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소꿉친구에 미친놈32
* * *
"아니, 왜 온 거야?"
"한 달 동안 연락도 없고. 보러왔지! 근데······ 잘 사나보네."
"······."
누나는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다.
누나는 내 옆에 앉아 비닐봉투를 내려놓았다.
"······이건 뭐야?"
"빵."
누나는 봉투속 빵 한 개를 꺼내줬다.
나는 빵의 포장을 뜯었다.
"언니. 나도."
누나는 정윤이에게 소세지빵을 건넸다.
나는 단팥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윗면에 붙은 깨가 씹혀 고소했다.
"이런 것도 주고. 고맙다."
"오랜만인데. 이 정돈 줘야지!"
누나는 리모컨을 들고 TV를 켰다.
버튼을 꾹 눌러 채널을 마구 돌렸다.
"······난 옛날부터 누나한테 얻기만 했네······."
"나중에 갚아라?"
누나는 실실 웃으며 크림빵을 베어물었다.
······지금까지 누나한테 뜯은 돈 얼마지?
······나는 속으로 웃었다.
찌릿─!
"엇···─"
"응? 뭐라고?"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순간, 복부에 쑤시는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내장이 뒤틀리는 느낌이다······
······방귀가 나올 것 같은데.
이거 뀌면 좆된다는 걸 직감으로 느꼈다.
······빵이 들어가며 내장속을 밀었다.
"······잠깐 화장실 좀······."
"응. 갔다 와."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눈앞의 화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좆될뻔."
신께서 주신 유일한 마약······
나는 핸드폰을 켜고 유튜브를 눌렀다.
────────────────
빵씹는 소리가 가득한 방 안.
예민이는 수세미밥 채널로 돌렸다.
"······언니."
"응?"
"······뭐좀 물어봐도 돼요?"
정윤이는 소세지를 씹으며 말했다.
"응. 얼마든지."
예민이는 TV의 소리를 줄였다.
예민이는 수세미밥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고백 해 보신 적 있어요?"
"으음······ 받긴 많이 받아봤는데······."
예민이는 손바닥으로 턱을 받쳤다.
"······고백하려고?"
"······아마도."
예민이는 벽에 등을 딱 붙였다.
"······고백하면 순순히 받아 줄 상대야?"
"······모르겠어요."
정윤이는 누운 채 핸드폰에서 손을 뗐다.
"그럼, 호감도를 더 쌓지 그래?"
"······그런 경우가 아니에요."
"······."
예민이는 뒷목을 매만졌다.
정윤이는 빵을 입에 물었다.
"······하핫."
"······뭐가 웃겨요?"
"티비가~"
예민이는 해맑게 웃으며 크림빵을 씹었다.
"······진짜 그 상대가 아니면 안 돼?"
"······네. 안 그래도 소심한 저한테···─"
"가능성이 안 보이면 포기하고 놀아."
예민이는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그럼, 언제부터 좋아했어?"
"······안믿겠지만, 대략 10년?"
"에이~ 과장이 심하다~"
"그렇게 보이겠지만, 진짜 제 인생에선 10년이에요."
정윤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평소와 다른 딱딱한 말투에 예민이의 표정이 굳었다.
"······푸핫, 3살······으하핫···!"
"······아마 못 믿겠죠."
예민이는 성대가 찢어지듯 웃었다.
아래에 있는 현준이에게 들릴 정도로.
정윤이는 다시 액정에 시선을 돌렸다.
"혹시,꿈을 꿨다든가?"
"······꿈이면 좋겠어요."
정윤이는 마지막 빵 한조각을 삼켰다.
······그때, 예민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정윤이를 노려봤다. 매우 날카로운 눈매에 정윤이는 움찔했다.
"······왜,왜요!?"
정윤이는 고개를 홱 돌리며 외쳤다.
"······미래에서 왔다든지···?"
"······."
정윤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예민이는 날카로웠던 눈매를 천천히 풀었다.
"너 입장에선, 여기가 과거겠네?"
"······못 믿겠죠? 믿지 마세요."
정윤이는 다시 액정에 눈을 돌렸다.
예민이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과거로 돌아와서 첫사랑을 이룬다······ 나쁘지 않네."
"······에?"
예민이의 입가가 기꺼이 찢어졌다.
"······난, 제대로 공부해서 명문대 가 볼래."
"그러신가요······."
정윤이는 예민이의 말을 흘려들었다.
"······고딩인데, 이해를 못하나?"
"······뭐?"
"나도 회귀한 거라니까?"
정윤이는 벌떡 일어섰다.
고개를 예민이에게 홱 돌렸다.
빠르게 돌려진 목이 통증을 유발했다.
"아읏···!아야야······."
"못 이룬 첫사랑을······ 그거 괜찮다."
예민이도 빵을 모두 먹어치웠다.
"아니, 어떻게 회귀를······."
"나도 몰라. 과거로 돌아가면 공부 열심히 한다고 다짐했는데. 왔더라?"
정윤이는 뒷목을 문질렀다.
"······나. 불량 학생이였다? 이 기회에 제대로 공부하려고."
"그러니까······고백 어떻게 하냐고 묻잖아······."
"하긴, 과거로 와서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예민이는 머리카락을 검지로 빙빙 돌렸다.
"맨날 붙어다니잖아? 분위기 잡아서 좋아한다고 해 봐."
"말이야 쉽지······."
"걔는 분명 골똘히 생각하고 답해 줄 거야. 생각하고 말하는 애니까. 변태라 크기보고 고르긴 해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응?"
예민이와 정윤이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 피식 웃었다.
"모를 거 같아? 걔 말곤 누가 있겠냐? 넌 친구도 없는데."
"뭔가 기분 나쁘네······."
정윤이는 침대에 풀썩 누웠다.
"······사실, 너처럼 살까 생각했어."
"······응?"
"난 이미 고딩이니까. 재밌게 살아볼까."
"······."
"생각해 보니까. 이미 고딩이잖아. 좀만 공부하면 스펙쌓고 잘 산다고."
"공부는 그때가서 해도···─"
"남친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그래 보이네."
정윤이는 기운빠진 채 대답했다.
"······그래서 처음에 찝쩍댔던 거야?"
"뭐······ 그렇지."
정윤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도, 이젠 제대로 공부한다고. 연애는 나중에."
"······멋지네."
"잘해 봐. 걔는 거절 못하니까."
"······응."
잠시 후, 방문이 철컥 열렸다.
"아오, 똥폰하다 시간 다갔네. 얼른 가. 날 저물었다."
정윤이와 예민이는 서로 실실 웃었다.
"그만 쳐웃고 가. 쓰레기 치우고."
"알았어~"
예민이는 비닐을 줍고 일어났다.
둘은 계속 실실 웃으며 집을 나왔다.
"······쟤들 왜 저래."
────────────────
어두운 길바닥을 가로등이 비춰줬다.
양옆의 가로수는 쓰디쓴 풀향기를 풍겼다.
"처음엔 바로 고백하려고 했는데, 좀 잘못돼서······."
"고딩이라고, 바로 초딩한테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냐."
"그래서, 주변에 있는 여자를 다 치우려고 했지."
"무섭네······."
예민이는 왼쪽의 강을 바라봤다.
칡부엉이가 휘욱하며 울었다.
"고딩인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어서. 인내심을 좀 가졌어. 대해 줄 땐 누나처럼 대해 줬고······."
"······그게 더 이상해 보여."
예민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으음······ 크면 바로 받아줄텐데······."
예민이는 자기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정윤이도 자기 가슴을 슬쩍 매만졌다.
"분명 잘될 거야."
"······골칫덩어리가 좀 있어서······."
"걔들도 힘들 거야."
"······결국 똑같잖아."
예민이는 두피를 긁적였다.
"······고마웠어요."
"나중에 인증?"
"······언젠간."
"나체 찍어서."
"푸흡."
정윤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풀속에서 귀뚜라미가 세엑세엑 울었다.
────────────────
"봐바! 나 플레야!!"
"그래그래······."
하교 후, 나는 채륜,소윤이와 피방에 왔다.
채륜이는 승급전을 이기고 플레로 승격했다.
몇판 돌려서 그런지 어깨가 뻐근하다.
······그래도 이년은 놓아줄 생각 없겠지······
나는 기지개를 폈다.
"으으······ 피곤해······."
"······그럼 가 봐."
"······응?"
채륜이는 내 뺨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진짜 가도 돼···?"
"응. 피곤하면 가."
"내일 봐요 오빠."
나는 가방을 챙기고 상가를 떠났다.
채륜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이럴 애가 아닌데···?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심란해졌다.
"······이러면 되냐?"
"응. 잘했어."
채륜이는 등받이에 무게를 꾹 실었다.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려야. 항상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라고."
"······재미없어."
"고생 끝엔 행복이 있다. 몰라?"
소윤이는 채륜이를 손가락질 했다.
"너 같은 게 뭘 안다고······."
"언니야말로 고백만 쳐받았잖아. 양아치짓 하면서."
"······시끄러."
둘은 곧이어 상가를 빠져나왔다.
채륜이는 길바닥에 놓인 깡통을 뻥 찼다.
"학교 말고, 단둘이 있는 상황에선 용기내."
"걘 다 받아줄 거야······ 아마도."
"그 젖통으로 비벼대지 그래?"
"닥쳐. 캣맘아."
채륜이는 소윤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고양이가 채륜이에게 달려왔다.
"야옹."
"아오, 양말에 털 뭍잖아······."
채륜이는 발목에 붙은 고양이를 잡았다.
고양이를 안고 소윤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배려의 힘이라고. 냥이 성질 안내는 거 봐."
소윤이는 침대에 풀썩 누웠다.
고양이를 건네받고 침대의 테이블을 끌어왔다.
고양이는 테이블 위에 폴짝 올라왔다.
소윤이는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야옹."
"여기에 쿠션이라도 놓을까······."
소윤이는 인터넷방송을 켰다.
"트붕이들 올만!"
소윤이는 헤드셋을 끼우고 외쳤다.
고양이는 모니터에 머리를 기대었다.
띠링─
스피커에 후원 소리가 울렸다.
'고백했는데 차였어요ㅠㅠ 연애 관심 없데요'
소윤이는 즉각 대답했다.
"연관없 특. 다른 인싸랑은 잘 만 사귐. 안타깝네요······ 기운 내세요······."
채팅창에는 'ㅠㅠ'와 눈물 이모티콘이 쏟아졌다.
채륜이는 노트북에 시선을 홱 돌렸다.
채륜이는 소윤이에게 슬쩍 다가왔다.
"······야. 고백법좀 끌어내봐."
채륜이는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말했다.
소윤이는 손으로 OK싸인을 보냈다.
"그럴 땐, 고백을 어떻게 하느냐에 갈리죠. 다들 고백 어떻게 하셨나요?"
소윤이는 고양이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잠시 후, 채팅창과 도네이션으로 여러 반응들이 쏟아졌다.
'짝활동에서 조용히 해봤어요.'
'정류장에 우연히 만나서 해봤어요'
'만우절에 해봤어요'
소윤이는 깔깔 웃었다.
"아······ 그게 뭐야······ 그걸 어떻게 받아줘······."
그때, 채륜이의 시선을 끌은 채팅이 있었다.
'진짜 친한 소꿉친구 있는데. 걔가 좋아하는 애가 생겼어요. 제가 이성으로써 연애법 알려 줬는데, 걔가 저한테 넘어 왔어요ㅋㅋ'
채륜이는 고양이를 안고 골똘히 생각했다.
잠시 후, 채륜이는 고양이에게 속삭였다.
"······내가 굳이 고백할 필요는 없지. 안 그래?"
"먀아."
고양이는 채륜이의 검지를 살살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