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51화 (51/57)

〈 51화 〉 고급인력 구출작전 (2)

* * *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 줄여서 시루갤에 붙잡혀 있는 모두가 불행한 이들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을 전부 구출해 오기에는 내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관리자들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제일 바쁜, 다시 말해서 활동량이 가장 많은 사람은 그만큼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터.

그 동무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 보이겠다는 생각으로 시루갤의 관리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허나 의외로 1순위는 쉽게 식별해 낼 수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무척이나 독보적인 활동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적화’라는 닉네임을 가진 푸른 표식의 관리자.

커뮤니티 상단에 고정된 공지사항의 절반 이상이 그의 손에 작성되었을 뿐더러,

커뮤니티에 그의 닉네임을 검색해 보면 하루에 한 번 이상 분탕충의 대가리를 박살냈다는 안내문을 게시하고, 커뮤니티 주제와 심히 어긋나는 떡밥을 그때그때 통제하며 혼란을 막아내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닉네임 그대로 관리자 일에 최적화된 듯한 인간의 행보였다.

하루 종일 이렇게 정신을 깎아내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아무 대가를 받지 않고 있다니.

한국의 커뮤니티는 생각보다 아주 악랄한 곳인 듯 했다.

그 광기에 절여진 도시에서도 사람을 이렇게 마구잡이로 갈아 넣진 않았어, 미친놈들아.

아. 걔들은 꼬우면 바로 총부터 들이대는 애들이라 막 다루는 게 불가능했던 건가.

이런 걸 보면 무력이 통제된 사회라는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무튼 간에, 나는 달퐁의 도움을 받아 그의 개인 페이지 방명록에 메시지와 함께 연락용 플레이챗 링크를 남겨 놓고, 다음 타자를 찾아서 커뮤니티를 둘러보았다.

헌데, 얼마 가지 않아 플레이챗으로부터 알림이 도착하게 되었다.

달퐁은 내 옆에 있었으니, 플레이챗이 지금 반응을 보일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서둘러 플레이챗 프로그램을 화면에 띄워 새로 개설해 놓은 매니저용 채널에 들어가 보니,

누군가가 채널에 들어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Optim :

[안녕하세요]

Optim은 최적화(Optimization)의 줄임말 비슷한 것이었으니,

아마 내가 방금 전에 방명록에다가 흔적을 남겨 놓은 그 ‘최적화’가 맞을 것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빠른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내가 잠시 눈을 깜빡거리고 있자,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아 있던 달퐁이 정신 차리라는 듯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그 손길에 정신을 차린 나는 무심코 보드카 병을 집기 위해 책상 위로 손을 내뻗었다.

허나 거기에 보드카는 없었다. 달퐁도 옆에 있고 해서 일부러 갖다놓지 않은 것이었다.

그에 자연스레 손의 방향을 꺾어 키보드로 향한 나는, 자판을 들여다보며 느릿느릿 타자를 입력했다.

“앆….”

그 모습을 목격한 달퐁의 입에서 단말마 비슷한 게 새어나왔다.

이 정도면 많이 빨라졌다고 생각하는데, 토종 한국인의 눈에는 여전히 느려텨진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키보드를 떠듬떠듬 두들겨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가장 영입하고 싶은 상대가 이렇게 응답해 왔으니 서둘러 작업을 쳐야, 아니. 구출을 진행해야 한다.

Ирина :

[안녕핟ㅏ]

[통화 가능?]

Optim :

[가능합니다]

그의 응답에 나는 곧장 통화 요청을 걸었고, 이내 상대가 수락하면서 음성 채팅이 연결되었다.

운동할 때 사용하던 이어폰을 달퐁과 한쪽씩 나눠 귀에 꽂은 뒤,

나는 목에 걸린 헤드셋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반갑다, 따바리쉬(동무).”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단정한 여성의 목소리.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에서 익히 들어왔던 음색이었다.

그에 장완은 들리지 않게 헛웃음을 내뱉으며 옆머리를 긁적였다.

진짜로 이리나 본인이 나한테 연락을 할 줄이야.

자꾸 떡밥을 던져서 커뮤니티를 불태울 때마다 욕 한 사발을 쏟아 붓고 싶어지던 장본인과 이렇게 통화를 하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안녕하세요. 방명록에 글 남기신 거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환영한다. 본인 제안에 관심 존재하나?”

영 어설픈 한국어로 이루어진 이리나의 물음에,

그는 잠깐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그, 진짜 매니저로 영입하려고 저한테 연락을 주신 겁니까?”

“그렇다.”

“잘은 모르는데…. 그런 건 보통 팬들 중에서 한 명 뽑는 거 아닌가요?”

스트리머의 매니저는 보통 해당 스트리머의 팬인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이 사람은 엉뚱하게도 시티 오브 루인 갤러리에 찾아와서 그 곳을 관리하는 매니저를 빼 가려 하고 있었다. 심지어 팬은커녕 안티에 가까운 쪽의 사람을 말이다.

그런 의문을 담아 이리나에게 질문을 던지자,

흠. 하고 작게 추임새를 넣은 그녀가 곧장 대답을 돌려줬다.

“나도 해당 사항에 관련된 지식 없다.”

“네?”

“그러나, 시루갤에 존재하는 고급 인력들. 방치할 수 없다.”

그 말에, 장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루갤의 고급 인력들이라니. 자신과 같은 관리자들을 말하는 것인가?

이걸 과연 고급 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커뮤니티 붙잡고 앉아서 스스로 고통 받길 자처하는 사람들인데.

물론 자신은 강제적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버텨 온 걸 보면 다른 놈들이랑 별 다를 게 없다.

그런 비관적인 생각은 뒤로 한 채, 장완은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그대로 내뱉었다.

“…방치요? 저희들이요?”

“그렇다. 현재 시루갤 관리자들, 불합리한 노동에 고통 받는다.”

“…?”

완장 일이 힘든 건 맞는데, 뭔가 표현을 들어보면 자신이 무슨 어디에 갇혀서 강제로 노역이라도 하는 듯한 뉘앙스다.

뭔가 소통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어긋나고 있는 듯한 느낌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이리나가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 구출 원했다. 그러나 본인 능력 부족하여, 가장 고통 받는 한 명 구출할 것 결심했다.”

“어, 그…. 뭐라 불러야 되지. 이리나님?”

“듣고 있다.”

“저희는 뭐 어디 갇혀서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발적으로 그렇게 완장 차고 있는 건데요.”

“아아, 역시!”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커뮤니티 관리자들에 대해 그러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지만, 이리나는 그저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듯이 탄식을 내뱉을 뿐이었다.

왜 저러는 거야. 보드카를 그렇게 마셔대더니 보통의 상식을 벗어나 버린 건가.

장완이 헛웃음을 지으며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자, 이어폰 너머가 뭔가 시끌시끌해진다.

“아니, 이리나. 쟤네들은 원래­”

“지금 무엇이 불합리한지 모른다! 관리자들은­”

앳된 목소리와 단정한 목소리가 서로 다투는 듯이 번갈아 들려온다.

옆에 있는 건 누구지. 그 좃퐁인지 달퐁인지 하는 그 스트리머인가?

그 혼란스러운 소리를 묵묵히 들으며 머그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뒤에야, 이리나가 장완에게 말을 걸어왔다.

“괜찮다. 동무 구하기 위해 내가 연락했다.”

“…매니저 구하는 거 맞죠, 지금?”

“맞다. 고급 인력 구출이다.”

그놈의 고급 인력 타령은 당최 뭔 소리인지. 이 정도면 컨셉이 아니라 진짜로 정신세계가 약간 이상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어차피 지금껏 떡밥으로 시달린 것 때문에 그렇게 호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쯤 되면 그냥 거절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의 영입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장완에게, 다시금 차분함을 되찾은 이리나의 미성이 들려왔다.

“동무, 현재 노동에 대한 대가 수령하나?”

“…? 월급이요? 그런 건 안 받죠.”

“이 쪽, 월급으로 x백만 원 지급한다.”

순간, 장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매니저 일을 하면, 얼마를 준다고?

“…얼마라고요?”

“­허? 금액 다르다? 음. 알았다, 달퐁.”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금액을 재차 확인하려 했지만,

이리나는 옆에 있던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은 듯 딴 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기존의 금액에 50만원을 더 얹어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미안하다. 착오 존재했다. x백 50만 원이다.”

“그걸, 저한테 준다고요? 매니저 일을 하면?”

“그렇다.”

그에,

장완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왜요?”

사이트 특유의 방침으로 인한 열정페이에 익숙해져 있는 탓에,

그는 하루 종일 대형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업무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었다.

장완은 트랙이라는 스트리머 게시판의 관리도 지금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이리나와 연락을 취해 보기로 결심한 것은, 그저 지긋지긋한 시루갤에 상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본인의 입장에서 뜬금없이 상당한 액수의 월급을 준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 당연히 그러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에 이리나는 안타깝다는 듯이 탄식을 흘리며,

당연하기 그지없는 사실을 장완에게 설명해 주었다.

“동무. 커뮤니티 관리 역시 노동이다.

노동의 대가를 수령하는 것, 당연한 현상이다.”

“…시루갤 완장은 무급인데요?”

“내 말 듣는다, 동무.”

약간의 분노가 서린 듯한 목소리로, 이리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해당 커뮤니티, 비정상이다.

대가 없는 노동은 없다. 이것 상식이다.”

“…!”

“본인, 그러한 비정상적 커뮤니티에서 관리자 구출하기 위해 연락했다.”

이리나의 목소리가 장완의 머릿속에 울릴 때마다,

그는 무엇인가 자신의 안에 꽉 들어차 있던 것이 점차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동무는 장시간 대형 커뮤니티 관리했다.

그것 훌륭한 업적이다. 대단한 노동이다.”

그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채로 이토록 정신노동에 시달리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상황일까?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이 지금껏 자신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애정마저도 바닥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과연 계속 그곳에서의 관리자 일을 이어나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러한 노동, 지금 무급으로 진행된다.

이것 매우 불합리하다.”

육체가 되었든, 정신이 되었든 간에,

그러한 고통이 수반되는 노동에는 응당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

애정이라는 콩깍지가 벗겨지고, 당연한 ‘상식’을 깨우치게 된 지금.

장완은 더 이상 아무런 대가 없이 관리자 업무를 수행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 하게 되었다.

“본인, 그것 용납 못 한다.

고급 인력의 노동, 반드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그녀의 다짐과도 같은 말에, 장완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신이 고급 인력이라는 말은 아직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리나는 결국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나서 준 것이었다.

아무런 보상도, 보람도 없이 고통스럽기만 할 뿐인 커뮤니티의 관리자.

비슷한 직무일지라도, 엄연히 월급이란 대가가 존재하는 이리나의 트랙 매니저.

장완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게 될 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동무­”

“하겠습니다.”

“허?”

“사장님 트랙, 제가 관리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최장완은 마침내 1년 동안 자신을 구속하던 푸른색의 완장을 벗어던지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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