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23
* * *
"자,자 얼른 벗어···!"
"야 이 씨발 뭐 해!!"
채륜이는 내 옷깃을 잡고 잡아올렸다. 나도 그에 맞춰 거세게 저항했다. 옷은 거의 찢어질 정도로 늘어났다.
"으아악! 내가 붙인다니까!! 넌 가만히 있어!"
"몸도 안움직이면서 뭔 엄살이야!! 벗어!!"
채륜이는 억지로 내 옷을 잡아올렸다.
아······ 씨발.
······결국 내 옷은 목에만 걸쳐졌다. 이년 앞에서 내 알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뭐 해 시발. 빨리 붙여."
"아,알았어······."
······채륜이는 한동안 멍때리며 머뭇거렸다. 귀신이라도 본 마냥 당황스러워했다. 애가 왜 이래.
"아··· 으하······."
"아니, 거기 말고!"
"으아··· 알았어······."
······채륜이는 계속 파스를 엉뚱한 데에 붙였다. 내 등을 만지는 손은 더듬거리며 제 곳을 못두었다.
"하,하나······."
"······목도."
"······."
"······목이라니까!"
······파스는 이미 등에 붙였잖아. 왜 계속 등을 만져대? 난 정말 이해 가 안 됐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목까지 다 붙였다.······채륜이는 볼이 빨개진 채로 시선이 이리저리 튕겨졌다.
"······너 또 어디 아프냐?"
"······에? 아,아니··· 안 아파······."
"······."
······나는 꺼림직한 기분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읏쌰···!"
"······."
나는 목에 걸친 옷에 팔을 올리려했다.
······그 때, 채륜이는 내 옷을 확 잡았다.
"······아, 또 뭐!?"
"너 손 안 닿을 테니까······ 입혀줄게!"
"하아······."
······채륜이는 내 옷을 잡고 천천히 내렸다······
······
······내려······
······안 내리고 뭐 해···?
"······야."
"······에,엣?"
"씨발 진짜."
······옷을 입히랬지. 누가 파스를 만지랬냐?
채륜이는 또 내 등을 더듬거리며 만졌다.
"내리라고···!"
"······."
나는 결국 팔을 억지로 움직여 옷을 내렸다. 아직 풀리지 않은 근육이 통증을 불러 온다.
"아야야······."
"그,그러게 내가 도와준다고······."
"······도와 주기나 했냐?"
우리는 반으로 걸어갔다. 뒤따라오는 채륜이는 계속해서 시선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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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응. 야, 밥 먹으러 가자."
"······어? 응······."
"······."
······쟤는 아까부터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날 볼 때마다 얼굴도 빨개지고······ 보건실은 쟤가 가야겠는데?
"······아픈덴 괜찮아?"
"응. 파스붙여서 좀 낫다."
"······그럼 다행히고."
······다행은 뭔 다행이야. 니가 준 베개때문에 이리됐고만.
우리는 소윤,누나랑 모여 급식실로 갔다.
"으아···! 티어 더 올렸다······."
"아야···! 때리지 마세요······."
누나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아직 낫지를 않아 뻐근한 근육이 요동쳤다.
"······에? 아파?"
"쟤 근육통이래요."
"아······ 미안······."
누나는 살며시 손바닥을 땠다.······채륜이는 평소와 다르게 식판만 바라보며 대화를 했다.
"헤헤··· 이거 봐 이거!"
"······뭐에요 그거···?"
"······."
······누나는 주머니에서 종이 여러 장을 꺼냈다. 종이는 화려한 색이 섞여 티켓같이 보였다.
"뭐, 색종이요?"
"아니아니! 오락실 티켓!!"
"······에?"
······오락실?
······피시방이면 될 것을 뭔 오락실···?
"언니, 그냥 랭겜 돌리자구요."
"그래서 이것도 묵혀두다 유효기간이 다 돼서······."
"저흰 안 가요."
"에? 정말?"
"학원때문에······."
"······나도 귀찮아."
"······현준아, 갈 거야?"
"글쎄······."
"가자가자!"
······누나는 더욱더 다가와 내 옆에 달라붙었다. 꽃같은 향기가 내 코를 스친다.
"아,알았어요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니에요······."
"헤헤··· 채륜! 너도 같이 가자!"
"어······ 그럼······."
······채륜이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번주말이야!"
누나는 또 내 근육통은 모르는 듯 신나게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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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쌰···!"
······요즘엔 시간이 정말 빠르게 느껴진다.
시간은 자기가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데. 맨날 놀아서 그런가? 소꿉친구 하나 만들겠다고 이 사단까지 와서······
위잉··· 위잉···
"야, 나와!! 학교앞으로!"
"하아······ 지급 갑니다."
나는 머리를 감고 나갈 준비를 했다.
······적어도 주말에는 좀 쉬고 싶은 데.
주말엔 다 나오니까······귀찮아죽겠다.
······
······응?
"아······."
"······."
······채륜이는 또 얼굴을 붉히고 나를 맞이했다.
"아,안녕······."
"어··· 응···."
······
······어색해···!
진짜로 어디에 머리 쌔게 박았나. 애가 완전 이상해졌다······
"······저기··· 혹시 무슨 일···─."
"안녕!!"
학교에 다 왔다 싶었을 때, 누나가 촐싹같이 달려 들었다. 채륜이는 그저 고개를 떨궜다.
"같이 왔네! 배 고프지? 뭐 먹으러 갈까?"
"······아무거나요."
"그럼, 따라와!"
누나는 우리 둘을 데리고 걸어갔다. 채륜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홀깃 쳐다봤다.
"흐음······ 뭐 먹을래?"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온 거라, 우리는 카페로 왔다. 조용한 데는 아니고, 적당히 사람이 있는 편.
"······전 애플파이요."
"그래! 그럼 너는?"
"······저도 애플파이요."
······채륜이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평소라면 신나하며 때렸을텐데, 요즘엔 볼이 상기된 채로 조용하다.
"와! 나왔다! 먹자!"
잠시 후, 접시에 담긴 음식들이 나왔다. 먹기도 전에 음식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맛있지? 맛있지? 여기 맛집이라고!"
한 입 베어물자, 입안에 사과향이 가득 퍼졌다. 바삭한 겉 표면이 이빨을 자극시켰다.
"······네. 꽤 맛있네요."
"······."
······이 맛있는 걸 먹는데도, 채륜이는 여전히 시선을 고정시켰다. 평소라면 '한입만!' 하면서 달려 들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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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장.
누나는 티켓으로 얻은 코인 여러개를 통에 담고왔다.
"자, 마음껏 쓰자!"
"······."
"······."
······오락실장은 처음인 데.
······리듬게임이나 할까?
"······채륜아, 넌 뭐 할래?"
"어······."
"······뭐야, 다 처음이야?"
"어······ 네."
"흐음······ 오락실장 국룰은 격겜이야! 따라와!"
누나는 우리 둘을 끌고 인파 속으로 향했다.
잠시 후, 자리를 잡았는지 우리는 오락기 앞에 앉았다. 반대편에는 누나가 앉았다.
"어······ 어떻게 시작해요···?"
"초록색 눌러!"
버튼을 누르자, [START!]가 뜨고 게임이 시작됐다.
"아니, 게임방법도 안 알려줘요?"
"감으로 잘해 봐!"
나는 버튼을 마구 눌러 허공에 주먹을 날렸다. 상대에겐 전혀 닿지 않는다.
"좀 더 가까이 와서 해 보라고!"
"으으···!"
나는 좀 더 다가가서 주먹질을 했다.
"······으아?"
······내 캐릭터는 붙잡혀 내던져졌다. 물 흐르는 듯한 콤보공격으로 시원한 타격감이 들렸다.
[GAME OVER]
"아니, 이런게 어딨어요?"
"모르면 맞아야지!"
"······."
······이게 뭔 양학이냐.
"······한판 더!"
"······야, 저기 봤어?"
"뭘?"
"저기 격겜말야. 존나 재밌다니깐?"
"······아니 씨발 쟤들 티켓이냐? 얼마나 오래 쳐하는 거야. 매너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게 아니라, 한 번 가서 봐바."
그들은 화면 앞으로 다가갔다.
타다다다다다닥!
금발의 여자는 즐겁듯이, 잼민이들은 화가 난 듯 오락기를 거세게 두들긴다. 조이스틱은 마치 끊어질 기세였다.
예민이는 현란한 공중콤보로 현준이를 농락했다. 현준이는 그저 약공만 날릴 뿐이었다.
[WIN!]
[LOSE]
"······뭐야 저거?"
그들이 본 콤보는 보통의 콤보가 아니었다. 난생처음 본. 여러 콤보들을 응용하여 직접 콤보를 만든 것이었다.
"으아아악! 좆같아!! 이게 양학이 아니면 뭐야? 채륜아, 니가 해라."
초보처럼 보이는 애는 멘탈이 갈린 듯 교대했다.
"초보랑 고수랑 뜨게 하네. 멘탈 존나 갈릴 걸?"
탁 탁 탁.
······현란한 콤보들이 모두 발차기 한 방에 캔슬됐다. 콤보의 시초들을 모두 외운 듯. 빨간 머리의 여자는 오직 기본기 만으로 상대했다.
곧이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WIN!]
[LOSE]
"와 씨발 저거 뭐냐?"
그들은 무의식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본 광경은 고수가 난생처음 보는 콤보를 선보이고, 초보자가 패턴을 파악해서 캔슬시킨 것. 관중들은 점점 더 텐션이 높아졌다.
"······어떻게 이겼냐?"
"피지컬."
예민이는 짜증이 난 듯 인상을 찌푸리며 게임에 임했다.
서로가 먼저 공격을 하면 콤보가 모두 캔슬됐다. 관중들은 콤보가 먹힐 때마다 환호를 내질렀다.
"저게 말이 되냐?"
"와아아아아아!"
막상막하였다. 콤보를 때리다 역으로 당하고, 역전의 역전경기를 보여줬다. 오락실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그 둘의 몇 시간 동안 이어진 독차지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관중들도 지친 듯 이젠 거의 다 빠져나갔다. 예민이와 채륜이도 캔슬만 시킬 뿐, 현란한 공격은 보여주지 못했다.
"으아아······ 머리아파······."
"아니, 몇 시간을 한 거야? 배고픈데, 이제 가자."
"마지막으로 한판 더······."
"관중들도 다 갔어요. 돌아가요."
"으으······."
우리는 오락실장 밖으로 나왔다. 둘은 어지러운 듯 휘청거리며 내 어깨에 기대었다.
"이야······ 근데 잘하네. 넌 처음인 데,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
"피······지······컬······."
"시바알······."
······오길 잘했다.
채륜이는 활기를 다시 찾은 듯 활발해 보인다. 하도 힘을 써서 그런가.
"우음······ 현준아······."
"응?"
"물어볼 거······ 있어······."
······채륜이가 입술을 연신 핥고 말했다.
"우응······."
"······?"
······순간, 내 옷깃이 들춰지고, 복부에 손길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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