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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38화 (38/430)

제38화

흑낙은 마치 뱀처럼 쉴 새 없이 혀를 날름거렸다. 스산하게 웃는 그의 얼굴은 피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했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모습이었다.

곧 철랑방의 수하들이 도구를 가져오고,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아 열 개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렸다.

비명을 지르는 운씨세가 사람들의 몸에는 가죽을 벗겨내는 갈고리가 박혀 있었다.

“하하하……!”

그 참상 앞에서, 흑낙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웃어젖혔다. 음습한 성취감이 얼굴에 묻어났다.

“짐승 같은 놈……!”

“철랑방 이 짐승 같은 놈들아, 하늘이 너희를 벌할 것이다!”

“이토록 악독하다니! 언젠가는 그 업보가 돌아올 것이다!”

운씨세가의 사람들이 격분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당장 달려들어 철랑방의 짐승들과 동귀어진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구경하던 사람들도 기겁하여 숨을 들이켰다. 아무리 포로들을 대하는 것이라 해도 악독하기 짝이 없었다. 생사결을 기대하고 왔던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 앞에서 감히 발을 떼지 못했다.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이곳은 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세상이다. 철랑방의 위세 앞에서 누가 감히 목숨을 내놓고 나설 수 있을까?

***

천우성 임씨세가의 화려한 전각. 월경의 기세를 흩뿌리는 자들이 한 청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청년은 면사가 달린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차갑고 섬뜩한 눈빛을 감출 순 없었다.

“스승님께서 보내셨느냐?”

무표정한 얼굴의 청년이 무릎을 꿇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운청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들의 복장으로 정체를 알아보았을 터였다.

흉수산맥에서 만났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천원학관 소속이었다. 개중 몇 명은 내원 교관 특유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부원장님께서 저희와 내원의 월경 제자들을 도련님에게 보내셨습니다.”

내원의 교관 한 명이 공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스승님께서 신경 써 주셨군…….”

말과는 달리, 청년의 눈에는 불만이 스쳐 갔다.

그를 걱정한다는 말은, 동시에 그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이번에 천우성에 돌아온 목적은 사람 한 명을 죽여 해묵은 응어리를 푸는 것뿐이다. 그런데 만약을 대비해서라니?

지금의 자신은 3년 전의 애송이가 아니다. 과거의 천우성 제일 기재는 지금의 자신에게 고개를 들 자격도 없었다.

“너희들은? 너희들도 내게 무슨 변고가 생길까 걱정하여 온 것이냐?”

청년은 다른 한 무리를 바라보았다.

“도련님, 저희 가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황성 운씨세가의 운범도 천우성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을 보내셨습니다!”

호위의 복장을 한 자들 중 앞에 선 자가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

“황성 운씨세가의 운범이라…….”

청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신분과 지위를 생각하면, 껄끄러운 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운범은 다르다. 그의 뒤에는 황성의 사대 세가 중 하나인 운씨세가가 있었다.

“가주님께서 도련님과 운범이 충돌할 것을 고려해 월경의 무인들과 소인을 보내셨습니다.”

호위가 공손한 얼굴로 답했다.

“장인어른께서 마음을 쓰셨구나!”

청년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모두 일어나도록!”

청년이 손을 들어 올렸다.

“철랑방과 운씨세가의 결투는 어떻게 되었느냐?”

청년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그러자 전각에 흑의를 입은 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 코, 입을 제외하면 온몸을 흑의로 감싼 자였다.

“주인님께 고합니다. 철랑방의 흑괴가 승리하였습니다. 다만…… 마지막에 흑괴가 음혈검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흑의를 입은 자가 사실대로 고했다.

“벌써 말이냐? 흑괴 이 쓸모없는 놈…….”

“그리고 주인님께서 흥미를 가지실 만한 일이 있습니다.”

흑의를 입은 자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흑괴가 놀이를 하나 시작했습니다. 반 시진마다 운씨세가의 사람 열을 죽이겠다고 하더군요. 지금 열 명의 운씨세가 사람이 가죽이 벗겨지고 힘줄이 뽑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호오?”

청년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 순간, 비릿한 붉은색이 그의 눈동자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흑괴가 흥미있는 놀이를 생각해냈군. 다만……, 운씨세가의 그자들은 내 눈에 담을 가치가 없구나. 운청휘는 돌아왔느냐?”

운청휘가 거론되자 청년의 눈에 짙은 살기가 배었다.

그 살기에는 뼛속까지 새겨진 원한이 담겨 있었다.

“운청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흑괴가 놀이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주인님께서 운청휘를 죽이려는 걸 아는지, 놀이로 시간을 끄는 듯합니다.”

흑의를 입은 자가 청년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보고했다.

전각에 있는 누구라도 청년이 운청휘를 죽이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운청휘가 천우성의 천하제일 기재로 불릴 때, 청년은 운청휘 다음의 기재로 불렸다.

그 두 번째 기재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운청휘의 일초를 받아내지 못하고 패했다.

청년은 그 굴욕을 잊을 수가 없다. 뼈에 새겨지고 마음에 맺힌 원한은, 운청휘의 피로만 씻어낼 수 있었다.

원한을 품고 천원학관에 입문했던 청년은, 3년 만에 운청휘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천우성으로 돌아왔다.

“주인님, 보고 드립니다.”

이때, 또 한 명의 흑의인이 전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도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흑의로 감싼 자였다.

“무슨 일이냐?”

청년의 아미가 구겨졌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부르기도 전에 먼저 나서는 수하였다.

만약 고하는 내용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주인님께서 기다리시던 운청휘가 돌아왔습니다!”

흑의인이 급히 몸을 숙이며 답했다.

***

흑낙이 손을 움직이자, 갈고리는 손쉽게 사람들의 가죽을 벗겨내었다.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는 사람은 이미 전신이 피로 물들어, 혈인(血人)이나 다름없었다.

그 광경을 억지로 지켜봐야 하는 많은 이들이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아 버렸다.

흑괴가 놀이를 선언한 이후, 운씨세가의 사람 10명은 흑낙에게 붙들린 채 가죽이 벗겨지고 힘줄이 뽑히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목숨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아 그들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으윽…….”

그들의 비명이 운씨세가를 뒤덮었다.

뱃속에서부터 끌어올린 비명이 어찌나 참담하던지, 듣는 이들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해 몸서리를 쳤다.

고통은 가죽이 벗겨지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운씨세가 사람들의 부릅뜬 눈은 핏발이 서고, 분노를 참지 못해 눈물로 땅을 적셨다.

그 와중에도 운한은 결박된 몸으로 몸부림을 치며 철랑방의 무인들을 막으려 들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하하하……!”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트린 흑낙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얼마 만에 느끼는 손맛이냐, 하하하! 늙은이, 가족의 껍데기가 벗겨지는 것을 보고만 있으니 어떠냐! 하하하……!”

흥이 오른 흑낙이 피범벅이 된 손으로 태상장로의 뺨을 다시 내리쳤다.

“운한! 천우성 삼대 세력 중 하나라는 운씨세가의 가주가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몰랐더냐? 쯧쯧, 뭘 보고만 있나? 덤벼 보지 않고! 하하하!”

잔뜩 흥분한 흑낙이 운한을 돌아보며 비아냥거렸다.

그때.

삐익!

별안간 날카로운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머리 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날개의 길이만 6장에 이르는 독수리가 운씨세가에 접근했다.

“흉…… 흉수다!”

“뭐? 천우성은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흉수가 어떻게……?”

“흉수는 흉수산맥을 벗어나지 않는데. 이게 어찌 된 거지?”

흉수의 출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흑괴와 흑낙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

흑낙의 아미가 구겨졌다. 독수리의 등 위에 타고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발견한 것이다.

“저놈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흑괴가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소리 질렀다.

“운청휘! 그래, 저놈이구나!”

“저기 봐, 흉수의 등에 누군가가 타고 있어!”

“맙소사. 정말이었군.”

“흉수가 왜 여기에 나타났나 했더니 저 남녀가 타고 온 것이었다니!”

두 사람이 독수리의 등에서 뛰어내리자 사람들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운청휘……!”

“청휘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운씨세가의 태상장로와 운한도 운청휘를 알아보았다.

세가의 열 명이 고문을 당하는 일로, 운청휘가 돌아올 시간을 벌었다.

“백부님! 태상장로님!”

운청휘의 몸이 태상장로와 백부의 가운데 내려섰다.

운청휘는 팔을 휙 내젓는 것으로 두 사람의 몸에 감겨 있던 줄을 끊어냈다.

“청…… 청휘야, 전부, 전부 죽이거라!”

“철랑방의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 아니 그와 관계된 자들 모두! 모두 죽여야 해!”

태상장로와 운한이 거의 동시에 운청휘를 향해 부르짖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운청휘는 용서를 빌며 세가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 운청휘가 약조하지. 그대들이 겪은 고통을 몇 배로 돌려주겠다.”

말을 마친 운청휘가 가죽이 벗겨져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이제 목이 쉬고 갈라져 힘없는 신음만 겨우 내고 있었다.

운청휘는 말없이 그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선제가 된 후로, 누군가에게 허리를 굽히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대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는 없다. 어떤 위로도 그대들이 겪은 고통을 달랠 수 없음을 안다.”

운청휘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두 가지를 약속하겠다. 첫째, 벗겨진 피부는 모두 재생시켜주마. 둘째…….”

운청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물씬 피어올랐다.

“하늘을 뒤집는 한이 있어도, 철랑방 전부를 이 손으로 지워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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