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운현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세상에. 진법이라니! 청휘가 진법을 배치할 수 있다니……!”
운몽이 머리를 끄덕이자 운현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진법대사는 연단사보다도 더 고귀한 직업이었기에.
한참이 지나서야 운현은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다만 운청휘를 바라보는 눈빛에 혈육의 정 말고도 경외의 감정도 섞여 있었다.
“형님. 저와 운양청의 대결이 끝나면 백부님과 함께 처소를 이곳으로 옮기시죠. 백부님의 무위가 성경 8단계에 이른 지 오래되었으니, 이곳의 영기를 더한다면 성경 9단계에 곧 도달할 것입니다.”
운청휘는 잠시 생각하다 운현을 바라보았다.
“처소를 옮긴 후에, 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운청휘가 말하는 선물이란 바로 칠보쇠체액이었다.
칠보쇠체액과 두 배의 영기가 있다면, 운한이 성경 9단계에 도달하는 데 열흘이면 충분하다.
운현은 칠보쇠체액으로 영해를 복구하진 못하지만, 대신 육체를 튼튼하게 하여 영해를 복구하기 위한 기초를 다질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 운청휘는 머지않아 운현의 영해를 복구하고 잘린 팔도 다시 자라나게 할 계획이었다.
다만 없어진 팔을 자라나게 하는 것은 영해를 복구하는 것보다 어려웠기에, 그의 무위가 월경에 도달해야 했다.
“그래, 알겠다! 때가 되면 아버님과 함께 꼭 오마.”
운현이 짙은 기대감을 내보이며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진법대사의 선물이라니, 아마 엄청난 선물일 것이다.
운몽은 운현이의 흥분한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벌써 이렇게 놀라는데 휘 도련님이 연단도 하신다는 걸 알면…… 아주 기절초풍하시겠군.’
운현이 떠나고 운청휘가 고서 하나를 운몽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아저씨. 무공각에 가서 이 비급을 태……, 무공각을 지키는 노인에게 주십시오.”
운청휘는 ‘태상장로’라고 말하려다 얼른 말을 삼켜 버렸다.
무공각은 비급을 빌려주는 기한이 모두 3일이다. 운청휘라도 예외가 없었다.
바로 오늘이 운청휘가 ‘영후백변신법’을 빌린 지 삼 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늙은이가 과연 본제(本帝)의 지적을 알아들었는지 모르겠군.”
운청휘는 멀어져 가는 운몽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가 운청휘가 해준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면, 바로 오늘이 그가 막혀 있던 벽을 깨부수는 날이었다.
알아듣지 못하였으면 남은 평생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 각이 지나고, 운몽이 돌아왔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 도련님, 제가 무공각에서 뭘 본 줄 아십니까?”
“무엇을 보셨습니까?”
“월경의 강자가 무공의 벽을 넘어서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봤습니다!”
제아무리 운몽이라도 월경의 고수는 처음 봤다. 그러니 그 고수가 벽을 깨는 것 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호오…… 그 노인, 아주 우둔한 건 아니었군.”
벽을 깼다는 것은 그의 지적을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아! 도련님. 그분께서 도련님께 이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운몽이 심호흡을 하며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노부가 신세 하나 졌다고 하셨습니다.”
월경의 고수가 벽을 깨고 대뜸 한다는 말이 운청휘에게 신세를 졌다라니? 운몽으로서는 생각이 많아지기에 충분했다.
운몽의 시선이 뭐라도 찾아내려는 듯 운청휘에게서 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운청휘의 얼굴은 마른 우물처럼 고요했다.
운몽이 한숨을 뱉으며 물었다.
“도련님, 월경의 고수가 신세를 졌다고 하는데 전혀 기쁘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겨우 월경의 고수가 아닙니까.”
운청휘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겨우 월경고수라고요? 겨우……?”
운몽은 멍청한 표정으로 ‘겨우’라는 단어만 반복해서 곱씹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운씨세가의 연무장은 수천 명의 사람으로 북적였다.
그 수가 점점 불어나더니, 정오가 가까워지자 무려 만 명에 달했다.
운씨세가의 사람만 육천에 가까웠고, 나머지는 천우성의 다른 세력에서 나온 이들이었다.
바로 오늘이, 운청휘와 운양청의 결전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정말이지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렵군. 3년이나 실종되었다가 다시 나타나다니!”
“큭큭. 예측하기 어려운 건 그게 아니라 운청휘의 무위지…… 예전의 그 천우성 제일 기재가 지금은 그저 평범한 성경 3단계가 되었잖아?”
“간덩이가 큰 건 인정해. 그것밖에 안 되는 무위로 운양청에게 덤벼 들겠다잖아. 소가주 자리에 눈이 돌아갔어. 아주.”
“흥! 그건 간이 큰 게 아니라 멍청한 거야. 머릿속에 권세에 대한 탐욕만 가득하니 목숨도 버리지.”
“누가 아니래? 지금은 운양청이야말로 운씨세가의 제일 기재잖아. 그리고, 얼마 전 성경 7단계로 올라섰다는 소문도 있어.”
“뭐? 성경 7단계라고? 뭐야 그럼, 운청휘 이놈은 이미 죽은 목숨이잖아?”
운청휘가 운월을 죽인 일도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었고, 장용이 일초에 나가떨어져 피를 토한 것도 운몽이 소문을 잠재웠다. 그러니 대결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들은 승자를 운양청으로 예상했다.
“저기 봐봐, 운양청이야!”
누군가 소리치자 모두의 눈빛이 한곳으로 쏠렸다.
고급스러운 무복을 입은 운양청의 신형은 매서운 예기를 뿜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압도해, 감히 상대해 볼 마음도 들지 못하게 했다.
운양청의 옆으로 대장로와 세 명의 장로가 나란히 섰다. 운양청에게 줄을 댔다는 사실이 명백했다.
“명광 형장, 주인장께서 이제야 나타나다니 너무하십니다!”
“명광 형장, 별고 없으시지요!”
“명광 형장, 또 만나는군요!”
“명광 형…….”
일부 천우성에서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장로와 인사를 나눴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명광 형장’은 대장로의 이름인 운명광이었다.
“장 형, 기 형, 진 형……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걸음 하셨습니까?”
대 장로도 웃는 얼굴로 그들과 허물없이 인사를 나눴다.
“하하. 자제분의 결투가 있는 날인데 놓칠 수야 없지요.”
“맞습니다. 하나는 예전의 천우성 제일 기재, 또 하나는 지금의 운씨세가 제일 기재. 백 년에 한 번 있을 법한 대결이 아닙니까!”
“그것도 있지만 오늘의 승부가 운씨세가의 가주 승계권에도 직결되지 않습니까? 당연히 직접 봐야지요.”
***
운양청은 어른들에게 인사도 올리지 않은 채, 줄곧 차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어느 순간, 그가 얼굴을 구기며 서쪽을 바라보았다.
“정말 살아서 돌아왔구나. 운청휘 .”
서쪽에서 운청휘와 백부 운한, 사촌 형 운현이 나란히 걸어왔고 그들 뒤로 무표정한 운몽이 따르고 있었다.
네 사람 중 운한만이 연무장 쪽을 보고 있었고 운청휘와 운현은 가끔 웃음도 지어 보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운몽은 시종일관 운청휘의 뒤만 따르며 충직한 호위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드디어 나타났군.”
사흘 전 은자 십만 냥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장용이 얼굴에 살기를 피우며 이를 갈았다.
“운청휘 이 개자식. 십만 냥을 뜯어간 것도 모자라 내 아들놈의 무위도 폐해 버리다니. 내 언젠가는 네놈을 갈아 마실테다!”
말을 뱉은 노인은 장용의 아버지인 장씨무관의 관주 장덕열이었다.
***
“아무래도 빠른 시일 안에 운씨세가를 정리해야겠군.”
연무장을 둘러본 운청휘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운명광의 신분은 대장로일 뿐이다. 그런데 그의 주위에는 나머지 세 장로를 빼고도 천우성 내 다른 세력의 가주들이 함께했다.
반면 운한은 운씨세가의 가주임에도 아무도 그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세력의 가주들에게 있어서 운씨세가의 실세는 대장로라고 인정하는 뜻이었다.
“때가 되었군.”
운양청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내뱉었지만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귀로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이어서 그가 몸을 살짝 움직이자 영력이 일더니 그대로 붕 떠서 연무장 중심에 있는 비무대로 날아갔다.
“운청휘! 나와라!”
또다시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울렸다.
“과연 성경 7단계로구나!”
몇몇 눈치가 빠른 이들이 운양청의 기세에서 그의 무위를 가늠해냈다.
“하하하. 성경 7단계! 운청휘 이놈 이제 죽은 거나 다름없구나!”
장씨무관의 관주 장덕열이 괴상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명광 형장! 소문에 자제분께서 성경 7단계를 이루었다더니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군요!”
“감축드립니다. 오늘이 지나면 소가주의 자리는 자제분의 것이겠군요!”
대장로의 주변에 서 있던 자들이 전보다 더 열성적인 태도로 너도나도 축하를 건넸다.
“하하하. 장 형, 기 형, 진 형…… 과찬이십니다!”
대장로가 웃는 얼굴로 아니라는 듯 손을 젓더니 말을 보탰다.
“하지만 아들 녀석이 가주 후계자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지요.”
***
“임씨세가에서도 사람을 보냈군…….”
대장로의 눈빛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임씨세가는 운씨세가와 마찬가지로 천우성의 삼대 세력 중 하나다.
하지만 서로 교류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 경쟁하는 관계였다.
더욱이 반년 전에는 운현의 일로 큰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에 가까스로 수습되기까지 했다.
“크큭. 임비화 저놈 저쪽으로 가는구나…….”
대장로는 임씨가문의 사람이 이쪽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운한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운청휘가 비무대로 올라가려다 운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물었다. 그는 하나 남은 주먹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벼, 별일 아니다. 청휘야, 어서 올라가거라!”
운현이 심호흡을 하며 진정되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을 이렇게 만든 놈이, 저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