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슬라브식 스트리머-57화 (57/57)

〈 57화 〉 그들의 반격 (4)

* * *

시티 오브 루인이 어쩌니 뭐니 채팅창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거나 말거나,

나는 한동안 시치미를 떼고 운전대 앞에서 트럭만 열심히 몰아댔다.

그러자 오늘 저격을 하기엔 영 글러먹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평소보다 뻥튀기되어 있었던 시청자 수가 점차 정상치를 향해 감소하기 시작했다.

저격을 위해 내 방송에 쳐들어왔던 시루갤 놈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 나는 슬쩍 시선을 옮겨, 보조 모니터의 작업 표시줄 구석에 놓인 시계를 확인했다.

마침 시간도 한국 서버의 접속 인원 수가 가장 많은 시기에 근접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신호 대기를 위해 트럭이 멈춰선 틈을 타서 마우스에 손을 뻗었다.

예의 작업 표시줄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도시 모양의 아이콘. 그것을 딸깍 하고 클릭했다.

그러자,

미리 실행되어 최소화 상태를 유지하던 시티 오브 루인의 게임 화면이 나를 반겼다.

세팅은 방송 시작 전에 다 해 놓았으니 이대로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

곧장 지도에서 산업 단지를 선택한 뒤, 매칭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보드카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핸들 중앙을 손바닥으로 꾹 눌러 신호가 바뀜에도 출발하지 않는 머저리에게 빼앵 하고 경적을 울렸다.

방송으로 송출되지 않는 보조 모니터 쪽에 시오루의 화면이 띄워져 있었으므로,

내가 시오루의 게임 매칭을 매드 트럭으로 위장 중이라는 것을 눈치 챌 만한 사람은 미리 언질을 주었던 매니저밖에 없다.

[저 십련 도로에서 처자네]

[폰 보고 있는듯ㅅㅂ]

[저쉒도 술먹고 꼴은거 아니냐?]

[방장은 보드카빨고 트럭모는데 나약한새1끼ㅋㅋ]

[그건 방장이 미친련인 거고]

[눈나 그냥 밀어버리자]

[이건 걍 밀어도 합법 아닐까]

[30초 뻐기면 걍 풀악셀 밟아서 밀어버릴수 있게 운전법 바꿔야됨 시1발련들]

[그럼 정체구간 범퍼카 되겠누ㅋㅋ]

[ㅋㅋㅋ저쉒 운전하다가 길막 씨게 당했는갑네]

혹시 몰라 채팅창을 슬쩍 곁눈질해 봤지만, 내 행동에 의문을 가지는 반응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 새끼 왜 출발 안 하냐며 트럭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미친놈의 행동에 답답해할 뿐이었다.

그러게. 신호 바뀐 지 한참이나 됐는데 이 자식은 왜 출발을 안 할까.

평소라면 시청자들의 요청대로 액셀을 콱 밟아서 트럭의 압도적인 질량으로 대충 밀어버리고,

약간의 벌금을 제물로 바쳐 답답함을 타파한 뒤 제 갈 길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만큼은 그것이 불가능할 듯하다.

시티 오브 루인 매칭이 완료됐으니까.

“길 막혔다. 목적지 변경한다.”

보조 모니터로 그것을 확인한 나는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게임을 일시 정지시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을 빠르게 놀려 컴퓨터와 운전대를 잇는 연결선을 뽁뽁 뽑아냈다.

고정쇠를 풀고 받침대를 접어 책상과의 결합을 해제한다.

책상에 붙어 있던 운전대를 그대로 뚝 떼어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으며 키보드와 마우스를 붙잡는다.

책상 밑에 있는 페달을 발로 밀어 안쪽으로 보낸다.

그렇게 나는 10초도 안 되는 시간 내에 레이싱 휠을 캠 화면에서 없애 버렸고,

게임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태인 시티 오브 루인을 송출 화면에 띄웠다.

“다음 목적지 산업단지다, 따바리쉬들.”

보드카를 손에 들고 그렇게 선언하며 채팅창을 슬쩍 바라보자,

상당히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들 있었다.

[??????]

[ㅖ?]

[멀본거지 시1발]

[거기서 산업단지가 왜나와ㅅㅂㅋㅋㅋ]

[아니 캠 방금 뭔데ㅋㅋㅋㅋ]

[휠 떼는거 개빠르네 ㅁㅊㅋㅋ]

[방장 러시아에서 차훔치고 다녔누?]

[운전대 저렇게 빨리 치우는거 첨봄ㄷㄷ]

[여기서 시오루로 꺾어버린다고?]

[오늘 저격때매 시오루 안하는거 아니었냐]

[저격쉒들 거를라고 릭트쇼 한거였네 미친련ㅋㅋㅋ]

뜨겁게 달궈진 채팅창의 모습에, 나는 흐흫 하고 작게 웃었다.

그냥 평범하게 휠을 치우고 시티 오브 루인을 하는 것은 방송적으로 재미가 떨어질 것 같아서 나름 임팩트 있는 구경거리를 준비해 본 건데, 다행히도 잘 먹혀 들어간 듯하다.

방송 전에 몇 번 연습을 해 본 결과,

책상에서 운전대를 떼어내는 것은 내 기준에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반대라면 제대로 모니터에 맞춰서 위치도 잡고, 고정쇠도 적절히 조이고, 선도 연결하는 등 신경 쓸 게 많아서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저 책상에 붙어 있는 놈을 치워버리는 건 그렇게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었다.

선이고 뭐고 죄다 뽑아버린 뒤 책상이랑 몸통을 결합시키는 것들을 전부 풀어헤치고 내려놓으면 끝이다. 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맛이 가 버린 소총을 고치기 위해 현장에서 총기 분해 조립을 강행하는 것보단 훨씬 난이도가 낮았으니,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어찌 되었든 실전에서 훌륭하게 10초 이내에 임무를 완수했으니,

수고한 내 자신을 격려하는 의미로 보드카 한 모금을 마신다.

“후우.”

아직 내용물이 넉넉하게 남은 보드카 병을 내려놓는다.

잠깐 격한 움직임을 보이느라 흐트러진 헤드셋을 제대로 착용한다.

모자챙을 잡아당겨 다이­아스 캡을 다시금 깊게 눌러쓴다.

다시금, 방송에서 시티 오브 루인을 플레이할 시간이다.

괜찮겠지? 뭐 보드카도 마셨으니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발작에 고통 받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보드카와 함께라면 멀쩡한 거나 다름없으니 괜찮을 터다.

보드카를 마셔야 멀쩡하다는 점에서 아직 정상은 아닌가.

아무튼 간에, 게임 시작이다.

이제 트럭 기사에서 사냥꾼으로 복귀하도록 하자.

산업 단지의 어딘가에서 눈을 뜬 이리나의 캐릭터­ 5Ynoob.

백금빛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그녀는, 이내 AK소총을 손에 들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비교적 잔잔한 분위기의 트럭 게임에서 다시금 긴장감 가득한 FPS로 돌아오게 된 그녀의 모습에 묘한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보드카와 함께 운전대를 붙잡고 트럭을 운전하며 온갖 예측불허의 상황에 황당해하는 이리나 또한 재미난 구경거리였지만,

그녀에겐 역시 무법의 도시를 누비며 부속품이 거의 붙지 않은 구식 총기들로 NPC 유저 할 것 없이 처치해 나가는 모습이 제일 잘 어울렸던 것이다.

스코프 없는 모신 소총으로 펼치는 저격전을 다시금 보고 싶은 시청자들도 많았으나,

휴식 이후에 아직 감이 덜 잡히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는 익숙한 AK소총과 함께 마찬가지로 익숙하기 그지없는 산업 단지를 활보하고 있는 중이었다.

컨테이너가 군데군데 쌓여 엄폐물 역할을 하는 공터에 다다른 이리나.

저 앞에서 권총을 하나 꼬나 쥐고 어슬렁거리는 NPC­ 시티즌이 보이자,

그녀는 기계식 조준기를 상대의 대가리에 부드럽게 가져다 대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AK소총이 머금고 있던 2번 탄환이 곧장 총구에서 튀어나가,

아무런 방어구도 씌워 놓지 않은 시티즌의 머리통을 꿰뚫는다.

허름한 옷차림의 시티즌은 Cyka를 외칠 틈도 없이 머리에 바람구멍이 뚫려 절명했다.

이리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컨테이너 안에 대충 밀어 넣고, 다시금 길을 떠났다.

­딱! 따닥!

바로 그 때,

저 멀리에서 콩 볶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귀를 따갑게 만드는 그 총성은 몇 번이나 허공을 가로질러 이리나에게 전해져 왔고,

방송을 통해 캐릭터의 청각을 공유하던 시청자들은 저 너머에 누군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에, 시청자들 중 한 명이 미션을 내걸었다.

[신규 미션 등록!]

[지금 총 쏜 놈 사지 파괴로 죽이기 : 10,000원]

“Oy.”

그녀 특유의 상대를 농락하는 듯한 사지 파괴 전략.

이리나­ 오이늅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며 인지도를 얻는 데 큰 공헌을 했던 녀석이다.

시청자는 그녀가 시티 오브 루인으로 복귀하게 된 것을 기념 삼아,

사지 파괴에 집착하는 그 플레이를 다시금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다른 시청자들 또한 해당 미션이 화면 구석에 자리 잡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저마다 그의 생각에 동조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최근에는 제로백 도끼런 제자들의 청출어람 레이드를 제외하면 그녀가 적의 팔다리를 무참히 박살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마저도 도끼런의 유일하다시피 한 강점인 기동성을 빼앗아 버리려는 목적이 컸고,

총을 든 일반 유저들의 사지를 노리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에 시청자들은 이리나의 사지 집착 플레이를 다시 목도하고자 미션비를 한 푼 한 푼 쌓아 올리기 시작했고, 미션 금액은 곧장 처음의 두 배를 훌쩍 넘기게 되었다.

두 배라고 해도 2만원이지만, 지금의 기세대로라면 2만원의 두 배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리나는,

다시금 보드카 병을 들어 올려 자신을 비추고 있는 웹캠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건배하는 시늉을 해 보이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미션을 수락했다.

“하라쇼, 따바리쉬.

상대 사지 파괴한다.”

“….”

그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바라보고 있던 한 사내는,

이내 고개를 슥 돌려 자신의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복층의 건물 외곽에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티즌의 시체들.

방금 전에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는 머릿속에 산업 단지의 지도를 펼쳐들었다.

현재 이리나가 있는 컨테이너 구역과, 자신이 서 있는 건물.

그 사이에는 아마도 커다란 창고들이 모여 있는 창고 부지가 있을 터.

사내는 머릿속 지도를 접고,

이리나의 저격을 위해 틀어 놓았던 그녀의 방송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리나는 총성이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 멀리에는 창고 부지의 외벽이 우뚝 세워져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사내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욕이 튀어나왔다.

“시발.”

이리나의 저격을 포기하고 그냥 부계정으로 게임이나 한 판 하려던 사내.

그는 졸지에 이리나가 속한 게임에 존재하는 유일한 저격러가 되었으며,

동시에 그녀의 표적으로 지정되어 버리고 말았다.

잡히면 팔다리를 박살내는 미친년에게 집착 당하다니.

우연하게라도 저격을 성공했음에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앞으로 벌어지게 될 상황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 사내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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