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26
* * *
"으으······."
"······."
······하고 싶다.
······키스 갈기고 싶다.
······이건 그냥 갈기는 자세 아니냐?
······나는 몸을 좀 더 앞으로 숙였다.
"흐아아······."
"······."
······심장이 쿵쿵 뛰었다.
서로에게 다 들릴 듯 요동쳤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소유···─"
"으아악···! 피 나요 피!!"
"······?"
······팔에서 핏줄기가 주륵주륵 흘렀다. 할퀸 세 갈래의 상처에선 핏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으아악!! 휴지 가져올 게요···!"
"······."
······따가워.
······겨우 정신 차렸네.
잼민이 강간 할 뻔했다······
······역시 사람은 아파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소윤이는 티슈를 스윽 뽑아 내 피를 닦아줬다.
"흐으······ 죄송해요······ 발톱 깎아놨어야 했는데······."
"아냐······ 내가 괜히 만져서······."
"발톱 계속 안깎다가······ 진짜 죄송해요······."
"괜찮다니까······."
화장실로 가서 물로 상처를 씻겼다.
······꽤나 깊게 파였다.
······물이 스칠 때마다, 쓰라린 고통이 밀려온다.
"아프죠···? 죄송해요······."
"······이 정돈 참을 만 해."
소윤이는 연고를 꺼내 발라줬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상처에 스쳤다.
······고통보다 배덕감이 더 커서, 고통이 느껴지진 않는다.
······더 느끼고 싶다.
"이젠 괜찮으세요···?"
"응. 고마워."
"제가 잘못 한 건데······."
소윤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야옹······."
"왜 그랬어 이 놈아."
고양이는 사과하듯이 내게 다가왔다.
나는 고양이를 들고 꿀밤을 먹였다.
"야옹······."
"헤헤··· 발톱 깎아줘야겠네요."
방으로 돌아가서, 소윤이는 발톱을 짤깍짤깍 잘랐다.
소윤이는 다행히 기분이 풀린 듯했다.
나는 사뿐히 침대 위에 앉았다.
"헤헤··· 기분 좋아?"
"야옹."
······정신이 나갈 뻔했지만.
······별 일은 없었으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좀 아쉬운 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이미 밖은 완전히 밤이었다.
달빛만이 흐릿하게 도로 위를 비쳤다.
"······너무 늦었네.그럼, 이만 가 볼게."
"네······ 조심히 돌아가세요······ 죄송해요······."
······소윤이는 아쉬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밖에서 차가운 공기가 상처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따뜻했다.
────────────────
"으아앙···! 나 중학교 가기 싫어······."
"잠깐···! 학생회장이란 게 이러면 어떡해요···!"
······시간 참 빠르다.
여자 만들다가 더워지고, 추워지고.
가만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지.
내가 이때로 돌아왔다는 게······
"방학이다~"
"중학교 가는 데 니들을 어떻게 만나라고······."
"1년 만 참아요 언니. 매일 피방 갈 테니까."
······잠만, 뭐?
"얼른 연설하러 가세요."
"으아앙······."
우여곡절 끝에, 누나는 무대 위로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았다.
"모두 한 살을 먹었어요··· 항상 부모님을 위해서······."
······진짜 하기 싫어보여.
······어차피, 다들 귀담이 듣진 않지만.
"끝났다······."
"피방가자!"
"······."
······나는 죄인처럼 붙잡혀 끌려갔다.
chaeryun111(야스오): 티모탈진 준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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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아악!! 씹새꺄!! 왜 안 써!?"
"방금까지 쿨이었어 씨발!!"
"······."
살······려······줘······
설마 방학인 데······ 맨날 만나서 하는 건 아니지···?
"승급이다!"
"으헉······ 으헉······."
"······."
이 미친 새끼들······
몇 시간 동안 쳐하는 거야······
더는 못 버텨······
"······나 갈래."
"누나 승급전 남았거든?"
"으아악···!"
"······."
······완전히 붙잡혔다.
하아······ 저녁까지 하면 풀려나겠···
"갈게요. 가자."
"으와앗···!"
"으갸악!! 가긴 어딜 가!!"
······정윤이가 내 팔을 잡고 확 끌었다. 다친 상처가 낫질 않아 살짝 따가웠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소리가 점점 작아 졌다.
"······이 정도 했으면, 쉴만하지."
"······응."
······데자뷰? 느껴본 적 있어?
······이번에도 정윤이가 구해줬다.
이건 분명 여신이야.
"담에 봐."
"······응."
······그늘진 뒷 모습이 더욱 밝게 빛나보였다.
차가운 한기가 내 숨을 시체로 만들었다.
······이불 밖은 위험해.
방학이니까, 시달리지 말고 제대로 쉬어보자.
────────────────
"······나가."
"심심해······."
······시달리지 않는다.
내 소중한 겨울방학의 계획······
······인생이란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뇌 속에서 화살 같이 스쳤다.
"아니, 왜 하필 우리 집?"
"······혼자 있으면 심심해."
······정윤이는 침대에서 책을 머리 위에 올렸다.
"넌 심심하지도 않아? 대화상대도 없는데······."
"······오히려 좋은데."
······소심한 나에게 대화는 질색이다.
"얘들아 과일 먹어라~"
"와아! 감사합니다!"
엄마는 접시에 귤을 담아서 왔다.
정윤이는 껍질을 돌돌 돌려서 스윽 깠다.
조그만 귤 조각이 입속에서 찍 하며 소리를 냈다.
"우음··· 근데, 방학 때 어디 갈 거야?"
"······안 가."
정윤이는 가발을 빙글 돌리며 입을 움직였다.
"서점이라도······."
"안 가."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추운 날에, 밖에 나가긴 싫었다.
위잉··· 위잉···
"······뭐야, 연락 올 사람이 있나?"
"······."
책상 위가 진동으로 떨렸다.
······한소윤? 얘가 왜?
나는 핸드폰을 집어서 꾹 눌렀다.
"여보세요."
"오빠, 부탁하나만 해도 돼?"
"어······ 뭔데?"
"우리가 할머니집에 가는 데, 우리 냥이 좀 돌봐줘."
"······에?"
폰에서 울린 음성은, 나를 의아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느새 정윤이는 살금 다가와 폰을 째려봤다.
"채,채륜이한테 해달라고 해. 가깝잖아."
"냥이가 언니만 보면 발악을 해요."
"······."
······나한테도 발악 하는데?
"진짜 이틀이면 되니까······ 어떻게 좀 안 될까요?"
"그냥 니가 데리고 가."
"할머니가 고양이 싫어하셔요."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정윤이의 앞머리가 눈에 그늘을 지었다.
"아,알았어. 지금 데리고 가?"
"네! 사료도 드릴게요!"
뚝─
화면이 어두워졌다.
······정윤이의 눈도 어두워졌다.
인상을 쓰고 폰을 따갑게 째려봤다······
"누구야?"
"어······ 한소윤."
"걔가 왜?"
"고양이 맡아달래."
"······."
······정윤이는 기울인 몸을 다시 당겼다.
"······갔다 와."
"······."
나는 문을 열고 차가운 신발에 발을 담갔다.
밖은 손이 바로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추웠다.
"······씨발년."
방 안에서 서리깊은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녀의 책을 쥔 악력이 갈수록 강해졌다.
뚝─
책등이 구부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
"아오 좆같은 얀데레. 뭔 현실 얀데레야."
추운 날씨로 신경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띵동─
"고마워요!"
"야옹."
문 뒤에서 고양이와 소윤이가 반겨줬다.
따뜻한 집 안의 공기가 나를 확 덮었다.
소윤이는 사료 한 봉지를 건넸다.
"세끼로. 잘 부탁해요! 궁금한 거 있으면 톡하고! 매일 산책!"
"야옹."
나는 고양이를 안고 발을 옮겼다.
부드러운 털이 가슴을 문질러 따뜻했다.
"너, 또 도망가지 마라?"
"야옹."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다녀왔어."
"어머, 웬 고양이래?"
"맡겨달라 해서 데려왔어."
나는 엄마에게 사료를 건넸다.
"······안 갔네?"
"내가 순순히 갈 줄 알아?"
"야옹······."
······고양이는 내 발목 뒤로 숨었다.
······처음 봐서 무서운가.
"얘가 데려온 고양이. 어때?"
"······그저 그래."
"야옹······."
방 안으로 들어오자, 고양이는 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좀······ 쌀쌀한데? 난방을 좀 틀까······."
······이상하게, 주변에 한기가 맴돌았다. 아깐 안 그랬는데······
"이리 와. 거기 계속 서 있게?"
"야옹······."
"읏쌰···!"
나는 고양이를 안고 침대에 앉았다.
"만져봐. 얌전해."
"야옹······."
"······."
정윤이는 고양이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고양이는 멀뚱히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자, 안아봐. 푹신해."
"······."
정윤이는 거칠게 확 잡아 무릎위에 앉혔다.
"먀아······."
······고양이는 꼬리를 바짝 세웠다.
털은 삐죽하게 뻗쳐 까칠한 느낌을 줬다.
"······아 맞다. 산책도 시켜야 하는데."
"······산책?"
······정윤이는 내 이마에 초점을 맞췄다.
"나갈 거야?"
"어······ 아마도?"
"같이 가자."
"······."
······이렇게 추운데, 왜 이리 나가는 걸 좋아해.
────────────────
"으으······ 추워······."
"야옹."
"넌 털 많어서 좋겠다······."
정윤이는 털 후드티를 온몸에 감쌌다.
"나오니까 좋아."
"추운데 좋긴 뭐가좋아······."
"추워서 좋은데."
정윤이는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고정했다.
붉은 눈가가 따뜻한 듯 이글거렸다.
"여기가 산책로야?"
"응."
우리는 시내의 공원으로 왔다.
분수대의 물은 꽝꽝 얼어 주변에 고드름을 매달았다.
"야옹."
"그래. 너 땜에 고생했던 데다."
······여기서 개지랄을 했지.
마땅한 산책로가 이곳밖엔 없었다.
"······야옹!"
"······야, 너 또 어디가···!"
······씨발 저거 또 도망친다.
"야옹!"
"우와앗···!"
고양이는 붉은 머리칼의 아이한테 달려들었다.
고양이는 발목에 달라붙었다.
"죄송합니다······애를 못 잡아서······ 어?"
"······여기서 뭐 해?"
······붉은 머리칼의 아이는 채륜이였다.
채륜이는 어묵을 입에 문 채 목도리를 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