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아무리 우리가 내원의 교관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제자들을 잃는다면 학원의 질책을 피할 수 없소!”
“쯧. 자기칠선과도 보이질 않으니, 낭패구나…….”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이 수심에 잠겨 있었다.
대부분의 천재지보(天材地寶)는 늘 강대한 흉수나 영수가 곁을 지키며 보호하기에, 그들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성경 9단계의 제자만 백여 명 가까이 데려왔으니.
다만 그 제자들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들에게 근심을 안겨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열여섯 명의 제자가 급사했다. 환술에 걸리고 애꿎은 허공에 공격을 난사하다 탈진해 죽은 제자도 서른 명이 넘었다.
이대로라면 모든 제자가 죽는 일도 시간문제였다.
운청휘는 곧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동안 동굴 안을 배회하던 시선이 다섯 명의 뒤에 있는 연못에 고정되었다.
얼핏 십여 평쯤 되어 보이는 연못은 어둠 속에서도 맑고 투명하게 반짝였다. 수심도 그리 깊지 않은 듯했다. 기껏해야 한 자쯤 될까.
연못 바닥에는 여섯 개의 조약돌과 성인의 팔 길이만 한 고목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풍경으로, 운청휘가 신식으로 확인한 모습은 달랐다.
고목의 무성한 이파리 사이로 다섯 개의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자기칠선과였다.
그 옆에서, 생쥐와 비슷하게 생긴 작은 짐승이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무엇을 지키기엔 어리고 귀여운 생김새였으나, 녀석의 몸에서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와 넘실거렸다.
바로 그 기로 천원학원의 제자들을 환술에 빠트렸을 터였다. 내원의 교관들은 무위가 높아 환술이 안 통했을 테고.
“찍찍.”
소리까지 생쥐와 닮은 녀석이 낮게 울었다. 제법 영리한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모양이다.
“냥?”
“호오?”
녀석은 자신의 울음이 하나도 빠짐없이 운청휘와 기령의 귀에 흘러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먼저 제자 놈들부터 죽인 다음 저 교관 놈들을 괴롭혀 쫓아버릴 심산이군.”
운청휘가 약간 의외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너무 오래 걸리지 않느냐. 먼저 손을 써야겠군.”
운청휘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자기칠선과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목을 지키고 있는 녀석을 굴복시켜 거둘 생각이었다.
녀석을 굴복시키려면, 녀석의 앞에서 만물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
윙!
운청휘의 등에 매달려 있던 검집이 청량하게 울며 운청휘의 손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요괴 서령쥐(噬靈鼠)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영혼에 공격을 가할 수 있고, 환술을 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대단한 능력은 타인의 영력을 빼앗는 것이다. 그리하여 붙은 이름이 서령쥐(噬靈鼠)였다.
나아가 영력뿐만 아니라 혈맥과 자질, 운까지 빼앗을 수 있으니 선계 십대 선제 중 하나가 서령쥐(噬靈鼠)인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혈통이나 고귀함에서는 기령보다 못하지만, 잠재력으로는 기령과 비슷할 터였다.
“서령선제가 취해서 흘린 말을 기억해두길 잘했군. 선계뿐만 아니라 모든 곳을 둘러보아도 또 다른 서령쥐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본제는 천성대륙에서 서령쥐를 만나는 기연을 얻었구나! 게다가 어린 녀석이니, 거둘 수 있겠군!”
드물게도 운청휘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천성대륙에 돌아온 목적은 단 하나, 집에서 기다릴 가족을 만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돌아온 천성대륙은 기연의 연속이다.
시간의 흐름이 달라 가족들이 모두 살아 있는데다가, 기령을 만났다. 선제 하나가 자신에게 굴복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청연지심화. 아직 영혼만 있다지만 본체를 찾는 것도 시간문제다. 때가 되면 청연지심화도 완벽한 천화로 거듭날 터였다.
선계에서 삼천 년을 떠돌았어도 마주친 적 없는 천화를, 천성대륙에 돌아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만났으니, 기연의 연속일 수밖에.
진심으로, 운청휘는 만족하고 있었다.
선계에서는 원해도 얻지 못했던 것을 얻었으니, 기연이 여기까지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눈앞에 서령쥐가 놓여 있다. 잠재력만으로 선제가 된다는 그 서령쥐가!
“누구냐!”
“무서운 기세로군!”
그때, 천원학원의 교관들이 참천신검의 검집을 쥐고 전의를 불태우는 운청휘를 발견했다.
“너는 누구냐?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이냐?”
한 명이 날카롭게 물었다.
자기칠선과의 채집은 천원학원에서도 비밀스럽게 추진한 일이다. 외부인에게 들키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응? 저놈 손에 들려있는 검집……. 뭔가 이상한데? 저 무서운 기세도 저 검집에서 나오는 것 같소.”
“이런, 설마 황급 신병의 겁집인가?”
“만약 그렇다면 자기칠선과 이상의 보물이오!”
한순간, 탐욕이 가득한 시선들이 참천신검의 검집을 향했다.
“검집은 남겨두고 큰절을 열 번 올리고 꺼져라. 그럼 목숨은 살려주마.”
그들은 사냥감을 노리는 눈으로 운청휘를 훑어보았다.
눈빛으로 보아 운청휘를 평범한 애송이로 보는 것이 분명했다.
“본제의 물건을 탐내고, 본제더러 머리를 숙이라 하였느냐?”
운청휘의 음성에 살기가 깃들었다. 서령쥐를 거두기 위해 진압하려 했지만, 지금은 이들에게 살심이 생겨났다.
어떤 말은 내뱉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들은 선제의 금기를 건드렸다.
“본제?”
그들은 운청휘가 자신을 ‘본제’라고 칭하자 어리둥절해졌다.
“미친놈인가? 자신을 감히 ‘본제’라고 칭하다니. 자신을 천원왕조의 황제라고 생각하는 건가?”
“흥! 미친놈이면 죽여버리면 그만이오! 저 검집은 그 후에 논의합시다.”
한 명이 코웃음을 치며 운청휘를 향해 영력을 날렸다.
쿵!
운청휘의 신형이 사라지며 뒤에 있던 석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피했어?”
공격한 자가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다만 그뿐이었다.
슈슈슉!
단숨에 끝내겠다는 듯, 그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영력이 10여 개로 나뉘어 운청휘에게 쇄도했다.
“이것도 피해 봐라!”
“고작 이것을 피하라는 것이냐?”
운청휘는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가소롭지도 않다는 투였다.
검집을 들어 몸 앞에 세운 운청휘는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펑! 펑! 펑!
10여 개의 영력이 검집을 연타했다. 작은 먼지구름이 가신 자리에서, 흠집 하나 없는 검집과 덤덤한 표정의 운청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쉽게 내 공격을 받아낸다고?”
그는 중얼거리며 눈을 더욱 빛냈다.
“저건 황급 신병 정도가 아니야!”
나머지 넷의 눈도 탐욕으로 반짝였다. 그들은 잔상을 남기며 거의 동시에 운청휘에게 달려들었다.
“진작에 그렇게 나와야 할 것을!”
운청휘는 차가운 얼굴로 검집을 힘껏 휘둘렀다.
거대한 검기가 태풍처럼 몰아쳤다.
동굴 안의 기류가 급격히 변하며 흙먼지를 실은 바람이 일었다.
먼지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지만, 그보다 괴로운 것은 숨을 쉬는 것도 잊게 하는 거대한 위압감이었다.
천위(天威).
그들에게는 이 위압이 천위나 다름없었다.
운청휘의 뒤에서 지켜보던 기령도 이 순간만큼은 공포를 느끼고 웅크렸다. 참천신검의 검집을 쥔 운청휘에게는, 자신이 열 마리가 있어도 적수가 되지 못할 듯했다.
“빌어먹을, 이건 무슨 힘이야!”
“이런! 이건 천원학원장도 낼 수 없는 힘이오!”
“저…… 저자는 도대체 누구요!”
“저 검집은 또 뭐고!”
“아아아…… 원통하구나! 자기칠선과도 얻지 못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촌각도 지나지 않아, 참천신검의 검집이 만들어 낸 기세가 잦아들었다.
탐욕스럽게 자기칠선과를 노리고, 참천신검의 검집마저 탐내던 다섯 명의 숨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후…….”
길게 숨을 내쉰 운청휘가 휘청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방금의 일검으로 영력이 전부 소진되었다.
하지만 꾸물거릴 틈이 없었다. 운청휘는 은밀하게 선제의 정혈 한 방울을 태워 약간의 힘을 회복하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너만 남았군.”
운청휘의 걸음이 동굴의 끝을 향했다. 투명하게 빛나던 연못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작은 서령쥐와 나무 한 그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무에 열린 자색의 열매 다섯 개가 기를 품고 반짝였다.
“찍찍!”
서령쥐가 머리를 들어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인간이 자신을 발견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천우성 바깥에서 자욱한 먼지구름이 일었다.
말을 탄 무인 셋이 천우성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그중 둘은 백발에 100세를 족히 넘긴 듯한 노인이었지만, 매우 정정해 보였다.
나머지 한 명은 이제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화려한 옷과 관포(冠袍)를 입은 청년이었는데 얼굴에 타고난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두 노인은 청년을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마치 높은 사람이라도 호위하는 것처럼.
성 안으로 들어서자, 청년은 천우성 곳곳을 둘러보더니 멸시가 서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것도 성채라고…… 황성의 광장 하나도 이것보다는 크겠군.”
“소…… 공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천우성은 천원왕조에서도 가장 낙후한 성채인데 어찌 황성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청년의 왼쪽에 있는 흑의의 노인이 공손하게 답하고 다른 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운상 형님, 형님의 손자가 소문만큼 훌륭하다면 개천에서 용 나는 거요. 단번에 공자님의 무시(武侍)가 될 수 있으니 말이오.”
운상이라 불린 노인의 눈에 암담함이 스쳤다. 그러나 노인은 곧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허허. 그것도 공자님께서 마음에 드셔야 가능한 것 아니겠소.”
“하하. 그 녀석 3년 전의 천부적 재능만 그대로 있다면 그럭저럭 공자님의 무시(武侍)가 될 자격은 있소.”
무시(武侍)는 몸종이나 하인과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무시는 주인의 수련을 돕고 새로운 무공을 익혔을 때 실험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무인들은 대련 상대를 찾지 못하면 무시를 상대로 삼곤 했다.
그런데 흑의를 입은 노인은 청년의 무시가 되는 것이 크나큰 명예인 듯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