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그녀와 그녀 (2)
* * *
“미친년아, 졸지 마!”
“?!”
익숙하기 그지없는 앳된 목소리가 귓구멍을 뾰족하게 찌른다.
그에 흐릿해져 가던 의식을 퍼뜩 각성시킨 나는, 옥상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도시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는 건물의 옥상 위 풍경.
난간에 거치해 놓은 모신나강과, 탄피나 나무 조각 따위가 굴러다니는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골판지 박스 쪼가리를 엉덩이에 깔고 앉아 있던 쪼만한 년은,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려 대는 내 모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가 여기서 버텨야 한다 해놓고, 혼자 드르렁 하면 어쩌자는 건데.”
“…안 잤어. 전략적 휴식이야.”
“전략 같은 소리 하네. 보드카 처먹고 날도 선선하니 아주 그냥 졸음이 솔솔 밀려오지?”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좁히며 내 옆에 놓여 있던 유리병을 손등으로 툭 쳤다.
쓸데없이 존나게 묵직한 유리병은 그 충격에도 꼼짝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좆같은 걸 보드카라고 부르지 마라. 그냥 알코올만 무식하게 때려넣은 쓰레기니까.”
“이런 씹, 그거 설마 썩은 에탄올 맛 나는 그 놈이야?”
한 모금 마셨다가 퉤에엣 하고 발작을 일으켰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대번에 얼굴을 찡그리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녀.
그에 픽 웃으며, 유사 증류주가 들어 있는 병을 집어 들어서 그 년에게 내밀어 보였다.
“그래. 한 잔 주랴?”
“내가 미쳤어? 그 폐기물을 처먹게.”
손을 내저으며, 싸구려 맥주가 담긴 갈색 유리병을 입에 꽂고 한 모금 들이키는 그녀.
저것도 뭔 구정물 갖다가 만든 것 마냥 거지같은 맛이 나던데.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폐기물에 물 타서 맥주 정도로 도수 낮추면 아마 저 새끼도 좋다고 퍼마시지 않을까 싶다.
이내, 화약과 먼지 냄새를 머금은 바람 줄기가 옥상 위를 휘감고 지나간다.
색채가 빠져나간 듯 옅은 회갈색을 띠는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결에 휘날린다.
맥주병을 내려놓고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야, 마녀.”
“왜.”
“여기서 나가면, 뭐 하고 살 거야?”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유사 증류주를 한 모금 들이키던 나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뭔 장벽에라도 막힌 것처럼 도시 밖으로 탈출할 수도 없는데, 그런 걸 나한테 물어 봤자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모르겠”
허나 그 순간,
무언가 강렬한 위화감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어?”
상대가 지금 내게 던진 그 질문은, 분명 언젠가 들었던 적이 있는 내용이다.
나는 그에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그녀 또한 잘 모른다는 말을 하며
보드카. 입에 대지도 않는 보드카를 언급했었지.
그것을 떠올린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작달막한 소녀는 그런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딴 표정 짓지 마.
그 년은 그렇게 웃음이 헤픈 년이 아니다.
그 조그만 입가에 미소가 띄워져 있을 경우,
내 면상도 알아보지 못 할 정도로 존나게 취해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맨 정신으로 웃음을 지어 보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피투성이로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붙들고 울부짖던 나에게, 가빠지는 호흡과 함께
“…!!”
텅!
밀려드는 현기증에 가까스로 난간을 짚어 쓰러지는 것을 모면했다.
기분이 이상하다. 몸뚱아리의 반응이 몇 박자씩이나 느린 것만 같다.
내 몸이 내 몸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상대의 앳된 목소리가 명확하게 내 귓가로 꽂혀들었다.
“그래. 이건 저번에 물어봤던 거였지?”
“씨이, 발…. 너 뭐야…! 뭐 하는, 새끼야…!”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
“너…. 씨발 누구, 냐고…!”
난간에 거치되어 있던 모신나강을 거칠게 집어 들었다.
몸을 옥상 난간에 걸치듯이 내맡기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 총구를 들이민다.
허나 그 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은, 내 위협에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여전히 입꼬리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이내, 그녀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질척하게 스며들었다.
“마샤, 왜 죽였어?”
“…!!”
손아귀에서 힘이 풀린다.
지지대를 잃은 모신나강이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나무로 이루어진 개머리판이, 단단한 옥상 바닥에 팍 꽂힌다.
그 지점을 중심으로, 커다란 균열이 옥상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쩌저저적. 하고 소름끼치는 굉음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더니,
이내 한순간에 건물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옥상에 발을 디디고 서 있던 몸뚱아리가 아래로 추락한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듯이, 무너져 내리는 철근 콘크리트 사이로 천천히 떨어진다.
그 년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그 앳된 목소리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날 왜 죽였어? 왜 날 죽인 거야?
그에 얼굴을 구기며, 이를 까득 악물었다.
닥쳐. 난 그 좆같은 도시에서 멍청이들 말고는 죽인 적이 없어.
마샤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내 동료였다. 없는 사실을 지어내려 하지 마.
없는 사실이라고?
그러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다시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럼 또 다른 질문을 해 볼게.
필요 없어. 그만 지껄이고 당장 나를 이 좆같은 꿈에서 내보내.
지나간 과거를 이따위로 상기시켜 봤자 나는 이미
네 동료를 그 사지로 보낸 사람이, 과연 누굴까?
“!!”
천천히 낙하하던 몸이, 한순간에 빠르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파편들 사이로 계속해서 추락한다. 바닥없는 무저갱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며 나를 괴롭혀 댄다.
어째서 동료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지? 그게 네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이었나?
몸을 한껏 웅크리며 귀를 두 손으로 틀어막아도, 나를 향한 질타는 멈추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동료가 아니라 미끼일 뿐이었구나.
겉으로만 동료 취급이었지, 속으로는 도시의 멍청이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던 거였어.
어느새 주변은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찼고,
나는 그 한복판에 홀로 존재하게 되었다.
머리를 두 팔로 감싸고 있는 나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마샤와의 나날이 스쳐 지나간다.
대뜸 살려달라며 넙죽 엎드리던 첫 만남.
보드카를 나눠 마셨다가 훅 가버려서 뒷처리가 힘들었던 어느 날의 저녁.
겁없이 기관단총을 들고 튀어나가려는 것을 막아 세우던 전장.
건물 옥상에서 정찰 의뢰를 수행하며 나누었던 잡담.
그리고, 이별.
도시 외곽에는 무너지기 직전의 폐허 하나가 있었고,
그 곳은 찢어죽여도 모자랄 어느 미친놈이 가지고 왔던 폭발물에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마샤는 내 저격을 보조하기 위해 의뢰주가 고용한 아군들과 함께 그 곳에서 응전하고 있었다.
서둘러 빠져나온 덕에 거기에 완전히 파묻히는 것만큼은 피해낼 수 있었지만,
폐허가 무너지며 떨어져 내린 파편에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내 품 안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마샤는, 떨리는 손길로 힙 플라스크에 담긴 보드카를 건넸다.
‘그만 울고 마셔, 병신아. 니 잘못 아니야.’
아니야. 그건 내 잘못이 맞다.
너를 그리로 보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좀 더 빨리 그 개새끼를 찾아냈더라면.
머릿속에 펼쳐지는 장면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다.
오감이 한 데 녹아들어 마구 뒤섞인다.
암흑 속의 공허함과 전장의 치열함이 동시에 피부를 자극한다.
무의식중에, 나는 그녀를 찾는다.
마샤. 마샤. 어디 있어? 아직 살아 있는 거지?
어느 샌가 흙먼지 가득한 바닥에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키려 애쓴다.
저 멀리,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폐허로 달려 나가는 마샤의 모습이 보인다.
손을 뻗어 그녀에게 내밀었지만, 마샤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추한 몸짓으로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그녀를 잡으려 했다.
가지 마. 안 돼, 마샤.
거기는 안 돼. 그리로 가선 안 돼.
이리나!
그 때,
앳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손길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나를 일으킨다.
고개를 들어, 흐릿한 시야로 나를 부축하는 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이목구비가 울상을 짓고 있다.
이리나! 괜찮아요?!
머리색이 어딘가 짙어진 마샤가, 어느 새 내게 돌아와 있었다.
그에, 나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마샤의 옷깃을 꼭 붙잡았다. 어디에도 가지 못 하게 붙들었다.
“마샤…. 가지 마…!”
“어, 에?”
“거기로 가면 안 돼…! 그 개새끼가 죄다 터뜨릴 거야!”
“…!”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껴안고, 소매를 꽉 쥐어 잡으며 추하게 매달린다.
무슨 말을 내뱉는 지도 모른 채, 어떻게든 마샤를 그 사지로 보내지 않기 위해 애걸했다.
“살고 싶다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다고 했잖아…!”
“….”
“마샤, 안 돼….제발 죽지 마. 가지 마….”
“이리나….”
너를 떠나보내고, 내가 모아 두었던 독주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빌어먹을 알코올을 길동무 삼아 네 뒤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그 대가로 많은 것을 잃었다.
원래 세계의 나라는 놈은 그 날 알코올에 휩쓸려 사라졌다.
내가 그 곳에서 뭘 하던 놈인지, 뭘 위해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너를 잃고 싶지 않다.
그 상실감을 또 다시 느끼게 된다면,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러니, 제발 나를 떠나지 마.
나를,
이 지옥에 혼자 두고 가지 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