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55화 (55/57)

〈 55화 〉 그들의 반격 (2)

* * *

중간 중간 컴플릿 보드카를 들이켜 대가리를 알코올로 적셔 주며,

5번 탄환의 탄창이 물려 있는 AK소총으로 적들의 머리 또는 몸통에 바람구멍을 내고 다녔다.

고관통의 총알로 몸통과 머리를 감싸고 있는 보호구를 뚫어 데미지를 입히는 건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인 플레이였기에, 사지 파괴를 통한 농락보다는 임팩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이 화면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내 대가리가 멀쩡할 수 있을지를 테스트하는 중이었기에 재미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시티즌 NPC 3명과 유저 2명을 처치하고 무난하게 탈출하여 첫 게임을 마무리할 때까지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혹시 몰라 슬쩍 고개를 돌려 방의 풍경을 둘러봐도, 평소대로의 깔끔한 원룸이었다.

코피를 쏟았을 때처럼 갑자기 벽에 얼룩이 생겨나거나 바닥에 탄피가 굴러다니는 일은 없었다.

그에 나는 창고를 열어 전리품을 정리하고, 한 번 더 사냥을 나섰다.

게임 한 판을 끝낸 것 가지고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저번의 발작도 한순간에 찾아온 게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나를 좀먹어 갔으니, 이번에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한 번 보드카 없이 게임을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깔끔히 포기했다.

5년간 생사를 넘나들며 길러 온 생존 본능이 그 짓거리만큼은 하지 말라며 격렬히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시금 시작된 생존 게임.

창고 부지로 달려가는 길에 시티즌 한 명을 저세상으로 보내 주고,

부지 외곽의 창고 벽에 붙어 근방에 적이 있는지 눈과 귀로 살폈다.

마침 벽 너머에서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포착되었기에,

나는 살금살금 입구 근처로 걸어간 뒤 상반신을 쑥 내밀며 AK의 총구를 들이댔다.

예상대로 입구와 가까운 쪽의 선반에 놓인 아이템을 줍고 있던 유저 한 명이 기계식 조준기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부드럽게 손을 움직여 놈에게 가늠자를 가져다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타타탕 하고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 퍼지며, 어둑한 창고 안이 총구 화염으로 번쩍인다.

가슴팍과 머리 쪽에 5번 탄환을 골고루 두드려 맞은 유저는, 내 기습 공격에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금세 체력이 바닥나 창고 바닥에 널브러지게 되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 지으며, 생명을 잃어버린 그 몸뚱아리의 다리를 붙잡고 창고 구석으로 질질 끌고 갔다. 다시금 1킬 적립이다.

­띠링.

바로 그 때,

플레이챗의 알림음이 귓가를 때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시멘트 포대 뒤에 몸을 숨긴 뒤 보조 모니터로 플레이챗 프로그램을 띄워 보니,

매니저가 있는 채널의 아이콘에 무언가 갱신되었음을 뜻하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해당 채널을 확인하자,

알아보기 쉽게 Optim에서 최적화로 닉네임을 바꾼 그의 신규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최적화:

[사장님]

[혹시 오늘 방송때 시오루 하십니까]

오늘 방송 컨텐츠가 시티 오브 루인이냐고 묻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별 탈이 없으면 아마 그렇게 될 것 같긴 한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지. 그 때 코피 쏟은 것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건가?

Ирина :

[가능성 높ㅊ다]

[특이사항 있ㅏ?]

청각으로 창고 주변의 인기척을 살피며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려 답장을 보내니,

곧바로 응답이 날아왔다.

최적화:

[시루갤 애들이 사장님 계정 로그 보고 시오루 하는거 알아내서]

[오늘 방송때 저격 엄청 들어올거 같습니다]

Ирина :

[ㅏ]

그 문구에 나는 한 글자로 탄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시루갤 놈들이 있었지.

나에게 관리자를 빼앗긴 분노로 방송에 쳐들어왔다가 그 관리자한테 죄다 모가지를 잘리게 되었으니, 아마 분위기가 상당히 흉흉할 것이다.

헌데 그런 와중에 내가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하게 된다면,

당연히 본인들의 울분을 담아 통한의 저격을 해 올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이다.

든든한 최적화 방패 덕에 채팅창이나 트랙이 터져 나갈 걱정은 없겠지만,

게임 내에서 저격을 당하는 것까지 그가 막아낼 순 없는 노릇이기에 자신에게 미리 해당 사항을 알려 준 모양이다.

최적화:

[저번에 시오루 하다가 몸 상태 안 좋아져서 휴방도 하셨는데]

[이번에 괜찮으시겠슴니까]

현 상황에 대하여 염려를 표하는 매니저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Ирина :

[괜찬다]

[문제업ㄱ다]

무법의 도시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나.

그런 나를 험한 꼴로 만들어 놓기 위해 사방에서 추적해 오는 멍청이들.

이미 그 거지같은 도시에서 몇 번이나 겪어 보았던 상황이었고,

나는 그 모든 위협에서 살아남아 결국 원래 세계로 귀환하는 데 성공한 인간이다.

일 대 다수는 분명 전자에게 불리한 싸움이 맞다.

하지만 그 한 명이 5년간 지옥에서 굴러먹다 온 미친년이고,

장소가 그 미친년의 홈그라운드라면 어떨까.

“흐흫.”

이제 와서 걸어온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다.

그 상대가 우리 소중한 매니저를 착취하던 괘씸한 놈들이라면 더더욱.

어차피 게임에 대한 부작용 유무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계속해서 플레이를 이어나가야 하니,

이 참에 본인들의 잘못도 깨닫지 못 하고 덤벼들어 오는 저 커뮤니티의 앞잡이들에게 매운 맛을 보여 주도록 하자.

열정페이는 결코 자본주의를 이겨낼 수 없다는 걸 똑똑히 깨닫게 해 주마.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리나의 시청자들 중에는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이들 또한 많았다.

그들 역시 매니저처럼 시루갤의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이리나의 스트리머 게시판­ 트랙에 공유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우려를 표했다.

성능 좋은 완장을 잃은 것에 분노하는 시루갤 이용자들의 심정을 대충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이리나가 방송을 망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매니저를 다시 시루갤에 돌려보내 평화를 도모하는 방법도 있기야 했지만, 이제 와서 그를 반납한다고 시루갤의 여론이 식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완장이 돌아온다 해도 그를 빼앗겼던 경험은 이용자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을 테니까.

게다가 이미 최적화의 압도적인 일처리 속도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그가 아니면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리고 말았기에,

그를 돌려보낸다는 선택지는 시청자들의 머릿속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당사자­ 최적화 매니저가 글을 하나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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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ㄴㄴ]

(플레이챗 메시지가 캡쳐된 이미지)

사장님이 문제없다고 하셨음

상황 자체는 제끼런 때랑 크게 다를 건 없는데

이번엔 억제기도 없으니까 안심하고 방송 보십쇼 여러분

챗창이랑 여기 터질 걱정은 안 해도 됨

‘그 갤’에 비하면 디펜스 난이도 개솟밥이니까 ^^7

­ ^^7

­ 믿겠읍니다 ^^7

­ 전파딱 든든하누ㅋㅋㅋ

­ 이래서 경력직 경력직 하는구나 아ㅋㅋ

­ ㅋㅋㅋ방장 채팅 오타 커여운거 보소

­ 술빨아서 저런거냐 한글타자를 못치는거냐

ㄴ 둘다일듯ㅋㅋ

­ 그와중에 달퐁 억제기 취급 너무하네ㅅㅂㅋㅋ

ㄴ 억제기 맞는데?

ㄴ 제끼런 방송 보면 억제기가 맞다

­ 저번에 시오루하다가 코피터지고 휴방했는데 괜찮은거?

ㄴ 최적화 : 그것도 여쭤봤는데 답이 저렇게 온거임

ㄴ ㅇㅋ

­ 그래서 눈나랑 주량대결 언제하누

ㄴ 최적화 : 그런걸 왜해 미친련아

ㄴ ㅋㅋㅋ방장이랑 술대결하면 다음날 병원침대에서 링거맞고 있을듯

ㄴ ㄹㅇㅋㅋ

ㄴ 이제 이거 댓글 보고 방장이 컨텐츠각 만든다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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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없다는 이리나의 플레이챗 메시지를 캡처한 이미지와 함께,

그는 걱정하지 말고 방송을 보아도 된다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대형 커뮤니티의 전 관리자다운 든든함에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이리나의 방송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해당 글의 마지막 줄에 적힌, 다소 도발적인 내용이 담긴 문장이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로 수출되면서, 활활 타오르는 시루갤의 불꽃에 휘발유를 한 컵 부은 격이 되었다.

채팅창에서 칼질을 당하고 얄미운 경례를 받은 것도 서러운데 저러한 도발까지 당하게 된 시루갤의 이용자들은, 이를 아득 빠득 갈며 사기를 한껏 끌어올리게 되었다.

그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마침내 이리나의 방송이 문을 열었다.

기존 시청자, 시루갤 이용자 할 것 없이 모두 Live 마크가 붙은 그녀의 방송으로 몰려갔고,

그들은 언제나처럼 시커먼 송출 화면을 목도하게 되었다.

몇몇 용감한 인간들이 곧장 도배와 욕설로 기선 제압을 시도했지만,

미리 채팅창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적화가 즉시 매니저의 검으로 그들을 반으로 갈라 죽였다.

저렇게 일 잘하는 부품이 탈취당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기만 했다니.

이리나와 커뮤니티의 완장들에 대한 울분이 한층 더해져만 가는 사람들이었으나,

지금 당장은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이리나의 트랙이나 채팅창에 분탕을 치려고 해 봐야 방금 전의 희생양들처럼 최적화에게 대가리가 쪼개지게 될 것이고,

커뮤니티 관리자들에게 불평을 토했다간 닉네임 옆의 표식이 시퍼렇게 변색될 위험이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리나가 무방비하게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하는 순간을 말이다.

수많은 시루갤 이용자의 부계정들이 이리나의 매칭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가는 곳에는 항상 자신들이 있게 될 것이고,

이리나는 결국 시루갤이 내지른 복수의 칼날에 쓰러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각오를 다지며,

기존 시청자를 제외한 인원들은 그녀의 새까만 화면에 변화가 생기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게임 화면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담긴 캠 영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에 사람들은 곧장 매칭 시작을 누를 준비를 하며 화면으로 시선을 향했고,

이내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분명 게임의 화면이 맞았다.

다만, 시티 오브 루인이 아니었을 뿐이다.

뭔가 익숙한 트럭 운전석의 모습.

앞 유리 너머로 신호를 기다리는 승용차들의 뒤꽁무니가 보인다.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던 시청자들은, 이내 화면의 구석으로 시선을 향했다.

책상에 그새 다시 설치해 놓은 운전대 앞에, 이리나가 앉아 있었다.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대 옆에 놓여 있던 보드카를 집어든 그녀는,

머리에 눌러쓴 다이­아스 모자챙을 까딱이며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환영하다, 카레예츠들.”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보드카 병나발을 부는 이리나의 모습에,

기존 시청자, 시루갤 이용자 할 것 없이 채팅창을 한 글자로 가득 채우게 되었다.

[?]

[??]

[?]

[ 최적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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