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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7화 (7/430)

제7화

별다른 호감은 없었지만, 운청휘가 노인에게 조언을 한 것은 그가 운씨세가에 보이는 충정 때문이었다.

직계자제인 그로서는 운씨세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의 근간은 운씨세가였고, 노인이 세가에 충성하는 것은 곧 후계자가 될 운청휘에게 충성한다는 뜻이니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하지 않기를 바라야겠군.”

운청휘가 본 노인의 무위는 월경 1단계였다.

기세로 보아 수년 전에 도달한 뒤 별다른 진척이 없었을 터였다.

노인이 월경 2단계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과도하게 자연의 섭리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리하면 탈이 나고, 안일하면 위험하다.

노인은 자연의 섭리에 치중했고, 그 결과가 안일함으로 이어졌으니 수련에 변화가 없을 수밖에.

“알아들었으면 삼 일 안에 벽을 넘을 것이고, 아니라면 이번 생은 거기에 머무르겠지.”

짧은 혼잣말로 운청휘는 이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노인이 벽을 넘으면 좋은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그의 팔자였다.

결과가 어찌 되든 운청휘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었으니까.

돌아가는 길 내내, 운청휘는 영후백변신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선제인 운청휘의 수련에 굳이 실전이 필요할까.

머릿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그의 머릿속은 버들가지로 가득했다.

때때로, 운청휘는 가느다란 버들가지를 밟고 수십 장 공중으로 솟구치곤 했다.

백 회 이상의 심상수련을 마쳤을 때, 운청휘는 무공의 운용뿐만 아니라 열 가지가 넘는 난이도 높은 초식도 익힐 수 있었다.

다만 실제로 버들가지에 올라서려고 하면, 힘없이 부러지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다.

머릿속으로는 완전히 익혔다고 하나, 성경 4단계인 그의 무위로는 완전한 영후백변신법을 펼쳐낼 수 없었다.

“그 초식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내 것으로 만들었군.”

운청휘는 혼잣말을 하며 수련을 멈췄다.

선계의 무공에도 등급이 있는데, 최하급 무공도 천성대륙에 비하면 몇 배는 익히기 어려웠다.

그러니 선제로 군림했던 운청휘에게는 천성대륙의 천급무공쯤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영후백변신법 외에도 신식으로 살폈던 인급상품 무공을 머릿속으로 한 번씩 구현해 보았다.

영후백변신법과는 달리, 인급상품 무공은 그저 한 번의 수련으로 충분했다.

“청휘 오라버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3년 만에 돌아왔으면서, 날 보러 오지도 않고!”

그때, 정원 밖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늘씬한 청의(青衣)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비, 오랜만이로구나.”

운청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운비비는 삼 장로의 딸로, 어릴 때부터 운청휘를 오라버니라 부르며 잘 따르곤 했다.

“흥! 오랜만인 걸 알긴 아네. 돌아온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날 보러 오지도 않고!”

운비비는 서운한 듯 입술을 삐죽였지만, 곧 걱정스러운 얼굴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운양청과 7일 뒤에 대련한다면서? 무위도 성경 3단계로 퇴보하고. ……에잇, 오라버니! 예전에는 이렇게 충동적이지 않았잖아! 오라버니의 잠재력이라면 운양청을 뛰어넘는 건 시간문젠데, 이렇게 갑자기 결정할 필요는 없잖아!”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운청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걱정 마라. 어렸을 때부터 봐 왔으니 알 텐데. 나는 자신 없는 일은 하지 않아.”

“그, 그렇지?”

그 말처럼, 운비비가 기억하는 운청휘는 늘 확실한 일만 해왔다.

“알겠어. 그보다 오라버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나랑 같이 가자!”

그녀는 다짜고짜 운청휘의 손을 잡고 대문을 향해 걸었다.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무렵, 둘은 몇 개의 거리를 지나 한 주루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운씨세가의 주루로, 간판에 동승주루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운비비는 주루 3층의 별실로 운청휘를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식탁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17~18세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앉아 있었는데, 긴 머리카락이 날씬한 몸을 타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보는 듯했다.

“그럼 난 이만 빠져 주는 걸로.”

운비비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방에서 나가며 문을 닫아 버렸다.

“사소연…….”

그녀일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사소연.

운청휘의 첫사랑이었다.

“운…… 운청휘, 정말 너구나. 정말 돌아온 거였어.”

사소연이 눈물을 흘리며 운청휘에게 몸을 던졌다.

그동안, 운청휘의 실종으로 사소연은 자신을 탓했다. 3년 전, 이별을 고하지만 않았더라면, 운청휘가 실종되지 않았을 텐데…….

운청휘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사소연은 계속해서 죄책감에 시달렸을 터였다.

“…….”

운청휘는 사소연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미안하다. 소식이 늦었어.”

“아냐.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 해도 너무 기뻐!”

사소연이 깊어진 눈으로 운청휘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 밤은 여기 남아서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돼?”

다른 남자였다면 소연의 제안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을 테지만, 운청휘는 입을 굳게 닫아 버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운청휘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지 않아도 돼.”

운청휘의 거절에 주춤했던 사소연은 다시 용기를 내어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사랑하니까…… 내게 가장 소중한 걸 네게 주고 싶어…….”

말을 하는 사소연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조용한 별실 안은 그녀의 은은한 향기가 더해져 미묘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죄책감일 뿐.”

운청휘는 사소연을 품에서 밀어내며 의자에 앉았다.

둘은 서로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함께한 시간은 고작 반년이었다. 만남이 이어지던 중, 사소연의 집에서 다른 세가와 혼약을 맺어 버렸다. 사소연 또한 그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혼약을 청해온 집안이 천원왕조 황성의 대세가, 상대는 무려 소가주였으니까.

운씨세가가 아무리 천우성 삼대 세력 중 하나라곤 해도, 황성의 대세가에 비하면 달빛과 반딧불이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지만, 사람은 높은 곳으로 향한다 했던가.

운청휘는 사소연의 선택을 존중했다. 하지만 결별의 아픔은 견뎌낼 도리가 없었다. 마음이 찢기고 심장이 멎는 듯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무공에 정진하기 위해, 운청휘는 천우성을 떠났다.

하필 첫 목적지인 낭야산에서 선계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어찌 보면 그 덕분에 사소연을 향한 마음이 점점 옅어질 수 있었다.

지금의 운청휘에게 사소연은 그저 친구일 뿐, 다른 감정은 없었다.

“죄책감? 그럴지도…….”

사소연이 다시 침묵을 깼다.

“그럼…… 그냥 내 죄책감을 덜어 줘.”

사소연의 옷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희고 깨끗한 어깨가 드러나며 사소연에게서 나는 향기가 더욱더 짙어지고 있었다.

솟아오른 굴곡을 가린 가리개에 사소연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운청휘는 냉소를 흘렸다.

“하……. 이게 무슨 짓이지? 너와 날 얼마나 하찮게 만들려는 거냐!”

운청휘가 누군가. 그는 선계 시절 한마디의 말만으로 수많은 미인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사소연이 그 대상이 되진 않을 것이다.

3년 전, 사소연이 이별을 전했을 때 운청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만나고 있던 중에 황성 대세가의 혼약에 승낙했다. 이별의 아픔만큼, 배신감도 컸다.

사소연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청휘야. 어떤 이유든 상관없어. 난 그저…… 이렇게 하고 싶을 뿐이야. 이번 한 번만, 받아주면 안 돼?”

운청휘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사소연이 서둘러 한마디 덧붙였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 될 거야. 그러니 내 약혼자가 찾아오리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뭐?”

운청휘는 처음으로 그녀가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말라고. 내 약혼자에게도 비밀로 할꺼야.”

그녀는 운청휘의 눈빛이 차갑게 식은 것도 모르고 말을 이었다.

“사실 나 알고 있었어. 3년 전 네가 이별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인 것도 내 약혼자와 그 배경 때문이라는 걸…….”

그 말을 듣자, 운청휘의 눈빛에는 혐오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3년 전, 운청휘가 이별을 받아들인 이유는 사소연의 배신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만남도, 이별도 주변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두 사람의 선택이라 생각한 운청휘였다.

그런데 사소연은 운청휘가 자신의 약혼자가 무서워 포기한 줄 알고 있다니…….

마음이 또다시 아팠다. 사소연을 향한 감정이 남아서가 아니었다.

그녀를 사랑한 자신이 바보 같아서였다.

자신은 사소연의 선택을 존중했는데, 그 행동이 사소연에게는 겁쟁이로 비쳤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운청휘! 뭘 머뭇거려? 대체 뭘 망설이는 거야? 남자가 되어서 그런 용기도 없어?”

그녀는 운청휘가 의자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자 조금 화가 난 듯했다.

“사소연. 멍청한 건지, 멍청한 흉내를 내는 건지 모르겠군. 네 몸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걸 모르겠나? 수치스러운 일을 더 만들지 말도록. 네 죄책감이란 것도 그저 너의 생각일 뿐, 나는 너의 보상 따위 원한 적 없다.”

운청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리고 네 약혼자, 그자가 누구든 내가 두려워할 이유가 뭐지?”

운청휘는 가까스로 살기를 억제하고 있었다.

옛정만 아니라면,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 사소연은 이미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하찮은 동정심으로 선제 운청휘에게 말도 안 되는 보상을 내민다?

운청휘를 따르는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였다.

십대 선대 중 한 명인 지요여제(池瑤女帝)도 그에게 마음을 다해 사모한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경국지색이란 말도 부족한 그녀에 비하면 사소연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다신 보고 싶지 않군. 이만 가보지.”

운청휘는 몸을 돌려 그대로 별실을 나와 버렸다.

이대로 있다가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죽여 버릴 것 같았다.

“거기 서! ……야! 운청휘!”

운청휘가 멈추지 않고 멀어져 가자 그녀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너 지금이라도 멈춰! 후회하지 말고!”

“……후회라? 만약 내가 멈춘다면, 후회할 사람은 내가 아닐 텐데.”

힘겹게 살기를 갈무리한 운청휘는 실소하며 주루를 빠져나갔다.

막 정문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화복(華服)을 입은 귀공자들이 들어오며 운청휘를 스쳐갔다.

“누구지? 낯이 익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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