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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6화 (6/430)

제6화

“그래도 진려가 한 일이 쓸데없진 않았군. 몰랐다면 양청이 녀석은 결투에서 그놈에게 당했을지도 몰랐겠어.”

운월의 시체를 살피던 대장로가 낯빛을 무겁게 가라앉히며 몸을 일으켰다.

운월의 무위가 성경 4단계이니, 일초에 팔을 부수고 전투력을 잃게 하려면 적어도 무위가 성경 5단계에 이르러야 했다.

이전에 운청휘가 밝힌 무위는 성경 3단계였으니, 대장로는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했다.

“운청휘, 3년이란 세월에 말재주만 늘어난 줄 알았더니 심계도 깊어졌구나!”

대장로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더니 곧 조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네 놈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야. 내 자식은 이미 보름 전에 성경 7단계로 들어섰으니까.”

운월의 사체를 보고 많은 유추를 한 대장로지만, 운청휘가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알았다고 해도 운청휘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터였다.

선계 십대 선재 중 한 명인 그가 인간에 지나지 않는 대장로에게 심계를 발휘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대장로의 꿍꿍이를 알면 코웃음을 칠 운청휘였다.

한편, 운청휘는 정원을 떠나 운씨세가의 내부를 거닐고 있었다.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단약을 정제하기 바빠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운씨세가의 부지는 매우 넓었다. 인공 산, 인공 호, 화원, 연무장에 별장, 누각(樓閣)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세기도 벅찰 지경이었다.

발걸음을 연무장으로 향하자, 드넓은 광장에 백여 명 남짓한 아이들이 수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운청휘도 어렸을 때는 채하와 함께 연무장을 드나들곤 했다.

수련을 담당하는 무인이 따로 지도하기 전까진, 연무장이 운청휘의 수련 장소였으니까.

잠시 옛 생각이 나 연무장을 바라보던 운청휘는 곧 세가의 중심지로 걸음을 옮겼다. 일각쯤 지났을까, 무공각의 입구에서 운청휘는 우뚝 멈춰 섰다.

이토록 짙은 영력의 파동이라니!

천우성에 돌아오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한 영력이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천우성에 한해서였고, 선계의 수준에서는 하찮은 정도였지만.

운청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공각 안으로 들어섰다.

3층으로 이루어진 무공각의 내부는 긴 세월을 증명하듯 낡아 있었지만, 운청휘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과연. 월경의 무인이로군.’

노인 한 명이 눈을 감은 채 긴 의자에 누워 있었다.

80세를 족히 넘긴 듯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그 외엔 별다른 특징이 없어,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인상이었다.

“예전의 그 무공각 관리가 아니군.”

과거 운청휘는 무공각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눈앞에 있는 노인은 초면이었다.

‘아마도 이자가 백부님이 말씀하시던 태상장로겠군.’

“신분요패!”

노인이 눈을 감은 채로 소리쳤다.

“신분요패는 잃어버렸습니다.”

무공각은 운씨세가의 중요 자산 중 하나이기에, 출입하는 자들은 모두 세가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신분요패를 제시해야 했다.

운청휘 또한 신분요패를 늘 가지고 다녔으나, 선계에 넘어갈 때 잃어버리고 말았다.

“신분요패를 잃어버려?”

노인의 얼굴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지더니, 눈을 뜨고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운청휘의 전신을 압박했다.

월경의 경지에 이른 자가 내뿜는 기운이다. 어지간한 자라면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터였다.

신분요패를 잃어버리고도 당당히 들어온 것이 괘씸해, 조금 혼을 내주고자 했는데 정작 운청휘의 안색은 물처럼 잔잔하고 고요했다.

그 광경에 노인의 눈빛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모든 기운을 방출한 것은 아니지만,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다니?

노인은 그제야 운청휘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이름이 뭐냐? 방계냐 직계냐?”

“직계자제 운청휘입니다.”

“뭐라? 운청휘? 3년 전 실종되었다던 그 운청휘란 말이냐?”

아직 운청휘의 소식을 듣지 못했는지, 노인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운청휘는 쓴웃음을 지으며 낭야산에서 도적들을 만나 감금당했다는 이야기를 다시 읊어주었다.

“그 낭야산 도적들로부터 도망쳤다니…….”

노인의 두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그도 낭야산에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월경고수라 해도 그놈들에게 잡히면 끝이었으니까.

“그 말이 진짜라면 신분요패를 잃어버린 것도 설명이 되는군.”

노인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무공을 고르러 온 것이더냐?”

“예.”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너는 직계이니 바로 3층으로 갈 수 있다. 다만, 두 가지 규칙을 잊지 말거라. 첫째, 하나의 무공만 선택할 것. 둘째, 이 각을 넘기지 말고 나올 것. 그럼, 들어가 보거라.”

천성대륙에서는 무공의 양과 질이 한 세가의 실력, 잠재력, 그리고 후대 양성과 직결되기에 모든 무공각 출입에 엄격한 규칙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방계자제는 1층에서만 무공서를 고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구결이 기초에 가까운, 그저 그런 무공들뿐이지만.

2층부터는 직계자제나, 성경 5단계에 들어선 방계자제들만 출입이 가능했으며, 3층은 직계자제만 드나들 수 있었다.

지금 운씨세가의 직계자제는 운청휘와 운현뿐이었으며, 그 외의 인물이 3층에 출입하려면 천부적 재능을 증명함은 물론 가주의 허락이 필요했다.

지금은 운씨세가의 제일 기재라 불리는 운양청도 가주의 허락 없이는 3층에 올라갈 수 없었다.

운씨세가의 무공각은 설립 이래 지금까지 후대에게 전승할 수 있는 모든 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1층에서 보관하는 무공서는 수천 권, 2층부터는 삼백여 권으로 줄어든다.

3층은 서른여 권의 무공서만이 보관되어 있는데, 각각 철제 함에 담겨 있어 맞는 열쇠가 아니면 열 수가 없었다.

이 서른여 권의 무공서는 수는 적어도, 한 권 한 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급상품(人级上品)의 무공서였다.

천우성에서 보편적으로 거래되는 무공서는 인급하품(人级下品)의 무공이 담겨 있다.

인급중품(人级中品)부터는 암시장에서도 보기 어려웠는데, 어쩌다 무공서가 나와도 삼대 세력가에서 높은 가격을 치르고 가져가기 일쑤였다.

더욱이 인급상품 무공서는 삼대 세력 외의 다른 이가 소유할 수 없었기에, 거래는 없다시피 했다.

“칠성지, 유성검법, 구중장, 붕산권…….”

운청휘는 철제 상자를 하나하나 훑었다.

상자 외면에 작은 종잇조각이 붙어 있었는데 상자 안의 무공이름과 특성이 적혀 있었다.

운청휘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겠다는 듯 신식을 펼쳐 철제 상자 안의 무공을 전부 살펴보았다.

유독 하나의 철제 상자만 그의 신식으로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영후백변신법(靈猴百變身法)!”

운청휘의 눈빛과 신식이 모두 마지막 철제 상자에 닿았다.

“영후 백변신법, 인급상급 경공, 수련이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몸이 제비처럼 가벼워져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며 수련자의 달리기, 높이뛰기, 회피 등을 대폭 상승시켜 준다. 수련의 경지가 지존에 이르면 버들가지 위에 서도 가지가 부러지지 않는다…….”

운청휘는 중얼거리며 철제 상자 위에 있는 종잇조각을 읽었다.

“무공각에 이렇게 높은 수준의 무공이 있었나? 신식이 통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

운청휘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버들가지 위에 선다라……. 이건 경공의 한계를 넘어섰군. 허공을 밟고 선다는 말이 아닌가.”

허공을 밟고 서는 경지. 모든 무인들이 꿈꾸는 경지였다.

선천생령만이 가능하다는 양경의 끝에 올라선 무인도 허공을 밟고 설 수는 없었다.

성경 단계로 퇴보한 운청휘도 마찬가지였다.

“일각도 지나지 않았거늘, 벌써 볼일이 끝난 것이냐?”

운청휘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가져온 상자가 영후백변신법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노인의 표정은 더 험악해져 두 눈썹이 거의 맞닿을 지경이었다.

“무공의 설명만 보면 영후백변신법이 흥미로울 것이다. 하물며 ‘버들가지 위에 설 수 있다’는 부분은 어떻고. 하지만, 영후백변신법은 동급의 경공보다 몇 십 배는 익히기 어려운 것을 아느냐? 운씨세가에서도 그 경공을 대성한 자가 없다.”

노인이 짜증을 참고 있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충고했다.

“그렇습니까?”

운청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등급이 높을수록 수련의 난이도도 올라간다는 것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영후백변신법은 무려 천급상품의 무공으로, 입문무공의 난이도를 기준으로 둔다면 천급의 무공은 적어도 입문무공의 만 배에 해당하는 난이도였다. 그러니 노인이 저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다른 무공을 고르는 것이 어떻겠느냐. 너는 이미 낭야산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그간 낭비한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노부가 충고하건대, 영후백변신법은 네 시간만 뺏을 것이니라.”

노인이 다시 만류했다.

“태상장로님의 충고는 감사하나, 저는 이미 뜻을 정했습니다.”

운청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신식으로 다른 삼십여 편의 무공 구결도 머리에 담은 터였다. 신식이 없었더라도, 운청휘는 영후백변신법을 선택했겠지만.

간단한 이유다. 천급무공을 앞에 두고 더 볼 것이 있겠는가?

“이놈…… 고집불통이로구나!”

노인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옷깃을 내저었지만, 곧 철제함을 열어 운청휘에게 무공서를 휙 던져 주었다.

“이제 가도 된다. 삼 일 내로 가져오는 것을 명심하고!”

노인의 축객령이 떨어졌다.

“예.”

운청휘는 간결히 대답을 한 뒤 몸을 돌렸다.

“벽에 가로막히면 자연의 이치에 맡기는 것이 옳으나, 심신의 편안함만 좇다가는 퇴보하기 마련입니다. 무공은 수련과 휴식의 결합을 중요시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들 무리하면 탈이 나고, 안일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쉽게 잊곤 하더군요.”

무공각을 나간 운청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과연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애송이 놈이로군. 감히 노부를 가르치려 들다니!”

노인은 작아지는 운청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조소를 내뱉었지만, 머릿속에선 그의 말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고 있었다.

‘무리하면 탈이 나고, 안일하면 위험하다……. 무리하면 탈이 나고, 안일하면 위험하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눈이 빛나며 흐려졌던 머릿속이 일순간 말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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