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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에 미친놈-31화 (31/39)

〈 31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30

* * *

다이빙 자세를 잡고 쏙 빠졌다.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옷소매가 쭉 늘어났다.

"으갸악!! 씨발!!"

"우와앗···!"

"······풉."

소윤이는 소파에 누워 피식 웃었다.

고양이는 위로 꼬리를 쭉 내밀었다.

채륜이의 옷주름이 펄럭였다.

"자,잠깐···! 그건······."

"야옹!"

"지랄말고 빨리 꺼내···─"

나는 말을 이어가다 멈췄다.

채륜이는 우물쭈물대며 손을 웅크렸다.

두 볼짝은 어느새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먀아~"

"으읏···!갸아악!!"

"······에?"

긴 사투 끝에, 고양이가 옷소매 아래로 빠져나왔다.

고양이는 입에 분홍색 속옷을 물고 있었다······

"으하악!! 돌려줘!!"

"먀아!"

"······이걸 왜 나한테 줘?"

고양이는 촐싹 뛰어와 내 손에 건넸다.

까끌한 속옷무늬가 손등을 문질렀다.

······땀이 뭍어서 뒷끈이 축축했다.

"내놔!!"

"여기."

"흐하핫, 냥이가 좋아하나 봐요~"

"야옹."

소윤이는 고양이를 안았다.

채륜이는 속옷을 홱 채갔다.

······근데 보통 지금부터 차나···?

채륜이는 복도로 걸어갔다.

"흐흐··· 잘했다 잘했어~"

"······."

······소윤이는 칭찬하듯 고양이 이마를 쓰다듬었다.

"빨리 와서 돌려요! 템 만들려면 멀었어요."

"······응."

나는 소윤이 옆에 앉아 게임기를 들었다.

"저거 머리 부위파괴!"

소윤이는 버튼을 꾹꾹 눌렀다.

소윤이는 머리를 집중적으로 때렸다.

"야옹~"

"······여기 오지 마."

"이리 온."

소윤이가 혀를 짧게 쳐 고양이를 불렀다.

고양이는 무릎 위에 앉아 머리를 숙으렸다.

우리는 계속 몬스터를 팼다.

포획 할 때까지.

"······채륜 얜 왜 이리 늦어?"

"흐응······ 글쎄요?"

······소윤이는 내 옆에 더욱 다가왔다.

고양이의 더듬이가 무릎에 스칠 정도로 가까웠다.

"꼬리 저거저거!"

"어······."

······어느새 소윤이는 내 팔장을 꼈다.

고개를 내 어깨에 기대고 조이스틱을 돌렸다.

"흐흐······ 잡았다!"

"······."

우리는 누운 몬스터를 포획했다.

미션이 끝났다.

······하지만 이 자세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좀 떨어져줄···─."

"흐흐······ 춥다구요~"

"냐앙~"

······이젠 고양이까지 가세했다.

고양이는 코를 내 무릎에 비볐다.

"야 소윤, 니 엄마 브라 써도 되지?"

"미쳤어? 왜?"

"아니, 또 커져서 안 맞아······."

채륜이가 방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어딘가 불편한 듯 가슴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오······ 깼네?"

"헤헤······ 오빠 잘해!"

"야옹."

내 팔을 감싼 소윤이의 압력이 세졌다.

압력은 내 팔에 쌓인 피로를 풀어줬다.

······채륜이는 우리를 언짢게 내려다봤다.

띵동─

그때, 인터폰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치킨 왔다!"

채륜이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채륜이가 흰 봉지를 들고왔다.

"와하! 맛있겠다! 언니 감사!"

"내 생일이니까, 먹어!"

"냐앙!"

우리는 곧바로 조각을 집어 뜯어먹었다.

다 같이 잘 먹어서, 많이 먹는다는 부담감은 못 느꼈다.

"냐앙!"

"너도 먹을래?"

소윤이는 살점을 작게 뜯어 고양이에게 줬다.

고양이는 입을 부지런히 움직여 씹었다.

"맛있다! 그죠 오빠?"

"어······ 어? 그,그래······."

살점을 씹고 있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날개랑 다리가 안 보여······

나는 두 사람의 접시를 봤다.

······아니나다를까. 다리뼈와 날개뼈가 서로 각각 1개씩 있었다.

······시발.

채륜이는 몰라도 소윤 넌 날개라도 줘야지······

이렇게 말 못 하고 나는 묵묵히 조각을 씹었다······

······괜히 분위기 흘리긴 싫으니까.

────────────────

"으으······."

아침을 맞이하는 추위에 나는 기지개를 폈다.

창밖 하늘은 구름이 햇빛을 감쌌다.

나는 준비를 하고 현관을 열었다.

햇빛없이 더욱 차가워진 바닥에 발을 디뎠다.

"어우, 추워······."

강한 추위에 치아가 바들바들 떨렸다.

"아이 씨 빨리 들어가야지."

나는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열을 냈다.

빠른 걸음은 더 일찍 학교정문에 오게 해 줬다.

사람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아니, 아무도 안보인다.

······잘못 봤네. 1명 있다.

나는 모래운동장에 다가갔다.

······그때, 누군가 내게 소리쳤다.

"야! 오늘 개교기념일이래."

"······뭐?"

······내 뇌에 벼락이 쳤다.

······언제 그딴소릴 했지? 알려 주지도 않았잖아.

나는 소리가 들린 곳에 시선을 돌렸다.

"······에?"

"······괜히 나왔어."

······생각지도 못한 애가 서 있었다.

채륜이는 목도리를 빙빙 돌렸다.

"으으······ 추워······내일 봐."

"······잠깐만······."

채륜이가 뒤돌은 내 손을 홱 잡았다.

채륜이의 차갑게 데워진 손바닥이 오싹했다.

"오락실 상품권 있는데······ 나온김에 같이 갈래?"

"싫어. 내일 봐."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나온김에는 인정하는데. 이 추운날엔 당장 집에 가서 자고 싶었다.

"······생일선물도 안준 게 내 말도 안 따르겠다?"

"······뭐?"

채륜이는 우스운 말투로 말했다.

"니가 날짜도 안 알려 주곤···─."

"하!? 적어도 생일축하한단 말은 해야지."

"생축이라고 했···─."

"으흐으······ 나한텐 관심도 없고······."

"······자,잠깐···?"

······채륜이는 갑자기 울먹였다. 채륜이의 말끝이 흐려졌다.

눈망울엔 수분이 차 반짝거렸다.

······나도 즙엔 어림없구나.

나는 재빨리 수습했다.

"아,알았으니까······ 즙좀 그만 짜!!"

"흐흐······."

채륜이는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끌고 갔다.

어둡고 추운 거리는 바닥도 얼어붙게 했다.

────────────────

"으햐악!"

채륜이가 오락기를 탁탁 두들겼다.

"또 뒤졌어······."

"······."

우리는 상품권으로 코인뭉치를 받았다.

채륜이는 먼저 골드슬러그를 잡았다.

"······격겜이나 하러 가자."

"······그럴까?"

채륜이는 내 요청을 흔쾌히 받았다.

우리는 격겜장으로 갔다.

"이거 느낌 지려!"

채륜이가 오락기의 조이스틱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는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건너편에서 괴랄한 소음이 들렸다.

그 소음에 맞춰 캐릭터는 현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벽에 다가가 장풍을 날렸다.

팍팍팍팍팍팍팍팍팍팍!

"으갸악!!"

······건너편에서 괴성과 함께 샷건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채륜이가 내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제대로 해 씨바알!!"

"아,알았어 알았어···!"

채륜이는 내 목을 꽉 잡았다.

식도가 조여 순간 숨이 안 쉬어졌다.

저 미친 폭력배가······

이번에는 가까이서 제대로 연타를 때렸다.

채륜이는 내 연타에 맞춰 주먹을 한대씩 날렸다.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나는 오락기를 빠르게 두들겼다.

뭔 키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두들겼다.

팍팍팍팍팍팍팍팍팍팍!

······건너편에서도 신나게 두들겼다.

화면의 캐릭터는 여러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공격이 맞지도 않았다. 타격감도 안 들렸다.

[타임오버!]

······이겼다.

다행이 채력은 내가 좀 더 많았다.

팍!!

······샷건이 좀 크네···?

나는 채륜이에게 다가갔다.

"으흐으······ 시바알······."

"······지지."

"······."

채륜이는 날 멀뚱멀뚱 쳐다봤다.

눈망울엔 물기가 충분히 적셨다.

────────────────

"어우, 어째 더 춥냐······."

"······."

나는 팔을 꼬아 양 옆구리를 매만졌다.

······채륜이는 내 시선을 회피했다.

······완전히 삐졌네.

"······간다?"

"흥."

"······."

······지가 못해 놓곤······

꼬르륵─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아주 많이 들어 본.

다들 한번씩 경험해 본.

······채륜이는 시선을 땅에 박았다. 그리고 복부를 주먹으로 꾹꾹 눌렀다.

······가능?

어차피 내일되면 평소대로 돌아 올 거지만.

······나는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야, 저거."

"······응?"

나는 건너편 상가 식당을 가리켰다.

'돈까스 5000원.'

······내 지갑엔 1만원 지폐 1장이 있었다.

"나온김에. 먹을래?"

"돈 없어······."

"내가 낸다고."

"······응?"

"······생선 대신."

······채륜이의 발이 어느새 나를 향해 있다.

채륜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

채륜이가 밝게 미소 짓고 말했다.

우리는 건너편 상가로 갔다.

햇빛은 여전히 우릴 비추지 않았다.

"냐암······."

채륜이는 돈까스 한 덩이를 포크로 찍어 씹었다.

채륜이가 통으로 이빨을 넣을 때마다 바삭한 소리가 들렸다.

입가엔 소스가 잔뜩 묻었다.

나도 조각을 썰어 입에 넣었다.

이빨이 살점을 수직으로 누를 때마다 육즘이 흘러나왔다.

······싼데 맛있다.

오길 잘했다.

"······가성비 굿."

"우웅···!"

채륜이는 입속에 조각을 넣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두 볼 때기가 빵빵해져 귀여웠다.

"꺼억─ 배불러······."

채륜이는 짧게 트림을 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우리의 장은 음식물로 꽉 찼다.

"하암··· 이제 계산하···─."

쏴아아···─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며 귀를 긁어 내는 ASMR같은 소리.

······창밖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빗방울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컸다.

"······어라···?"

"······소나기겠지."

채륜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배도 찬 겸 우리는 한동안 앉아 있었다.

"······언제 그치지···?"

······하늘에 구름이 꽉 찼다.

너무 빼곡하게 차 그칠 기미가 안보였다.

······우산 살 돈 없는데······

······그때, 채륜이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자."

"······있으면 진작 말하지······."

채륜이는 가방에서 접이우산을 꺼냈다.

나는 카운터로 가 계산을 마쳤다.

"······존나 오네."

"하나로 다 막아지려나······."

채륜이는 걱정하며 우산을 폈다.

나는 우산속으로 들어갔다.

바람까지 세게 불어 우산이 흔들렸다.

"으하악!! 어깨 젖잖아!!"

채륜이는 우산을 자기쪽으로 돌렸다.

비가 우산면을 따라 내 어깨에 떨어졌다.

"아니 시발 뭐 해?"

"빌려준걸로 고맙게 여기지?"

우리는 티격대며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으아악!! 바지에 젖잖아!!"

채륜이가 소리를 질렀다.

내 옆구리를 잡고 바짝 당겼다.

······밀착한 우리를 우산면이 다 가려 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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