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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에 미친놈-32화 (32/39)

〈 32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31

* * *

나는 채륜이와 착 달라붙었다······

젖은 옷이 팔에 닿아 차가웠다.

"으아악!! 달라붙지 마!!"

거리를 좁힌 나를 채륜이가 밀쳤다.

밀려난 어깨에 빗물이 또 흘렀다.

"아 비 묻잖아!!"

"달라붙지 마! 축축해···!"

비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몰아쳤다.

사방에서 오는 비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 갈림길까지 왔다.

"으아··· 내일 봐···아앗···!"

채륜이는 우산을 꽉 잡고 소리쳤다.

바지에선 물이 흐를 정도로 젖었다.

"······야, 잠깐만···?"

채륜이는 중봉을 꽉 잡은 채 옆의 길로 걸어갔다.

순간, 내게서 멀어진 원단 때문에 비를 흠뻑 맞았다.

"이 미친년아!! 내 우산이야!!"

"아니 그럼 어떡하라고!?"

우리는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채륜이의 흰 티셔츠가 속옷을 흐릿하게 비췄다.

채륜이는 고개를 숙인 채 턱에 손을 괴었다.

"······그럼, 우리 집까지 와 줘."

"응."

······딱히 방법이 없었다.

계속 쏟아지는 비에 혼자 보낼 수도 없었다.

우리는 비를 막으며 골목길로 들어섰다.

────────────────

"다녀왔어요······."

"괜찮니!?"

아줌마는 문을 염과 동시에 놀랐다.

아줌마는 채륜이의 머리를 탁탁 털어줬다.

"어머, 우산 씌워준 거니? 고맙다 애야······."

"그냥 보낼 수도 없는데요······."

나는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왔다.

마룻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감기 걸리겠다. 얼른 씻어라."

"네에."

채륜이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신발장으로 걸어갔다.

"그럼, 저는 이만······."

"저기, 애야? 그 상태로 가게···?"

"어······ 그래야죠 뭐."

"젖고 가면 감기 걸릴라. 비 그칠 때까지 있다 가라."

"어······ 네······."

······부담됐지만, 창밖에 내리는 비에 나갈 마음이 사라졌다.

"어우,다 젖었어요."

"장롱 열어 봐. 입을 만한 거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장롱을 여니 옷 여러벌이 나왔다.

나는 홀딱 젖어 찝찝한 바지를 벗어 던졌다.

"아오, 뭐이리 안 맞아······."

다 채륜이 옷인지, 꽉 꼈다.

몇 분 만에, 겨우 맞는 바지를 찾았다.

"아오, 이거 존나 찝찝하네······."

셔츠의 소맷부리 주변도 젖어 축축했다.

나는 이왕 옷도 찾아봤다.

다행히 옷은 맞는 사이즈를 쉽게 찾았다.

나는 옷을 벗었다.

끼이익······

······문이 낡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머리를 흠뻑 적신 채륜이가 들어왔다.

"거기 수건 있어?"

"어······ 응. 여기."

채륜이가 마른세수를 하며 물었다.

나는 옆에 있던 수건을 집어줬다.

"땡큐."

"······."

······나 옷통 깠는데···?

채륜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기를 닦았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일 옷 돌려줄게. 내일 봐."

"······넌 안 씻어?"

"내가 왜 씻어."

채륜이는 입꼬리를 축 내린 채 말했다.

"으······ 갈 거야?"

"응. 갈 거야."

"비 저렇게 오는데?"

"우산 있어."

나는 철벽처럼 대응했다.

이번엔 이년 수에 안 넘어간다.

"지,진짜 가?"

"안녕."

나는 신발을 신었다.

가방을 메고 접이우산을 폈다.

역시나, 문을 열자마자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으왓, 비 들어와! 빨리 나가!"

채륜이가 뒷걸음치며 외쳤다.

바람은 우산을 거세게 공격했다.

······우산에서 끼익 끼익 소리가 났다.

"자,잠만 우산에서 뭔 소리가······."

······잠시 후, 우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접혔다.

분명 펴져 있는데, 받침살이 뚝 뿌러지며 접혔다.

"으와악, 씨발!!"

"푸흡."

채륜이의 입에서 공기가 팡 내뿜어졌다.

나는 재빨리 집으로 들어왔다.

"아하핫,이젠 진짜 씻어야겠네~"

"······."

채륜이는 싱글벙글하며 웃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

"자, 수건."

채륜이는 내게 수건을 던졌다.

수건은 알맞게 내 머리에 툭 떨어졌다.

"빨리 와! 할 줄 알지?"

"······격겜?"

채륜이는 게임기를 들었다.

모니터엔 격겜처럼 보이는 화면이 켜졌다.

나는 머리에 수건을 감싸고 게임기를 들었다.

[FIGHT!]

"흐하핫, 씹덕새끼. 그딴 거나 쳐하네."

"리리한테 컷킥이나 처맞아 봐라."

나는 예쁜 금발 캐릭터를 골랐다.

나는 시작하자 마자 컷킥을 날렸다.

바로 달려오던 채륜이의 캐릭터를 공중에 띄웠다.

중단에 주먹을 꽃으며 콤보를 이어갔다.

"으와앗······시바알···!"

채륜이는 조이스틱을 계속 휘저었다.

나는 벽으로 몰아갔다.

······이 기술을 쓸 때다.

모르면 맞아야지.

리리는 한 바퀴 돌며 두 발을 아래로 찍었다.

상대는 누운 채 발 뒤꿈치에 계속 찍혔다.

"자,잠깐?"

채륜이는 게임기에서 손을 뗐다.

[K.O.]

"야 이 개새꺄!!"

"우앗···!"

채륜이는 내 목을 졸랐다.

목젖이 검지에 꾹 눌려 헛구역질이 나왔다.

"으으······ 나도 좆같은 거 써줄게."

"······응?"

채륜이는 보라색 뚱땡이로 캐릭을 바꿨다.

난생처음 보는 외래종이다.

[FIGHT!]

나는 시작하자마자 컷킥을 날렸다.

2번은 안 당한다고. 채륜이는 슬쩍 빠지며 피했다.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채륜이는 버튼을 깨질 정도로 눌렀다.

채륜이는 보라색 장풍을 마구 쏴댔다.

"야, 원거리는 반칙······."

내가 주먹을 날리면, 채륜이는 점프해서 장풍을 쐈다.

근접인 리리와는 상성이 안 좋았다.

······그래도 어떡하냐. 리리를 뺄 순 없잖아?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겨우 내 로우킥이 적중했다.

상대는 공중에 띄워졌다.

나는 콤보를 이어나갔다.

어퍼컷,잽을 섞은 연타로 벽에 몰아갔다.

"으하핫, 풍차돌리기!"

나는 다시 그 기술을 썼다.

쾅!

발을 몇 번 찍으며 땅이 푹 가라앉았다.

외래종은 바닥에 등을 쿵 박았다.

그 반동으로 통 튀어 올랐다.

나는 다시 풍차돌리기를 사용했다.

"으갸악!!"

벽에 몰지 않았던 탓일까. 채륜이는 옆으로 빠져나왔다.

곧바로 채륜이는 잽을 연달아 날렸다.

나는 방어키를 꾹 눌렀다.

톡톡 소리내며 공격을 모두 막았다.

나는 펀치를 연달아 날렸다.

드디어 상대는 개피. 나는 로우킥을 날렸다.

장풍을 쏘는 시늉보다 내 발이 더 빨랐다.

[K.O.]

"하하핫, 외래종 컷!"

"씨발 새끼!!"

팍! 팍!

······내 머리에 찡한 통증이 느껴졌다.

채륜이는 게임기로 내 머리를 때렸다.

"아,아,아! 작작 해!!"

나는 가드를 풀고 손을 내밀었다.

아예 팔을 잡아야······

······

······팔이 좀 물렁한데···?

"흐잇!?"

"어······."

······팔이 채륜이와 마구 엉켰다.

팔을 잡는다는 게 가슴을 잡아버렸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돈 그냥 넘어···─

"으아악! 변태 새끼!!"

팍!

······눈앞이 흐릿해졌다······

채륜이가 눈부시게 하얘졌다······

······

······곧이어, 복부가 매우 아파왔다······

누가 배에 칼을 꽃은 듯한······

나는 무의식으로 내 아랫도리에 손을 가져갔다.

"아. 앗."

······너무 아프면 목소리도 안 나온다는 게 사실이구나······

"아.아파······."

"아프라고 한 거야. 변태 새끼."

"시바알······."

채륜이는 얼굴을 붉힌 채 팔장을 꼈다.

채륜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창밖에 보이는 나무는 살며시 흔들렸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친 것 같다.

"아야야······ 간다."

"흥."

채륜이는 세게 콧바람을 내뿜었다.

나는 신발을 갈아신었다.

현관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하늘을 매워싼 구름에서 비가 아직도 쏟아졌다.

바람은 많이 잠잠해졌다.

"······우산 부러졌는데······."

"여기."

채륜이는 신발장에서 우산을 잡았다.

피자마자 원단에 우두두 비가 떨어졌다.

"······내일 봐."

"······응."

등을 돌린 나에게 채륜이가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개지랄을 해도 받아주는 친구.

나는 내심 기뻤다.

웅덩이에 떨어지는 비가 신발에 튀었다.

────────────────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아오!"

그녀는 게임기를 땅에 팍 찍었다.

[강등 위기]

"······더는 못하겠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뛰었다.

그녀는 베개를 감싸 안고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용기 내야지······ 1년인데······."

그녀는 천장을 바라본 채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친해져도 안 된다고······."

그녀는 눈꺼풀을 천천히 내렸다.

────────────────

와그작 와그작

방 안에 과자씹은 소리가 퍼졌다.

비닐봉지가 소리내며 침대에 부스러기를 흘렸다.

[텟 카이!]

정윤이는 침대 위에 엎드려 핸드폰을 응시했다.

"우움······ 맛있다."

정윤이의 두 볼이 빵빵해졌다.

정윤이는 새로 바꾼 핸드폰을 응시했다.

나는 옆에 앉아 만화책을 폈다.

"우움······너도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

"사주겠냐?"

"전화랑 신고,보안으로 주접떨면 사주시던데."

정윤이는 턱을 열심히 움직여 씹었다.

"야, 흘리잖아."

나는 정윤이에게 몸을 기울여 부스러기를 집었다.

정윤이는 과자 한 조각을 집어 내 입에 가져갔다.

"그러지 말고 먹어~"

"······."

나는 두 입술을 열어 입속에 넣었다.

바삭한 표면 속 초콜릿은 혀를 감돌게 했다.

"······있잖아······ 내가 고백하면 받아줄 거야?"

정윤이가 과자를 꿀꺽 삼키고 말했다.

······고백?

······옛날 생각 나네.

존나 브레이크 고장 난 거.

지금은 정신병이 나름 치료됐다.

얀데레는 정병이야.

"······니 몸 봐서."

"오호오······."

정윤이는 음흉안 미소를 짓고 나를 밀쳤다.

정윤이의 얼굴이 내 눈 위까지 가까워졌다.

······정병 아직 다 안나았나 봐.

"하아······또 뭐."

"나 얼마나 커진 거 같아?"

"겉으로만 봐도 존나 태평양 바다야."

나는 옷 위로도 평평해 보이는 것을 감상했다.

"그래도, 내가 딴 애들보단 낫지?"

"드러워. 좀 꺼져 봐···─"

그때, 방문이 쾅! 하고 열렸다.

······엄마···?

······잠깐만. 조졌는데···?

······이해해 주세요. 평범한 커플이잖아요? 적어도 그렇게 보셨잖아요?

"준! 오랜만······."

······금발 머리가 문틀을 꽉 매웠다.

교복을 입은 그녀가 잠깐 우리를 응시했다.

"······타이밍을······ 잘못 잡았네···?"

"언니. 그러려니 하세요."

정윤이는 엎드린 채 과자를 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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