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37화 (37/430)

제37화

“편법으로 얻은 무위에! 월경 2단계라 해도 불안정하건만! 흑괴, 무엇으로 노부와 대적할 생각이냐!”

격전 중 갑자기 태상장로의 목소리가 울리며 모두에게 전해졌다.

콰직……!

이어서 태상장로의 장검이 흑괴의 팔을 베고 지나갔다.

“악!”

흑괴의 비명이 들렸다.

“이 늙은이,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죽여주마!”

죽음도 불사한 듯, 흑괴는 악을 쓰며 태상장로에게 달려들었다.

“음혈검법만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 모두 네놈이 자초한 거다!”

그 순간, 흑괴의 손에 들린 장검이 갑자기 뱀처럼 꿈틀거렸다. 어디선가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리는 듯했다.

“저건 무슨 검법이란 말인가.”

태상장로의 안색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흑괴가 사용하는 검법에서 검로를 예측할 수 없는 심오함이 전해져 왔다. 더불어 정체모를 섬뜩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렇군. 이건 마…….”

“크큭. 그래, 마도검법이다!”

태상장로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구불거리는 검이 태상장로에게 송곳니를 드러낸 뱀처럼 찔러 들어갔다.

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태상장로의 가슴에 검이 꽂혔다.

아슬아슬하게 심장은 피해갔으나, 일격에 죽을 수 있는 공격이었다.

“태상장로님!”

“태상장로님……!”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 중에는 운씨세가의 무인들도 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때, 운한이 다급히 소리쳤다.

“철기 부대는 나를 따라오너라! 태상장로님을 구해야 한다!”

“멈추시오!”

철기부대가 움직이려는 순간, 누군가가 다급히 그들을 제지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태상장로였다. 그는 검에 관통당한 채 운씨세가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와 흑괴의 대결 결과는 두 세력의 존망과 이어져 있었다.

흑괴의 무위가 낮았더라면, 철랑방이 아무리 수가 많고 강해도 태상장로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성경의 무인들은 월경 2단계 앞에서 어린아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흑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운씨세가의 철기부대는 흑괴 하나를 상대하기도 역부족일 터.

더욱이 흑괴의 뒤에는 그가 이끌고 온 철랑방의 정예가 있으니, 운한이 지금 나서면 도리어 운씨세가의 멸문만 앞당겨질 뿐이다.

“시간을 벌어야 하오! 청휘 녀석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래야 운씨세가에 기회가 있소!”

마음속 깊은 곳으로는, 운청휘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운청휘가 아무리 강하고 자질이 뛰어나도, 아직 더 성장해야 할 어린아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태상장로의 이성이 그리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세가가 위태로운 순간이 닥치자, 태상장로는 운청휘가 돌아오기를 고대했다.

그에게 무수한 놀라움을 안겨준 운청휘. 혹시 이번에도…… 그를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흑괴, 이 파렴치한 놈, 감히 마도 검법을 수련하다니, 천하인의 경멸이 두렵지도 않은 것이냐?”

철기부대를 저지한 태상장로는 분노와 놀라움이 뒤섞인 얼굴로 흑괴를 돌아보았다.

마도. 천원왕조는 물론이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름.

마도를 걷는 이들의 무공은 끊임없는 살인으로 쌓아 올려진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참상만이 있었다.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마공도 상승하므로.

바로 그 때문에, 천하의 모든 무인들이 마도를 수련하는 이들을 죽이고자 했다.

“천하인의 경멸? 허허. 만약 이 천하가 원래 마도에 속해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

흑괴가 음흉하게 웃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장검은 아직 태상장로의 가슴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원래 마도에 속해 있어? 무슨 말이냐?”

태상장로의 아미가 구겨졌다. 뭔가가 생각난 듯했지만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말 그대로다.”

흑괴는 말을 하며 태상장로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 다시 태상장로의 목에 대었다.

“네놈이 시간을 벌려는 것을 모를까. 다만, 시간을 벌어서 어쩔 셈이냐? 예전의 천우성 제일 기재라도 기다리느냐? 크크. 정말 그놈이 돌아온다면 기다려 줄 수도 있다. 그놈은 임위 소가주님이 꿈에서도 죽이고 싶어 하는 놈이니.”

운한을 비롯한 운씨세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흑괴의 눈빛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마치 우리에 가둔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했다.

“운한, 네가 보기에 이 몸의 무위로 너의 운씨세가를 도륙하는 데 일각 이상 걸릴 것 같으냐?”

흑괴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훑으며 운한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온통 피에 대한 갈망만이 가득했다.

“흑괴, 지금 뭘 하자는 것이냐?”

운한은 그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흑괴가 마음만 먹으면, 정말로 일각도 되지 않아 운씨세가의 사람들을 도륙할 터였다.

“보아하니 예전의 그 천우성 제일 기재를 기다리는 모양이군. 알 만하구나! 그럼, 이 몸이 그 기회를 줄 수도 있지. 다만! 그전까지 이 몸의 유희 상대가 되야겠다.”

흑괴는 머리를 돌려 흑낙을 바라보았다.

“가서 저놈들을 모두 묶어라. 만약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존명!”

흑낙이 크게 기뻐하며 100여 명의 무인들을 데리고 운씨세가 쪽으로 다가갔다.

“가주님…….”

“가주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운씨세가의 모든 이가 가주인 운한을 바라보았다.

“저항하지 않는다!”

운한은 그 말과 함께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주저앉았다.

“저항하지 않는단 말씀입니까? 가주님, 지금……?”

운씨세가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운한을 바라보았다.

“가주님, 이러나저러나 죽는다면 싸워야 합니다, 철랑방 놈들을 하나라도 더 저승에 데려가야지요!”

“맞습니다, 죽을힘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를 죽이면 본전이고 둘을 죽이면 이득이 아니겠습니까!”

“우린 철랑방의 적수가 못 된다. 만약 여기서 싸운다면 운씨세가는 정말로 끝이야! 저항을 포기해야만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단 말이다. 게다가 태상장로의 목숨도 흑괴의 손에 있지 않더냐!”

운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마쳤다.

“희망이라 하셨습니까?”

“가주님, 인정하기 싫지만, 태상장로가 흑괴에게 패하는 순간 우리 운씨세가는 끝난 것입니다.”

“이미 끝난 마당에 저항까지 포기하라니요. 어째서 한 놈이라도 더 죽이려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전히 같은 생각입니다. 하나를 죽이면 본전이고 둘을 죽이면 우리가 이득입니다!”

“내가 가주더냐 아니면 너희들이 가주더냐? 운씨세가의 멸문이 코앞이니, 이 가주의 말은 들리지 않는 것이더냐?”

운한이 차가워진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호통을 쳤다.

그의 시선이 닿은 사람들 모두 머리를 숙이며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은, 운씨세가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저항한다면, 그때야말로 정말로 끝이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아무리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에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희망이라 하시면? 가주님이 말씀하시는 희망이 무엇입니까?”

“운청휘! 소가주 운청휘. 우리가 녀석이 돌아올 때까지 버틴다면……! 모든 일이 풀릴 수도 있다!”

운한의 눈에 작지만 명확한 희망이 스쳤다.

이 각 후, 태상장로를 포함한 운씨세가의 모든 사람들이 결박당해 대문 앞에 한 줄로 꿇어 앉혀졌다.

맨 앞에는 태상장로와 운한이 이를 갈며 앉아 있었다.

우리 안에 갇힌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된 운씨세가의 사람들을 향해 갖은 시선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동정심을 담아 지켜보았다. 이따금 탄식도 흘러나왔다. 누구도 천우성 삼대 세력 중 하나인 운씨세가가 하루 사이에 몰락하여 포로 신세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이 늙은이, 내가 어떤 놀이를 할지 알겠느냐?”

흑괴가 태상장로의 앞으로 다가서며 피를 갈망하는 얼굴로 냉소를 지었다.

“너희의 목숨으로 즐기겠다! 물론 한 번에 전부 죽이진 않을 것이야. 반 시진에 한 번, 10명씩 죽이겠다.

운청휘 그놈이 돌아올 때까지, 몇 명이나 살아남는지 지켜보자고.”

“뭐라……?”

산전수전을 다 겪은 태상장로였지만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찢어질 듯 커진 눈으로 흑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흑괴, 이…… 짐승보다 못한 놈, 죽이려면 그냥 곱게 죽여라, 사람 목숨으로 수작 부리지 말고!”

무인으로서,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진정으로 두려운 일은 세가의 사람들이 하나하나 목숨을 잃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닥쳐올 고통과 괴로움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터였다.

태상장로뿐 아니라 운한을 비롯한 운씨세가의 사람들이 화를 이기지 못하고 악을 썼다.

이것이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생각인가.

흑괴는 너무나 악랄했다.

악랄함뿐만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즐거워하는 흑괴는 악마처럼 보였다.

“아버님, 제가 먼저 죽이게 허락해 주시지요.”

흑낙이 혀를 날름거리며 기이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좋다. 네가 먼저 나서도록 해라!”

흑괴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짝!

허락을 얻은 흑낙이 태상장로의 뺨을 내려쳤다.

“늙은이. 내 보검을 빼앗고, 당주 둘을 죽였지. 100여 명의 무인이 네 손에 죽어 나간 데다, 심지어 나를 밖으로 내던졌다. 그때는 업보가 이리 돌아올 줄은 몰랐을 테지? 오늘, 이 흑낙이! 네놈이 보는 앞에서 운씨세가의 놈들을 하나하나 가죽을 벗기고 힘줄을 뽑아 주마! 죽은 놈들은 모두 사지를 자를 것이야! 그 고통을, 똑똑히 느껴 봐라!”

짝! 짝! 짝!

흑낙은 멈추지 않고 태상장로의 뺨을 후려쳤다.

“하하하! 상쾌하구나! 월경 2단계의 강자가 다 무엇이냐! 이 애송이에게 따귀나 맞는 것을! 너희는 가서 아무나 열 놈을 데려와라. 본 공자가 이 늙은이 앞에서 솜씨를 보여 주마!”

명이 떨어지자 흑낙의 수하들이 운씨세가의 사람 10명을 끌고 왔다.

“꿇어!”

흑낙의 수하들이 무자비하게 종아리를 걷어찼다. 무릎을 꿇은 운씨세가의 사람들이 흑낙을 노려보았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 죽여라!”

“귀신이 되어서도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무릎이 꿇렸지만 그 누구도 굴복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의 얼굴은 불굴의 의지와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재촉하지 않아도, 본 공자가 전부 죽여 주마. 하하하! 귀신이 된다고? 크크…… 지금도 본 공자에게 손끝 하나 못 대는 놈들이 죽은 다음에는 무엇할까! 여봐라, 도구를 가져와! 오늘 천우성의 모두가 운씨세가 놈들의 뼈를 보게 될 것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