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곽돈이 장검을 휘둘렀다. 고막을 찢는 폭음과 함께, 한 줄기의 불꽃이 허공에 피어나며 운청휘에게 날아들었다.
곽돈이 날린 검기가 눈 깜짝할 사이, 운청휘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곧바로 영후백변신법을 펼친 운청휘가 삼 장 허공으로 솟구쳤다.
공중에 도달한 운청휘의 몸이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영력을 품은 손바닥을 펼치고 곽돈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아쉽군. 속도는 볼만하지만, 그저 괜찮은 정도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장검을 거둔 곽돈이 허공에서 내려꽂히는 손바닥을 향해 칼끝을 올려 쳤다.
장검과 중장이 격돌하는 순간이었다.
쾅! 쾅! 쾅!
검 끝에 닿기 직전, 운청휘는 손의 방향을 바꾸어 검신을 난타했다. 그 순간, 검신이 예기를 뿜어냈다.
“……이런.”
운청휘의 눈빛이 변하며, 갑작스럽게 몸을 틀어 뒤로 훌쩍 물러섰다.
펑!
그와 동시에, 수십 개의 영기가 운청휘가 있던 자리에 화살처럼 꽂히며 폭발했다.
“피하다니?”
곽돈이 놀라움 가득한 눈빛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월경 1단계의 무위로 나를 이리 오래 상대한 녀석은 처음이군. 좋다, 전력으로 상대해 주마!”
곽돈이 장검을 빙글 돌렸다. 검에서 뿜어 나온 불꽃이 둥근 고리를 이루더니 겹겹이 포개진다. 불꽃의 고리들이 운청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야옹야옹!”
옆에서 지켜보던 기령이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도울 것 없다!”
운청휘는 고개를 저으며 느릿느릿 말했다.
“저놈의 수법도, 대응할 방법도 마련해 두었다. 지금의 내 무위로도 충분하니, 지켜보도록.”
“이 애송이가!”
곽돈이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뜨며 장검을 더욱 빠르게 휘둘렀다.
“감히 나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하는 것이냐! 세 치 혀를 뽑아주마! 월경 1단계와 2단계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월경 1단계라?”
운청휘가 하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본제의 무위가 월경 1단계로 돌아왔다면, 네놈의 목숨을 골백번은 거뒀을 것이다!”
깡! 깡! 깡!
운청휘의 주먹이 연신 곽돈의 장검을 내리쳤다.
한 치의 빗나감도 없이, 정확하게 검신을 내려칠 때마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곽돈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검을 잡고 있는 팔에서 연신 고통이 밀려온다. 운청휘는 매번 자신의 허점을 노리고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운청휘의 검술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것도 까마득한 하늘 위의 경지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콰득!
그 순간, 운청휘가 곽돈의 어깨를 매섭게 후려쳤다. 뼈가 부서지는 고통과 함께, 곽돈은 그대로 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펑! 펑! 퍼억!
숨 한 번 들이켤 틈도 없이, 운청휘의 공격이 몰아쳤다. 곽돈의 전신이 운청휘의 주먹에 난타당하기 시작했다.
쾅!
지면에 강하게 처박힌 곽돈이 선혈을 울컥 내뿜었다.
“쿨럭……! 내가, 내가……! 월경 1단계의 애송이에게?”
곽돈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지 피에 젖은 입으로 중얼거렸다.
“아둔한 놈. 정녕 내가 월경 1단계로 보이던가?”
운청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
널브러진 곽돈에게 다가간 운청휘가 가볍게 곽돈의 몸을 들어 올렸다.
“자. 이제 자기칠선과에 대해 전부 털어놓아라!”
반나절 뒤.
운청휘와 기령은 거대한 동굴의 입구에 서 있었다.
어두운 동굴 안쪽에서부터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섬뜩해 달아날 터였다.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동굴은 마치 지옥으로 통하는 문처럼 보였다.
“자기칠선과는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자라지……. 그렇다면 이 동굴이 제격이로군.”
곽돈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음을 확신한 운청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둘은 망설임 없이 동굴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운청휘와 기령이 자기칠선과를 찾고 있을 무렵, 천우성 운씨세가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른 의사청을 메운 수뇌부들의 중심에, 가주 운한이 침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철랑방 자식들, 정도가 지나치구나! 혼담을 요청한 것은 둘째 치고, 오인철 광산을 혼수로 요구하다니!”
“오인철 광산은 소가주님께서 어렵게 가져온 것인데, 이것들이! 탐욕스럽기 짝이 없소이다!”
화를 참지 못한 이들이 저마다 욕을 해댔지만, 대부분은 철랑방의 욕심이 과하다는 질책이었다.
“가주님. 혼담은 몰라도, 오인철 광산을 내주시면 안 됩니다.”
“맞습니다. 그들이 요청한 대상은 운비비가 아닙니까. 배신자 삼 장로의 여식이니, 아쉬운 것 없습니다. 다만 오인철 광산이 혼수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가주님. 직접 나서 주십시오. 면담을 신청하여 요구를 낮추는 것이 어떻습니까?”
가주 운한은 묵묵히 모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의 수뇌부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도 비비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오?”
운한의 말에 일동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운비비는 네 장로 중 삼 장로의 여식이다. 이미 세가에서는 장로들을 배신자로 낙인 찍고 그 뿌리마저 뽑아 버렸다. 그들의 세력마저 숙청했지만, 운비비는 살려 두었다.
배신자의 여식을 살려 준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은혜를 내렸는데, 비비를 위하라니?
비비와 오인철 광산을 두고 저울질한다면, 당연히 오인철 광산의 가치가 크지 않은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이 쏟아지자, 운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혼담은 거절하겠소. 오인철 광산 때문이 아니오. 그들이 요청해 온 상대가 비비라니! 세가 내의 누구도 비비의 혼사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소. 나뿐만 아니라, 태상장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며, 비비의 혼사는 스스로 결정하게 두겠소!”
운청휘가 운비비를 얼마나 아끼는지, 운한은 잘 알고 있었다.
비비가 없었다면 삼 장로를 살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만약 그들이 철랑방에 운비비를 보낸다면, 그들이 마주할 앞날은 돌아온 운청휘의 거센 분노일 터였다.
“하지만 가주님……!”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철랑방이 우리가 혼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공표하지 않았습니까?”
“전쟁? 그게 어떻다는 것이오!”
내내 침착함을 잃지 않던 운한이 별안간 기세를 끌어올렸다.
“철랑방이 강하다고 하나, 잊은 것이오? 우리 운씨세가는 그들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가문이 아니오. 더욱이, 우리는 아직 비장의 패를 보이지 않았소.”
“네? 비장의 패라 하셨습니까?”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운한을 바라보았다.
“늦어도 보름 안에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청휘 그 녀석이 돌아오면 그 패를 내보일 필요도 없겠지!”
***
동굴 안으로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났다. 운청휘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에는 시체 한 구가 있었다.
“적어도 삼일 이상은 되었겠군.”
신식을 펼친 운청휘가 사망 시각을 짚어냈다.
“옷이 천원학원의 제자들과 같군. 천원학원의 사람인 듯한데……. 몸에 상처가 없으니, 중독인가? ……그렇다기엔 주변의 공기가 나쁘지 않아. 중독된 흔적도 없군.”
아무리 봐도 의문이 들었다.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독살도 아니라면…… 설마. 영혼을 공격당했나?”
영혼에 직접 공격을 가하면, 피할 수가 없다.
보통은 선천지령만이 영혼 공격을 펼칠 수 있지만, 운청휘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곽돈의 입을 통해 함께 온 천원학원 교관들의 무위를 알아두었다. 모두 월경 4단계였다. 만약 선천생령이 공격했다면, 여기에 누워 있는 시체가 고작 한 구일 리가 없다.
짐작은 가는데,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운청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동굴의 안쪽은 음습하고 한기가 들었다. 칠흑 같은 우주에 들어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 각이 지났다.
운청휘가 다시 걸음을 멈췄다.
또 시체였다. 다만 이번에는 한 구가 아니라 열다섯 구였다.
시체들은 상처가 없었다. 다만 눈을 커다랗게 뜨고 죽은 시체 한 구가, 죽기 전에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적어도 이자는 죽기 직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운청휘는 자신의 짐작이 점점 신빙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아까는 5할의 확신이 있었다면, 지금은 8할 이상이었다.
“가자!”
운청휘는 기령을 데리고 동굴의 안으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희미하지만, 운청휘의 눈에서 정체 모를 빛이 일렁였다.
반 시진쯤 걸었을까, 운청휘의 시야에 불빛이 들어왔다.
수십 개의 횃불이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물러나기도 하다 모이고 흩어져 규칙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아마 횃불을 들고 있는 이들은 전투 중일 터였다. 운청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야옹…….”
기령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녀석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냥?”
기령이 운청휘를 쳐다보았다.
“그래. 환술이구나.”
운천휘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야옹!”
기령의 눈이 커졌다. 기령도 시체들을 보고 짐작한 게 있었는데, 이제 알아차린 듯했다.
둘은 잠입하기로 결정하고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잠시 후, 한창 전투 중인 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횃불을 든 이들이 공중에 맹공격을 퍼부으며 애꿎은 허공에 기를 분출해 대고 있었다. 누가 봐도 환술에 걸려 있는 모양새였다.
다만, 멀찍이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보였는데, 곽돈이 말한 천원학원의 내원 교관들로 보였다.
“아직 본체를 못 찾은 것이오?”
“젠장. 그 요물이 몸을 감추는 데 일가견이 있단 말이지. 반경 오천 리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털끝 하나 보이질 않으니.”
“이런 식이라면 데려온 제자들이 모두 죽을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