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슬라브식 복귀 (1)
* * *
그렇게 달퐁과 말을 놓게 된 이후,
그녀는 내게 방송을 하루 쉬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해 왔다.
확실히 최근에는 마치 홀린 듯이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그 망할 게임에만 몰두했던 것 같아서, 순순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방송 플랫폼 트와인에서 스트리머에게 제공하는 개인 커뮤니티, 트랙.
달퐁이 찾아왔을 때 도움을 받아 새로이 개설한 그 곳에다가 첫 글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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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휴식한다]
시티 오브 루인 과몰입에 의해 몸 상태 악화됐다.
휴식 이후 내일 복귀한다. 미안하다 따바리쉬들.
트랙 첫글이 휴방 공지;
코피 개씨게 흘리던데 ㄱㅊ?
ㄹㅇ 어제방송 1초 호러였음
보드카도 좀 줄여 눈나..
ㄴ□이리나: ?
ㄴ ? 이지랄ㅋㅋㅋㅋ
ㄴ 몸 안좋다매 미친련아ㅋㅋㅋ
ㄴ 코피 터져도 보드카는 못참지 아ㅋㅋ
ㄴ 방장쉒 코피에 알콜 섞여있을듯 ㄹㅇ
내일 방송키는거 맞지..? 런하는거 아니지..?
루스끼못잃어루스끼못잃어루스끼못잃어루스끼못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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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몸 상태가 영 안 좋아서 재정비를 하고 온다는 내용으로 하루 휴식을 알리자,
어제 코피가 주르륵 흐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송출해서인지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그 와중에 보드카 좀 작작 마시라는 의견도 튀어나왔지만, 어림도 없지.
이제 와서 우리 보드카 동무를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달퐁 덕에 나아지기는 했다만, 그래도 내 대가리가 완전히 정상으로 되돌아온 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하루의 휴식을 허락받았다.
그동안 게임에 집중하느라 가지 못 했던 헬스장에서 한바탕 신나게 달음박질을 하기도 하고,
다쉬락, 아니. 도시락 외에 다른 컵라면들은 뭐가 있는지 편의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달퐁이 알려준 방법대로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른 컵라면을 찾기 이전에 냉장고 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락들부터 먹어치우기로 결심한 나는,
마요네즈 뿌린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식후 보드카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그에 얼른 다이아스 모자를 눌러 쓰고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 주자, 로켓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택배 기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저번의 모니터 때보다 훨씬 커다란 상자를 현관 안쪽에 두고 떠나가는 택배 기사.
그것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이내 흐흫 하고 웃음을 흘렸다.
게임하다 말고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서 낑낑거리던 게 바로 엊그제였기에,
곧바로 시티 오브 루인의 플레이를 재개하는 것은 상당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제 휴식을 취하는 동안, 그 부분에 대해 달퐁과 상의를 했다.
‘딴 게임? 그럼 시오루만 하려 그랬어?’
‘최초 계획은 그렇다.’
‘아이씨, 그럼 안 되지!’
그녀는 다른 게임을 해도 되겠냐는 내 물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나의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스트리머라고 해서 그것만 붙잡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시티 오브 루인 고인물 오이늅으로만 활동하는 것보단 스트리머 이리나로서 시청자들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
하나의 게임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스트리머 장본인을 보러 와 줄 수 있게끔 여러 가지 컨텐츠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 줘야 한다며 열띤 설명을 펼쳤던 달퐁이었다.
하기야, 맞는 말이다.
아무리 저 망할 게임이 나와 인연이 깊다고는 해도, 시티 오브 루인 하나만 죽을 때까지 우려먹을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막말로 어느 날 게임사가 폭격이라도 당해서 망하게 되면 그대로 게임 하나가 날아가게 되는 건데,
방심하고 있다가 그런 일이 갑자기 벌어지면 스트리머 입장에서 막막해지지 않겠는가.
따라서 시오루와 함께 밀어붙일 다른 게임을 찾기 위해,
나는 그녀가 이리나랑 잘 맞을 거 같다며 추천해 준 여러 가지 게임들을 살펴보았다.
이내 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눈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택배 상자였다.
미소를 지으며, 조그만 가위를 갖고 와서 상자를 감싸고 있는 테이프를 잘라 냈다.
그러고 보니 칼 구하는 걸 또 깜빡하고 있었네. 시발.
모신나강에 조준경을 달지 않은 채,
아니. 정확히는 있던 조준경까지 없애버린 채로 저격수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이리나의 플레이.
그 모습을 담은 그녀의 방송은 한동안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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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모신 저격 뭐냐ㄷㄷ]
(영상)
반사광 보인다고 해도 저만한 거리에서 스코프 안쓰고 잡는게 가능함?
아이언사이트*로 영점도 안맞추고 걍 빗겨쏴버리네 ㄷㄷ
(*아이언 사이트 : 기계식 조준기)
[댓글]
= 방송안할때 연습 오지게 했겠지
ㄴ 로그 보니까 방송때 말고는 겜 안켰는데??
ㄴ 누가 연습을 본계로 해 병1신아 레이팅 씹창나는데
ㄴ 오이늅도 사실상 본계정 아니지 않냐ㅋㅋㅋ
ㄴ 아ㅋㅋ 그럼 뭐 부부계인갑지
= 나도 영점 귀찮아서 안맞추고 스코프 눈금보고 쏨
ㄴ 저쉒은 스코프 안쓰자너
ㄴ ?? 스코프를 어케 안쓰냐
ㄴ 본문을 좀 읽어 시1발아ㅋㅋㅋ
ㄴ 좆격충 수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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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시발 노스코프 모신런은 좀]
썩은물쉑이 영점이고 조준경이고 다 조까고
그냥 감으로 조준해서 좆격충들 대가리 따고 다니는데
이걸 대체 어케 따라하라는 거냐ㅅㅂㅋㅋ
제끼런은 그래도 꼴박하는 맛이 있어서 어렵긴 해도 재밌었는데
이건 좆격충들한테 킬경험치 갖다바칠 거 같아서 거름 ㅅㄱ
[댓글]
= 짭이늅도 거르는 모신런ㅋㅋㅋ
= ㄹㅇ 좆격들 킬딸치는거 보기 싫어서 이건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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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영점조차 제대로 조절하지 않은 채 오직 감으로 조준을 마치고 저격수들의 머리를 꿰뚫는 이리나의 기술에 헛웃음을 흘렸고,
오이늅의 전략을 곧잘 따라하던 짭이늅들 또한 고개를 저으며 모방을 거부했다.
노스코프 원거리 저격 자체가 그녀처럼 막대한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한 기술이기도 했거니와,
굳이 되도 않는 일을 시도하다가 멀리서 총알만 날리며 사람 속을 긁어대는 저격수 놈들에게 목숨을 헌납해 킬 경험치를 내어 주기는 싫었던 것이다.
이리나가 그 신묘한 기술로 그들이 증오하던 저격수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박살내고 다녔기에 망정이지,
다른 저격수들 마냥 숲과 개활지를 돌아다니는 불쌍한 유저들을 사냥하고 다녔다면 상당한 욕을 들어먹었을 것이다.
고수들의 플레이를 분석하는 이들 또한 그녀의 플레이가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당시 목표와의 거리와 영점 등을 나열해 놓고 분석을 이어나가면서도, 이건 쓸 게 못 된다며 그냥 방송으로만 시청하라고 단언했다.
한 방 한 방이 중요한 저격전에서 이 지랄을 할 바에는, 그냥 스코프로 영점 제대로 맞춰서 쏠 것을 강력히 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게임에서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플레이를 해 냈을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불법 프로그램 핵을 사용했다며 주장하는 핵무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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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빼박 핵이야ㅋㅋ]
아이언사이트에 영점도 대충 맞추고 감으로 펑펑 쏴제끼는데
그게 죄다 좆격충들 대가리에 맞는다고?
에라이 시1발ㅋㅋㅋㅋㅋㅋㅋ
핵을 쓸라면 좀 티가 안나게 쓰던가 병1신련이ㅋㅋㅋ
뭔 좆도 쓸모없는 제끼런으로 어그로 끌더니 바로 본색 드러내쥬?
시오루 잘하는 여스* 많으니까 물흐리지 말고 꺼져 시1발련아
(*여스 : 여성 스트리머)
[댓글]
= 캠도 켜놨는데 핵을 어케 쓰누;
ㄴ 모니터 안 보여주는데 캠이 뭔상관임ㅋ
ㄴ ㄹㅇㅋㅋ 꼬우면 화면 다 보여주던가
= 여스 중에 오이늅만큼 썩은물이 어딨다고 그럼
ㄴ 핵 쓰니까 썩은물처럼 보이는 거지 병1신아ㅋㅋㅋ
ㄴ 분석하는 새끼들도 핵 아니라는데 왜 지랄이냐 시1발련이
ㄴ ㅋㅋㅋ저새끼들이 운영자냐? 분석관쉒들이 아니라 하면 아니게 되는 거임? 이건 시1발 빼박 핵인데 왤케 무지성 실드를 칠라 그러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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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가 마우스를 통해 조작하는 에임의 움직임, 위아래로 총구를 흔들어 거리를 가늠하고 일부러 오조준을 하는 그 습관적인 조준 매커니즘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분석관들.
그들은 이 플레이가 불법 프로그램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며, 그녀가 핵 유저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악질들은 그런 것 따위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스트리머 하나가 몰락하는 것으로 재미있는 떡밥을 만들어내고 싶었을 뿐이었기에,
그들은 무작정 이리나가 핵이라며 우겨대고 게시판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흔하지 않은 실력파 여성 스트리머가 핵 논란에 휘말렸다는 소식은 상당히 흥미로운 화젯거리였기에 금세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내, 사람들은 개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리나의 스트리머 게시판 트랙을 발견하고 그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핵 논란이라는 그 떡밥의 크기에 비해, 분위기는 그렇게 흉흉한 편이 아니었다.
그녀의 플레이가 상식을 좀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핵이라는 증거가 있는 것은 또 아니었으며,분석관들의 게시글 또한 여기저기 퍼다 날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리나를 무작정 욕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고,
나머지 인원이 그들에게 어그로가 끌려 투기장을 만들어 내는 형국이었다.
한편, 게시판에서 이리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녀가 마셨던 보드카에 대해 소소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던 팬들은 뜬금없이 쏟아진 불벼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고 있는 매니저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며 한 발 물러서거나,
그 활활 불타는 전장에 뛰어들어 이리나의 무죄를 주장하며 한층 불길을 키워 냈다.
그러던 와중에,
이리나가 하루의 휴식을 끝내고 복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에 게시판에서 투닥거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Live 마크가 붙은 이리나의 방송으로 몰려갔고,
이내 시꺼먼 송출 화면을 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팔로워 전용 및 채팅 대기 시간이 걸려 있었기에,
채팅창은 갑자기 벌어진 난리에 의해 불평하는 기존 시청자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이미 그녀의 노스코프 저격을 실시간으로 감상하고, 또 그러한 슈퍼 플레이를 며칠 동안 이어나갔음에도 별다른 핵 관련 조치가 이리나에게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뭣도 모르는 핵무새들이 날뛰는 것을 못마땅해 할 뿐이었다.
[또 이 화면이누ㅋㅋ]
[오늘은 이게 맞다]
[ㅋㅋ진짜 해명거리 생겨버렸자너]
[방장 트랙 존내 불타던데 확인했음?]
[눈나 매니저좀 뽑아 제발]
[이게 해명이 필요한 거냐 근데ㅅㅂ]
[시1발 핵무새들 진짜 대가리 으깨버리고싶누]
[요즘 이새끼들 핵 하루면 잡던데 3일내내 살아있는거 보면 답 나오잖아 병1신들아]
[핵신고 한달 걸리던 그 똥겜이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허나 곧 악질들의 팔로우 러쉬가 이어지며,
꽤나 선선하던 채팅창의 온도가 한여름 폭염마냥 마구 치솟기 시작했다.
핵쟁이 새끼니 뭐니 쌍욕을 내뱉는 급발진부터 시작해서 해명을 요구하는 도배까지.
이것저것 제한을 걸어놓았음에도 채팅창이 활활 불타오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리나의 화면은 여전히 새까맣기만 했다.
다만 띠링. 띠링 하는 팔로우 알림이 어느 순간 끊기고 채팅창의 도배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보면,
방장이 신규 팔로우를 막아버린 뒤 채팅창 수질 관리를 위해 칼을 빼들고 악질들의 모가지를 베어내고 있다는 걸 파악해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해명을 외치던 동료가 이리나의 칼날에 반으로 갈라져 죽는 것을 목격한 악질들은, 일단 그녀의 칼춤을 피해내기 위해 도배와 분탕질을 멈추고 숨을 죽이게 되었다.
그렇게 채팅창이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게 되자,
이제 방송을 진행해도 되겠다는 듯이, 흥겨운 관악기의 리듬이 점차 그 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보드카 해명 때 유입되었거나 그 전부터 이리나의 방송을 시청했던 이들은, 그 음악이 상당히 익숙하게 들려왔다.
이리나가 처음 캠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에 틀어 놓았던 음악.
러시아 샹송의 반주였다.
이내,
온통 새까맣던 화면에 변화가 생겼다.
이리나의 컴퓨터 책상을 비추고 있는 웹캠 영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에 얼른 시선을 돌려 이리나를 찾으려던 시청자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모습에 눈을 부릅뜨게 되었다.
이리나는 운전대 앞에 앉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책상에 설치된 레이싱 휠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 배송 받아 설치를 완료한 그 기계 위에 손을 턱 얹고 있던 그녀는, 여전히 다이아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이내, 팔을 움직여 마우스를 딸깍이는 이리나.
뜬금없는 레이싱 휠의 등장에 채팅창이 잠시 멈춰 있는 동안, 웹캠의 화면이 한쪽 구석으로 치워졌다.
다시 생겨난 검은 공간.
곧 그 자리에 자동차의 휠을 형상화한 로고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커다란 덤프트럭이 튀어나와, 정면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짓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폰트로 새겨진 타이틀이 모습을 드러냈다.
[MAD TRUCK SIMULATOR]
기존 시청자들도 악질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새로운 게임의 등장에,
이내 채팅창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매드트럭ㅋㅋㅋㅋ]
[매드트럭이 거기서 왜 나와..?]
[않이 시1발 트럭 몰지 말고 해명하라고ㅋㅋㅋ]
[해명방송이 아니었누ㅅㅂㅋㅋㅋ]
[대충 핵무새들 트럭으로 밀어버리겠다는 뜻]
[운전대 옆에 보드카 뭔데 미친련아ㅋㅋㅋㅋ]
[슬라브식 음주운전 ㅆㅅㅌ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