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운청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운현은 임비화를 본 순간부터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고 몸에서 감출 수 없는 증오가 피어올랐다.
“청휘야, 부탁이건데, 그만 묻거라.”
임비화가 점점 가까워져 오자 운현이 애원하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이다 운현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형님, 잊지 마십시오. 제가 운양청을 꺾으면, 전부 말씀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둘은 이제 제법 서먹함이 사라져 어릴 때처럼 친근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운청휘! 기어 올라와!”
비무대 위에서 다시 한 번 운양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음을 재촉하는군!”
운청휘가 비무대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영후백변신법을 펼쳐 잠자리가 물 위를 차듯 사람들의 머리를 밟으며 한 번에 비무대 위에 도착했다.
“신법은 봐줄 만하네. 내가 본 것이 틀리지 않는다면 무공각의 3층에 있는 영후백변신법이지? 제길, 직계는 좋겠어? 무공각 3층도 마음대로 들어가고. 이제 아쉬워서 어떻게 하나? 오늘부터 직계는 나 운양청 하나뿐인데?”
“그 허세 하나만큼은 변함없구나!”
운청휘는 말을 마치며 공격을 펼쳤다.
“진짜 허세를 부리는 건 네놈이지! 다만 3년 전에는 그럴 실력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그냥 버러지일 뿐이야!”
운양청은 시리도록 차가운 기세를 내뿜으며 운청휘의 공경에 정면으로 맞섰다.
“3년 전의 굴욕, 오늘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하! 고작 너 따위가 말이냐?”
운청휘가 피식 실소를 내뱉었다.
쾅! 서로의 공격이 부딪치며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한차례의 충격파가 중심으로부터 퍼져 나갔다.
타다탁!
운양청이 얼굴을 구기며 뒤로 여덟 걸음 밀려났다.
“이럴 수가……. 내가 밀리다니!”
운양청은 경악한 얼굴로 운청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확실하다는 듯 그에게 몇 번이고 운청휘의 무위가 기껏해야 성경 5단계라고 말해줬었다.
“왜 그러지? 그렇게나 놀랄 일인가?”
운청휘가 피식 냉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정권을 내질렀다. 이번의 공격은 그전보다 더 맹렬했고 더 파죽지세로 날아왔다.
“이런 젠장……!”
운양청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지만 그가 반응도 하기 전에 운청휘의 주먹이 그의 왼쪽 어깨에 닿았다.
펑!
운양청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추락하며 석반으로 된 바닥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운양청은 입가의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운청휘만 바라보았다.
“너 진짜 무위가 퇴보한게 맞는 거냐?”
놀란 것은 운양청 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만약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누구도 성경 7단계의 운양청이 한방에 나가 떨어졌다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빌어먹을…… 어린놈의 심계가 이토록 깊었다니……. 운월을 죽일 때조차도 무위를 숨겼어!”
대장로가 침중하게 중얼거렸다.
운월의 시체를 보고 운청휘의 무위를 성경 5단계로 본 그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눈앞의 운청휘는 성경 7단계의 운양청을 주먹 한 방으로 날려 버리지 않았던가?
운청휘의 백부 운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운청휘가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었다. 돌아왔을 당시 운청휘는 무위가 퇴보했다고 말했고, 운한은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지금 보여 준 실력은 절대 성경 3단계라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대결을 준비한 7일간, 운청휘의 실력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뜻이다.
“역시 천우성 제일의 기재라 이건가? 실망시키지 않는군.”
임씨세가의 임비화가 중얼거렸다.
운양청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한껏 진지해진 눈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얕잡아 봤다는 것은 인정하지, 이제부터는 방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해 주마.”
운양청의 몸에서 변화가 일더니 강렬한 예기가 뿜어져 나와 주위를 잠식했다. 몇몇 비무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 예기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쓰러졌다.
“운양청이 이제야 본 실력을 꺼내는구만!”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운양청의 변화를 느끼며 소리쳤다.
“그럼 그렇지. 아까는 진짜 실력이 아니었던 거야!”
누군가가 이제 이해된다는 듯 소리쳤다.
“운양청이 진지하게 상대하도록 만들다니, 이제 운청휘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그러게나 말이야. 만약 처음부터 진심이었다면 운청휘는 이미 죽었겠지…….”
맞장구를 치던 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청휘가 별안간 귀신처럼 사라지더니 운양청의 앞에 나타났다. 물 흐르듯 턱을 향해 뻗어간 일권에, 운양청의 몸은 또다시 뒤로 밀려 날아가며 공중에서 몇 바퀴 돌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연무장에는 죽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이제 운청휘를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운양청이 실력을 전부 드러내고도 운청휘의 일초를 막지 못했다.
붉은 장포를 단정히 입은 채 뒷짐을 지고 선 운청휘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다.
이때, 운양청은 이미 혼절해 있었다.
“성경 7단계라고 했던가? 한 수로도 충분하군.”
정적이 감도는 연무장에 운청휘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몸을 날려 운현의 곁에 내려섰다.
“형님. 이제 약속한 대로 모두 말해주십시오.”
운현을 향해 말하면서도, 운청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임비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임비화!”
“하하. 이거 영광인데? 천하의 운청휘가 내 이름도 기억해 주고.”
임비화가 의외라는 듯 웃었다.
3년 전의 운청휘는 천우성의 제일 기재답게, 또래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임비화 또한 그들 중 하나였지만, 그때의 임비화는 무명소졸에 불과했다. 심지어 운청휘에게 말 한번 붙여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운청휘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꽤 의외였지만, 지금의 그에게선 운청휘를 향한 동경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운현, 회복이 빠르네? 무위가 폐해지고 팔이 잘렸는데 겨우 반년 만에 제법 생기가 도는 걸 보니.”
임비화가 시선을 운현에게로 옮겼다.
“형님의 영해와 팔, 네놈 짓이냐?”
운청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호오~ 아직 운현에게서 듣지 못했나? 하긴……. 그런 짓거리를 하고도 떠들고 다닐 수는 없었겠지.”
임비화는 비아냥거리며 다시 운청휘를 보았다.
“뭐, 운현에게서 듣지 못했다면 본 공자가 친히 얘기해주지…….”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직접, 있는 그대로 밝히겠어!”
이제까지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운현이 갑자기 소리쳤다.
“청휘야, 이건 임씨세가와 관계가 있는 건 맞다. 다만 그 주동자가 임비화는 아니란다.”
운현은 운청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를 감지하고는 급히 다가서며 낮게 말했다.
“가자,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 돌아가서 전부 말해 주마.”
운현은 여기서는 말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동생의 등을 밀었다.
사실 운현의 일은 천우성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삼대 세력들 중 운, 임 두 세력과 상관되는 일이라 사람들이 불똥이라도 튈까 입을 닫고 있을 뿐이었다.
“잠깐!”
임비화가 갑자기 돌아가려는 운청휘를 불러 세웠다.
“내가 이번에 운씨세가에 온 것은 단지 이야기 하고자만은 아니다!”
“그럼?”
대답을 한 사람은 운청휘가 아니라 운현이었다.
“임씨세가의 대표로서 운씨세가의 소가주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임비화의 두 눈은 운청휘를 향한 도발로 번득였다.
“임씨세가를 대표할 자격은 있느냐?”
운청휘는 몸을 돌리며 승낙도 거절도 아닌 말을 뱉었다.
“나는 임씨세가 대장로님의 아들이야, 자격이야 충분하지, 그리고…… 이번 일은 가주님의 동의도 얻었어!”
임비화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빼며 말했다.
“물론,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네가 날 꺾는다면 임씨세가는 낙운산맥에 있는 오인철 광산을 대가로 지불하겠다.”
“뭐?!”
임비화의 말에 연무장 전체가 끓어올랐다.
오인철 광산은 임씨세가의 명맥을 잇는 주요 산업지였다.
오인철로 만드는 오인청광 한 근은 은자 일백 냥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런 철광이 일 년에 만근 이상 채굴되니, 오인철 광산은 적어도 매년 은자 일백만 냥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임비화가 미친 것이 아니라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잖아, 아니면 오인철 광산을 도박의 판돈으로 걸진 않았겠지.”
“크큭…… 이건 뭐 생각해볼 필요도 없겠어. 임씨세가에서 운씨세가의 영약원이 탐나는 모양이야.”
천우성의 삼대 세력은 저마다의 명맥을 유지하는 주요 산업이 있었다.
임씨세가는 오인철 광산이 주요 산업이었고 운씨세가는 영약원이 주요 산업이었다.
천우성에서 팔리고 있는 약재의 칠할 이상이 운씨세가의 영약원에서 나왔다.
“운현의 그 일은……. 운, 임 두 세가 중 하나가 죽기 전엔 끝이 나지 않겠군.”
“흐흐흐. 난 반년 전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고!”
“운씨세가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는군.”
“내 생각에는 운씨세가가 십중팔구 도전을 받아들일 것이야. 그 일로 운씨세가가 수모가 아니더라도 운현은 무위와 팔 하나를 잃었어! 운현과 운청휘의 관계라면 운청휘가 운현의 복수를 할 게 뻔해.”
연무장 전체에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반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저 ‘그 일’이라고 할 뿐 누구도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다.
“물론.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너도 비슷한 걸 걸도록. 아! 영약원은 어떤가.”
임비화의 말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