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혼인
* * *
“그리고 이 참에 두 장군께서 결혼하심이 어떻습니까?”
유비는 이 한마디에 머리가 띵해지는 게 느껴졌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유비 대신 조조가 입을 열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라 생각됩니다.”
그 말에 유비는 몽둥이가 뒤통수를 가격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비는
옆에서 교모의 말에 찬성하고 나선 조조를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을 눈치를 챈 것인지 조조는 유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홍조를 띠우고 유비를 바라보는 그녀에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녀에 그런 얼굴을 마주한 유비의 심장은 굉장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녀는 유비에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조용히 유비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유비 앞으로 한 발작씩 다가왔다. 마른 침을 삼키며 유비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그 말 그대로 입니다.”
머리는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지금 자신 눈앞에 있는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어째서 자기자신인지가 이해가 되지 않을 뿐.
“어째서 저인 겁니까?”
조조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돌린다.
“어째서일까요 정말……”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그대로 천막을 나간다. 교모는 마치 흥미로운
실험대상을 보는 듯이 유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을 떼인 듯싶군.”
유비는 살짝 짜증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교모를 바라보고 고개를 숙였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교모는 무엇이 우스운지 미소를 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먼저 가보게나”
유비는 뒤돌아서 천막을 빠르게 나갔다. 교모는 그런 유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영웅 이리 만났으니, 과연 이들이 난세를 만들지 치세를 만들지 기대가 되는 구나. 그 들이 가는 길을 보고싶군.’
교모는 그리 생각하며 은근히 그들이 치세를 만들길 원했다.
뒤늦게 조조를 쫓아 나온 유비는 조조를 찾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어딜 간 거야?’
얼마 안가 조조가 성벽에 올라 가는 것을 확인한 유비는 황급히 조조를 따라 올라갔다. 성벽에 다 올라 갈 때 즈음 성밖을 바라보고 있는 조조가 유비의 눈에 들어왔다. 달빛에 비친 머리는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한참을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유비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맹덕 여기 계셨군요?”
조조는 눈만을 돌려 유비 인 것을 확인하곤 다시 눈을 성밖으로 돌렸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별이 많군요.”
유비는 그 말에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조조에 말대로 수많은
별들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빛나고 있었다.
“그렇군요. 오늘은 별이
많군요.”
전쟁이나 미래에 대한 준비로 바쁜 유비는 밤하늘을 구경하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오늘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 유비는 전생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을 눈 안에 담았다.
“아름답군요.”
조조는 그런 유비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그녀에 미소에 유비는 다시 자신의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는 것을 느꼈다.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떼 조조가 먼저 입을 뗐다.
“유비 공……”
유비는 가만히 조조를 바라보았다.
“태수께서 예기하신……”
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유비는 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볼을 가렸다.
“전 찬성합니다.”
조조의 눈에는 결심이 묻어났다.
“싫으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수께서 아무래도 농이 지나 치셨던 것 같습니다.”
유비가 조조가 싫은 것을 억지로 하려는 것인 줄 알고 무리하지 말라 하자 조조는 조금 화가 났는지 유비에게 따지듯
말했다.
“싫었다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비는 조조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로 저로 괜찮겠습니까?”
“정말 두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십시오.”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매혹적인 여자가 안겨오자, 유비는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간신히 다잡았다.
다음날 전군이 철군 준비를 마치자 교모는 그들에게 철군을 명했다. 사로잡힌
황건적 포로들 보급을 옮기며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태수, 저들의 취급을
좀더 개선 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항복 해왔으니 한나라의 백성입니다.”
교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비의 말에 동의했다.
“여봐라!”
교모가 부르자 천 인장 하나가 다가와 읍했다.
“포로를 함부로 대하는 이들은 참하겠다. 포로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라! 그들은 항복했으니 이제 한나라의
백성이다!”
교모가 명하자 천 인장은 무릎을 꿇고 병사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곤 교모는 고개를 돌려 유비를 응시했다.
“그래서 조 맹덕과의 혼인은 어찌할 것인가?”
유비는 그 말을 듣고 마시던 물을 뿜었다.
“켁, 킄, 콜록! 어, 예?”
교모는 웃으며 다시 물었다.
“조 맹덕과의 혼인에 대해서 물었다.”
유비는 볼이 빨개지며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조조가 다가와 대신
답하였다.
“혼인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장비와 관우가 다가왔다.
“형님 결혼 하는 거요? 이거
축하할 일이구만! 이 장익덕이 아껴놓은 술을 풀 떼가 되었군! 하하하하하!”
관우는 그런 장비를 나무라며 말했다.
“익덕 좀 젊잖게 있어라!”
그러곤 유비를 바라보았다.
“형님 결혼 축하 드립니다.”
얼떨결에 두 아우에게 축하를 받은 유비는 이제 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조조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 혼인 할 것입니다.”
교모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으며 둘을 축하했다.
“하하하! 축하하네 맹덕
좋은 지아비를 얻지 않았느냐?”
유비는 조조에게 완벽하게 잡혀 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한달 후 복양에서는 조조와 유비에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다. 물론 가진
것이 없던 유비를 대신해 조조의 집에서 결혼식에 모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유비의 재정적
문제로 인해 예물을 주고 받지 않았지만 조조가 철저히 비밀로 붙여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부군? 초야는 치르셔야지요?”
조조는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방을 나가 다른 곳에서 자려던 유비를 유혹했다.
“조조.”
유비에 이성의 끈은 거기서 끊겼다. 그날 밤 초야를 치르는 두 남녀에
방에서는 신음이 밤이 세도록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조조는 다시는 유비를 흥분시키지 않겠다 다짐했다.
“형님!”
다음날 유비는 자신을 부르는 관우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옆에서
자고 있는 조조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관우야 아직 부인께서 주무시지 않느냐? 좀 조용히 좀 해라!”
관우는 뭔가 다급한 듯 유비에게 말했다.
“그것은 죄송하지만 워낙 급해서….”
관우가 평소와 다르게 불안한 기색이 보이자 유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 그리 급했나?”
관우에 입에서 나온 말은 유비가 예상 했던 말들 중 하나였다.
“조정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유비는 안심하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엎드렸다.
“유비는 나와서 황제의 명을 받들라!”
젊은 환관이 황제라 말하자 장비가 환관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관우가
막지 않았다면 환관의 목은 이미 목이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신 유비! 황제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유비는 황건적의 난 떼에 최전방에 나서서 많은 역적들의 목을 배었고
밴 적장들의 수급만 10개가 넘으니 어찌 공을 치하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에 유비를 복양 현령직에 임명하니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신 유비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그 난리를 쳐도 겨우 현령이라니 바뀐게 없잖아?’
환관은 말을 이었다. 끝난 줄 알았던 유비는 당황했지만 엎드려 있던
상황이라 티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복양 현령의 부인 조조는 동군 태수로 임명한다”
“!”
유비는 놀랐다. 조조 또한 벼슬을 받을 것은 예상 했지만 동군의 태수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가 자신의 상관이 된 셈이다.
‘조조가 술수를 썼나?’
유비는 합리적 의심을 했다. 그도 그럴게 조조는 힘있는 환관 집안
사람이니 의심을 할만한 상황이었다.
환관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갔다. 물론 나중에 일어난 조조가 뇌물을
좀 쥐어준 뒤이긴 하지만.
유비는 조조에게 다가갔다
“어머 부군은 아직도 모자라 십니까?”
조조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쓸 때 없는 짓을 했어. 굳이
내 머리 위에 있어야 했었냐?”
유비는 조조에게 말을 함부로 해도 괜찮다 하였지만 조조는 거절했고 유비만이 반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 무슨 말인지 모르겠사옵니다.”
유비는 장난스럽게 웃는 자신의 아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나마 아내가 위에 있으니 낳은 처지라 해야 하나?’
유비는 채념한 듯 집안으로 들어가자 조조는 따라 들어가며 유비를 놀려댔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관우와 장비는 생각했다.
'나도 결혼 할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