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16
* * *
"흐······흐이익······."
"미,미안······!"
쾅!
깜짝 놀란 나는 재빠르게 문을 밀쳤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방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 있던건 흰 피부의 백마였다······
······이거 어떡하지···?
이거 어떻게 수습하냐······
여자애 나체를 보고 어떻게 대화를 하라고······
······
······시발 나 로리콘인가?
나는 그대로 소파에 천천히 앉았다.
쿠션의 솜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시발······ 지금이라도 나갈까···?
그래봤자 내일 또 보는데 어떻게······
끼이익······
"······."
"······."
잠시 후, 방문이 천천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사과부터 하자.
"저,저기······ 방금은 미안···─"
"아,아니야······ 나도 너한테 말 안 하고 갈아입은건데······."
"아냐. 노크를 했어야 했어. 진짜 미안."
"······."
"······."
······서로간의 긴 침묵이 흐른다.
마치 시간이 띵 하고 멈춘 것처럼.
"······미안해?"
"······에? 어,응. 진짜 미안······."
"흐음······."
채륜이는 의미심장한 말을 입밖으로 꺼냈다.
······나 쳐맞으면서 내쫒아 지려나···?
"미안······ 이만 가볼···─."
"······미안하면 밥 해줘!"
"······뭐···?"
······밥···?
······시간을 보니 벌써 저녁대이긴 하다. 해도 저물었고······
"······아무렇지도 않아···?"
"응? 뭐가?"
"니 알몸······ 본거······."
"아무말도 안 하고 갈아입으러 간 내 잘못도 있으니까······."
"아냐···! 노크는 기본 예의인···─."
합리화 시키는 채륜이에게 용서를 빌려고 하는 참에.
채륜이는 내 입술에 살짝 검지손가락을 대고 입을 막았다.
아직도 부끄러운지 살짝 붉게 물든 두 볼을 움직이며 말했다.
상냥하게. 정말 상냥하게······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다르게······
"진짜 괜찮으니까. 배고파~ 환자인데 밥부터 줘!"
"······."
화내고 때린다. 나를 집에서 내쫓는다.
이게 제대로된 전개다.
이래도 이 행동을 달게 받을 나에게.
당장 대가리를 땅에 쳐박고 이마를 비빌 나에게.
이런 채륜이의 행동은 정말 의외였다.
채륜이는 전혀 화내는 기색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정말 괜찮다는 듯이 내 어깨를 토닥이고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진짜라니까! 한 번 쳐맞아봐야 제대로 알아들을래!?"
"아,알았어···!"
······그래. 이래야 진짜 평소의 채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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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요리는 내가 못하는데······."
"후라이에 밥도 괜찮으니까 아무거나!"
"아무거나······."
저 귀가 찡하게 아파오는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가장 간편한 음식을 찾았다.
라면.
"······찾았다!"
"응? 뭔데?"
"라면."
"으음······."
채륜이는 뭔가 불편한 듯이 턱을 손으로 괴며 인상을 썼다.
"······왜? 라면 싫어?"
"아픈데 라면이라니······."
"······너 말이야······ 진짜 아픈거 맞아?"
"아,아파!! 아픈거 맞아!"
"으음······."
마치 아니라는 듯이 당장이라도 줘 팰거같은 채륜이의 모습에 나는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럼, 뭐 먹고싶은데? 그냥 시켜?"
"돈 없어. 아 좀 냉장고좀 뒤져봐!!"
"다 뒤져봤어! 라면밖에 먹을 거 없다니까!?"
"으음······ 배고프니까 그거라도 해."
"하아······ 알았어."
나는 냄비에 물을 받고 가스불을 켜 물을 끓였다.
"······근데, 넌 라면 못끓여?"
"지금은 아프니까······ 평소엔 잘끓여."
잼민이가 잘도 끓이겠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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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맛있겠다!"
냉장고에 딱 하나나온 계란까지 넣어서 맛있어 보이게 끓였다.
"잘먹겠습니다!!"
우리는 아주 맛있게 먹어댔다.
역시, 라면은 언제나 옳아.
······여자애 집에서 단둘이 라면······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드는건 기분탓인가···?
"근데, 부모님은 언제오셔?"
"으음······ 지금이······ 8시? 딱 이때쯤 오시겠는데?"
"그럼, 다먹고 바로 간다."
"에이······ 벌써?"
"부모님 오시면 가야지. 내가 오늘 하루를 너한테 다 줘버렸다고."
"우으······ 재밌었는데······."
"링피트를 니가 한 번 겪어봐라."
"난 몸이 연약해서 안된다~"
우리는 하하호호 떠들며 라면을 먹어댔다.
그때, 누군가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삑삑 눌렀다.
"엄만가?"
"자,잠깐만!?"
······잠깐만.
지금 만나면 안 되는데···?
시발 남자 여자 둘이서 같이 라면 먹고있으면 어떻게 보시겠어.
"다녀오셨어요!"
"그래. 몸은 좀 어때··· 넌 누구니···?"
"어······ 안녕하세요······ 얘 간병해준 박현준 입니다······."
"······."
······조졌다.
채륜이의 엄마는 나와 채륜이를 눈동자를 돌리며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얼굴에 의심된다는 말이 보인다······
짧은 침묵 끝에, 채륜이의 엄마가 입을 기꺼이 열었다.
"으음······ 우리 애 간병해줘서 고맙다."
"어······ 네······ 감사합니다······."
······다행히 간병해준 거라고 알아챈 모양이다.
"그럼······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애 간병해줘서 고맙다."
"별 말씀을······."
그때, 채륜이가 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늦었는데, 자고 가."
"늦긴 뭘 늦어. 8시인데. 잘 데는 있냐?"
"어······ 내 침대···?"
"잘있어라."
"······고자새끼."
"난 감기옳기 싫거든."
나는 인상을 쓴 채륜이의 얼굴을 뒤로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다음 날. 나는 독감에 걸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대에 죽은 듯이 눕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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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간병하는 게 아니였어.
나는 거의 3일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만 먹었다.
이 시발년. 도움되는 게 없어.
"안녕.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오랜만에 보는 정윤이의 얼굴이다.
······얘가 채륜이 간병해준거 알면 칼들겠지?
"오빠! 몸은 좀 어때···?"
"너 때문에 고생했다."
"헤헷. 미안······ 난 학원때문에."
"공부하는 게 싫냐 간병하면서 노는게 싫냐."
"오빠처럼 옮기 싫거든."
"······."
이 인성 줘터진 년이.
"오랜만. 아직도 아파?"
"안아프니까 온거지."
"오랜만에 온 선물이다. 먹어라."
"선물이 100원짜리 껌이냐?"
"이 부러운 새끼가 집에 박혀있을때도 여자랑 통화했냐?"
"부럽긴 뭐가 부러워. 갖고 놀려지는게 부럽냐?"
"난 그러고라도 싶다 야."
"하아······ 말을 말자."
"현준아! 밥먹으러가자!"
"응······."
"감기옳게 현준이한테 달라붙지 마."
"너나 달라붙지 마~"
"걸레는 민폐만 끼치···─."
"주나! 밥!"
"······."
이젠 일상이 된 서로의 신경전.
어차피 점심시간 외엔 안싸워서 누나가 만병 통치약이다.
"끝나고 영화보러 갈사람!"
"영화요?"
"피방가자고요!"
"학원이요."
"······."
밥먹는 와중에 누나가 수저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에이······ 아무도 없어? 신작인데······."
"돈 없어요."
"누나가 내준다!"
"피방가서 랭이나 돌리자구요!"
이것들은 돈이 뭐 어디에서 솟아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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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영화보러가자고······."
"에이 텃다텃어. 가자."
피씨방은 아직도 직원이 아픈지 문이 굳게 닫혀있다.
"가볼게요. 내일봐요."
"잠깐, 너 내가 빌려준 돈 갚아!"
"어······."
······맞다.
약사느라 돈 빌렸지.
난 용돈도 안 받아서 낼 수가 없는데······
어떡하지···?
나는 재빠르게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몰색했다.
"어······ 다음에 낼게요······."
"하!? 이자 하루에 1000원씩 붙는다."
"꼭 낼테니까 어떻게좀······."
"그럼, 나랑 영화보러 가자!"
"······."
······돈도 없는 나에겐 최선의 선택이 이것밖엔 없어서 묵묵히 따라갔다.
"오······."
누나와 좀 걷다 시내로 나와보니 커다란 영화관이 있었다.
히어로 영화···?
"음······ 오랜만에보네요."
"보고싶었는데 혼자 보기엔 좀 그래서······."
누나는 익숙한 듯이 팝콘 대용량 하나와 콜라 2잔을 사와 같이 올라갔다.
"진짜 오랜만에 와봐요. 몇년만?"
"영화는 잘 안봐?"
"어······ 그렇죠······."
애니 극장판을 본다고 하기엔 좀 그래서 대충 둘러댔다.
이 어두운 그림자가 공간 안에 가득 진 극장 안.
이 분위기를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다.
최근엔 볼만한 애니 극장판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 오니니나루요 빼곤.
잠시 후, 기나긴 광고가 끝나고 주변이 누나말곤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 지며 영화가 시작됐다.
······지금까진 나쁘지 않다.
전투씬이 볼만한 히어로 영화다.
cg에 돈쓴 티가 팍팍 난다.
나는 팝콘에 손을 스윽 가져다댔다.
"······!"
"······."
······서로의 손이 닿았다.
안 그래도 영화 자체가 어두워서 잘 안보이는데······
아까부터 계속 팝콘에 손을 가져갈 때마다 손이 닿는다.
······어색해 죽겠다.
오······ 나름 볼만하네.
어셈블.
소름이 쫙 돋는 영화다. 명작이네······
"끄아앗···!?"
"······!?"
······나는 한 순간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팝콘을 집으려 한 손이
누나의 협곡 사이의 두 산중 한쪽에 닿았다.
그것도 그냥 닿은게 아니라, 팝콘인줄 알고 아주 꽉 잡게되었다.
······산이라기엔 매우 푹신한, 쿠션같은 느낌의······
누나와 나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흐으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