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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3화 (3/430)

제3화

다음 날 아침.

약속과는 달리 운한은 약재를 보내오지 않았다.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노총관이 약재와 함께 도착했다.

“휘 도련님, 가주님이 일 때문에 바쁘셔서 소인을 보내셨습니다. 살펴보시고 혹시 빠진 것이 없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노총관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아닐세. 백부님께서 총관을 보내셨으면 빠진 것이 있을 리가 없겠지.”

운청휘는 보지도 않고 말했다.

“임 노야(林爺爺), 물어볼 것이 있네, 부디 사실로만 대답해주길 바라지.”

운청휘의 눈빛이 다시 싸늘해졌다.

“형님의 왼팔과 무공, 누구의 짓이지?”

‘임 노야’의 이름은 운원림, 세대가 모두 운씨 가문의 총관 출신이다.

운원림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어리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휘 도련님, 그것은 현 도련님께 직접 물으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 일은 현 도련님의 치욕이기도 하지만 우리 운씨 가문의 치욕이기도 합니다. 이 늙은이의 신분으로는 말씀드리기가 실로 어렵습니다.”

노총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휘 도련님께서 만약 현 도련님의 복수를 하려 하신다면 이 늙은이의 생각으로는 먼저 가문의 후계자 자리부터 되찾으시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후계자는 다음 가주의 승계권을 말한다.

예전엔 운청휘가 후계자였지만 3년이나 실종된 탓에 승계권이 없어진 상태였다.

이는 운씨 가문의 규칙이었다.

만약 후계자가 사망하거나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을 입을 경우 또는 실종된 지 1년이 지나면 승계권이 박탈된다.

운청휘는 실종된 지 1년이 지나서 승계권이 없어졌고 사촌 형 운현도 부상이 심해 후계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운청휘는 입을 닫고 노총관 운원림을 응시했다.

“임 노야, 그 말은 노야의 뜻인가 아니면, 백부님의 뜻인가?”

선제로서 운청휘는 당연히 노총관의 말이 그를 후계자 자리를 되찾으라고 종용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노총관은 흠칫 놀라서 몸을 떨었다.

운청휘의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발가벗겨져 온몸의 비밀들이 다 드러난 느낌이 들었다.

“이 늙은이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가주님께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요. 다만 가주님께서는 휘 도련님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없으십니다.”

“그럼 임 노야는 이 몸이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

“원래는 5할의 확신만 있었으나 이제 보니 완전히 알겠습니다. 휘 도련님이 원하시면 후계자 신분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합니다.”

노총관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 모습이 겸허했고 말투 또한 간곡했다.

“임 노야. 꽤 명석하군. 내 기억보다 훨씬.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넘어간다는 것을 명심하게.”

운청휘가 싸늘하게 노총관을 노려보자 노총관은 좌불안석이었다.

그가 노총관의 충성심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어떤 상위 포식자도 주견이 너무 뚜렷한 부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모든 걸 통제하는 것이 습관이 된 운청휘 같은 인물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예. 보증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노총관은 숨을 들이켰다. 말 못 할 공포가 엄습해 왔다.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가지. 의사청으로 안내하게.”

운청휘는 말을 하면서 밖으로 발길을 옮겼다.

“백부님을 잡아 둘 일은 세가회의뿐. 네 분의 대장로 모두 쉬운 인물은 아닐 터. 아버님이야 절대적인 실력으로 그들을 통제했지만, 백부님도 그리 하실 않을 않을 테지……. 약재각도 이미 어느 장로의 손에 넘어간 것이 분명하군.”

운씨 가문의 부지는 매우 넓고 아름다웠다.

운청휘와 노총관은 긴 복도를 걸었는데, 양옆에 연꽃으로 덮여 있는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운씨 가문의 의사청은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네 명의 대장로가 합심하여 가주를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가주 운한은 한눈에 봐도 불리하기 짝이 없었다.

“가주, 운현이 반년 전 저렇게 되고 나서 후계자 자리가 반년째 공석입니다! 지금 천우성 전체가 우리 운씨 가문이 후계자가 없다고 의구심을 표하고 있어요. 가문의 명예와 승계를 위해 오늘 여기서 후계자를 책봉해야 하오!”

“마침 본가의 아들 운양청이 성경 6단계의 무위에 올랐소. 재능으로 보나 무위로 보나 가문의 또래들 중 제일이니 그 녀석을 새로운 후계자로 책봉하는 것을 제안하는 바요!”

대장로가 한 번 더 압박했다.

“그만! 그대들의 눈에 내가 가주로 보이기는 하시오!”

운한이 다탁을 쾅 내려쳤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양손을 꽉 말아 쥐고 있었다. 장로들의 하는 짓이 협박이나 다름없었던 것이였다.

그러나 그의 무위와 위엄으로는 이 상황이 정리되지 못했다.

장로들 모두 무위가 그의 아래가 아니었고 대장로는 무위가 그보다 더 위였다.

“당연히 가주로 보이지요!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독단으로 나오신다면! 우리는 다른 가주를 세울 수밖에 없소!”

“대장로의 말씀이 맞습니다. 일가의 가주로서 먼저 가문의 이익부터 생각하셔야지요. 그런데 가주님은 반년이란 시간 동안 후계자 자리를 공석으로 두어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문이 후계가 끊긴다는 말까지 듣고 있지요. 만약 오늘 후계자를 책봉하지 않으면, 우리 네 장로는 수중의 권리로 가주를 파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주님, 이것이 무슨 사서 하시는 고생입니까? 운청휘가 실종되고 운현이 불구가 된 지금, 운씨 가문 승계의 적임자는 대장로의 자제 운양청뿐입니다. 가주님께서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십니까?”

장로 하나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가주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가주의 직계 혈통을 가진 자만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가능했다.

운청휘, 운현처럼. 그러나 하나는 실종됐고 하나는 불구가 됐으니 다른 사람을 후계로 책봉하지 않으면 운씨 가문은 정말로 후계가 없었다.

다른 세 장로가 대장로와 뜻을 같이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물론 물밑에서 어떤 암거래가 오갔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운한이 긴 침묵을 깨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얼굴은 굴욕감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반석처럼 단단한 의지도 엿보였다.

“좋소, 그대들의 요구에 맞춰 오늘 후계자를 책봉하겠소. 다만 후계자는 운양청이 아니라 운청휘가 될 것이오!”

운청휘가 돌아온 그 날 운한은 그를 후계자 자리에 책봉하기로 뜻을 굳혔다.

돌아오자마자 운청휘의 무위를 물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무위가 떨어져 성경 3단계라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다만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운청휘의 무위가 몇 단계 상승한 다음 후계자로 책봉하려 했었다.

물론 이렇게 결정한 것에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운청휘는 그의 조카다. 따라서 운씨 가문의 순수 혈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가 다음 가주가 되어야 혈통의 순수함을 지킬 수가 있었다.

또한 운청휘가 가주로 되어야 운현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운현이 받은 굴욕을 안다면 운청휘는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운현의 복수를 할 터였다.

그게 가문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일지라도.

그러나 운양청이 가주가 된다면, 이는 모두 허사가 될 터였다.

혈통의 순수함을 이어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운양청이 운현을 위해 복수할 수 없을 것이 자명했다.

“가주, 지금 상황의 심각함을 모르시는 것이오까! 정녕 가문을 무너트릴 작정이오? 실종된 지 3년이나 지나, 생사도 알 수 없는 자를 후계자 자리에 올리겠다는 말이오?”

대장로가 냉소를 지었다.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그때, 붉은 장포를 입고 등에 빈 검집을 둘러멘, 구천 군왕의 기세를 내뿜는 청년이 대전으로 들어섰다.

담담히 대전 안쪽을 바라보는 눈빛은 평온했으나 칼날같이 예리하여, 대전의 그 누구도 그 눈빛을 직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에게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지배감이 의사청에 있는 자들에게 굴복하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운…… 운청휘!”

가주 운한을 제외한 사람들은 대낮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운청휘를 바라봤다.

3년간 실종되어 이미 죽었다고 확신했던 사람이 다시 자신들의 앞에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사람들은 졸지에 과거의 기억으로 빠져들었다.

한때, 운청휘는 그들의 가장 흡족한 후계자였다.

그는 운씨 가문의 자랑이었고, 운현과 운양청도 그 앞에서는 빛을 잃곤 했다.

그러나 그는 사라졌다.

마치 인세에서 증발해버린 것처럼, 어떤 흔적도 없이.

만약 그가 실종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운청휘는 운씨 가문의 누구보다도 크게 성장했을 것이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운청휘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고고한 자태는 없었지만 왕의 귀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도련님을 뵙습니다!”

“운휘 도련님을 뵙습니다!”

운한과 네 장로를 제외한 대전 내의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운청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존경심이 가득했다. 그의 부친의 위엄이 작용한 것도 있었지만, 크게는 운청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때문이었다.

실종된 당시 열다섯 살의 운청휘는 이미 성경 5단계의 무위로 천우성의 제일 기재로 불렸다.

그것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하의 기재로.

비록 채하가 더욱더 뛰어난 무재로 운청휘의 기록을 깨트렸다곤 하나, 기존의 기록은 범인이 범접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대장로의 안색이 암담하게 가라앉는 한편, 다른 세 장로 역시 복잡한 심경이었다.

3년이나 지났으니, 운청휘의 무위가 대폭 상승했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장로. 내가 운청휘를 후계자로 책봉하는 것에 다른 의견이 있소?”

이때 가주 운한의 목소리가 울렸다.

“없습니다.”

“없습니다.”

“없습니다.”

세 장로는 망설임이 없이 한 목소리로 동의를 외쳤다.

“본 장로는…….”

대장로의 안색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말을 꺼내야 하는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운청휘, 너의 무위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느냐?”

대장로의 물음에는 이미 굴복의 뜻이 담겨 있었다.

숨소리마저 사라진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전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청각을 곤두세워 운청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궁금해 하고 있는 문제였다.

3년 전에 성경 5단계였으니, 지금 운청휘의 무위는 얼마나 올라가 있을까……?

“성경 3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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