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그들의 반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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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루인 계정 로그의 조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그녀의 플레이 기록.
매니저가 트랙에 공개한 자신의 사장님 이리나와의 플레이챗 메시지 내역.
그 모든 요소를 통해,
이리나의 방송을 찾아온 이들은 그녀가 오늘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티 오브 루인 커뮤니티 시루갤의 이용자들은 그녀와 매칭이 될 수 있을 만한 언더 레이팅의 부계정을 준비해 대대적인 저격 러쉬를 준비하고 있었고,
기존 시청자들은 이리나가 시루갤의 저격을 정면 돌파해버리는 모습을 지켜보고자 했으며,
악질 시청자들은 이리나가 그들의 저격에 제대로 된 플레이를 이어나가지 못 하고 방송을 망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리나는 모두의 예상을 깨뜨려 버리고 그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시티 오브 루인에서 이리나가 게임을 시작하기만을 고대하던 수많은 저격러들을 내팽개쳐두고, 한가롭게 운전대 앞에 앉아 사거리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매니저까지 채팅창에 물음표를 띄우게 만들면서 말이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먼저 속이라는 격언을 훌륭하게 실행에 옮긴 이리나였다.
[???오이늅 어디갔냐]
[선생님 운전석이 보이는데 시1발 제 눈이 삔건가요]
[않이 시오루 한다매 싯팔]
[매니저도 ? 이지랄ㅋㅋㅋㅋ]
[ㅋㅋㅋ완장쉒까지 낚였네]
[시1발아 부계 5개 대기시켜놨는데 왜 시오루 안하냐고]
[? 다계정 동시겜 막혔는데 어케했누]
[저격할라고 핵을 쓰네 미친련ㄷㄷ]
[너밴]
[신고해드렸읍니다^^]
[집컴 5개야 십련들아]
[아ㅋㅋ 5컴은 ㅇㅈ이지]
[5컴ㅅㅂㅋㅋ 집에다 피시방 차려놨냐]
[빨리시오루켜빨리시오루켜빨리시오루켜빨리시오루켜]
화르륵 불타오르는 채팅창의 모습에, 이리나는 모자챙 밑으로 드러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분명 걸려온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저격러들을 곧이곧대로 상대해 줄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리나가 게임을 시작하기만을 벼르고 있는 저격러들이 방송을 보고 동시에 매칭을 개시한다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그녀를 제외한 전원 혹은 대부분이 저격러로 채워질 것이었다.
도끼를 들고 끝없이 이리나와 달퐁을 향해 달려들던 제로백 도끼런의 후예들처럼 말이다.
허나 제로백 도끼런 제자들의 청출어람 러쉬와는 다르게,
저격러들은 엄연히 방어구를 장착한 채 원거리에서 총알을 날릴 수 있었다.
아무리 경험과 실력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러한 적의 인원이 일정 수를 넘어서면 상당히 곤란해지기 마련이다.
적들을 대량으로 쓸어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시티 오브 루인에 그러한 화력을 지닌 무기는 존재하지 않기에 별 의미가 없는 가정이다.
그렇기에, 이리나는 잠시 다른 게임을 하며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사그라뜨림과 함께,
시티 오브 루인의 한국 서버 플레이 유저 수가 최대치에 도달하는 시간대를 기다린다.
매칭을 기다리는 인원이 많아질수록, 저격러들의 저격 성공 확률은 낮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수가 줄어든 저격러들을, 자신이 역으로 혼내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비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그녀의 방식이다.
광기에 가득 찬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수를 활용해야 하고,
이리나는 지난 5년간 그러한 식으로 생존한 끝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비겁함을 따지자면 자신보다 시루갤 쪽이 더하지 않을까.
방송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반칙에 가까운데,
거기에 도끼도 아니고 멀쩡히 방어구랑 총까지 꼬나 쥔 채로 게임 내의 모두가 사방에서 덤벼드는 걸 대체 누가,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또한,
자신은 사실 오늘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한다는 확답을 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괜히 먼저 지레짐작을 하며 저격을 하겠답시고 우르르 모여든 것은 저들이 아닌가.
그러한 생각으로 흐흫. 하고 시루갤의 멍청이들을 작게 비웃으며,
이리나는 신호등의 불빛이 바뀐 것을 보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 액셀을 슬쩍 밟았다.
“오늘 트럭 운전한다. 새로운 장거리 운송 의뢰 받았다.”
[ㄹㅇ 이대로 트럭겜함??]
[시오루 언제하냐고 십련아!!!!!!!!!!!!]
[아 5부계 준비해놨는데 지랄노]
[도망가지마!!!!맞서싸워!!!!!도망가지마!!!!맞서싸워!!!!!]
[ㅋㅋㅋ저격쉒들 트럭으로 밀어버리겠다는 의지]
[근데 방장이 오늘 시오루 하겠다는 말은 안했자너ㅋㅋ]
[설레발친 시루갤이? 병신인거? 아닐까?]
[트럭겜 하니까 저격 문제 없다는 뜻이었누 아ㅋㅋ]
시티 오브 루인의 시 자도 꺼내지 않고 태연하게 트럭 운전을 이어나가는 이리나.
그에 시루갤 유저들은 닭 쫒던 개 신세가 되어 울분을 토했고,
기존 시청자들은 그러한 반응에 낄낄 웃으며 저격 못하는 저격러들을 놀려댔다.
그러는 와중에, 띠링 하고 플레이챗 메시지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잠시 게임을 일시정지하고 보조 모니터로 플레이챗을 확인한 이리나는, 픽 웃음을 흘렸다.
최적화 :
[사장님]
[오늘 시오루 안하심니까..?]
어쩌다가 덩달아 이리나의 계략에 당해 버린 매니저가,
당황감이 묻어나오는 메시지를 그녀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리나는 매니저에게 답장을 보내기 위해 운전대 뒤로 팔을 쭈욱 뻗어 핸들 위에 턱을 받치고 떠듬떠듬 타자를 입력해 나가기 시작했다.
캠 화면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무슨 기지개라도 켜는 것만 같은 자세로 키보드를 톡톡 두드리는 이리나의 행동에 피식 웃게 되었다.
[방장 뭐함ㅋㅋㅋ]
[좆냥이 스트레칭하는거 같누]
[1초에 자판 하나씩 치는거 숨막히네]
[놀랍게도 저게 빨라진거임]
[빨리시오루켜빨리시오루켜빨리시오루켜빨리시오루켜]
[도배충 안쳐내냐ㅅㅂ]
[님 채팅 치는 사이에 컷했는데]
[매니저 일 잘하누ㅋㅋ]
[ㅋㅋㅋ십련 태세전환 속도보소]
[그래서 시오루 언제하는데 ㅅㅂ]
그러거나 말거나, 이리나는 계속해서 키보드를 눌러 단어를 만들어 냈다.
Ирина :
[한다]
[조금 뒤에ㅐ]
여전한 오타와 함께 답변이 전송되자,
그것을 받게 된 매니저는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금 메시지를 보냈다.
최적화 :
[아ㅋㅋ]
[알겠습니다]
온갖 분탕들과 사건사고를 접해 온 대형 커뮤니티의 전 매니저답게,
최적화는 그녀의 짤막한 대답만으로도 모든 정황을 이해한 뒤 곧장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이리나는 역시 그를 채용한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통감하며,
게임의 일시정지를 해제하고 다시금 운전대를 잡았다.
채팅창이 시루갤 유저와 기존 시청자의 두 파로 나뉘며 시끌벅적해지거나 말거나, 이리나는 태연하게 보드카를 들이키며 도로를 달려 나갔다.
배경에 낮게 깔리는 엔진음과 똑딱이는 방향지시등의 소리.
가끔씩 띠링. 하고 울리며 경로를 안내하는 네비게이션과, 책상 위에서 덜걱이는 보드카 병.
이리나가 단정한 음색으로 작게 흥얼거리는, 알 수 없는 멜로디의 콧노래.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자,
이리나의 방송은 총탄이 날아다니는 생존 게임의 긴박함 대신 평화롭고 느긋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분위기로 흘러가게 되었다.
어쩐 일인지 트럭 주변의 승용차들도 상당히 얌전한 주행을 하고 있는데다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버그도 조용하기만 하니,
지금껏 이리나의 방송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잔잔함이라는 것이 트럭 운전석을 감돌고 있었다.
빨리 시티 오브 루인이나 실행하라고 화를 내던 이들은,
그러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자 점차 분노 대신 허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은 왜 이리나의 방송에 쳐들어 온 것인가.
저격하겠답시고 들어와서, 왜 그녀가 트럭이나 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가 뭐라 떠들던,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드카나 마시며 핸들을 꺾고 있다.
뭔가 관심을 끌어 보려고 해도 전 관리자 현 매니저 최적화가 눈깔을 부라리고 있다.
오늘 정말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저격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일일까.
다섯 개나 되는 컴퓨터로 시티 오브 루인을 실행하여 통한의 저격을 준비하던 PC방 꿈나무도,
부계정이 없어 그녀가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새 계정을 생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타임어택러도,
저격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태블릿PC 두 개에 각각 이리나의 방송과 시티 오브 루인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켜 놓았던 패드 성애자도,
트럭 운전석에서 들려오는 엔진음을 멍하니 감상하며 점차 의욕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전의를 상실한 그들은 하나둘씩 이리나의 방송을 빠져나갔고,
뜨겁게 타오르던 채팅창의 열기도 점차 식어 가며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무런 성과도 건지지 못 하고 본진으로 돌아온 유저들은 허탈한 웃음과 함께 자신들을 속인 이리나를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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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좃이늅 방송 현황]
(이미지)
보드카 빨면서 평화로운 트럭겜 진행중
방송 키고 나서 시오루 얘기 한 번도 안함ㅋㅋ
이럴거면 아까 시오루는 왜 켜가지고 기대하게 만드는데 십련아..
[댓글]
= 진짜 감만 잡으려고 켰네ㅅㅂ
= 이쉒 방송 전에 로그 남긴것도 설계 아니냐 이정도면
= 계정생성 타임어택 성공했다고 자랑하던 쉒 어카냐ㅋㅋ
= 이걸 낚시를 걸어 버리네 십련..
= 컴 4개 도로 꺼야겠네 시1발;
= 저격쉒들 다 트럭에 치여서 현타온거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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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완장이 채워질까 봐 남은 관리자들에게 뭐라 하지는 못 하고,
그저 자기들끼리 궁시렁대며 괜한 기대로 인해 날려버린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하는 그들이었다.
바로 그 때,
누군가가 커뮤니티로 헐레벌떡 달려와 급보를 전했다.
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격을 포기하고 본진으로 귀환할 때까지도 아득바득 이리나의 방송에서 버티고 있던 유저였다.
[속보) 좃이늅 시오루 켰음]
그 어그로성 짙은 제목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해당 게시글을 클릭해 보았다.
이내,
그들은 애니메이팅 이미지 움짤을 하나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방금 전까지 그들이 치켜보고 있었던, 핸들을 붙잡고 트럭을 운전하는 이리나가 담겨 있었다.
헌데, 이내 캠 화면에 급작스러운 변화가 생겨났다.
이리나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믿기지 않는 속도로 레이싱 휠을 책상에서 후다닥 해체하여 바닥에 내려놓은 것이다.
10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모든 작업을 끝마친 이리나는, 곧장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붙잡았다.
방금 전까지 평화롭게 트럭을 몰던 운전기사가,
금세 전장으로 돌입할 준비를 마친 사냥꾼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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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좃이늅 시오루 켰음]
(움직이는 이미지)
미친련이 화면 트럭겜으로 가려 놓고 매칭 돌렸네;
레이싱휠 10초 해체 매드무비 보고가라
[댓글]
= ???????
= 이왜진
= 아니 짤 개빠르네ㅋㅋㅋㅋㅋ
= 짤 속도 뭔데ㅅㅂㅋㅋㅋ
= 않이 시1발 컴 껐는데;
= 저격각 다시 떳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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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의 운전대 신속해체쇼에 경탄하는 일부 유저들과,
자신들을 놀리듯이 어긋난 타이밍으로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하기 시작하는 이리나의 행태에 벙찌게 된 저격러들.
이내 여러 반응들이 한데 뒤섞여, 댓글창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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