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3화 (13/430)

제13화

“청휘야! 받아들이면 안 된다!”

가주인 운한이 급히 나서며 소리쳤다.

“운청휘, 네 녀석이 내 아들놈과의 대결에서 이겼으니 대장로로서 네가 소가주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도박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대장로도 앞으로 한발 나서며 말했다.

“소가주님, 재고하여 주십시오!”

“도련님, 재고하여 주십시오!”

운청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운씨세가의 수뇌부는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그만큼 운씨세가에서 영약원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했다.

운씨세가가 쓰러지지 않게 해주는 근간이자, 영약원이 있었기에 오늘의 운씨세가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더욱이, 운청휘가 오늘의 대결에서 이겼다고 해도 그것이 임비화를 상대할 능력을 증명하진 않았다.

무공의 자질로만 본다면 운양청은 천우성 내의 또래 중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임비화는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재였다. 그는 이미 1년 전, 성경 7단계에 올라서 있었으니까.

“흥! 휘 도련님께 도전하려거든 나부터 넘어야 할 것이다!”

운몽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다음 순간, 운몽이 일장을 뻗으며 임비화에게 달려들었다. 운청휘를 위해 임비화의 실력을 가늠해 보려는 속셈이었다.

“천수혈도, 네 놈이 나설 자리가 아니다!”

임비화는 미간을 구기며 손을 내밀어 운몽의 공격을 상대했다.

펑!

임비화와 운몽의 일장이 충돌하며 굉음이 울렸다.

타타탓!

충격으로 세 발자국 뒤로 밀려난 운몽과 달리, 임비화는 일장을 내지른 자리에서 꼿꼿이 서 있었다.

무위로는 임비화가 절대적으로 우세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럴 수가……! 성경 8단계인 내가 어떻게 7단계인 네놈에게…….”

운몽은 충격에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는 이미 어제 성경 8단계로 들어섰다. 그런데 임비화의 일장에 뒤로 삼 보나 밀리다니…….

“호오? 성경 8단계에 들어섰다고?”

임비화는 의외라는 듯 눈을 빛냈다.

천수혈도는 운씨세가의 검인만큼 임씨세가에도 그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천수혈도의 무위는 아직 성경 7단계였다.

“도련님, 임비화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어떨지요. 제 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임비화는 적어도 성경 8단계 이상입니다. 어쩌면 이미 성경 9단계일 수도 있습니다.”

운청휘는 머리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그때는 나서지 마십시오. 임비화의 무위는 성경 8단계가 맞습니다.”

선제인 운청휘에게 무위를 파악하는 것쯤은 한 번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급할 것 없이, 하루의 시간을 주지.”

임비화는 자신의 무위가 드러나도 상관없다는 듯 결과를 확신하며 말했다.

“운현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도전을 피하진 못할 거다. 그럼 오늘은 이만하지. 다음에 또 보자고?”

말을 마친 임비화가 자리를 뜨자, 연무장 내의 인파도 점차 흩어졌다.

거처로 돌아가는 길, 운현의 안색은 유난히 어두웠다.

임비화의 말처럼, 운청휘가 자신의 일을 알게 된다면 절대 도전을 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걱정이, 운현이 가슴 깊이 새긴 원한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 원한은 죽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했다.

아마 운현은 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로 그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운씨세가. 임씨세가. 철랑방.

천우성에서 그들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세 세력은 오랜 시간 천우성을 이끌어왔다.

그중 운씨세가는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했으나, 운청휘의 부친이 실종되며 셋 중 가장 약한 세력가가 되었다.

그 틈을 타 세력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최하위였던 임씨세가가 세력을 키우는 한편, 고작 20년의 역사를 지닌 철랑방이 가장 위에 자리 잡았다.

그간의 설움을 풀기라도 하듯, 철랑방은 야욕을 드러내었다. 임씨세가와 운씨세가를 견제하여 두 세력가의 사업까지 잠식한 것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운씨세가와 임씨세가의 수뇌부들은 일시적인 동맹을 맺었다. 그것이 1년 전의 일이다.

동맹의 증표로, 두 세가에서 혼담이 오가기 시작했다.

혼담의 당사자는 운현과 임매란, 임씨세가 대장로의 여식이자 임비화의 친누이였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던 혼담은 식을 올리기도 전에 허사가 되었다. 천우성을 뒤흔들고 만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로 인해 운씨세가와 임씨세가 사이의 동맹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은 일생일대의 숙적이 되었다.

1년 전, 혼담이 정해지고 식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수련을 마친 운현은 임매란을 만나기 위해 임씨세가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임매란의 방 앞에 도달했을 때, 뜻밖에도 방 안에서는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운현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운현의 앞에서 늘 조신하고 정숙하여 현모양처의 상을 그대로 보여주던 임매란이었다. 그런 그녀가, 정혼자를 내버려 두고 다른 이와 정을 통하다니?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에, 운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하인 한 명이 운현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왔다.

“어? 운현 공자님 아니십니까. 아가씨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하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분주해졌다. 잠시 후, 옷가지를 대충 걸쳐 입은 청년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그제야 운현은, 자신의 정혼자와 정을 통한 이를 알아보았다.

그는 임씨세가의 사람으로, 다른 이도 아닌 소가주 임위였다.

“운현.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조부가 널 부르진 않더냐?”

놀랍게도, 임위는 당황하기는커녕 태연하게 말을 걸어오더니 곧바로 운현의 곁에 서 있던 하인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는 낯빛이 돌변하여 운현에게 소리쳤다.

“운현! 이 파렴치한 놈! 감히 백주대낮에 임씨세가에 숨어들어온 것도 모자라, 임씨세가의 여식을 겁탈하려 들다니!”

운현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임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임위는 운청휘와 채하의 뒤를 잇는 천우성의 기재였으니, 운현이 그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운현은 제대로 된 반항 한번 못 해보고 임위에게 제압당했다.

만약 일이 여기서 그쳤다면 운현의 증오가 이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임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운현을 방으로 끌고 들어가, 그가 보는 앞에서 임매란과 정을 나누었다.

지금도 운현은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정혼자가 다른 이와 정을 나누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이는 분노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임위, 그놈의 살을 씹어 먹고 피를 마신다고 해도 이 감정이 가셔질까.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한 운현은 그 자리에서 혼절해 버렸다.

운현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운씨세가로 옮겨져 있었다.

침상 옆에는 운씨세가의 수뇌부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그를 원망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더욱이 왼팔은 잘려 나간 후였다.

세간에는 자신이 임매란을 겁탈하기 위해 임씨세가에 숨어들었고, 위급한 순간에 임위가 이를 저지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분노한 임비화가 운현의 영해를 폐했고, 왼팔은 임위가 잘라 뒷산의 들개에게 먹이로 던져 주었다고 했다.

믿을 수 없는 소문에 운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혼자에게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자신은 파렴치한 이가 되어 있었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운현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운한을 제외한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를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다고 했던가.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누명을 쓴 운현은 점점 좌절한 끝에 타락으로 빠져들어 갔다.

매일 술로 자신을 달랬고, 급기야 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그렇게 된 거란다.”

설명을 마친 운현은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싸 쥐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그는 원한이 두 눈으로 쏟아져 나올까 두려워 꼭 감은 채로 뜨지 못했다.

“반년 동안, 하루가 일 년 같았다. 복수하고 싶어. 임매란을 죽이고, 임위! 그 개자식을 죽이고 싶다. 임씨세가를 이 땅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고 싶다고……! 그런데, 내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그것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원통해. 유일하게 믿었던 세가도 복수는커녕 나서지도 않아!”

절망한 운현이 자신의 고통을 내뱉었다.

“후…….”

운청휘는 긴 숨을 내뱉었다. 터져 나오는 살기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지만 다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점점 주위의 기온이 내려가더니, 입김마저 흘러나왔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약속하겠습니다. 백 배. 아니, 천 배로 복수해 드리겠습니다!”

운청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선제가 되고 나서 이렇게 강한 살기를 품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임매란. 임위. 임비화는 물론, 임씨세가의 씨를 말려 버릴 겁니다!”

옆에서 침묵하는 운몽에게서도 섬뜩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년 전, 운현의 복수를 위해 임씨세가로 쳐들어가려 했던 운몽이었다.

그러나 네 장로의 격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이루지 못했던 터였다.

운씨세가의 권력은 가주 운한이 아닌 네 장로, 정확이 말하자면 대장로 한 명에게 쏠려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운청휘!”

“운청휘!”

“도련님!”

별안간 십여 명의 신형이 운청휘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운씨세가의 수뇌부를 비롯하여, 그들을 이끌고 온 대장로였다.

“운현이 모두 말해 주더냐?”

운청휘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살기를 느낀 대장로가 물었다.

“네 녀석이 운양청을 이겼으니 자질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러니 우리 네 장로는 네가 소가주라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조건이 있음이야!”

다른 장로 하나가 끼어들었다.

“아주 쉬운 조건이야. 네가 여기서 평생 운현의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만 하면 되니라!”

“운청휘!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이는 운현의 잘못이다. 만약 잘못이 없다고 해도, 임씨세가와 목숨을 걸고 대적할 가치가 없는 일이다.”

“우리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지. 다만 결정을 지체한다면 우리는 네가 승계권을 포기한다고 간주하겠다.”

대장로의 입꼬리는 조롱하듯 올라가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운청휘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바로 그것이, 대장로가 원하는 상황이었다. 운청휘가 거절한다면, 소가주의 자리는 자연히 운양청에게 돌아갈 터였다.

운청휘는 이들을 무시하고 운현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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