하고 물러나야만 했었다.

허나 그들은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이리나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후 제로백 도끼런 제자들의 청출어람 레이드가 발발하자,

악질들은 스승을 만나러 가는 도끼맨들의 행렬에 슬쩍 끼어들었다.

그들은 이리나의 방송으로 위치를 손쉽게 파악한 뒤, 그녀의 머리통을 쪼개기 위해 달려들었다.

물론 결과는 참패였다.

안타깝게도 상대는 전프로를 상대로 치열한 근접전을 펼쳐, 결국 승리를 거머쥔 인간이었다.

그들은 이리나에게 역으로 사지가 박살나고, 달퐁의 사격 연습용 표적이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이리나를 곤란하게 만들기는커녕 역으로 방송의 흥행을 도와주게 된 것이었다.

악질 시청자들은 또 다시 처참한 패배를 맞이하고 시무룩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이리나가 산림 공원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에 불굴의 의지로 다시금 일어선 악질들은, 언더 레이팅의 부 계정으로 스코프 달린 저격 소총을 하나씩 꼬나 쥐고 침엽수림에 들어섰다.

높은 바위 위에 엎드려 SV 저격 소총을 숲 쪽으로 겨누고 있는 이 남자도 그러한 악질들 중 한 명이었고, 운 좋게 이리나와 같은 게임으로 매칭되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숲 속은 워낙 복잡한 공간이라 방송 화면으로 그녀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지만, 다행히도 사내에게 두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이리나가 모신나강으로 첫 킬을 달성하는 순간, 그 둔중한 총성이 바위 위에 엎드려 있던 그의 귀에까지 닿은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총구를 돌려 스코프를 들여다보자, 풀숲에서 몸을 일으키는 백금빛 단발머리의 여성을 침엽수 기둥 사이로 포착해낼 수 있었다.

허나 급한 마음에 조준을 완전히 안정시키지 않은 나머지, 그의 탄환은 이리나의 근처를 스치고 지나가 애꿎은 나무에 처박히고 말았다.

남자는 당황했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첫 저격이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으나, 이리나가 자신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스코프도 없는 모신 소총으로 원거리에서 저격수를 상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도끼런 때와는 다르다. 이번에는 확실히 자신 쪽이 유리하다.

모신­나강을 얻고 희희낙락하는 이리나에게, 이번에야말로 매운맛을 보여 주리라.

그런 생각으로, 남자는 장전을 끝내고 다시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며 이리나의 방송 화면을 체크했다.

그녀는 나무 뒤에 숨어, 총구를 위로 세운 모신나강에 탄환을 채워넣고 있었다.

아까 숲 속의 상대를 처치하는 것에 썼던 한 발을 다시 보충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나무 옆으로 상반신을 내밀어 모신나강의 총구를 앞으로 향하는 모습에, 남자는 서둘러 방송 화면에서 눈을 떼고 스코프 속으로 보이는 나무 사이사이의 풍경에 집중했다.

“…!”

보인다.

쓸데없이 잘 꾸며놓은 백금빛의 단발머리가 나무 기둥 옆으로 튀어나와 있다.

서둘러 스코프의 조준선을 상대에게 가져다 댄 남자가 방아쇠를 당기려던 찰나,

피융. 하고 총알이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남자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에 흠칫한 나머지, 사내의 저격 소총이 불꽃을 뿜어내는 순간 조준이 살짝 흔들리게 되었다.

두 번째 기회도 실패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낙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그가 들었던 탄환의 파공성이, 상당히 작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목표에서 멀리 벗어날수록, 당연히 목표에게 전달되는 총알의 휘파람도 작아질 터.

이는 방금 전에 자신을 향했던 이리나의 원거리 사격 정확도가 형편없다는 증거였다.

여유롭게 노리쇠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겨 탄피를 튕겨내고 새 탄환을 장전한 사내는, 다시금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댔다.

자신이 총알을 박아 놨던 나무에 조준선을 가져다 놓고 가만히 대기하는 사내.

방송 화면을 볼 필요도 없었다. 자신을 조준하기 위해 나무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총알에 꿰뚫려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고스란히 방송을 통해 송출되어, 모든 시청자들은 그토록 자신 있어 하던 스트리머가 허무하게 당해 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겠지.

상상만 해도 짜릿하기 그지없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 내며, 남자는 어서 이리나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고대했다.

“….”

허나, 그의 기대는 보답을 받지 못 했다.

조준선 너머의 상대는, 모습을 드러낼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왜 안 나오는 거지? 설마 이 나무가 아니었던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총알 자국도 그대로 남아있어서 혼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언가 일이 틀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사내는, 얼른 총구를 돌려 근처의 나무 기둥 여러 개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백금빛의 단발머리를 가진 여성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 한 남자는 결국 이리나의 방송을 확인했고,

이내 찌푸리고 있던 눈을 부릅뜨게 되었다.

방금 전에 남자가 보았던 방송 화면의 숲 속 풍경과는, 그 모습이 확연하게 달랐던 것이다.

오른쪽에 끼고 있던 수풀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으며,

굵직한 나무 기둥 두 개가 확연히 눈에 띄던 전방에는 비교적 가느다란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침엽수들 사이로 드러난 바위 역시 살짝 각도가 틀어져 있었다.

바위의 꼭대기에서는,

조그만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사내의 조준경 속 망원 렌즈가 햇빛을 반사하며, 그 존재감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

그에 흠칫한 사내는, 얼른 바위가 틀어진 각도를 따라서 총구를 옆으로 돌렸다.

자신이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노리쇠 손잡이를 당겨 장전하는 사이에, 그 자리에서 벗어났던 것인가.

침착하자. 상대의 사격 정확도는 영 좋지 않다. 조준경 때문에 정확한 위치가 드러나게 되었어도 이 먼 거리에서 자신을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남자는 눈을 이리저리 돌려 이리나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사내는 그 복잡한 숲 속에서 기적적으로 이리나를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자신에게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왔다고 느끼며, 남자는 서둘러 조준선을 가져다 대려 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남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운에 가까웠다.

상대가 자신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장면을,

마지막 순간까지 두 눈 똑똑히 지켜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차 수정했다. 이제 명중한다.”

게임에 집중하느라 방송을 음소거시켜 놓았기에,

사내는 이리나의 그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무표정한 잿빛의 눈으로 자신에게 모신나강을 겨누고 있는 이리나.

그 모습을 조준경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내는,

그녀의 총구에서 불꽃이 짧게 튀어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파각!

그 직후,

No.6 탄환이 사내의 안면을 꿰뚫었다.

얼굴뼈를 부수고 관통해 들어온 총알은 그대로 남자의 머릿속을 무자비하게 헤집고 지나가며,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안겨 주었다.

스코프 없는 마녀에게 목숨을 거둬지게 된 저격수.

생명을 잃은 그의 몸이 바위 위에 축 늘어졌다.

“….”

캐릭터의 시야가 암전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악질 시청자.

그는 이내 컴퓨터 책상 위의 거치대에 세워져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는 이리나의 방송.

힘없는 움직임으로 볼륨 조절 버튼을 눌러 음소거를 해제하자마자,

그녀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흐흫.”

바위 위에서 반짝거리던 반사광이 사라진 뒤,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이리나.

그녀는 이내 구석의 조그만 캠 화면 속에서 보드카 병을 집어 들었다.

모자챙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

[반사광 없어졌네 ㄷㄷ]

[잡은거임?]

[걍 튄거 아니냐]

[아까 쏴도 계속 반짝거렸는데 디진거 맞는듯]

[않이 어케 잡았누;]

[이게 된다고??]

[선생님 진도가 시1발 너무 빠릅니다]

[걍 뽀록같은데]

[핵이네 ㅅㄱ]

[캠 다 보이는데 핵 이지랄ㅋㅋ]

[요즘 언레 늒네는 노스코프로 좆격 대가리를 따네 아ㅋㅋ]

[이제 늒네코스프레 하면 욕박아도 무죄임 ㄹㅇ]

[러시아에서는 스코프가 저격수를 사용합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맨눈 저격에, 시청자들이 다양한 반응을 마구 쏟아내며 채팅창을 화르륵 불태웠다.

그 뜨거운 현장을 스마트폰으로 지켜보고 있던 악질은, 이내 폰을 거치대에 도로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추욱 늘어뜨렸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저격을 위한 저격에 성공하기는 했다.

이리나를 상대하며 그녀의 능력을 입증해 주어 방송을 흥하게 만드는 엑스트라로서 말이다.

또 한 번의, 완벽한 패배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