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운청휘는 숨길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가감 없이 말했다.
그에게는 성경 3단계나 월경 3단계나 심지어 양경 3단계나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평범한 인간의 무위였기 때문이었다.
“청휘야…….”
운한의 눈에 조급함이 스쳐 지나갔다.
운청휘가 이렇게 숨김없이 무위를 공개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지금 뭐라고……?”
대장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운청휘의 무위를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예상한 대장로였다. 그런데 성경 3단계라니!
3년 전의 운청휘가 성경 5단계에 도달해 천하의 기재라 불렸다면, 지금의 운청휘는 성경 3단계. 완전히 평범한 용재로 몰락한 것이다.
그에게 큰 희망을 품었던 가신들도 실망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실망이 크신 모양입니다.”
운청휘는 좌중의 반응을 살피다가 눈길을 장방(賬房) 총관에게서 멈췄다.
“전 총관, 제 기억으로는 제가 어릴 때 당신을 전 아저씨라고 불렀지요. 전 아저씨, 저한테 실망이 크십니까?”
전 아저씨로 불린 사십 대의 중년 사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도련님께 고합니다. 실로 실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도련님은 15세에 성경 5단계를 이루어낸 천우성의 제일 기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은…….”
사내는 말끝을 흐렸지만 누구나 다음에 올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운청휘의 추락.
평범한 용재이거나 미련한 인간이 되었다 중 하나일 것이다.
운청휘는 상관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3년 전, 저는 홀로 낭야산으로 떠났습니다. 운 나쁘게 산적들과 마주쳤고, 전투 끝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잡혀 있는 동안 수련한 시간은 물론 하루 세끼도 보장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무위도 성경 3단계로 하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문제겠습니까? 실망할 것 없습니다. 저는 살아 돌아왔고, 자질도 그대로입니다. 장담하건대, 1년 안으로 천우성 제일 기재의 자리는 다시 제 것이 될 것입니다!”
운청휘는 말을 멈추고 눈길을 다시 ‘전 아저씨’에게 돌렸다.
“전 아저씨, 다시 묻습니다. 저한테 실망하셨습니까?”
말을 하면서, 운청휘는 은밀하게 한 줄기 정신지배 파장을 흘려보내 장내를 잠식했다.
영향력의 차이는 있지만, 운한과 네 장로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정신지배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운청휘의 말을 들은 사내, 전 아저씨는 피가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실망에서 굳은 믿음으로 변해 있었다.
“도련님, 더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1년 안에 도련님이 천우성 제일 기재의 자리에 다시 오를 것이라 믿습니다!”
“도련님, 저희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1년 안에 천우성 제일 기재의 자리는 도련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장내 모든 수하들이 흥분하여 너도나도 소리 질렀다. 그들이 운청휘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만. 모두 조용하시오!”
운청휘가 손을 내젓고 나서야 분위기가 겨우 진정되었다.
“백부님, 이제 저를 후계자로 선언하시지요.”
운청휘가 옆에서 경악하고 있는 운한에게 말했다.
“그, 그러마……, 운씨 일가의 가주로서 선언하겠……!”
운한은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는 말했다. 그러나 그의 선언은 대장로의 제지에 가로막혔다.
“잠깐!”
대장로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운청휘. 지난 3년간 말재주만 단련한 것이냐? 세 치 혀로 모두를 속이는구나. 그러나! 거짓말도 정도가 있다! 1년 안에 천우성 제일 기재의 자리를 되찾겠다고? 지금 천우성 제일 기재의 무위를 알고 하는 소리더냐? 네가 실종되지 않았더라도 그의 무위에 닿을지 가늠할 수가 없는데 지금에 와서……!”
운청휘가 손을 휙 내저으며 대장로의 말을 잘랐다.
“대장로,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고 본론을 말씀하십시오.”
그가 이렇게 인내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무위만 회복되어 있었다면 이미 장로를 일장에 쳐 죽였을 것이다.
“정말로 1년 안에 천우성 제일 기재가 될 수 있다 하였느냐? 그걸 사실로 증명해 보거라. 아주 쉬운 방법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1년이나 기다릴 수 없으니, 한 달 내로 증명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입니까?”
입을 연 것은 가주 운한이었다.
“한 달 뒤의 오늘, 운청휘와 운양청의 대결을 진행할 것이오. 물론 승자가 다음 가주의 승계권을 가지는 것이지.”
대장로가 싸늘하게 웃었다.
“대장로, 지금 농담하자는 것이오? 지금 운청휘는 겨우 성경 3단계에 불과하오. 그런데 한 달 뒤 성경 6단계인 운양청과 대결을 시킨다는 것이오?”
가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누가 가주와 농담이나 주고받자고 했소? 1년 안에 천우성 제일 기재의 보좌를 차지하겠다고 했으니, 한 달 내로 내 아들을 이기는 것쯤은 쉬운 일이 아니오? 못 이긴다면 그 말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는 것이고.”
대장로는 도발하듯 운청휘를 보았다.
“운청휘, 할 수 있겠느냐?”
운청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못 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한 달은 너무 길고, 7일 후에 하겠습니다.”
운청휘의 말에 대전이 크게 술렁였다.
대장로가 내 건 한 달도 짧다고 여겼는데, 운청휘 스스로 기한을 7일로 줄여 버렸다.
설마, 운청휘가 미쳐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한 달 후에도 운양청의 상대가 될 기미가 안 보이니, 자포자기하여 기한을 바꿔 버린 것일까?
운청휘를 믿게 된 ‘전 아저씨’마저 운청휘가 미쳤다고 생각할 만큼, 주위 사람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청휘야, 진정 미친 것이야?”
백부 운한은 눈을 부릅뜨고 운청휘를 바라봤다.
“백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운청휘는 근심 말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양청, 그 아둔한 놈을 꺾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면, 차라리 연못에 뛰어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운청휘의 말엔 뚜렷한 멸시가 담겨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운청휘는 운양청을 적지 않게 혼냈다. 운양청은 대장로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숱하게 다른 이들을 괴롭히곤 했으니.
심지어 운양청이 채하를 희롱하기까지 해, 분노한 운청휘가 그를 거세하려 했으나 때마침 도착한 집안 어른들이 제지한 적도 있었다.
7일 후로 비무 날짜를 결정하자 세가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청휘야. 바래다주마.”
돌아가는 길에 운한은 무엇인가 말하려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끝내 입을 열었다.
“청휘야. 너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이 못난 백부를 용서해다오.”
만약 운청휘의 부친이 가주로 있었다면 운청휘가 성경 3단계라고 해도 한마디의 말로 그를 후계자로 정할 수 있었다.
운청휘의 아버지는 운씨 가문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장로들도 그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백부님. 진심으로 제게 미안함을 느끼신다면, 제가 대결에서 이긴 후에는 현 형님에게 일어났던 일을 전부 알려 주십시오.”
운청휘의 눈에 순간 차가운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마!”
운한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어금니를 꾹 깨물며 대답했다.
운한은 운청휘를 별채까지 바래다준 뒤 잠시 머물다 떠났다.
그가 떠나고 운청휘도 연단을 준비했다.
지금의 무위로는 잠과 수련을 포기해도, 정제에 이틀은 걸린다.
방해받지 않으려고 백부에게도 말해 두었고 노총관 운원림을 불러 호법을 세웠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문을 닫아걸고 이미 방안에 준비해 둔 단로(丹爐)를 열었다.
“영지, 복령, 산골초…… 모두 십 년은 된 것이군.”
운청휘가 낮게 중얼거리며 약재들을 순서대로 단로에 넣었다.
“선계의 사람들이 내가 취기단을 정제하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군…….”
우습다는 듯 혼잣말을 하는 운청휘였다.
취기단. 선계의 최하층 생령도 복용하지 않는 저급의 단약이다.
천성대륙에서는 하품에 속하지만, 적어도 입문 단계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어 은자 천 냥에 이르는 가격에도 시장에서 구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운청휘가 두 손을 단로 하단에 대고 구결을 읊자 백색의 화염이 일어났다.
부글부글……
금세 단로 안 내용물이 끓기 시작하고, 이 각이 지나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운청휘는 신식으로 단로 안을 살폈다.
한 시진 반이 지나자 운청휘의 손에서 나오는 불길이 커졌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했다. 불을 조절하는 것이다.
단약이 형태를 잡으려면 불 조절이 중요했다. 뜨거워야 할 때는 불을 키워야 하고, 부드러워야 할 때는 불을 줄여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단약의 품질이 하락하고 잘못되면 단약을 모두 폐기해야 할 수도 있어, 운청휘는 신중하게 불을 조절해나갔다.
그의 신식이 선계에 있을 때의 만분의 일도 안 되지만, 천성대륙의 연단사들에 비하면 몇 배는 뛰어나니 연단 과정에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꼬박 하루가 지나자 단로 안에서 서른 개가 넘는 단약이 초기의 형태를 드러냈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하고, 열전도도 하나같이 일정했다.
이대로 사고만 없다면, 이번 단약 정제는 성공이 확실했다.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이들은 모두 놀랄 터였다.
단약 정제의 성공률이 삼 할만 되어도 최고 연단사의 수준이며, 오 할에 달한다면 말할 것도 없으니.
지금 운청휘가 도달한 십 할의 성공률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었다.
또다시 하루가 지났다.
형태가 잡힌 단약이 서른 개가 넘었다. 완성에 이르기까지는 일 다경도 채 남지 않았다.
막바지에 다다른 이때, 별안간 운청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야~ 이게 누구신가? 운원림이 아닌가? 늙은이, 운청휘가 돌아오자마자 그새를 못 참고 달려와서 그놈의 개가 됐어?”
정원에서 젊은 사내의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늙은이. 당장 운청휘 불러 와. 이 운월이 찾는다고! 뭘 그렇게 멍청히 보고만 있어? 네놈이 총관라고 한들, 본 공자가 못 때릴 것 같으냐? ……그래, 너 좀 맞아보자!”
이어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발차기가 작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여기가 그놈의 방인데 말이지.”
말소리와 함께 운청휘의 방 앞으로 기척이 다가왔다.
쾅!
발길질 한 방에 박달나무로 만든 출입문이 산산이 조각났다.
떵!
그때, 날아온 나무 파편 하나가 단로에 부딪혔다. 아직 연단을 정제하느라 두 손을 모으고 있던 운청휘는 단로가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막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운청휘, 너. 도적소굴에서 도망쳐 나왔다지? 무위도 성경 3단계로 떨어지고! 뭐야? 무도(武道)는 가망이 없으니 단도(丹道)로 갈아탄 건가?”
그는 바닥에서 나 뒹굴고 있는 단로와 방 안 가득한 연기를 보더니 운청휘가 연단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크크큭……. 그렇다면 아주 잘못 짚었구나! 단도는 무도보다 몇 배는 어려운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