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완결) (6/7)

6.

“약속한 거다? 이번 시합 우승하면 그거 해주는 거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원이 연습은커녕 아이처럼 서연에게 칭얼대며 말했다.

“그때 돼서 말 바꾸기 없다. 알았지?”

“알았다니까. 걱정 말고 우승이나 해오세요, 아저씨.”

시합 때문에 출국을 앞둔 원은 가기 싫다는 말만 요 며칠 내내 입에 달고 살았었다. 결국 보다 못한 서연이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 후로는 계속 이 상태였다.

“연습장도 잘 안 가면서. 그래서 우승할 수나 있겠어?”

“야, 네 남자친구가 누군데. 당연히 가능하지.”

“얼씨구.”

자신만만한 원의 태도에 황당하다는 듯 웃어 보인 서연이었지만 실은 누구보다 그를 믿고 있었다.

원과 연애를 시작한 후로도, 삶에 큰 변화는 없었다.

게다가 원래부터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연인들처럼 깨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든든한 점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을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서연에게도, 원에게도 무척 큰 위로가 되었다.

물론 연애 초창기에 골프를 관두겠다며 생떼 부리는 원을 말리느라 애를 좀 먹기는 했지만…….

“아, 진짜 가기 싫다…… 너 두고 가기 싫어, 서연아.”

“그래도 가야지.”

서연이 원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 시합이잖아.”

“응…… 맞아. 마지막.”

그랬다. 골프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원은 결국 이번 시합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원의 부모님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노발대발하셨지만, 확고한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처음엔 서연 또한 그런 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골프와 함께한 제 인생이 숨 막힐 정도로 지옥 같았다는 말에 서연은 더 이상 골프를 요구하지 않았다.

애당초 서연에게 원의 골프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으니까.

“하, 진짜 존나 가기 싫다…… 거의 이 주 동안 너랑 섹스도 못 하잖아.”

한숨을 푹, 푹, 내쉰 원이 애달픈 눈을 하고는 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미국 가면 보내줄 거지? 보지 사진.”

“뭐라는 거야.”

“응? 보내줘. 나 자기 보지 없으면 우승 못 해.”

“아 진짜! 너 변태 같아.”

“그걸 이제 알아서 어떡하냐. 넌 이미 따먹힐 거 다 따먹히고 내 건데.”

킬킬대며 웃은 원이 소나기처럼 짧은 입맞춤을 서연에게 마구잡이로 쏟아부었다. 서연은 툴툴대면서도 모두 받아주고 있었다.

“사랑해, 서연아.”

원의 속삭임에 서연은 편안한 듯 미소 지었다.

“나도 사랑해.”

두터운 믿음과 신뢰는 확실히 두 사람의 연애를 무척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시합을 치르기 위해 원은 미국으로 향했다. 서연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출근을 하고 평범하게 퇴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원은 그런 사사로운 서연의 일상 속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었다.

중간중간 울리는 원에게 온 메시지. 중간중간 확인하는 원과 관련된 뉴스 기사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머지않아 원은 당당하게 말했던 대로, 마지막 시합에서 트로피를 차지했다.

은퇴를 우승으로 장식한 원을 향해 언론들은 수많은 찬사를 보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던 선수의 마지막 인사에 아쉬움과 응원의 말들을 남겼다.

물론 원은 그마저도 가증스럽다며 치를 떨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사진 속 트로피를 차지한 원의 표정은 누구보다 기뻐 보였다. 마치 7살짜리 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한 느낌이었다.

뉴스를 통해 확인한 원의 인터뷰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한 게 카메라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너무 기뻐요. 마지막 시합을 우승으로 장식할 수 있어서, 정말 너무너무 기뻐요.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우승하면 선물을 받기로 한 게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너무 기뻐요.]

평소 우승을 해도 원체 기쁜 표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였는데, 마지막 시합의 우승 사진만큼은 환한 미소가 함께였다.

그런 원을 보며 서연은 황당함에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기특하다는 마음을 품었다.

‘사람들은 모르겠지.’

인터뷰하면서 저렇게 흥분한 이유가 얼른 집에 와서 상황극 할 생각에 들뜬 거라는 걸.

-약속한 거다? 우승하면 사제플 해주기로? 나한테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보지 벌리는 거다? 알았지?

황당한 이유였지만 트로피를 든 원의 모습은 여태까지 있었던 우승 사진 중 가장 기뻐 보였다. 저렇게까지 웃는 그를 보고 있자니 서연 또한 덩달아 미소가 새어 나왔다.

서연은 휴대폰을 들어 토독토독 액정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서연 : 고생했어. 보고 싶다. 얼른 와.

발신 버튼을 누르려던 그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작성했던 메시지를 지우며 음흉한 웃음을 그렸다.

서연 : 선생님, 얼른 와서 교육해주세요.

메시지를 받고 애가 탈 원을 생각하며 서연은 질 나쁘게 키득거렸다. 행동이 묘하게 그를 닮아 가는 서연이었다.

그녀가 메시지를 보내기 무섭게 답장이 도착했다. 회신은 간결했다.

원♥ : ㅅㅂ 지금 비행기 끊었다

서연 : ??? 뒤풀이는????? 마지막 시합이었잖아!!!

원♥ : 그딴 거 필요 없어 밤비행기 타고 바로 간다 ^^ 딱 기다려

서연 : 아무리 은퇴한다고 해도 그렇지…… 그러다 골프판에서 왕따 당하면 어떡해!

원♥ : 오히려 좋아

서연 : ???

장난 한 번 더 쳤다간 전세기라도 마련할 법한 기세에 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를 그린 채였다.

이렇게 평범하고 무료하던 일상과 화려하고 정신없던 일상이 만나 합쳐졌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사람 모두 현재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행복에 젖어 있던 서연의 휴대폰이 한 번 더 울렸다. 당연히 원일 것이라 생각하고 곧장 확인한 서연이었는데…… 액정을 확인한 그녀의 낯이 조금 굳어졌다.

엄마 : 그래서 원이랑 결혼 얘기 나온 건 아직 없고?

이젠 이런 엄마의 잔소리마저 익숙해져버린 서연이었다.

서연 : 아 우리가 알아서 한다니까!

서연은 짧게 회신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뒤적였다. 원이 미국으로 가기 전 만들어준 반찬들로 냉장고가 한가득이었다. 반찬들을 데우며 저녁 준비를 시작하는데, 서연의 휴대폰이 또다시 진동했다. 엄마인가 싶었던 것도 잠시.

원♥ : 자기야, 선물이야.

메시지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이 뒤이어 따라왔다. 사진을 확대하자 검붉은 살덩이가 서연의 휴대폰을 가득 채웠다. 잔뜩 발기한 그의 좆을 보며 서연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원♥ : 얼른 가서 줄게.

소소하면서도 음란한 일상이었다.

-소꿉친구가 이렇게 클 리 없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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