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슬라브식 복귀 (3)
* * *
첫 시작부터 주유소를 들이받아 거하게 대폭발을 일으킨 뒤,
이리나의 트럭은 다시 멀쩡한 모습을 한 채 처음의 위치로 돌아오게 되었다.
튜토리얼에서부터 대형 사고를 친 것에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허.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쉰 이리나는, 얌전히 튜토리얼에서 지시하는 대로 차근차근 운전 교육을 실시했다.
그렇게 현실과의 유사성에 집중한 시뮬레이션 게임은 아니었기에 실제 운전보다는 간소화되어 있는 데다가, 이리나의 몸에 내재되어 있던 재능이 빛을 발휘하여 금방 트럭 운전법을 깨우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튜토리얼을 완료한 이리나는 다시금 자신감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모자를 고쳐 썼다.
“게임 난이도 적당하다.
운전 어려운 것 아니다.”
[배우는거 개빠르네ㄷ]
[주유소 꼬라박고 터지던 방장 어디갔냐]
[원래 총겜 잘하면 운전도 잘함?]
[? 그건 조또 상관없는데]
[나 25층인데 운전면허 3번 나가리됨ㅋㅋ]
[총겜 잘해도 사격 만발 힘든데 운전은 ㄹㅇ 1도 관련없다]
[만발이 먼데 씹덕아]
[?? 훈련소가서 사격 안해봄?]
[미필쉒이네ㅋㅋ]
[미필은 아가리하고 있어]
[저쉒 2도따리 아니냐?]
[미필에 2도따리ㅋㅋㅋㅋ ㄹㅇ 씹게이쉒이네]
[나 아니야 개시1발련들아]
[ㅋㅋㅋㅋ본인 등판했누]
[아님말고 아ㅋㅋ]
미필이라는 오해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2도짜리 캔을 들이키며 벌컥 화를 내는 동안,
이리나는 튜토리얼 보상으로 주어진 하얀색 5톤 트럭과 함께 첫 의뢰를 받아들였다.
첫 미션이라 그런지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에 자신 있게 수락 버튼을 눌러 자신의 트럭에 화물을 적재한 이리나는, 능숙하게 기어봉을 움직이고 핸들을 꺾어 주차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러한 이리나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꽤나 아쉬워했다.
금세 트럭 운전법을 깨우쳐 버린 그녀의 재능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전무후무한 명장면을 만들어 냈던 그 어리버리한 운전 초짜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 게임의 특성을 알고 있던 시청자들은, 앞으로 이리나 앞에 펼쳐질 온갖 난장판을 기대하며 웃음을 흘렸다.
매드 트럭이라는 타이틀답게,
이 게임은 적절한 운전 실력만 가지고 플레이에 도전하는 뉴비들에게 결코 상냥하지 못 했다.
매드 트럭 시뮬레이터의 기본적인 플레이는 화물을 목적지에 배달하여 보수를 얻고, 그것으로 다른 종류의 트럭과 멋진 장식을 구입하고 부품 등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허나 이 게임은 보통의 시뮬레이터와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니,
다화물을 트럭에 싣고 목적지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온갖 방해 요소들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피로 시스템에 의한 졸음운전 페널티나 신호 위반 등으로 벌금을 물게 되는 것 정도야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여기에서도 당연히 구현되어 있다.
하지만 이 유사 시뮬레이션 게임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트럭 운전사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폭풍우나 폭설 등의 기상 악화와 구불구불한 도로의 환상적인 콤비네이션.
목숨이 아깝지 않은 듯 무턱대고 앞길에 끼어들어 오는 NPC들.
그리고 아직도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갖가지 방해 공작과,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버그까지.
화물과 트럭에 티끌만큼의 데미지도 입히지 않고 완벽하게 배달을 마치는 것은 감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 게임은 여러모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 막 첫 의뢰를 수행하려는 신입 트럭기사의 앞날은 무척이나 험난할 예정이었다.
교차로 앞에 멈춰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이리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시청자들은 그녀가 언제 처음으로 충돌을 맞이하고 화물과 트럭에 흠집이 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제각각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신호 끝나고 꼬리물기빌런이랑 처박을듯]
[다음 교차로 가다가 칼치기당함 ㄹㅇ]
[늒네들 맨날 주차장 입구에 트럭 긁던데]
[다른쉒이 전봇대 넘어뜨려서 거따 박는것도 봣음ㅋㅋ]
[역주행코인 가즈아ㅏ]
[급브레이크쉒 뒤치기 예상해봅니다]
채팅창에 속속들이 올라오는 온갖 충돌 시나리오들은 실제로 게임에서 발생한 사례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이는 이 유사 시뮬레이션 게임이 얼마나 유저를 엿먹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이리나의 시선이 컴퓨터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보드카로 향했다.
비교적 평화로운 트럭 운전 게임을 하다 보니 과거에 대한 플래시백이 감소해서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보드카에 손이 가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슬슬 한 모금 마셔도 괜찮을 타이밍이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으로, 이리나는 결국 운전대 앞에서 보드카 병을 집어 들었다.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새 것이었는지, 까즉 하고 컴플릿 보드카 병의 입구에서 비닐 포장이 벗겨져 나간다.
뚜껑을 빙글빙글 돌려 개봉한 그녀는, 핸들에 한 손을 턱 얹고 다른 손으로 보드카 병을 들어올려 입에 꽂았다.
트럭 운전 중에 거리낌 없이 보드카 병나발 쇼를 선보이는 이리나.
현실이었다면 한 소리 듣는 것을 넘어서 중범죄의 영역으로 곧장 들어설 만한 그 광경에 시청자들이 헛웃음을 흘린다.
[ㅁㅊㅋㅋㅋ]
[보드카인거 보여줄라고 일부러 새거 까는거임?]
[미친련이네 ㄹㅇ루다가ㅋㅋㅋ]
[현실에서 저러면 어케댐?]
[바로 빨간줄 그임ㅇㅇ]
[짭이늅쉑들 이거까지 무지성 따라하는거 아니냐]
[인생 조지고 싶으면 따라하라 그래ㅋㅋ]
[방송 끝날쯤에 혈중 알콜 몇 나올지 ㅈㄴ 궁금해진다]
[방장 몸속에 알콜 없는 날이 더 적을듯]
[ㄹㅇㅋㅋ]
이리나의 러시아식 음주운전에 대해 시청자들이 채팅창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자,
그것을 목격한 이리나는 잠시 게임을 일시정지시키더니 보조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던지며 의문을 표하고 있을 무렵,
화면 아래쪽에 섬뜩한 붉은색의 글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방 절대 금지’
[ㅋㅋㅋㅋㅋ]
[글자 시뻘건거 보소]
[보드카 병나발을 어케 따라함ㅅㅂㅋㅋ]
[술빨면 겜 키는 거도 힘들어 미친련아ㅋㅋㅋ]
[술처먹고 롤좀 하지 마라 시1발련들아]
[ㅋㅋㅋ꽐라쉒이랑 매칭됐누]
[ㄹㅇ 음주롤도 불법으로 만들어야댐]
이내 시청자들의 조언에 따라 화면 하단의 붉은 문구는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로 바뀌었고,
그러한 경고문의 작성을 완료한 이리나의 트럭은 다시금 나아가기 시작했다.
병나발까지 불어가며 보드카를 한껏 들이켰음에도,
이리나는 멀쩡한 모습으로 운전대를 잡고 5톤 트럭과 함께 시가지의 도로를 달려나가며 무사히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고도주를 마셔도 게임 플레이에 전혀 영향이 없는 듯한 그 모습에,
보드카로 병나발을 불 때부터 경악을 금치 못 하던 유입 시청자들이 연신 물음표를 토해냈다.
하지만 기존에 이리나의 방송을 시청하던 이들은 그녀가 보드카를 수시로 홀짝거리면서도 우수한 판단력과 에임으로 유저들을 멀쩡히 사냥하던 모습을 지켜봐 왔기에, 이리나의 플레이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유입인데 방장 원래 보드카 빨고 겜함?]
[ㅇㅇ]
[위튭가서 1겜 1보드카 보고와라]
[술빨고 야끼로 대가리 쪼개고 다니는 미친련임]
[노스코프 모신런 그것도 보드카빨고 한거]
[방장 배 갈라보면 간 두개 들어있을듯 ㄹㅇ]
핵 논란으로 새로이 유입되어 온 누군가의 물음에 기존 시청자들이 담담하게 이리나의 음주 방송 역사를 늘어놓으며 신입들을 경악시키는 동안,
이리나는 그들의 설명에 힘을 실어 주듯이 다시금 보드카 병을 집어 들어 입에 꽂았다.
컴플릿 보드카의 깔끔한 목넘김을 즐기며, 이리나는 산뜻한 기분으로 고속도로 위를 질주했다.
바로 그 때,
옆 차선에서 달리고 있던 승용차가 돌연 속도를 높이더니,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어 이리나의 트럭 앞으로 끼어들려 했다.
난데없이 칼치기를 당하게 된 이리나는 미간을 살짝 좁혔지만, 그러려니 하고 속도를 살짝 늦추어 상대와 충돌하는 것을 막아 냈다.
5톤 트럭 앞쪽으로 끼어드는 데 성공한 승용차는 속도를 높이며 저만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보드카 병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 이리나.
“…?!”
이내,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승용차의 운전석 창문으로 사람의 팔이 쑥 튀어나오더니,
자신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인 것이다.
그 손에는, 중지만이 치켜 세워져 있었다.
“허.”
[ ]
[뻐큐ㅋㅋㅋㅋ]
[칼치기는 봤는데 빠큐는 첨보네ㅋㅋㅋ]
[ㄹㅇ 파도파도 끝이 없는 겜이다]
[칼치기에 뻐큐까지 개꼴받게 하네ㅅㅂㅋㅋ]
그것을 목격한 이리나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칼치기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나쁘기 그지없는데, 이렇게 엿까지 먹인다고?
알코올에 절여져 있던 그녀의 뇌가, 곧장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냉정히 분노를 다스렸겠지만, 이건 일부러 플레이어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설계된 시뮬레이터 게임이었다.
방송의 재미를 생각해서라도 자신이 참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마친 이리나는, 곧장 액셀을 힘껏 밟았다.
부아앙, 하고 5톤 트럭의 엔진이 울부짖으며 막대한 동력을 바퀴에 전달한다.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옆 차선으로 진입한 이리나는 점차 자신의 옆으로 가까워져 오는 승용차를 유리창 너머로 노려보았다.
그녀가 무섭게 따라붙어 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용차는 빠른 속도로 유유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마침내 상대가 트럭의 바로 옆까지 오게 되자,
이리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핸들을 꺾어, 5톤 트럭을 승용차에게로 밀어붙인 것이다.
갑작스레 자신의 옆구리를 거대한 몸뚱이로 덮쳐 오는 트럭의 모습에 승용차가 급히 속도를 줄이려 했지만, 이미 트럭의 막대한 질량이 그대로 승용차를 들이박은 뒤였다.
띵!
트럭이 데미지를 받았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려퍼졌지만,
이리나는 개의치 않고 승용차를 옆으로 밀어붙였다.
5톤 트럭의 힘을 못 이기고 옆으로 주욱 밀려나기 시작한 승용차의 몸체는 곧장 가드레일과 충돌했고, 그 상태에서 계속 밀고 들어오는 트럭의 움직임에 점차 동체가 기울어져 옆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하고 차량의 프레임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유리창을 뚫고 전해져 왔으나,
이리나는 자신의 트럭이 승용차의 차선을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들이댈 뿐이었다.
결국 완전히 옆으로 세워진 승용차는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 드는 트럭과 가드레일 사이에 낑긴 채 점차 몸체가 구겨지기 시작했다.
“흐흫.”
[걍 구겨버리네ㅋㅋㅋㅋ]
[아ㅋㅋ 뻐큐는 못참지]
[참교육 편안]
[뻐큐맨 쥐포행ㄷㄷ]
[찌그러지는 소리 개무섭누ㅋㅋㅋ]
자신에게 엿을 먹였던 상대가 처참하게 납작해지고 있는 모습을 시청자들과 함께 3인칭 카메라로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흘리는 이리나.
헌데,
그녀가 미처 예상치 못 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
게임 시스템의 한계까지 손상된 승용차의 동체를 더욱 구겨 버리기 위해 트럭이 몸을 마구 밀어붙이자, 물리 엔진에 오류가 발생하여 납작해진 차량이 마구 덜컥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띵! 띵띵띵띵띵!
그 덜컥임은 바로 옆에 있던 이리나의 트럭에 닿을 때마다 충돌 판정을 일으켰고,
그것을 데미지로 인식한 시스템이 마구 경고음을 토해내었다.
기관총의 격발음마냥 연속해서 귀에 쏘아져 오는 그 소리에 기겁한 이리나가 급히 핸들을 꺾어 덜덜거리는 승용차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허나 물리엔진이 망가진 승용차는 트럭의 몸체에 착 달라붙게 되었고,
트럭이 어디로 방향을 틀던 간에 그 옆에서 덜컥거리며 트럭의 몸뚱이를 난타했다.
“무엇!”
터터터터텅!
당황한 이리나가 핸들을 이리저리 꺾어 승용차를 떨쳐내려 했지만,
그것은 트럭의 옆구리와 한 몸이 되어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을 복수하겠다는 듯이 마구 펄떡여 댈 뿐이었다.
결국 납작한 승용차의 난동을 버티지 못 한 이리나의 트럭은 한계 데미지를 넘어서게 되었고,
처참히 망가진 모습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3인칭 카메라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리나는,
말없이 보드카 병을 집어 들어 슬픔의 병나발을 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왜 낑기는데ㅋㅋㅋㅋㅋ]
[이렇게 뒤지는건 첨보네ㅅㅂㅋㅋㅋ]
[이게 매드트럭이지 아ㅋㅋ]
[갓겜]
[첫날부터 명장면 찍어내누ㅋㅋㅋ]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