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군영진?”
운몽은 처음 듣는 진법이었다.
“잠깐만요. 군영진을 배치하셨다니요? 그러니까 도련님이 진법도 아신다는 말씀입니까?”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
운몽의 호흡이 갑자기 흐트러졌다. 운청휘를 바라보는 눈빛은 이미 놀라움을 넘어 경외로 물들어 있었다.
“진…… 진법대사, 도련님이 진법대사셨다니!”
“일개 진법대사일 뿐. 그렇게 크게 놀랄 만한 것은 아닙니다.”
선제 시절 연단술, 연금술, 진법 등을 익히고 실력 또한 최고에 이른 운청휘였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은 듯 웃어넘길 수밖에.
“진법대사가 놀랄 일이 아니라고요?”
운몽은 뇌가 잠시 멈추는 것 같았다. 진법대사는 연단사보다도 더 존귀하고 보기 힘든 직업이었다.
운몽이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진법 외에도 여, 연단도 하신다고…….”
“예. 다만 무위에 제한이 있어 아직은…….”
운청휘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세상에! 도련님,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신선? 아니지. 신선이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어. 도련님은 사람이 아닌거 아닙니까? 아니,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또다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뱉을 뻔한 운몽이 흉신악살 같은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을, 운청휘가 재미있다는 듯 보고 있었다.
요리사가 탕초리척, 홍소육, 오이 새우볶음 등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운청휘에게는 연단이나 진법이 특별히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운몽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연단사는 고귀한 존재였고, 진법대사는 그보다 더 고귀했다.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운청휘는 운몽에게 마치 신처럼 보였다.
“아저씨, 무위가 성경 7단계에 머무른 지 5년이 되었군요.”
운청휘가 말을 돌렸다.
“도련님은 그런 것도 보이십니까?”
운몽이 또 놀라려고 하자 운청휘가 급히 끊었다.
“제 말을 마저 들으십시오.”
운청휘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벽을 빠르게 넘을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과정이 매우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래도 해보겠습니까? ……그저 대답만 해주면 됩니다.”
운청휘는 운몽이 또 놀라서 펄쩍 뛸 것 같아 급히 덧붙였다.
“하겠습니다!”
운몽은 호흡이 무거워졌지만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무인에게 무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운청휘는 그런 운몽의 심성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가 말한 방법은 다름이 아니라 약욕(藥浴)이었다.
만다라화와 금선은화 분말을 뜨거운 물에 일정한 비율로 풀면 약욕(藥浴)할 수 있는 칠보쇠체액(七寶淬體液)이 된다.
칠보쇠체액(七寶淬體液)은 선계에서도 진귀한 약재였다. 다만 선계인들은 칠보쇠체액(七寶淬體液)을 조제할 때 만년 이상 된 만다라화(曼陀罗花)과 금선은화를 사용했다.
운몽이 사온 것들은 대부분 이십 년에서 삼십 년 정도였다. 돈도 돈이지만,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었다.
천성대륙에서 백 년 이상의 영약은 가격이 훌쩍 뛰어오른다.
천년, 만년 된 것은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고, 드물게 나와도 팔려는 사람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시진이 흘렀다.
“조제 과정과 방법은 다 기억하셨습니까?”
운청휘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운몽을 보며 말했다.
“예. 물, 물론입니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엎드린 운몽이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의 신임에 감사드립니다!”
그가 이러는 것도 당연했다. 운청휘는 몸소 칠보쇠체액(七寶淬體液)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조제하며 운몽에게 전수해 주었다.
“아저씨께서 웃어른인 만큼 다시는 저에게 무릎을 꿇지 마십시오.”
운청휘는 운몽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칠보쇠체액(七寶淬體液)의 조제를 맡기겠습니다. 다만, 제 허락 없이는 누구에게도 전수하면 안 됩니다.”
***
칠보쇠체액(七寶淬體液)에 들어가는 만다라화와 금사은꽃은 모두 극독을 갖고 있다.
비록 독성을 지닌 만다라화와 금사은화를 섞으면 독은 중화되지만, 비수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는 건 여전했다.
선제인 운청휘는 이 정도의 고통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지만, 운몽은 아니었다.
일개 범인인 그는 그저 이를 악문 채 고통을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 시진이 지나자, 약액의 흡수가 끝났다.
통을 채운 약액은 이제 그저 맑고 투명한 물에 지나지 않았다. 운청휘는 약통에서 나와 영력으로 몸의 물기를 털어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운몽은 근성으로 버티며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도련님, 끝나셨습니까…….”
운청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고는, 가부좌를 틀어 영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지금 운청휘의 무위는 성경 5단계에 근접해 있었다.
다른 무인들과는 달리 무위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것이기에, 단계 사이에 벽이 없었다.
그러니 기만 부족하지 않으면 제한 없이 무위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군영진 덕분에 정원의 영기 농도는 바깥의 두 배에 달했다.
거기에 칠보쇠체액(七寶淬體液)의 약효까지 더해지니 이틀 만에 성경 5단계로 올라서게 되었다.
“내 도움이 조금 필요하겠군.”
운청휘는 기절한 듯 잠들어 있는 운몽을 바라보다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가 성경 7단계에 5년이나 묶여 있는 것은, 늘 피비린내가 진동할 만큼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겠지. 그로 인한 업보가 심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로군.”
운몽이 운씨세가의 검으로서 죽인 사람이 적어도 네 자릿수를 넘어간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그로 인한 업보가 얼마나 무거울 지 알 수 있었다.
업보는 죄악이라고도 불렀다. 운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했다.
마도에서 업보는 큰 양분이 된다지만, 보통의 무인에게는 수련의 큰 걸림돌이었다. 심지어 조금만 방심해도 이성이 업보에 침식당할 수 있었다.
운청휘는 양손을 운몽의 등에 대고 영력을 일으켜 업보를 자신의 몸으로 옮겨 놓았다.
선제이기에 당연히 업보를 녹이는 방법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무수한 생령을 죽인 선제들은 업보에 잠식되어 이성을 잃고 살육만을 하는 기계나 다름없이 변했을 것이다.
운몽이 깨어난 것은 정오를 지나 타오르는 태양이 하루 중 가장 뜨거운 빛을 뿌려대고 있을 때였다.
“하하하. 이 천수혈도가 드디어 성경 8단계로 올라섰다!”
곧 그는 자신의 무위가 벽을 넘은 것을 알아차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한데? 몸에 있던 업보가 줄어든 것 같은데…….”
몸이 너무도 상쾌해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도련님, 혹시……?”
피곤한 얼굴을 한 운청휘를 보니 운몽은 숨이 탁 막혀오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도련님이 제 업보를 덜어주신 겁니까?”
운청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아직 성경 5단계의 무위였기에, 운몽의 몸에 있는 업보를 강제로 녹이는 일은 심신의 소모가 심했다.
탕탕탕탕탕탕.
그때, 정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로 밖에 서 있는 자가 얼마나 초조한지 알 수 있었다.
운청휘는 군영진을 배치한 뒤 누군가가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을 대비하여 대문을 걸어 잠갔었다.
“……형님이로군.”
운청휘는 신식을 흘려보내 초조함이 가득한 운현의 얼굴을 확인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곧 문이 열리고 운현이 황급하게 정원으로 들어왔다.
“청휘야. 빠, 빨리 짐을 싸거라! 함께 떠나야겠다. 준비는 아버님이 해 두셨다. 한동안 피신해서 시간을 끌면 된다.”
“한동안 피신이라니,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운청휘가 깜짝 놀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운현을 바라보았다.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운양청이 돌아왔다. 네가 운열을 죽인 것을 알고, 결투하는 날에 널 죽여 복수하겠다며 호언장담하더구나!”
운청휘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운월을 죽였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가 운양청의 상대가 못 된다고 알고 있었다. 지금의 운양청은 운씨세가의 제일 기재였으니까.
“게다가 아버님이 들으신 게 있다. 운양청이 얼마 전 성경 7단계로 올랐다고 하더구나.”
운현은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뒷소문의 진위는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그들 부자(父子)는 도박을 할 수 없었다. 사실이라면 결투의 날 운청휘는 반드시 죽는다.
운현이 보기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운청휘가 한동안 천우성을 떠나는 것뿐이었다.
“형님. 운양청의 무위가 어떻든, 제게는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운청휘는 형이 이러는 이유를 듣고 허탈해서 실소를 내뱉었다.
“현 도련님, 근심할 것 없습니다. 내일 결투는 휘 도련님이 승리할 것입니다.”
이때 운몽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말대로, 약속한 비무가 벌써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천…… 천수혈도!”
운현의 신형이 움츠러들었다. 제아무리 운현이라도 운몽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추태를 보였군요…….”
정신이 돌아온 운현이 연신 용서를 구했다. 운현은 운몽이 두려웠지만 그보다 존중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는 운씨세가를 위해 일생을 바쳤으니까.
“아닙니다. 현 도련님의 반응이 정상이지요.”
운몽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운현이 태도를 고쳐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위로가 되었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운씨세가에서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운청휘와 운현 이 두 직계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아저씨가 어찌 거기서 나오십니까?”
운현이 바로 질문을 던지며 심상치 않다는 듯 정원을 둘러봤다.
“게다가…… 정원의 영기가 바깥보다 짙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두 배 이상 느껴지는군요!”
“오늘부터 저는 세가에 남아 휘 도련님을 보좌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기는…….”
운몽은 허락을 구하는 눈빛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운청휘가 머리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말했다.
“휘 도련님이 정원에 군영진을 배치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영기가 바깥보다 짙은 것입니다.”
“군…… 군영진이라면 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