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50화 (50/57)

〈 50화 〉 고급인력 구출작전 (1)

* * *

딸깍. 딸깍.

조용한 방 안에서 마우스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에서 쏘아져 나오는 빛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청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그는 고개를 작게 까딱이고 있었다.

청년이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실시간으로 새로운 게시글들이 쉴 새 없이 갱신되고 있는 어느 커뮤니티 페이지였다.

시티 오브 루인 갤러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 지향형 FPS 게임 시티 오브 루인을 다루는 커뮤니티다.

시티 오브 루인 갤러리­ 줄여서 시루갤 외에도 해당 게임을 다루는 커뮤니티는 여럿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시루갤이었다.

그 거대한 몸집에 걸맞게 온갖 인간 군상들이 시티 오브 루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여들어 온갖 게시글들을 쏟아내고 있었으며,

평범한 유저들부터 스트리머, 프로게이머 할 것 없이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하는 이들이라면 그 목적이 정보 획득이든, 에고 서칭이든 간에 필연적으로 시루갤을 방문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한 커뮤니티가 항상 평화롭게 돌아갈 순 없는 법.

다섯 명이 모이면 반드시 쓰레기가 끼어 있다는 악질 보존 법칙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커뮤니티엔 온갖 분탕을 치며 어그로를 끌어 모으는 미친놈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그러한 분탕충들을 내버려 두면 커뮤니티에 혼란을 조장하여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게 될 테니, 누군가가 그렇게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들을 건져 낼 필요가 있었다.

그 역할을 맡는 이들이 바로 관리자들.

커뮤니티에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을 정하고, 온갖 분탕과 도배 및 혐오스러운 사진 테러로부터 커뮤니티를 지켜내는 수호자들이었다.

이용자들의 익명성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이트 방침에 따라 커뮤니티의 운영권은 대부분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장본인들에게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여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가꾸어 나가고 있었다.

재즈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시루갤을 지켜보고 있는 청년­ 최장완.

그 역시 시티 오브 루인 갤러리의 관리자들 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군대를 다녀 온 그는,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을 찾지 못 해 막연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명목으로 방에 틀어박혔다.

허나 명확한 동기부여 없는 공부가 잘 진행될 리는 없었고,

그는 두꺼운 교재보다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더 많게 되었다.

장완이 주로 즐기던 게임이 시티 오브 루인이었기에, 자연히 시루갤에서의 활동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장완은 게임보다 커뮤니티 자체에 재미를 붙이게 되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시티 오브 루인 갤러리에 접속해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았다.

주황색 표식을 달고 있던 갤러리 관리자들의 수장­ 속칭 주딱은 하루 종일 시루갤에 상주하며 열성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장완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파란색 표식 관리자­ 파딱들 중 한 명이 탈주하여 자리가 남게 되자, 곧바로 그를 영입하려 시도했다.

물론 아무런 대가도 없이 커뮤니티를 관리해야 하는 직책을 곱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으니,

주딱은 그가 시루갤에 글이나 댓글을 작성할 수 없도록 계정을 차단시켜 버린 뒤, 꼬우면 파딱이 되어 스스로 차단을 풀어내라는 차단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신나는 갤질을 이어나가다가 날벼락을 맞게 된 장완은 비로그인 상태로 억울함을 성토했다.

하지만 유저들은 커뮤니티에 언제 어느 때나 모습을 보이며 글을 싸지르던 그의 활동량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어차피 누가 파랗게 물들던 간에 자신들만 아니면 되는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장완이 관리자 임명 요청을 받은 것을 보고 성능 좋은 노예가 탄생한다며 나몰라라 환호성을 질러댈 뿐이었다.

장완은 그 모습에 어이를 상실했지만, 이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막대한 양의 커뮤니티 활동이 쌓여 있던 자신의 계정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아까웠을 뿐더러,

자신이 지금껏 활동해 온 시티 오브 루인 갤러리에 대한 애착심 또한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이 참에 커뮤니티를 자신의 손으로 좀 더 깨끗하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과 함께,

그는 팔뚝에 시퍼런 완장을 차고 시루갤의 관리자로 거듭났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오늘날.

장완은 여전히 푸른 표식의 관리자로서 커뮤니티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동안 장완은 클린한 시루갤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용자들의 의견을 받아 커뮤니티의 규정에 대한 허점을 주딱에게 보고하고,

IP를 바꿔 가며 분탕을 쳐 대는 악질의 IP 리스트를 싸그리 긁어모아 공표하고,

대대적인 혐짤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지가 첨부된 비로그인 계정의 게시글을 죄다 밀어 버리는 등.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커뮤니티의 관리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허나 불꽃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큼 연료를 태워야 하는 법.

재즈 음악과 함께 모니터를 무심히 쳐다보는 장완에게 있어서,

그 ‘연료’는 바로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이었다.

커뮤니티를 단순히 이용하는 것과, 그 곳을 관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저 게시글과 댓글을 작성하고 별 생각 없이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던 시절과는 다르게,

완장을 차게 된 이후에는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게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분탕들과 혐짤 테러를 경계하고,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놈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중재해야 했다.

그렇게 커뮤니티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온갖 문제들과 함께,

시티 오브 루인 관련으로 뭔가 뜨거운 이슈라도 발생하게 되면 곧장 게시글의 갱신 속도가 폭증하여 관리자들로 하여금 비상이 걸리게 만들었다.

커뮤니티를 커뮤니티로서 이용하지 못 하고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취급을 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피곤하기 그지없는데,

그러한 관리자들의 고충을 알지 못 하는 이용자들은 조치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바로 완장을 부르짖으며 쌍욕을 내뱉기 일쑤였다.

이러한 일상이 1년 동안 반복되니,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시루갤에 대한 애정이 바닥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열정 페이로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무보수로 이렇게 정신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에 대한 허탈함까지 겹쳐지게 되어 장완의 마음은 시루갤을 떠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씁.”

묘하게 어그로를 끄는 제목과 이미지가 첨부된 비로그인 게시글.

곧장 확인해 보니 역시나 혐오스러운 이미지였기에, 작게 혀를 차며 빠르게 글을 삭제해 버렸다.

관리자로서의 활동 초반에는 이러한 혐짤을 목격하고 직접 처리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짓쳐드는 정신 공격에 신음하며 쌍욕을 내뱉었지만, 1년 동안 온갖 흉물을 접해 온 지금의 장완에게는 그저 일상에 불과했다.

오늘의 첫 짤은 정방향인가. 리버스보단 낫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장완은 덤덤히 새로고침을 눌러 게시판을 계속 살펴나갔다.

이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머그컵을 집어 들어, 그 안에 들어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장완.

그 때,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재즈 음악 사이로 띠리링. 하고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

뭔가 하고 확인해 보니,

누군가가 장완의 계정 페이지에 방명록을 남긴 것이었다.

그에 장완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차단당한 게 불만이면 신문고 게시판에다가 댓글 남기라니까 또 여기까지 기어 들어와서 지랄을 하네.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계정 페이지로 들어간 그는 방명록 탭을 클릭했다.

이번엔 또 어떤 놈이 난리를 치고 갔나. 하는 생각으로 시선을 옮긴 장완.

이내, 그의 눈썹이 위로 스윽 올라갔다.

[안녕 관리자. 본인 스트리머 이리나(5Ynoob) 이다.]

이리나. 5Ynoob.

최근 시루갤을 몇 번이고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이 아닌가.

해당 커뮤니티를 관리하고 있는 장완이, 그녀를 모를 리가 없었다.

사지집착충, 제로백 도끼런, 핵 논란 등등 온갖 이슈를 만들어 내며 커뮤니티에 불을 질러댔기에, 사실상 관리자들의 원수나 다름없는 인간이다.

헌데, 그 사람이 왜 자신의 방명록에 메시지를 남긴단 말인가?

관리자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그녀를 사칭해서 엿을 먹이려 하고 있는 건가?

일단 계속 글을 읽어 보기로 한 장완은 시선을 아래로 내려 다음 문장을 바라보았다.

이내, 장완의 퀭한 눈이 크게 부릅떠지게 되었다.

[트랙 매니저로 동무 영입 원한다. 관심 존재할 경우 연락하다.

https://playchat.gg/AXer…]

본인을 이리나라고 지칭하던 상대는,

장완을 본인의 스트리머 게시판 관리자로 스카우트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에 장완은 옆머리를 긁적이며 당황을 표했다.

날 매니저로 쓰겠다고?

시루갤 관리는 그만두고 이 쪽으로 오라는 건가, 지금?

일단 그는 메시지 밑에 적힌 플레이챗 초대 링크를 복사해서 URL 안전 검사 사이트에 붙여 넣었다.

관리자 일을 하면서 해괴한 곳으로 납치해가는 링크에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알 수 없는 링크는 무조건 검사를 행해서 안전한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었다.

다행히 링크에는 문제가 없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고,

그것을 확인한 장완은 키보드 밑의 팜레스트를 툭툭 치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허구한 날 완장질 좆같다며 관리자 단체 채팅방에서 투덜거리긴 해도, 이렇게 막상 기회가 찾아오게 되니 무언가 망설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허나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상대가 진짜 이리나가 맞는지도 아직 모르고,

연락한다고 해서 바로 매니저행이 결정 나는 것도 아니다.

일단 먼저 상대와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결심한 장완.

그는 플레이챗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링크를 입력하고, 상대의 채널 초대를 수락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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