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5
* * *
"······."
······가위에 눌렸다.
밖은 아직 새벽같은데, 이게 뭐람······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풀리겠지.
"······."
뭔가 소름끼치네.
가위에 눌린적은 몇년만이다.
내가 여기 초딩시절로 돌아오기 전에.
딱 1번······초딩때 당했다.
······그때 눌린게 지금 과거로 돌아와서 눌리는건가?
과거니까 이런 상황도 다시 겪는구나······
······이거 잘하면 로또도 가능하겠는데?
"······."
가만히 있다보니, 어느새 다시 잠들었나보다.
일어나보니 아침이다.
"읏쌰···!"
기지개를 펴고 몇시인지 확인한다.
"7시······"
약속 시간인 9시까진 아직 멀었다.
······씻고 밥이나 먹어야겠다.
"어머?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
'응. 아침에 약속 있어서 나가봐야하는데······."
"약속? 무슨 약속?"
"그냥 누구 만나게."
"니가? 만화만 방에 박혀서 보던놈이 나갈줄도아네."
"······됐고 빨리 밥이나 줘."
"······."
밖에 나가면 점심은 먹을 수 있을까?
······어차피 책만 사고 오는거라 점심내엔 오겠지.
"······돈 필요하냐?"
"응? 주게?"
"1만원 정도는 줄게."
"오, 진짜? 감사합니다."
오······엄마가 돈을 다주다니.
밖에 나가는 내가 그렇게 기특한가?
······누구 만나는 줄 아나?
만나긴 하지만.
······항상 입던대로 나가자.
······정윤이는 어떻게 하고 나오려나···?
"······미친새끼. 초딩한테 뭔 모습을 바라는거냐."
약속 시간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위잉··· 위잉···
···?
갑자기 뭔 문자냐. 또 소윤이냐?
"······."
아니다. 상상도 못한 문자다.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선 당연히 올만도 하지.
"현준아. 일어났어?"
진짜 귀엽기도 해라.
나 안일어날까봐 깨워줄려하네.
"이미준비다함. 나오실?"
"ㅇㅇ 나와!"
······?
얘가 문자할땐 텐션이 이러나?
왜 이렇게 활발하지?
나랑 같이 놀러가느라 들뜬건가?
"왜그렇게 신났어?"
"오랜만에 서점감! ^오^b"
···???
얘 왜이래···?
······가끔 카톡에 텐션높은애들 있으니, 얘도 그런부류겠지.
"······."
날씨 좋네.
비라도 오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현준아!"
"으악! 누구세요!"
······누구세요?
아니 진짜 누구냐고.
······웬 빛나는 하얀 머리의 존나예쁜 여자가 와서,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른다.
······존나 이쁘네.
"사람 잘못보셨어요."
"······에? 왜그래! 나 신정윤인데! 내가 서점 가자고 안했어?"
······?????????
씨발. 신정윤 맞냐?
진짜 맞냐? 정윤이가 만나기 싫어서 대리로 딴사람 보낸거 아냐?
내가 알던 그 찐따같던 정윤이가 맞냐.
진짜 정윤이는 전설이다······
"······너 맞냐?"
"응!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응. 예쁨이라는 것이 니 얼굴에 존나게 묻어있어.
······이게 뭔 상황이지?
······뭔 급전개냐고.
아니 학교에선 조용히 말도 안하고.
책만 읽고있던 애가 갑자기 밖에서 만나더니.
······뭐 이런 이쁜애가 다있지?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아냐?
나 과거와서 같이 내려온 천사.
"······너 머리 염색했냐?"
"어······ 사실 나 원래 백발인데······"
"······어?뭔 소리야? 학교에선 흑발이였잖아."
"그거 가발쓴거야."
"······뭐?"
"나 백발이면 다들 쳐다봐서······ 학교에선 눈에 튈까봐 가발쓴거야."
아······그런거였냐?
······이해 간다. 진짜 존나이쁘니까.
내 눈을 어디에 둬야할 지 모르겠다.
젖탱이 좆까라. 이 얼굴이면 몸이 어떻든 상관없다.
······근데 왜이리 애가 활발하지?
내가 알던 정윤이의 모습이 아니다.
원래라면 조용하고 낯가리는 내성적인 아이인데······
"······왜 그리 쳐다봐? 내 얼굴이 그리 신기해?"
"아니······ 너 원래라면 조용한 애일텐데······"
"어······ 그냥 신나서. 헤헷."
"······그래서 서점은?"
"아, 내가 다 알아!"
정윤이에게 팔을 잡히고 끌려가듯이 걸어갔다.
별로 먼 곳은 아니라, 걸어가도 될 정도인가보다.
"근데······ 뭐 살진 정했어?"
"응. 그냥 재미 있어 보이는거~"
"정윤아, 어제 책 사준다고 했던거, 안 사줘도 괜찮아."
"응? 왜! 부담 가지지 마!"
"아,아니 나 돈 엄마한테 받았어······."
"아, 그래? 그럼 내가 먹을 거 사줄게!"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사실 방금 좀 놀랬다.
······정확히 말하자면 분위기가 좀 싸늘했달까···?
이미 어제 해결 됐는데도.
부담 가지지 말라고 말할 때의 얼굴이 좀······
······잘 때 가위에 눌렸어서 그런가···?
······뭐 어때. 이쁘기만한데.
"······자! 여기야!"
"오······."
그저 그런 적당한 크기의 서점일 줄 알았는데.
나름 큰 상가에 3층까지 있는 꽤 큰 서점이다.
"아하핫! 난 여기가 제일 좋더라!"
······딴 사람 같다.
너무나도 활발하다.
아까도 같이 걸어가면서, 다들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너무나도 예뻐서.
아무리 초딩에 키가 작아도,
얼굴이 너무 성숙하고 예뻐서 중고딩으로 보인다.
"현준아, 왜 그래? 아까부터 계속 움츠려있고."
"어······ 그냥 니가 너무 익숙치 않아서."
"아하핫! 그럴 필요 없어~ 난 나인걸? 딴 사람 아냐!"
······아냐. 딴 사람이야.
넌 니가 평소에 어땠는지 모르지?
아니. 평소에 어땠는지 보단, 지금의 넌 너무 활발해.
······내가 니 옆에 못다가가겠어.
채륜이 처럼.
이쯤되면 채륜이가 훨씬 나아보인다······
"오······."
일단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진짜 넓고 책도 많아보인다.
······역시, 다들 힐끔힐끔 쳐다본다.
이렇게 예쁜애랑 내가 같이 붙어있으니까······
······난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까···?
"현준아, 소설이지?"
"응. 일본소설."
"2층이야. 따라와!
이번에도 내 팔을 잡고 끌고간다.
······뭐가 이리 급하지? 어차피 남는게 시간인데······
"잠깐. 정윤아."
"어.왜?"
"왜 그렇게 서둘러. 천천히 가."
"그치만······너랑 좀더 있고싶은ㅡ···."
"응···?뭐라고? 잘 안들려."
"아, 아무것도 아냐······."
······우욱 씹 씹덕냄새······
나도 씹덕이지만, 여긴 좀 심한데?
라노벨을 고를 순 없고. 빨리 단편소설이나 고르고 내려가야지.
"음······ 난 이거."
"그럼······ 나는 이거. 재미있어보인다!"
······뭐야. 쟤 라노벨 골랐는데?
"······그거 진짜 읽게?"
"응! 재미 있어 보이는데?"
"······이왕 읽을거면 끝까지 있는 권까지 다 사지그래?"
"음······ 그럴까? 일단 보류."
정윤이가 라노벨을 골랐다 해도.
난 도저히 못고르겠다······
나같은 새끼가 이런 이쁜애 옆에서 뭔 라노벨이야.
그냥 적당한 소설 고르고 결제를 했다.
"······현준아. 여기서 읽을거지?"
"어······ 여기서 읽는거야?"
"응. 당연하지!"
······진짜냐?
진짜로 여기서 라노벨읽네.
안그래도 니얼굴 때문에 남들 다 쳐다보는데······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윤이는 책을 보더니, 다시 학교의 정윤이로 변한 듯 하다.
조용히 책에 집중한다.
······부담스럽다.
남들이 다 소곤소곤 거리는 거 같다.
······옆에있는 나는 어울리지 않다는 듯 하고.
하. 시발.
이래서 인싸는 싫다니까.
······얘가 진짜 인싸인진 모르겠다만,
하루빨리 꾸미면서 다른 남자랑 사귀는 게.
훨씬 잘 어울릴 듯 하다.
······나는 그저 소꿉친구로 남고 싶은데.
"······현준아. 혹시······불편해···?"
"어······ 어? 갑자기 무슨······."
"아니······ 혹시 나 때문에···?"
······뭐야, 왜 갑자기 표정이 울상인데.
"······미안해. 나 때문에 받는 눈길이······ 싫지···?"
"······응. 거짓말 하는건 싫으니까······."
······그냥 거짓말 할 걸 그랬나···?
······씨발. 이 멍청한 새끼야. 이럴땐 '아니, 전혀. 걱정해줘서 고마워' 이렇게 말해야지.
"······."
"······."
한동안의 잠적이 흐른다.
······정윤이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현준아. 배고프지 않아? 어디, 카페로 갈래?"
"어···? 뭐······ 너야 좋다면······"
"그래. 내가 잘 아는 데가 있어."
······정윤이도 이 시선이 싫은가보네.
그래서 항상 눈을 가릴정도의 가발을 쓰고다녔지.
······카페라면, 좀 조용한 데에 가려나?
"미안······나 때문에 책도 제대로 못 읽었지······."
"아냐. 난 충분히 읽었어.······너는 괜찮아?"
"······항상 이래. 내 흰머리가 뭐 어떻다고······."
······흰머리가 관심 끌기엔 충분하거든?
이딴 소리 하면 진짜 울겠지.
속으론 엄청 내성적인 애인데.
나는 정신만큼은 고딩이고.
좀 걷다보니 한적한 거리에 왔다.
······진짜 한적한 카페로 가는가 보네.
이얼굴론 시선을 계속 받을테니, 이런곳도 아는구나.
"오······ 여기야?"
"응. 한적하고 좋지? 사람도 없어."
······진짜로 없다. 단 1명도.
상가들도 죄다 매매중이란 팻말만 내걸고있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어머, 너 새친구도 사귀었니?"
"네! 헤헷. 저도 이제 친구 있어요."
당당하듯이 말하네.
······외로웠구나.
······저 얼굴론 채륜이처럼 몰려다닐 수 있을텐데······
"······어때? 조용하고 좋지?"
"······응. 너랑 같이있기 딱 좋은 곳이야."
"헤헷. 좀 부끄러운데······."
오. 방금 내 멘트 개쩔었다.
이게 책의 힘인가?
로맨스 소설을 읽었더니 감수성이 풍부해진 것 같다.
······차라리 소꿉친구가 아니라 여친으로 만들어도 되겠는데?
소꿉친구야 채륜이랑 소윤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음······ 먹을 것 부터 시킬까? 뭐먹을래?"
"어······ 그냥 와플하나."
"그래!"
······고요하다.
여기 진짜 조용하네.
전등도 은은하고. 뭐 이런데가 다 있냐.
······여길 이런 초딩이랑 올 줄이야.
"헤헷. 나왔어."
"어? 바로나와?"
"응. 손님이 없으니까."
와플은 생각했던 것 보다 맛있었다.
이런 좋은 카페가 있었다니······
"······."
"······왜···?"
"후훗. 그냥."
······?
왜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그린라이트인가?
아니, 뭔가······ 압박 당하는 느낌인데···?
"······아무도 없으니까 좋다."
"응. 진짜로."
"나도 좋아. 헤헷."
······잠깐만 좀 떨어져 줄래···?
뭘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오늘 진짜 재미있었어."
"책 사서 읽은거말곤 한 게 없는거 같은데?"
"너랑 단둘이 여기 올 수 있어서 좋아."
"······?"
······얘 나 좋아하나···?
이대로 여친도 괜찮은데.
"항상 이렇게 나랑만 있어주면 안돼?"
"······어?"
"채륜이랑 소윤이같은 싸가지 없는 년들은 버리고."
"······뭐라고?"
"왜. 걔들 너한테만 신경쓰이게 달라붙고, 귀찮게하고."
"······그렇다고 그런 표현은 안돼."
"······."
"······."
······뭐야?
이쁜애 입에서 저런 말이 왜 튀어나와···?
······그만 돌아가고 싶은데···?
아무도 없어서 안심되지도 않고.
······그냥 이만하고 돌아갈까? 슬슬 내가 불편한데.
"저······ 책도 다 샀고. 슬슬 돌아가야 할 듯 한데, 이만 가볼까?"
"그럼, 우리집으로 올래?"
?
······뭔가 솔깃해지는데.
지금 이나이에 동정떼는건 좀 그렇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쓴 적 없다만, 아직은 이르긴하고.
······잠만 시발 내가 뭔 생각을 하는거야.
초딩한테······ 내가 미쳤네진짜.
"아니. 부모님이 있으셔서······ 3시 이전엔 돌아가겠다고 했어."
어떻게든 거짓말이라도 해서 벗어나야겠다.
······이런 한적한데는 위험해.
"······아쉬운데."
"아하하······ 다음에 또 만나면 되지 뭐."
"그럼. 다음 주말에 또 만나자?"
"······어? 뭐?"
"니가 먼저 약속한거야? 꼭이야?"
정윤이가 책상을 탁 치고 일어나면서, 얼굴을 나에게 들이댔다.
······그늘진 붉은색의 눈동자가 은은한 전등과 어울려져, 훨씬 더 어둡고 강조되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