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첫 발자국
* * *
“그리 알고 있었다면 어찌 미끼로 내가 아닌 아내를 지목하였지?”
꽤나 밑으로 깔린 음성으로 유비가 질문 해왔다.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다분히 노기가 서린 목소리였다. 이를 알아 차린 것인지 가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유비를 제외한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였다.
“일단은 이 나라의 승상이신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주군을 모시는 자로서 주군을 사지로 내 몰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후가 말을 마치고 다시 시선을 유비로 향했다.
“이유는 그것뿐인 것인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낮게 깔린 음성이 유비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예.”
다시 들려오는 가후의 짧은 대답. 회의장에서는 엄청난 중압감과 긴장감만이 돌고 있었다. 어느 사람도 감히 둘의 사이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토론의 중심인 조조 조차도.
“그럼 그 미끼가 내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 왜냐? 이 계획에서의 미끼 역할은 내가 자초했으니 말일세. 신하 된 자로서 감히 주군의 결정에 불만은 없겠지?”
유비의 선언 그리고 그걸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가후 그리고 그런 그들을 식은 땀까지 흘려가며 바라보고 있는 이들. 그저 침묵만이 회의장을 감쌌다 그리고 그 침묵은 얼마 안가 유비의 회의 종료를 알리는 말로 깨지고 그 날의 회의는 그것으로 막을 내렸다.
“후~ 답지 않게 목소리를 까느라 애 먹었내.”
유비가 한숨을 내 뱉으며 혼잣말을 뱉어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조조는 못 보내지.”
작은 결심이었다. 그런 그의 혼잣말을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었어야 할 것이다.
다음 날이 되자 군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후가 말했던 계획을 토대로 각 지역으로 어울리는 이들을 배치시켜 놓고선 미끼인 자신은 범에 아가리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이 정도면 되려나?”
그렇게 준비를 끝마치고 유비는 말에 올랐다. 간만에 느끼는 말에 승차감에 흡족해하던 중 자신을 믿고 같이 미끼가 되어줄 군대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한 눈빛이었다. 그들의 눈을 보고 유비는 이 중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애써 마음에 묻어두고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들었겠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미끼다. 그들을 완전히 토벌하는 것은 그들을 충분히 끌어들였을 때이다. 이것을 명심해라.”
유비의 추가적인 설명이 끝나자 군의 모든 군사들은 무릎을 꿇고 충을 외쳤다.
“충!”
그리고선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유비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따라갔다. 그를 지켜보는 조조의 눈빛이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부디 무사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대낮부터 상대 진영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한가지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전부 전투 태세로!”
성벽에서 군을 능숙하게 지휘하고 있는 이가 곧 있을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임이었다.
“북이 울렸으니 곧 있으면 공격이 시작 될 것이다. 전부 성벽으로!”
그리 말한 뒤 성벽 위로 향한 그는 밖을 내다 보았다.
“내가 한나라의 승상 유비다! 거기 있는 겁쟁이 장임은 나랑 진득하니 칼을 나눠보지 않겠느냐?”
눈에 보이는 도발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도발을 해오는 자가 적국에 승상이라는 데에 있었다. 여기서 도망치면 한나라의 선비에게서 도망친 촉한의 장수라는 오명을 쓸 것이고 무엇보다도 군의 사기가 문제가 될 터였다.
“이익! 어쩔 수 없다 여봐라 나의 창을 가지고 와라!”
그리 명한 뒤 그는 정찰병을 시켜 주위 산을 정찰 캐 했다.
“이곳을 둘러싼 산 속을 정찰하라. 저리 적군의 대장이 나와 일기토를 신청하는 것을 보니 필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매복된 군대를 찾으면 하늘 위로 불화살을 쏘도록 하라.”
“예! 명 받드나이다!”
얼마 안가 장임의 준비가 끝마쳐 졌는지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성문 중간에서 보이는 이는 당연하게도 장임이었다. 유비가 타고 있었던 것 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훌륭해 보이는 명마를 타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나왔다. 과연 유비가 원했던 장수다 라는 느낌을 주었다.
‘음 과연 할 군대를 이끌 정도에 능력을 갖추고 있구나. 지금은 어리니 이후에는 나라를 세워도 될 정도에 재능이군.’
“네놈이 이 곳을 수성하는 장임이라 하는 자 인가?”
유비가 물었다.
“그렇다 내가 이곳을 지키는 장임이라는 자다. 그럼 네놈이 한나라의 승상 유비인가?”
장임이 되물었다.
“그렇소 내다 한의 승상 유비이외다. 그럼 나와 함께 어디 겨루어 보겠는가?”
나름 승상이라는 자가 자신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여긴 장임은 여기서 그의 목을 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네놈의 목을 잘 빼 놓아라 그래야 덜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장임이 가볍게 말의 허리를 차자 말은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비도 말을 가속시켜 장임을 향했다. 둘의 눈빛에서 반드시 서로를 죽이겠다는 살의가 담겨있었다.
두두두두두~
이제 둘 사이에 거리는 5보도 되지 않았다. 장임이 움켜쥔 창을 천천히 전방을 향하게 하였다. 목표는 유비에 가슴. 유비 또한 검을 뽑아 들고선 장임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말 옆으로 숨겼다.
“하앗!”
“흐읍!”
서로가 저마다의 기합을 내지르며 서로의 병장기들을 맞부딪쳤다.
카아아앙!
귀가 찢길 듯한 소음이 맞부딪친 병장기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장임의 시야 빈틈에서 유비가 검을 올려 쳤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장임은 창을 고쳐 잡고 창 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였다. 그렇게 유비의 칼끝은 장임에게 닫지 못하고 그에 창 앞에 가로 막혔다.
“!”
이에 유비는 놀라 검을 거두고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놀란 것은 장임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찌 한 나라의 승상이란 자에게서 이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그 기술 또한 초보자의 것이 아니었어. 이미 몇 번이고 칼을 다루어본 자 이다.”
그의 실력을 인정한 장임은 좀더 진지하게 일기토에 응했다.
“과연 승상이라 하여 그저 책 읽는 선비인줄 알았으나 꽤나 하는 구나. 과연 나에게 일기토를 신청해온 이유가 있었어. 하지만 그게 다다. 네놈에 목을 베는데 조금 더 걸릴 뿐이다. 네놈의 목이 이미 나에 것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아.”
그렇게 말한 장임은 다시 거리를 좁혀와 유비에게로 창을 내 질렀다. 그것을 겨우 반응한 유비는 몸을 비틀어 창을 피해낸 뒤 다시 검을 휘둘렀다.
“윽!”
가까스로 피해낸 장임은 창을 거꾸로 향하게 하고 창대를 짧게 잡아 유비에 등을 향해 찔렀다. 피할 수 없는 한방이었다. 곧 창은 유비의 등을 꽤 뚫었고 창은 그의 등을 뚫고 반대편 배로 튀어 나왔다. 유비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간신히 말 위에서 낙마하지 않고 버텼다.
“우읍, 윽”
곧 있으면 자신이 유비의 목을 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그의 뒤에서 말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찌르던 창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사방에서 한이라 적힌 깃발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만인지적이라는 불리는 장비와 관우 그리고 조운과 조조가 보였다. 상황이 이상함을 바로 알아차린 장임은 서둘러 전군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전군 퇴각하라!!!!”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유비가 창에 찔린 모습을 보고 분노한 그의 의형제와 아내, 그리고 병사들은 장임에 군대를 순식간에 분해시켜 나갔다. 얼마나 참혹하게 박살이 났는지 한 식경이 지나자 이미 장임의 군대에서 멀쩡히 서서 걸어 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분노에 차 죽은 병사들까지 다시 찌르고 시체들을 훼손하는 조조가 보일 뿐이었다. 얼마나 심했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관우와 장비가 말릴 지경이었다.
“거 형수 그만 하시오 그보다도 형님의 상태가 먼저 아니오.”
“그렇습니다 대사도. 거기장군의 말이 옳습니다.”
관우와 장비가 설득한 끝에 겨우 진정한 조조는 서둘러 유비가 실려간 군막을 향했다.
“비!”
그녀가 소리치며 들어간 군막 안에는 자신을 언제나 처럼 웃으며 맞이 해주며 앉아있던 그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자고 있는 그가 보일 뿐. 누워있는 그에게 조조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의 손을 잡고선 옆에 앉았다. 자기 자신을 탓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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