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고급인력 구출작전 (4)
* * *
그 무렵,
이리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운전대를 붙잡고 도로 위를 달려 나가는 중이었다.
3연펑을 위시로 한 매드 트럭 시뮬레이터 플레이의 반응이 예상 이상으로 뜨거웠기에,
그녀는 오늘도 잔혹한 사냥꾼 대신 초짜 운전기사가 되어 5톤 트럭을 몰고 있었다.
첫 날처럼 연달아 세 번이나 트럭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지만,
유저를 엿 먹이기 위해 안달이 나 있던 이 게임은 몇 번이나 이리나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다.
얌전히 신호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콩 하고 머리를 박아 트럭에 데미지를 입힌다던가,
바퀴를 차선에 걸친 채 옆으로 들어올까 말까 간을 보며 이리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도 했다.
허나 그녀는 이미 칼치기에 중지 퍼포먼스라는 연속기를 당하고 열이 뻗쳐서 상대의 차량을 구겨 버렸다가 물리엔진 오류에 의해 트럭을 날려먹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쓲끄….’ 하고 억눌린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당장 저 망할 똥차에게 트럭의 무서움을 보여주고자 하는 충동을 참아 내며 어찌어찌 트럭을 목적지로 몰아갔고, 결국 이리나는 의뢰를 완수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뢰를 받게 된 지금,
이전보다 비교적 장거리를 운전하게 된 이리나는 보드카와 함께 어둑어둑한 도로를 전조등으로 밝히는 중이었다.
온갖 상황이 벌어진다고는 하지만, 결국 이 게임은 장거리 운전이 주 컨텐츠였다.
좁은 장소에서 서로를 쏴 죽이며 살아남아야 하는 시티 오브 루인보다는 긴박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할 때보다 훨씬 여유가 생기게 된 이리나는,
한국어 독해 능력도 복구할 겸 채팅창을 자주 확인하며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리나의 시청자들은 그 점에서 이 트럭 게임을 호평하고 있었다.
시티 오브 루인에서는 게임에 집중하느라 그녀가 시청자들의 채팅에 반응하는 일이 드물었기에,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살피는 그녀의 모습이 색다르면서도 반가웠던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 이리나의 방송 채팅창은 그녀가 주력 게임인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할 때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다.
핸들을 붙잡은 채 운전대 옆에 놓여 있던 보드카를 들이키며,
이리나는 채팅창에 올라온 칵테일에 대한 시청자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칵테일 역시 괜찮다. 드라이버? 그것 좋다.
그러나 도수 부족할 경우 내 취향 아니다.”
[않이 그럴거면 걍 보드카 마셔 ㅅㅂㅋㅋ]
[그래서 마시고 있자너]
[앗]
[보드카에 간이 길들여져 버린..]
[드라이버가 머임]
[스크루드라이버 말하는거 같은데]
[그거 보드카 들가는거 아니냐]
[주스랑 보드카 스까면 그게 스크류임]
[ㅋㅋㅋ방장픽인 이유가 있었누]
[아ㅋㅋ 어떻게 칵테일 이름이 드라이버]
[야스온더비치도 있는데 뭘]
그렇게 이리나와 시청자들이 칵테일에 관한 화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던 그 때,
누군가가 글자로 꽉꽉 들어찬 벽돌을 채팅창에 투척했다.
[우리파딱돌려줘우리파딱돌려줘우리파딱돌려줘우리파딱돌려줘]
야스온더비치에도 보드카 들어가는데 이것도 방장 픽이냐는 등의 시답잖은 얘깃거리로 낄낄대다가 갑자기 묵직한 벽돌을 얻어맞게 된 시청자들이 연신 물음표를 토해냈다.
[?]
[뭔데]
[파딱이 여기서 왜 나오누]
[갤 관리 안하고 방송 보다가 걸렸냐]
[벽돌충 쳐내 ㅅㅂ]
채팅창에 도배 행위를 할 경우 자동으로 강제 퇴장 처리되는 관리 설정에 의해 범인은 금방 퇴출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이,
채팅창을 사용하기 위한 팔로우 러쉬와 함께 온갖 벽돌과 욕설들이 채팅창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루스끼가 갤에 독을 풀었다!!!!!!!!!!!]
[부품 빼가는건 선넘었지 씨빨]
[우리주딱이울고있어요ㅠㅠ]
[시1발아 우리 완최몸 돌려줘]
[뭔데ㅅㅂ 어디 좌표찍혔냐]
[몬가 몬가 일어나고 있음]
[왜너만행복해왜너만돈받아왜너만행복해왜너만돈받아]
[아이고나으리이것까지가져가시면갤망합니다아이고나으리이것까지가져가시면갤망합니다]
갑자기 늘어나는 시청자 수와, 화끈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채팅창.
그에 미간을 좁히고 상황을 파악하던 이리나는, 이내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이 Oy. 하고 감탄성을 내뱉었다.
마침내 시루갤의 족쇄에서 벗어나게 된 그가, 이리나 매니저로 취업했다는 사실을 커뮤니티에 알려도 되겠냐고 자신에게 허락을 구해 왔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슬쩍 보조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작업 표시줄 구석의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을 맞이하여 날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각.
최장완이라는 이름의 그가 관리자 직을 완전히 내려놓고, 커뮤니티에 작별의 인사를 남길 것을 예고했던 그 시간이었다.
그의 탈주가 알려지면서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가 한바탕 난리를 겪기라도 한 건지,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에게 항의인지 떼쓰기인지 알 수 없는 지랄을 하러 온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비릿한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그러게 왜 이런 귀한 인재를 보상도 없이 막 굴려서 이 사단을 만드냐.
자본주의의 승리다, 새끼들아.
“잠깐 주목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감을 잡지 못 하고 혼란스러워하던 시청자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방송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캠 화면 속의 그녀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어 보이며, 다이아스 모자챙 아래로 드러난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 있다, 카레예츠들.
트랙 관리할 매니저 채용했다.”
이제는 거의 이리나의 시청자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반쯤 굳어진 명칭과 함께 매니저 영입 소식을 알려 오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껏 건의해 왔던 매니저 영입이 드디어 이루어졌다는 것은 분명 좋은 소식이 맞았지만,
이렇게 어수선한 타이밍에 굳이 그걸 알려주려 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던 시청자들은,
문득 여전히 불타고 있는 채팅창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 시루갤에서 달려온 것으로 보이는 침입자들.
그들은 자신들의 완장을, 일 잘하던 우리 파딱을 내놓으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머릿속에서 퍼즐이 딸깍 하고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 인간,
시루갤 관리자들 중 한 명을 매니저로 데려온 것인가?
그것도 제일 열심히 일하던 핵심 인력을?
그에 경악하여, 채팅을 치던 시청자들의 움직임이 순간 멎었다.
하지만 이내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자신들에게 있어서 나쁠 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들이었다.
[ㅋㅋㅋㅋㅋ고급인력 잘 뽑았누]
[이제 트랙 터질 걱정 없네 아ㅋㅋ]
[시루갤 파딱이면 ㄹㅇ 매니저 최적화 인재 아니냐]
[좋은 소식 ㅇㅈ합니다]
허구한 날 분탕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대형 커뮤니티의 관리자라면, 그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비로그인 상태에서의 글쓰기 또한 허용되지 않는 트랙 정도야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는 수준일 터.
그에 시청자들은 앞으로 트랙 운영 걱정 같은 건 접어두어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의 선구안을 칭찬해 주었다.
물론 시청자들 중에는 이리나의 트랙과 시루갤을 둘 다 이용하는 사람들도 대거 있었지만,
그들 역시 이리나의 판단에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고 오히려 만족스러워했다.
침입자들의 원성에 줄곧 등장하는 ‘최적화’라는 닉네임.
시루갤 이용자이기도 했던 그들은 해당 닉네임을 가진 관리자가 지금껏 얼마나 커뮤니티를 위해 본인의 시간을 쏟아 붓고 있었는지 더더욱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차피 해당 사이트 커뮤니티의 관리자 직은 허구한 날 교체당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공백이 생겨도 커뮤니티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해당 자리를 대신할 인력은 많았으니까.
그 또한 언젠가 교체 당하게 될 운명이라면, 자신들이 미리 빼 와서 적절한 대우와 함께 지금껏 대형 커뮤니티를 관리해 오던 그 능력을 잘 써먹어 주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파딱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외침 사이사이로 매니저 채용에 대해 만족을 표했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리나는 잠시 게임을 일시 정지시켰다.
이내 보드카를 손에 들고, 캠 쪽을 바라보는 그녀.
“유감이다, 시루갤.”
그리고는,
캠을 향해 보드카 병을 내밀어 건배하는 시늉을 했다.
“당신들 관리자, 내 매니저로 대체되었다.”
그 도발이나 다름없는 말에,
시루갤의 침입자들은 말 그대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결국 채팅창에 렉이 걸려 이리나의 방송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네트워크 연결이 불안정해져 조금씩 영상의 버퍼링과 딜레이가 생겨났다.
그 모습에, 침입자들은 더욱 기세를 올려 마구 날뛰어 댔다.
이렇게 된 참에, 아예 이리나의 방송을 터뜨려 버림으로써 완장을 뺏어간 복수를 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그 때,
그들이 점화시켜 놓은 불꽃이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채팅창에 나타나, 벽돌을 던지고 욕설을 뿌려대는 이들의 머리통을 가차 없이 쪼개 버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처리 속도는 실로 굉장해서, 폭발하기 직전까지 과열되었던 채팅창은 금세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고 기존 시청자들의 채팅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을 목격한 시청자들은 이리나가 그들을 처리한 것인가 싶었지만,
캠 화면에 드러나 있던 이리나는 마우스나 키보드를 만지지도 않은 채 여유롭게 보드카를 들이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시청자들의 시선은 채팅창 위쪽에 존재하는 시청자 목록으로 향했다.
스트리머인 이리나 외에는 모두 평범한 시청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 그 곳에, 검 모양의 장식을 달고 있는 닉네임이 놓여 있었다.
선택받은 자에게만 허락된 검으로 한때 동료였던 이들을 무참히 썰어버린 그는,
이내 채팅창에 메시지를 하나 던지며 자신의 존재를 모두에게 알렸다.
[ 최적화: ^^7 ]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 역사에 길이 남게 될,
어느 관리자의 대탈주 이야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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