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27
* * *
"야~옹."
"······얘 냥이 아냐? 얘가 왜······."
"······잠시동안 내가 맡는다."
"······것보다 얘좀 때줄래···?"
나는 고양이를 홱 안았다.
떨어지는게 싫은지 앞발을 계속 버둥댔다.
"너 엄청 좋아하나보네."
"······얘가 나만보면 지랄하는데?"
"······."
······순간, 뒤에서 쌀쌀한 기운이 덮쳤다.
······동물도 지랄을 하네.
"······근데, 너는 왜 있어?"
"산책가는 김에 현준이랑 나왔지."
"으음······."
채륜이는 턱에 손을 괴었다.
"······냥이랑 산책? 좋은데가 있긴 한데······."
"응? 어딘데?"
"저기."
······채륜이는 팔을 힘껏 펴 가리켰다.
······저게 뭐야···?
"······동물원?"
"응. 고양이랑 가면 재밌어."
"······동물을 동물원에···?"
"응. 소윤이랑 갔을때 재밌었어."
"야옹."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래 뭐······ 그냥 걷기도 심심하니까."
우리는 상가쪽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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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네요? 여기 선물이요."
"감사합니다!"
안내원이 츄르 한 포를 건네줬다.
우리는 스윽 뜯어서 고양이 입에 가져갔다.
낼름거리는 혀가 손끝을 자극했다.
"먀아~"
"이렇게 안아본 건 처음이네······."
"······평소엔 어떻길래 그래?"
"나만보면 경계하고, 손만 갖다대면 물고······."
"······."
뭔 짓을 했길래······
나는 뒷목을 문질렀다.
"이,이상하게 보지 마! 난 아무짓도 안했어······."
"야옹."
고양이는 혀를 낼름거리며 봉투를 핥았다.
츄르를 다 먹인 후, 우리는 코스를 따라 걸어갔다.
"캬아앙!"
"······."
"······."
눈 앞에 유리상자가 보였다. 우리의 키를 넘길 정도로 크기가 컸다.
안에는 원숭이 여러마리가 있었다.
근데······
······고양이가 발작을 일으켰다.
유리벽에 발톱을 세워 끼이익 긁고 있었다.
"야야야! 이거 망가지면 물어내야돼···!"
나는 재빨리 고양이를 안았다.
안에 있던 원숭이들이 멀뚱멀뚱 쳐다봤다.
다행히 유리벽에 기스는 안났다.
······얘 또 이거 발톱 안깎았지?
"야, 얘 원래 이러냐?"
"딴 동물 보면 가끔······."
"근데 왜 이딴데를 추천해?"
"······이런 게 재밌거든."
"······."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오··· 뱀이다."
이번 유리벽 안에는 뱀이 들어있었다.
······길어서 딱 고양이가 좋아할만한······
"야옹······."
"······."
······다행이다.
미리 정윤이한테 안겨 꼼짝 못하고 있다.
"······이번엔 조용하네."
"······그러게."
"야옹······."
정윤이는 슬쩍 손을 올려 고양이 귀를 쓰다듬었다.
"······오. 물고기."
"캬아아앙!!"
"······."
······물고기 앞에선 정윤이도 어림없었다.
고양이는 물고기를 보고 바로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어."
"먀아······."
"······."
······정윤이는 꼬리를 확 잡았다.
고양이는 동작을 멈추고 유리벽을 빤히 바라봤다.
······좀 불쌍한데?
우리는 여러 소형 동물들을 관람했다.
새,다람쥐,새끼판다······
얌전해진 고양이는 더듬이만을 살랑거렸다.
"이게 아마 마지막 코스일걸?"
"오······."
······아마 상가 내에선 이 정도가 한계.
엄청 큰 유리벽 안에는 악어 한 마리가 있었다.
은은한 조명빛이 비늘을 뚜렷하게 비췄다.
"먹이 해 볼래?"
"먹이···?"
채륜이는 익숙한 듯 자판기를 가리켰다.
'악어에게 먹이주기.'
······우리는 500원을 꺼내 집어넣었다.
잠시 후, 종이컵에 고기 몇조각이 떨어졌다.
"여기 구멍 안에 넣으면 돼."
우리는 먹이를 안에 집어넣었다.
악어는 순식간에 달려들어 덥석 물었다.
입은 바쁘게 움직이며 먹이를 잘근잘근 씹었다.
"오······ 신기하다. 정윤아, 너도 해 봐."
"······."
정윤이와 나는 계속 먹이를 집어넣었다.
"이거, 고양이한테 주면 괜찮을······."
"······어라?"
······어디 갔어···?
우리가 내려본 바닥은 먼지하나 없이 텅 비었다.
······야이 씨발.
"이새끼 또 사라졌잖아!!!"
"······미안. 계속 들고있어야 했는데······."
"냅둬~ 어차피 안내원이 잡아서 방송해줄거야~"
······채륜이는 익숙한 듯 머리를 뱅뱅 돌렸다.
"아니, 밖으로 나가면 어쩔려고?"
"알아서 찾아보던가. 금방 찾을걸? 잠깐 화장실좀."
······채륜이는 화장실로 걸어갔다.
저걸 진짜······.
"난 여기로 가 볼게."
"응······."
나는 재빨리 뛰어갔다.
5분동안 코스를 모두 돌아다녔다.
근데······
안 보인다.
아니, 금방 찾는다며?
나는 다시 악어 앞으로 돌아왔다.
"꺄아악!!"
"······어?"
고요한 복도에 비명소리가 울렸다.
······이채륜?
······틀림없다. 이 목소리는 분명 이채륜이다.
근데······여자 화장실인데······
······성폭행범이 들어갔거나 하면 어쩔려고?
······내면의 정의감이 이끌었을까.
나는 곧바로 화장실 안에 들어갔다.
"뭐야 씨발!!"
"야옹."
"······."
······찾았다.
고양이는 여자 화장실 안에 있었다.
······화장실 안의 변기, 채륜이의 무릎 위.
······아직 채륜이는 마치질 않았다.
그녀의 발목엔 분홍색의 팬티가 걸쳐있었다.
"어······ 자,잠깐······."
"······나가···!"
"미야아!!"
"으아악!!"
······채륜이는 저 광경을 못 보게 하는 안대 대신에.
고양이를 던졌다.
······나는 고양이를 뒤집어 쓴 채 밖으로 나왔다.
"······너 뭐해?"
"어······ 고양이가 안에 있더라고······."
"······."
······밖에선 정윤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변태같다는 듯 눈을 찌푸리고 응시했다······
"이 씨발 너 돌아다니지좀 마!!"
"먀.먀.먀.먀.먀."
나는 고양이를 잡고 흔들었다.
잠시 후, 안에서 채륜이가 나왔다.
"······."
"으으······ 변태들······."
"······."
"먀아······."
······나와 고양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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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에 봐."
"어······."
"먀아."
날이 저문 거리에서 정윤이는 돌아갔다.
바닥만이 훤한 길에서 채륜이와 나만 남았다.
"그르릉······."
······그래. 너도 있지.
······아까 전의 사고 때문에 좀 어색하다.
······따지고 보면 다 얘 때문이잖아······
"······고양이 줘봐."
"······응?"
채륜이는 긴 침묵을 깨고, 기꺼이 입이 열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양이를 건넸다.
"캬아앙!!"
"······."
"으와앗···! 너 이새꺄 하지 말라고!!"
채륜이의 다가오는 손을 고양이가 발톱을 세워 걷어냈다.
채륜이는 익숙한 듯 차분하게 손을 땠다.
"얘가 원래는 이런단 말야······."
"······응?"
"으음······ 신정윤 때문인가······."
채륜이는 목도리를 가다듬었다.
"······헤헷, 둘다 변태야······."
"미안······."
"뭐, 얘 때문이긴 하지만······."
······다행히 채륜이의 기분은 풀린 듯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햇빛 없는 쌀쌀한 기온이 입김에 안개를 더했다.
"그럼, 담에 보자."
"응······."
채륜이는 텅 빈 골목으로 들어갔다.
쓸쓸히 남은 나는 따뜻한 털을 느끼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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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인.
병 따위로 몸을 망친 사람.
쓸모없이 된 사람.
······방학의 평범한 학생이다.
밤 새고 저녁에 일어나는 패턴.
매일매일 애니시청.
내 눈에는 2D캐릭터 만이 아른거렸다.
위잉··· 위잉···
"뭐야······ 지금이 제일 재밌을 때 인데······."
나한테 올 게 뭐가 있다고······
고양이도 돌려주고, 더이상 정윤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남은 방학기간 1주일.
최대한 밤 새면서 2D캐릭터를 눈에 담았다.
"여보세요······."
"오랜만!"
"또 왜요······."
폰의 스피커에선,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왔다.
오랜만에 듣는 누나의 목소리다.
"나 중학교다······."
"······벌써 방학이 끝나요?"
"그게 아니라······ 예비소집 와서······."
"······."
······인정한다.
왜 귀찮게 쳐부르는 지.
예비소집은 존나 좆같은 날이지.
"······그래서, 어땠어요?"
"그냥 피곤하다······."
"그래요. 그럼······."
"잠깐, 이왕 나왔으니까······."
누나는 살짝 뜸을 들였다.
"······나 교복 맞추러 가야되거든? 혹시, 지금 가능?"
"싫어요."
······이 추운 날에 뭔 밖.
아직 방학은 남아있다.
마지막 불씨를 지피우자.
"진짜 한 번만······ 혼자 가기도 쪽팔리고······."
"······."
······뭔가 공감된다.
내가 교복 맞췄을 때, 여러명 앞에서 입고 나오고 입고 나오고······
······연민이 깃들었을까. 나는 이 요청을 수락해버렸다.
"그래! 내가 니 집으로 간다!"
"네······ 뭐요?"
뚝─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아···?
······내 뇌속에 빨간 머리가 스쳤다.
······시발.
────────────────
똑똑─
"어서오세···"
"오랜만!!"
"으읍······."
······오랜만이다. 이 포응.
애니로 기른 망상만으로 느꼈지.
"으으······교복 싫은데······."
"······저도 나오기 싫어요."
하늘에선 눈이 사르르 내렸다.
주변은 온통 밀가루가 터진 것처럼 하얗다.
입에선 서리깃든 수증기가 쌔하게 나왔다.
나는 누나의 뒤를 따라갔다.
서로의 사유가진 무거운 발걸음이 눈을 뽀득뽀득 밞았다.
"으하······."
누나는 상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간판은 눈에 뒤덮혀 흐릿한 불빛을 비췄다.
"자, 드가자~"
나는 놀릴 생각에 깡총깡총 걸어갔다.
"어서오세요. 교복 맞추러 오셨나요?"
"네······."
"네. 잠시 치수좀 재겠습니다."
누나의 몸에 줄자가 칭칭 감겼다.
가슴, 허리······
······
······가슴?
······그녀의 마음은 줄자에 꾹꾹 눌려 터질 듯 했다.
······볼 만 하네.
"으으······."
"······."
"네. 다 됐습니다."
······안내원은 쌔한 표정으로 옷을 뒤적였다.
"으음······ 고객님. 허리는 얇으신데······ 가슴 때문에 좀 큰 치수를 입으셔야겠어요."
"아."
"······푸흡."
······내 폐에 모여있던 공기가, 말 한 마디에 팡 터져나왔다.
"일단······ 라지부터 입어보죠······."
"네······."
누나는 옷을 건네받고 탈의실로 걸어갔다.
나는 낄낄대며 누나의 뒤를 쫒았다.
"······야, 웃지좀 마···!"
"가슴이 커서 라지······ 으하핫···!"
"······."
······왜 그리 울상이야.
그런 거 축복받은 거라고.
남자들이 얼마나 환장하는데.
"으으······허리는 얇다고?"
"알았어요 알았어. 얼른 갈아입고 나와요~"
누나는 문을 철컥 열며 들어갔다.
안에선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야, 거기에 넥타이 없어?"
"넥타이······ 여깄어요."
나는 바닥에 놓여있던 넥타이를 잡았다.
"그거 좀 잡아서···."
철컥─
"흐익······."
"······아······."
······내가 왜 그랬을 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