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그들의 반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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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트럭 방송은 성황리에 마무리 지어졌다.
장거리 운전 의뢰 때문에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껏 느긋하게 살필 여유가 없었던 채팅창을 보면서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덕에 나름 괜찮은 방송이 된 듯 했다.
하지만 그 날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관리자를 빼앗긴 시루갤의 침공이었다.
특히 내가 캠에다가 건배와 함께 도발을 날린 직후,
채팅창 렉에 의해 방송이 터져나가려는 순간에 극적으로 매니저가 등장해서 전부 진압해 버리고 ^^7을 채팅창에 툭 던지는 장면이 스트리머 커뮤니티 등지로 퍼져 나가며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이제 와서 얘기하자면,
사실 그렇게 매니저가 채팅창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최적화 최장완을 채용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 스트리머 게시판 트랙 관리를 위함이었지,
채팅창까지 그에게 맡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헌데 대형 커뮤니티 시절과 비교했을 때,
내 트랙을 관리하는 업무는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쉽고 여유로웠던 모양이었다.
장완은 이 돈 받고 사장님 게시판만 관리하고 있으면 오히려 제 쪽이 불편하다면서,
본인이 채팅창 관리 등등 기타 매니저 일을 전부 수행해 보겠다고 자청해 왔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며 만류하려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최적화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모습을 드러내어,
채팅창을 불태우는 시루갤 침입자들을 곧잘 물리치고 명장면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거기에 앞서 언급했던 그 장면에 대한 반응 역시 커뮤니티에 정통한 매니저 본인이 정보를 수집해서 내게 보고해 준 것이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매니저의 플레이챗에 온갖 커뮤니티 링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 흠칫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업무가 너무 적어서 여유로운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다니.
대체 그 악덕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고된 노동을 일상처럼 해 왔길래 그렇게 일 중독 증상까지 보이는 걸까. 지금껏 거기에서 무슨 싸움을 해 온 거냐.
눈물은 이제 안 나오는 몸이지만, 이쯤 되면 내가 다 울고 싶을 지경이다.
나중에 만나서 술이라도 같이 한 잔 해야 하지 않을까.
강렬하게 맥동하는 심장 소리와 함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이내 손을 뻗어 런닝머신의 버튼을 눌렀다.
삑삑삑삑 하고 전자음이 울릴 때마다 벨트의 회전 속도가 줄어든다.
28km/h의 속도로 질주를 감행하던 내 다리 또한 움직임을 점차 늦추며,
최종에는 몸을 세우고 걷는 자세로 돌아간다.
달퐁 덕에 망할 놈의 발작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에 갑갑함을 느끼는 건 여전해서 오늘도 헬스장을 방문해 런닝머신 위를 죽어라 뛰었다.
달릴 때 이어폰 선이 조금 거슬리던데, 이 참에 무선으로 바꿔 볼까. 하드바스의 묵직한 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놈으로 고르면 괜찮을 듯싶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약간 흐트러져 있는 다이아스 저지의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다른 회원들의 운동 자세를 지도해 주던 사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지체 없이 샤워실로 향했다.
땀을 머금은 채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다이아스 의류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책상에 설치되어 있던 운전대의 고정쇠를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책상 밑에 놓인 페달도 발로 스윽 밀어 안쪽으로 집어넣은 뒤,
냉장고 윗칸을 열어 컴플릿 보드카 한 병을 가져다가 컴퓨터 책상 위에 턱 얹는다.
대가리에 다이아스 모자 대신 헤드셋을 씌우고,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그 상태로 잠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던 나는, 마우스를 부여잡고 커서를 움직여 아이콘 하나를 더블클릭했다.
이내 검게 변한 화면에, 도시의 모습을 형상화한 타이틀이 나타난다.
City of Ruin.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게임이 다시금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망가진 대가리를 달퐁이 대충 용접해 주긴 했지만 또 방송 중에 피를 쏟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단은 방송 송출 프로그램을 켜지 않은 상태로 게임을 진행해 보려 한다.
보드카 입구를 감싸고 있던 포장을 뜯고 뚜껑을 빙글 돌려 개봉한 뒤, 차디찬 보드카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후우….”
알코올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꽤나 오랜만에 보는 듯한 백금빛 단발의 캐릭터를 바라보았다.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이, 그녀는 이 쪽을 쳐다보며 손에 들고 있던 내 동반자 모신나강을 만지작거렸다.
동반자는 무슨, 시발.
저거 가지고 놀다가 현실이랑 게임 구분도 못 하는 미친년이 돼서 방구석 뒹굴 뻔했는데.
맘 같아선 동반자고 뭐고 그냥 상점 NPC든 자유시장이든 어딘가 대충 팔아치워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 거지같은 도시에서 함께 지내 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5년 동안 모신 소총을 붙잡고 살았는데, 나라는 놈의 정체성을 이루는 그 경험에서 모신나강을 빼 버리면 남아나는 게 없다. 그건 보드카도 마찬가지고.
좆같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미워할 순 없다. 이게 바로 애증 관계라는 건가.
아무튼 간에, 복귀하자마자 저 망할 방망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가볍게 AK소총부터 시작하면서 운전대에 길들여져 있던 손을 풀어 보자.
스코프가 장착되어 있지 않은 모신 소총을 캐릭터에게서 빼앗고, 빈 손이 된 그녀에게 AK를 들려준다.
2번과 5번 넘버링의 총알이 들어찬 탄창을 전술 조끼 주머니에 빼곡히 꽂아 넣은 뒤,
나는 초짜 트럭 기사에서 다시금 사냥꾼이 되어 길을 떠났다.
그 목적지는,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산업 단지였다.
국내의 대형 게임 커뮤니티 중 하나인 시티 오브 루인 갤러리 시루갤.
시루갤은 어제를 기점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당연히 관리자, 그것도 분탕과 어그로 종자들의 관리를 주로 맡던 이의 부재였다.
남은 관리자들이 그 공백을 감당해 내고자 분전하고 있었지만, 1년간 푸른 완장의 무게를 견뎌 온 베테랑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거기에 더하여 그 베테랑이라는 인간이 시루갤을 떠나기 직전에 던져 놓은 폭탄 덕분에, 커뮤니티 내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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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어제 갤 레전드였네]
주딱은 차기주딱 NTR당하고 멘붕
파딱들은 탈주 + 신분상승에 질투심 폭발
분탕쉒들은 담당일진 없어져서 갤 점령
거를 타선이 없누ㅅㅂㅋㅋㅋ
[댓글]
= 지금도 실시간 진행중이다 시1발아
= 좆이늅이 쏘아올린 작은 공ㅋㅋ
= 아래글 절대 누르지 마라 경고햇음
ㄴ 아 씹
ㄴ 개새끼야
ㄴ 나가뒤져개시1발련아
ㄴ 이시1발 심지어 리버스네
ㄴ 이쉒들 누르지 말라는거 눌러놓고 왜 울부짖냐ㅋㅋㅋ
ㄴ ㄹㅇ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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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이늅 십련 방송 언제킴]
계정 10개로 무지성 도배 준비중인데
[댓글]
= (‘포기해라’ 대사가 적힌 이모티콘)
ㄴ 왜 시1발
ㄴ 전파딱은 VPN 20개 돌리던 또라이도 잡아냈음
ㄴ 아
ㄴ 아 이지랄ㅋㅋㅋ
ㄴ 그쉒 도배 10초컷 타임어택 성공했다고 자랑하던 새낀데
ㄴ 뭔ㅅㅂ 무용담이 파도파도 계속 나오냐ㅋㅋㅋㅋ
ㄴ 파딱 1년 버틴 고급 노예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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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발 고급인력 탈주하는데 안잡고 뭐했누]
갤 분탕 잡아내던 실력으로 방송 좌표찍힌거 싹다 막아내더만
저렇게 성능 좋은 완장을 걍 보내줘서 이지랄난다는 게 말이 되냐 시1발
솔직히 이번 사태는 완장들한테도 책임 있다 ㅇㅈ?
[댓글]
= ㅇㅇ : 니가 이지랄 정리하는거 좀 도와주면 될듯
ㄴ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ㄴ 어어 점마 왜 파래지누ㅋㅋ
ㄴ 안그래도 주딱 빡돌았는데 걍 긁어버리네ㅋㅋㅋ
= 완갈통 : 취업한다는데 그럼 어케 막냐 시1발아
ㄴ 완갈통 : 이건 ㄹㅇ 완장행 들가야 된다
ㄴ 선생님봐주세요저내일출근해야대요
ㄴ 자 드가자
ㄴ ㅋㅋㅋㅋ입털었다가 개좆됐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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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괜히 관리자들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팔에 완장이 채워질 위기를 겪는 동안,
이용자들은 이 사단의 근본적인 원흉인 오이늅 이리나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허나 그녀는 현재 방송을 켜지도 않은 상태였고, 방송을 켠다고 해도 전 관리자 현 매니저인 최적화의 감시 속에서 분탕을 치는 것은 무리였다.
그녀의 트랙 또한 마찬가지로 최적화의 관리 하에 놓여있기에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 방송에서 하고 있는 게임인 매드 트럭 시뮬레이터는 아직 멀티 플레이가 개발되지 않은 게임이라 저격도 불가능했으니, 이용자들은 그저 울분을 삭이며 커뮤니티를 서성일 뿐이었다.
그 때, 누군가가 게시글 하나를 올리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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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이늅 시오루 켰는데??]
(이미지)
로그 보니까 방금 산업단지 5킬하고 탈출함
오늘 방송 시오루 각 아니냐 이거
[댓글]
= 이왜진
= 저격각 날카로운데
= 저격 딱대ㅅㅂ
= ㅋㅋㅋ오늘 산업단지 미어터지겠누
= 이쉒 왜 방송안키고 겜하냐
ㄴ 저번에 코피쏟아서 그런거 아님?
ㄴ 그뒤로 겜 아예 안켜서 감잡을라 그러는듯
ㄴ ㅋㅋㅋ이새끼들 좆이늅 ㅈㄴ욕하면서 왤케 잘 아누
ㄴ 아ㅋㅋ 루스끼 겜방송은 못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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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무법의 도시에 돌아와 산업단지를 활보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리나에게 한 방 먹일 궁리만 하고 있던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저마다 언더 레이팅의 부계정을 꺼내들고 그녀가 오늘의 방송을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녀에게는 커다란 빚을 졌으니, 이제는 자신들이 되돌려 줄 차례였다.
남의 부품을 훔쳐간 대가를 치룰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