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슬라브식 복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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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로부터 예상치 못 한 반격을 당해 트럭이 망가지게 된 이리나.
그녀는 어이없음을 감추지 않은 채 또 처음부터 게임을 진행하여 흰색 5톤 트럭에 탑승했고, 다시금 의뢰를 받아들여 길을 나섰다.
허나 게임에 저주가 내리기라도 했는지,
이번엔 시가지를 달리는 도중에 갑작스레 버그가 발생하여 게임과 레이싱 휠의 연결이 불안정해져 버리고 말았다.
핸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지만 하필이면 액셀이 콱 밟혀 있는 상태로 페달들과의 연결이 끊겨 버리는 바람에, 브레이크가 사라진 5톤 트럭은 곧 도시 속을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트럭 안에서 보드카를 마시다가 봉변을 당하게 된 이리나는, 급한 나머지 병을 내려놓지도 못 하고 한 손으로 휠을 이리저리 꺾어대며 Cyka를 외쳤다.
트럭 주인처럼 알코올에 절여진 것 마냥 미친 듯이 시가지를 질주하며 장애물 가득한 도심 레이스를 펼치던 5톤 트럭은 결국 사거리에서 끔찍한 다중 추돌을 일으키고 말았다.
얌전히 신호를 기다리다가 참변을 당하게 된 불쌍한 승용차들에게 전후상하좌우 할 것 없이 파묻혀 버린 이리나의 트럭은, 다시금 띵띵띵띵 하고 데미지 경고음을 쉴 새 없이 내뱉다가 그대로 박살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첫 의뢰가 끝나기도 전에 세 번 연속으로, 그것도 전혀 의도치 않게 트럭을 터뜨린 이리나.
그녀는 3연펑이라는 칭호와 함께 매드 트럭 시뮬레이터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리게 되었다.
처음의 대폭발을 제외하면 전부 보드카를 들이키던 도중에 벌어진 사고들이었기에,
시청자들로부터 우스갯소리로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제대로 보여주며 공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핵 논란으로 이곳저곳에서 유입된 시청자들은 이리나의 비인간적인 주량에 경악하며 그들을 이리나의 방송에 들어오게 만들었던 본래 목적을 차츰 잊어갈 무렵, 매드 트럭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3연펑까지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존 시청자들과 함께 이리나가 개설한 스트리머 게시판 트랙을 시끌벅적하게 만들며, 이리나의 인지도 상승과 함께 게시판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해 주었다.
결국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악질들의 공작은 또 한 번 이리나를 도와주는 결과를 낳게 되며 다시금 1패를 적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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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펑 레전드네ㅋㅋㅋ]
하루 만에 트럭 빠개지는 경우의 수를 ㅈㄴ 다양하게 경험함ㅋㅋㅋ
남들 하는 거 보면 저정도는 아니었는데 겜이 루스끼 싫어하는듯ㅋㅋ
매드트럭 이거 시오루 개발사 자회사가 만든거라 루스끼 겜인데?
ㄴ ㄹㅇ?? 시오루느낌 하나도 안나던데
ㄴ 본사도 아니고 자회사 딴겜에서 시오루느낌이 왜 나겠누ㅋㅋ
놀랍게도 경우의 수는 아직 ㅈㄴ많이 남아있음ㅋㅋ
ㄴ 그렇긴 한데 저 짧은 시간에 3번 터지는건 시1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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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발 나도 대가리가 알콜에 녹았나]
맨날 딴놈들 사지 박살내고 대가리 쪼개면서 보드카 들이키는 미친련인데
오늘 운전대 잡고 어리버리하는건 왤케 커엽냐
방장 따라서 소주 홀짝거리니까 부작용 온듯ㅅㅂ
ㄹㅇ 루스끼 알콜쑈 구경하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먼가..먼가 그럼
맨날 늒네코스프레하면서 호1감스택 쌓다가 진짜 늒네짓 해서 그런듯ㅋㅋ
눈나 원래 커여웠는데 이제 알았음?
ㄴ 이새낀 진짜 대가리 녹아버렸네ㅋㅋㅋ
ㄴ 나랑 다른 방송 보고 왔누;
ㄴ 이게 그 꽐라 페티시인가 먼가 하는 그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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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해명은 어케 하기로 한거임]
트럭겜 3연펑 개꿀잼이긴 했는데
핵논란 터졌으면 반응이라도 해야되는 거 아니냐?
걍 다 생까고 방송해도 괜찮은 거임?
이미 분탕충들 핵신고 오지게 넣어서 해명해봤자임
얘네 스트리머 핵논란은 로그분석 개빡세게 하니까 그거 기다리면 된다
내일이나 모레 결과 나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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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의 내용대로,
이리나 5Ynoob의 불법 프로그램 사용 논란은 그 다음 날 종식되었다.
로그 분석 결과 핵 사용에 대한 정황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는 공식 답변이 공개된 것이었다.
추신으로 덧붙인 짤막한 의견과 함께 말이다.
‘5Ynoob은 우리가 그 동안 방치해 놓았던 요소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활용했고,
우리는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개발사 측에서도 제로백 도끼런 등의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내는 이리나를 내심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인지, 무언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싱싱한 떡밥이 되어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를 시끌시끌하게 만들었다.
그냥 서비스 차원에서 한 마디 해 준 것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언제나 떡밥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행복회로를 풀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새로운 컨텐츠, 지금껏 방치된 무기들에 대한 밸런스 패치 등등 온갖 의견이 튀어나오며 커뮤니티가 화르륵 불타올랐다.
그렇게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를 화끈하게 만들어 놓은 당사자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달퐁을 옆에 앉혀 놓고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진행 중이었다.
“엄청 불타네.”
“시루갤?”
“응.”
어김없이 돌아온 한국어 공부 시간이 끝난 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달퐁이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미 논란은 나의 무죄로 끝났는데, 또 불탈 일이 있나?
핵 신고에 대한 공식 답변의 마지막에 붙은 사족 때문에 그런 건가.
자기들이 방치해 놨던 요소를 흥미롭게 활용했다니.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도끼 얘기일 확률이 높지 않을까.
권총으로 머리를 갈겨도 한 방에 보낼 수 있는데, 도끼로 대가리를 두 번이나 쪼개야 죽일 수 있다는 건 좀 이상하긴 했지.
그건 뭐 어차피 본인들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고, 난 그저 더 이상 핵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 만족스러울 뿐이다.
오늘은 그 망할 놈의 트럭 게임 말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볼까.
그러한 생각을 하며 한국어 교재의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고 있자, 이내 달퐁이 말을 걸어온다.
“이리나.”
“무ㅇ… 음. 왜?”
“매니저 한 명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매니저?”
내 물음에, 달퐁은 본인의 스마트폰 화면을 이 쪽으로 내밀어 보였다.
거기에는 그저께쯤에 개설한 스트리머 개인 게시판 트랙이 띄워져 있었다.
달퐁의 손가락이 화면을 그어 새로고침을 하자, 실시간으로 새로운 게시글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였다.
“지금 웬만한 대기업마냥 글이 리젠되는데, 이리나 혼자 관리하는 건 어려울 거 아냐. 지금처럼 트랙 아예 안 보고 있을 때도 많고.”
“음.”
“물론 그 논란도 있고 어제 방송 때문에 이렇게 된 거긴 한데, 게시판 계속 냅둘 거면 그래도 매니저 한 명쯤 있는 게 나을 걸.”
그녀의 말에 나는 뺨을 긁적였다.
하긴. 핵 논란 때문에 게시판 화끈해진 거 생각하면 나 혼자서 그걸 다 지켜보고 관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긴 하다.
채팅창이야 방송하는 동안에만 팔로워 제한에 채팅 대기 시간까지 걸어 놓고 내가 칼질을 해 주면 별 문제가 없지만, 트랙은 24시간 열려 있는 커뮤니티 게시판이지 않은가.
시청자들도 트랙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필요하다며 후원 메시지로까지 내게 건의를 하기도 했으니, 이쯤에서 매니저를 한 명 영입하는 게 좋을 듯하다.
문제는 그렇게 게시판을 잘 관리해 줄 인재를 어디에서 찾느냐는 건데.
트랙에 매니저 모집 글이라도 올려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인재 영입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문득 달퐁이 다시금 들여다보고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 시루갤이 있었다.
흠. 하고 침음성을 흘리며 그 시끌벅적한 게시판을 빤히 바라보던 그 때,
알코올에 절여진 머릿속에서 뜬금없지만 나름 구미가 당기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달퐁.”
“응?”
“시루갤, 관리자 존재하나?”
“시루갤? 당연히 있지. 대여섯 명 될 걸?”
“음. 그 관리자들, 보수 많이 받아서 일하나?”
대형 커뮤니티인 시티 오브 루인 갤러리를 관리하는 이들.
그 고급 인력을 어떻게든 데려올 수 있다면 확실히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그러한 질문을 달퐁에게 던졌다.
물론 그냥 맥락 없이 떠올려 본 아이디어고,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커뮤니티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일도 빡셀 테니, 분명 적지 않은 급여를 받고 일할 터.
지금으로선 내가 그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응? 아니. 걔네 돈 안 받는데?”
“…허?”
헌데,
아주 뜻밖의 대답이 돌아오게 되었다.
그만한 커뮤니티를 관리하고 있음에도, 급여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니.
불공정 계약을 넘어서 거의 노예 수준이 아닌가.
원래 세계의 한국에 노예 제도가 있었나?
잠시 충격에 빠져 있던 나는 어째서 그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달퐁에게 물어 보았고,
심지어 자발적으로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할 일이 저 대형 커뮤니티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보드카를 좀 들이키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걸까?
헛웃음을 흘리며 뒤통수를 긁적이던 나는, 곧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뭔가에 홀린 듯이 무급으로 일을 하고 있는 대여섯 명의 관리자들.
그 중 한 명이라도 적절한 보수를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꾀어낼 수 있다면 나의 승리인 것이다.
아니. 이것은 결코 유혹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건 엄밀히 구조 작업이다.
관리자를 불합리한 노동에서 구출해 내어, 정상적인 업무로 인도하는 것이다.
“달퐁! 너의 도움 필요하다.”
“어? 뭐 하려고?
고통 받는 고급 인력을 반드시 구해내겠다는 사명감을 불태우며,
나는 곧장 컴퓨터 책상으로 달려갔다.
“시루갤 관리자, 구출 예정이다.”
“…뭘 구출해?”
“그들 고통 받고 있다. 구출 필요하다.”
“그건 또 뭔….”
기다려, 관리자 동무. 내가 지금 구하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