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원이 서연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별 대단한 게 없었다. 여느 10대 남학생들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단순히 다른 아이들보다 몇 번 더 눈길이 가는 게 전부였다.
이건 그런 작은 호감에서 시작된 감정이었다.
“야, 돼지야. 또 매점 가냐?”
그맘때 애들처럼 원 또한 어릴 적에는 서연을 향한 제 마음을 숨기기 급급했고, 절대 들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뱉어지는 말은 언제나 더 날카롭고 못된 말들로 덕지덕지 포장되어 있었다.
“살 좀 빼. 그래서 대체 남친은 어떻게 사귈래?”
원은 그녀에게 뺄 살이 조금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투정 삼아 곧잘 이런 말을 뱉고는 했다. 듣고 싶은 대답이 있었으니까.
“아 어쩌라고, 남친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신경 꺼!”
항상 돌아오는 비슷한 대답. 제 마음을 표현할 용기도 없었던 그는 고작 이런 서연의 대답 하나로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지냈다.
이때는 너무 철이 없을 때라, 자신의 행동이 추하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였다.
처음에는 애써 부정했다. 치고받고 싸우며 지낸 소꿉친구인 서연을 어느 순간부터 여자로 보기 시작했다는 걸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따금 몽정할 때마다, 미묘하게 성숙해진 서연이 나타나 저를 흔들어놓아도 원은 쉽게 제 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몽정을 한 다음 날이면 서연을 마주칠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만 살피던, 그런 풋풋한 감정이었다.
이대로 묻어두면 언젠가 사라질 얄팍한 감정.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와, 차서연. 너 등에 송충이 붙었는데?”
“꺄아아악! 미친, 미친, 미친! 빠, 빨리 떼어줘, 제발!”
“응, 구라야.”
“야이씨! 장난해? 놀랐잖아!!”
“미안미안미얀마.”
“미친놈이냐?”
“그걸 이제 알았다니, 유감.”
그런데 호감이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건 원이 처음으로 프로 시합에 출전한 후로 생긴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골프 선수로 진로를 정해 준비했던 원은 피나는 노력 끝에 국가대표 자리를 거머쥐며 가슴팍에 태극기를 달 수 있었고, 또래보다 이른 17살이라는 나이에 KPGA 시합에도 초청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부와 프로 시합은 달랐다. 작은 행동들이 모두 카메라에 찍혀 기사가 난다는 것과 수많은 갤러리들의 눈이 CCTV처럼 쫓아다닌다는 점에서는 특히나 더 달랐다.
긴장한 나머지 첫 프로 시합에서는 그다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루지 못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대중들이었다.
-유망주로 촉망받던 이원. KPGA 제네시스 챔피언십 예선 탈락으로 실망스러운 결과 안겨…….
-이원의 실망스러운 드라이버샷. 페어웨이 안착률은 고작 46.4286%
프로의 세계에서 작은 실수 하나로도 비판적인 기사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원은 고작 17살이었고, 프로 시합에 처음 출전한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프로 시합에 초청받은 것만 해도 굉장한 성과였는데, 대중들은 알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어린 나이에 KPGA 시합에 초청받은 영재의 기록적인 스코어만을 원했다.
그랬던 대중들의 기대는 잔인했다. 실망스러운 원의 성적을 확인한 순간, 고작 17살짜리에게 모진 말들을 툭, 툭, 뱉어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adsd*** ㅋㅋㅋ드라이버 ㅈㄴ 못치네 차라리 내가 낫겠다 ㅋㅋ
wewewe*** 비거리도 구려 정확도도 구려 ㅉㅉ 국가대표는 어떻게 해처먹은 거냐?
T_zas*** 국가대표 선발전때 캐디 매수한 거 아닌지 조사해봐야 하는 거 아님?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좀.. 심각하던데 ㅋㅋ; 아무리 첫 프로시합이래도 오바 ㅋㅋ
Qadsa*** 얜 크게 될 사람이 못 된다. 그릇이 작아. 배짱이 없으니 프로 시합 나오자마자 이렇게 말아먹지 ㅉㅉㅋㅋㅋ
zzXz*** 프로시합 나오는데 눈썹그리고 립밤바르고 ㅋㅋ 사내새끼가 아주 난리났네 ㅋㅋ 여기가 골프장이냐 호빠냐? 딱봐도 기생오래비처럼 생긴게 연습도 ㅈㄴ안하고 놀았구만? ㅋㅋ 애기야 프로의 세계는 다르단다~ 연습 더 하고 와라 ㅋ
Fsd*** 딱 봐도 여자 밝히게 생김. 내가 볼 때 얘는 앞으로 프로 시합 몇 번 나오다가 성적 못내서 점점 2부로 떨어지고, 나중에는 부랄 딸랑딸랑 강남 사모님들이나 레슨해주면서 돈벌듯 ㅋㅋ
EEE2*** 그냥 골프 접어라 ㅂㅅ
보지 말아야지.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원은 기사의 댓글들을 모두 읽고 있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 그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이 모두 제 욕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혹여 누군가는 저를 응원해주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나의 응원 댓글을 찾기 위해 수십 수백의 악플들을 헤엄쳤다.
하지만 남은 건 상처뿐이었고, 그렇게 마음의 상처가 점점 깊어져 갈 때쯤 원은 익숙한 아이디를 발견했다.
sxxyxx*** 뭐래 아저씨 얘 알아요? 아저씨가 뭔데 얘한테 여자 밝히게 생겼다 뭐다 씨불임? ㅋㅋ ㅈㄴ 나대네ㅋㅋㅋ 가서 잠이나 처자요 ㅉㅉ
sxxyxx*** 응 방구석 여포 니인생보다 얘가 훨씬 잘나가~ 17살에 KPGA 초청받은 애한테 주제도 모르고 훈수두고 있죠? 진짜 꼴값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xxyxx*** 골프 접어라 ㅇㅈㄹ 나이 처먹고 애한테 악플이나 남기는 너는 그냥 인생 접어라
sxxyxx***라는 아이디. 뒷자리는 ***로 가려져 있었지만 원은 왠지 모르게 이 아이디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서연의 휴대폰을 몰래 확인한 건.
원의 예상대로 그녀의 휴대폰엔 저를 응원하는 댓글로 가득했다. 그리고 수많은 악플에 홀로 반박하고 있는 댓글들까지.
기분이 묘했다. 항상 티격태격하며 다투기만 했던 그녀가 이렇게 제 편을 들어주는 모습을 눈으로 보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울렁거렸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의 짧은 호감이었을 감정이 더더욱 깊어지기 시작한 건.
* * *
첫 시합만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을 뿐, 원은 금세 KPGA 리그에서 수많은 우승을 거머쥐었고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PGA 리그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그렇게 유명해진 원은 딱히 원하지 않았음에도 많은 아나운서와 배우들의 쏟아지는 연락을 받아야만 했다. 지인들을 통해 원을 소개받으려는 연예인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원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수년 전, 처음 프로 시합에 데뷔했을 때 기사를 도배했던 악플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탓이었다.
‘만약, 지금 내가 갑자기 무너지게 된다면. 더 이상 골프 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없다면…….’
이 사람들은 과연 지금처럼 내게 웃으며 다가올까?
내 명예에 흠이 생기기 시작하면? 지금 내 돈들이 모두 휴짓조각이 되어 버린다면?
깊게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가식적인 사람들의 접근에 원은 점점 지쳐갔다. 애당초 그가 원해서 시작한 골프도 아니었다. 그저 아빠의 강요에 못 이겨 자연스럽게 시작한 것이었다. 그랬으니 우승을 해도 즐겁지 않았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연습에 지겨움과 고통만 느낄 뿐이었다.
돈이 생기고 명예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의 주변은 아주 빠르게 변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호화로운 생활이 이어졌지만, 정작 원의 속은 공허함과 외로움에 나날이 말라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서연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였다.
서연 : 야~ 또 우승했더라? ㅊㅊㅊㅊ 밥 사라!! 우승턱 쏴야지!
어릴 적처럼 항상 붙어 있지 못하다 보니 자주자주 연락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제가 우승할 때면 잊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주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서연에게 축하를 받기 위해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따금 우승턱을 내기 위해 서연을 만날 때면, 그 순간만큼은 어릴 적 철없던 자신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 편안하기도 했었다.
그런 서연이 욕심나면서도, 혹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관계가 영영 어그러질까 봐 차마 선뜻 다가가지 못할 무렵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연은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를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서연이? 듣자 하니 서울에 취업했다던데. 바쁘겠지. 신입이잖아.”
그렇게 고향집에서 건너들은 서연의 소식은 딱히 놀라울 것 없었다. 평범한 20대라면 자연스럽게 들려올 흔한 소식이었으니까.
취업이라니. 새삼 그녀와 자신의 벽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이젠 옆집 살던 철 없던 어린 시절처럼 멋대로 그녀를 찾아갈 수도 없어졌다.
그렇게 원은 결국 서서히 마음을 죽이기 시작했다.
잘 지내겠지. 그래, 언제까지 나도 서연이를 부담스럽게 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서연을 놓아주고 나니 제 주변엔 영양가 없는 지인들뿐이었고, 그 틈에서 원은 다시금 숨 막히는 질식감을 느꼈다.
도대체 어디서 찾아낸 건지 기억도 안 나는 옛 지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저와 친한 체를 했고, 어디 인터뷰나 방송 자리라도 나가면 고상해 보이던 연예인들 또한 어떻게든 저와 한 번 가까워져 보고 싶어 부담스러울 정도로 다가오며 안달이었다.
원은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불편했다.
‘어차피 내 돈이랑 명예만 보고 친한 척하는 거면서.’
씨발, 지긋지긋하다 진짜.
그래서였다.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한 게.
돈도, 명예도 이미 분에 넘칠 만큼 가지고 보니 모든 게 덧없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오히려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과연 자신의 어느 모습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렇게 원은 망가져 가고 있었다.
무의미해진 삶과 골프. 그 속에서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 원의 눈에 들어온 건 우연히 발견한 웬 SNS 계정이었다.
성인용품들로 가득한 그 계정은 계정주의 얼굴이라든가 신상은 조금도 노출되어 있지 않았다. 사진에 나타난 거라고는 고작 손.
‘손등에 점…….’
하지만 원은 그 손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서연의 손이라는 걸.
“씨발, 차서연. 내 연락은 그렇게 처씹어먹더니…….”
처음에는 반가움보다 배신감이 컸다.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단순히 바빠서 연락이 잘 안 되나 싶었는데, 이런 SNS 계정을 운영할 시간은 있었다는 것 아닌가.
‘내 연락은 무시하고 이런 데서 섹파나 구하고 있었던 거야?’
이쯤 되니 서연에게 부담을 줄까 걱정되어 멀끔하게 정리했던 제 마음이 억울해졌다. SNS에서 신원도 불분명한 놈들이랑 떡치고 다닐 줄 알았으면, 차라리 제가 먼저 날름 채갈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데서 만나는 새끼들은 전부 영양가 없는 놈들일 거 아니야!’
씨발, 차라리 만나도 날 만나지. 아니, 얘는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남자 보는 눈이 이렇게 낮다고? 아무리 섹파래도! 신원이 보증된 사람하고 자야 안전한 거 아니냐고!
그렇게 한참 충격적인 서연의 근황에 괴로워하던 그는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파트너 구하는 척 접근하면 되는 거잖아?’
시팔, 내가 왜 내 마음을 정리해야 해. 어차피 남자친구도 없는 거 같은데, 그럼 이딴 데서 만나는 새끼들보다 내가 백만 배는 더 낫지.
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연에게 보낼 자신의 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재회가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